Liebestraum No.3 in A Flat major, Op.64-3
O lieb, solang du lieben kannst!
O lieb, solang du lieben magst!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bern stehst und klagst.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하고 싶은 한!
시간이 오리라,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Und sorge, dass dein Herze gl?ht
und Liebe hegt und Liebe tr?gt,
solang ihm noch ein ander Herz
in Liebe warm entgegenschl?gt.
그리고 애써라, 그대의 마음이 타오르도록
그리고 사랑을 품도록 그리고 사랑을 간직하도록,
그대의 마음을 향해 또 다른 마음이
사랑으로 따뜻하게 두근거리는 한.
Und wer dir seine Brust erschließt,
o tu ihm, was du kannst, zulieb!
Und mach ihm jede Stunde froh,
und mach ihm keine Stunde tr?b.
그리고 그대에게 자기 가슴을 열어 놓는 자,
오 그를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그리고 그를 항상 기쁘게 하라,
그리고 그를 한시도 슬프게 하지 마라.
Und h?te deine Zunge wohl!
Bald ist ein b?ses Wort gesagt.
O Gott, es war nicht b?s gemeint;
Der andre aber geht und klagt.
그리고 그대의 혀를 조심하라!
곧 못된 말이 뱉어졌구나.
오 이런, 그것은 나쁜 뜻이 아니었는데
그 다른 사람은 그러나 떠나가서 슬퍼한다.
사랑의 꿈으로 알려진 이 피아노곡의 원곡은, 리스트가 작곡한 3곡의 가곡을 모두 피아노 곡으로가곡 "고귀한 사랑
G.307", "가장 행복한 죽음 G.308",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G.298"을 말하며, 리스트는 이 3곡의 가곡을
피아노 소품의 장르인 녹턴으로 편곡하여, 1850년에 "3곡의 녹턴 G.541"이라는 타이틀로 출판했다.
이 "3곡의 녹턴 G.541"에는 위의 가곡을 편곡한 3곡의 피아노 녹턴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3곡 중에서 3번째
곡인 "녹턴 3번 A flat장조 작품62-1(S.541-3)" 번만이 "사랑의 꿈"이라는 부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녹턴 3번 A flat장조 작품62-1(S.541-3)번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꿈"의 정확한 곡명이고, 이 곡의
원곡은 가곡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G.298"이다.
구성과 특징
이 협주곡은 <교향적 협주곡>이라는 단서가 붙어있으며, 표제가 주어지지 않은 교향시적 성격을 지닌 곡이다.
리스트는 이것을 1839년에 만들었으나, 후에 네 번 고쳐썼다. 제1번 Eb장조에 비하면 평판은 높지 않지만,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뛰어난 곳이 많다.
세 개로 나눈 악장을 갖지 않고, 여섯 개의 다른 형으로 구성되어있다.
즉, 제1부 Adagio sostenuto assai, 제2부 Allegro agitato assai, 제3부 Allegro moderato, 제4부
Allegro deciso, 제5부 Marciale un poco meno allegro, 제6부 Allegro animato이다.
기본적 주제는 곡머리의 클라이넷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에 관현악기의 아름다운 화성이 이어져 곡은 시작된다.
이 기본 주제에 부주제가 덧붙여져 서로 관련을 유지하면서 혹은 주장하고 혹은 설명을 펼치며 현란한 피아노의 기교를 나타낸 변주를 행하여, 가락을 한없이 변화시켜 리스트 독자적 세계를 표현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불꽃과 같은 피아노의 호화찬란한 연주가 나타나 이 곡을 끝맺는다.
이 곡의 완성은, 바이마르에서 초연한다는 것이 결정되고 나서도 리스트가 아직 계속해서 가필했기 때문에, 악보가
출판되는 1853년까지 걸렸다.
이 초연에는 리스트가 관현악을 지휘하고, 피아노는 제자인 한스 폰 브론스알트가 맡았다.
피아노 협주곡 1,2번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화려하고 장엄하고 웅대하다.
제1번 협주곡의 특징은 4개의 악장을 모두 하나로 연결하여 중간 휴지부가 없는데,리스트는 제1악장에서 3악장까지
각각 1개의 주제를 설정하고 있다.
1855년 바이마르에서 베를리오즈의 지휘 아래 리스트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되었으며, 이듬해 빈에서 다시
연주되었는데, 당시 평론가 한슬릭은 '트라이앵글 협주곡'이라고 혹독하게 비평한 바 있다.
그후 12년간 연주되지 않다가 오늘날에 와서 비로소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협주곡 제2번은 제1번에 비하면 덜 화려하지만, 형식면에서는 훨씬 독창적이다.
제1번이 지극히 화려하고 재기로 넘치는 반면, 이 제2번은 보다 서정적이며 시적이고 낭만적인 랩소디 풍의 깊이 있는
악곡이다.
하나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주로 부드러운 부분과 보다 강렬하고 진취적인 부분으로 나뉘는 여섯 개의 주요 부분이 교대되면서 전개된다.
A장조로 시작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아사이 - B플랫단조로 시작되는알레그로 아지타토 아사이 - E장조로 시작되는 알레그로 모데라토 - D플랫장조로 시작되는 알레그로데시소 - A장조로 시작되는 마르시알 레 운 포코 메노 알레그로 -
역시 A장조로 시작되는 알레그로 아니마토.
이 여섯 개의 부분들은 주제적으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고, 각 부분의 대조적인 분위기는 이 주제의 교묘한 변형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은 역시 리스트 자신이 창안한 교향시를 연상시키는 면인데, 그 수법이 제1번에서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치밀하다.
제1번과 마찬가지로 명인적인 기교에 의한 다채로운 피아노 독주부로 가득 차있는 이 곡은 1857년에 작곡되었으며,
그 해 1월 바이마르에서 작품을 헌정받은 한스 폰 브론쟈르트의 독주와 리스트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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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von Liszt (1811.10.22~1886.7.31)
프란츠 리스트(독일어: Franz Liszt)는 헝가리 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헝가리식 이름은 리스트 페렌츠
(헝가리어: Liszt Ferenc)이다.
뛰어난 기교로 유럽에 명성을 떨쳤고, 지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들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낭만시대 음악에 큰 공헌을 했다.
리스트는 헝가리 라이딩 근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담 리스트는 에스터하지 백작 밑에서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로 일했으며,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안나 라거이다.
리스트는 여섯살 때 아버지에게서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금방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그 재능을 높이 산 지방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리스트의 아버지는 리스트를 데리고 비엔나로 유학을 떠난다.
비엔나에서 리스트는 잠시 훔멜에게서 수업을 받았지만 훔멜의 수업료가 너무 비쌌기 때문에 그만둔다.
리스트는 베토벤의 제자였던 칼 체르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고, 열두살이 되던 1822년 12월 데뷔했다.
칼 체르니는 리스트의 첫 정식 피아노 교사이자 마지막 스승이었다.
리스트는 프레데리크 쇼팽과도 친해졌지만 이는 곧 라이벌 관계로 발전했다.
1823년 파리로 옮겨간 리스트는 1824년부터 파에르와 레이하 밑에서 푸가와 대위법을 공부했다.
1827년 아버지 아담 리스트가 불로뉴에서 세상을 떠났다. 리스트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잠시 성직자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비쳤다.
1832년 천재 바이올린 주자 파가니니의 공연에 다녀온 후 리스트는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고 매일
10시간이 넘도록 연습을 했다고 한다.
1834년 리스트는 마리 다구 (Marie d'Agoult) 백작부인과의 사이에서 장녀 블랑딘, 차녀 코지마, 그리고 일찍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다니엘을 두었다.
1840년부터 1841년까지 리스트는 영국에서 두 차례 순회공연을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리스트 신드롬"이
유럽을 휩쓴 것은 그 이듬해인 1842년이었다.
리스트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리스트의 잘생긴 외모와 쇼맨십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의 공연에서 여성팬들이 여러 번 기절하기도 했다고 한다.
리스트는 베를리오즈, 슈만, 장차 그의 사위가 되는 바그너 등 당대의 음악가들 그리고 화가 앵그르, 시인 하이네,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등과 친분을 다졌다. 리스트는 잠시 탈베르크와 경쟁관계에 놓였으나 탈베르크의 명성은 점차 희미해졌다. 이 후 리스트의 라이벌은 언제나 쇼팽이었다.
1847년 리스트는 바이마르의 궁정에서 케펠마이스터로 일한다.
이 시기 리스트는 자인-비트겐슈타인 Sayn-Wittgenstein 공작부인과 깊은 사랑에 빠져 다구 백작부인과 헤어졌다.
피아노 공연보다는 작곡에 주력할 것을 권한 사람도 공작부인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하려 했으나 비트겐슈타인 부인의 남편이 아직 살아 있었고, 교황청은 공작부인의 이혼을 승낙하지
않았다.
리스트는 1861년 로마로 옮겨갔다.
1865년 리스트는 예전의 희망대로 카톨릭 성직자가 되어 종교 음악 작곡에 헌신했다.
1869년부터 리스트는 로마, 바이마르, 부다페스트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같은 해 리스트의 딸 코지마가 바그너와 결혼하면서 개신교로 개종하자 리스트는 여러 해 동안 코지마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1876년부터 죽기 전까지 리스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1886년 7월 31일 리스트는 둘째 딸
코지마의 품에 안겨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 웹사이트
프란츠 리스트는 12살 때 베토벤 앞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베토벤은 어린 소년의 연주에 완전히 감탄했다.
연주가 끝나자 소년을 꼭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춘다.
이 유명한 장면은 한 장의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 그림은 현재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어린 리스트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스트리아 빈을 찾아와 베토벤의 제자인 체르니(1791-1857)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베토벤은 제자의 청을 받아 신동의 연주회에 참석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어린 연주자들이 거장 앞에서 오디션을 보기 위해 줄을 서는 광경들은 흔하다.
2년 동안 리스트를 가르친 체르니, “하늘이 내린 천부적인 재능”
리스트의 스승이었던 체르니는 제자에 대한 첫인상을 “창백하고 병약하다”
거나 “피아노를 술 취한 듯 두들겨대던, 손 모양에도 문제가 있는 아이”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천부적인 재능, 그중에서도 특히 “엄청난 즉흥연주”에 대해서는 스승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나 보다.
체르니는 리스트를 2년 동안 가르친 다음, 1822년 12월에 빈에서 데뷔
연주회를 치르게 한다.
자신의 스승인 베토벤에게 “선생님, 이 아이를 한번 봐 주세요.”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 이듬해에 리스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다.
이른바 리스트의 ‘파리 시절’이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리스트
리스트는 헝가리의 도보리얀 태생이다.
오늘날에는 지명이 라이딩(Raiding)으로 바뀌었고, 오스트리아 영토로 편입돼 있다.
리스트의 아버지인 아담 리스트는 아마추어 첼리스트였다.
하지만 연주자로서 자리를 잡을 만한 실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생업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집사였다. 그러니까 하이든이 30년 가까이 음악 하인으로 봉직했던
바로 그 에스테르하지 가문이다.
헝가리에서 세력이 등등했던 아주 유명한 귀족 집안이다.리스트의 아버지는 그 집안의 일을 돌보던 하인들 중에서 비교적 ‘고위직’이었던 것같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자면 지주의 땅을 관리하는 ‘마름’이었다.
덕분에 어린 리스트는 꽤 풍족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비록 귀족은 아니었지만 도보리얀 지역에서는 손가락 안에 드는 ‘부농’의 아들이었던 셈이다.
아담 리스트는 아들을 유명한 음악가로 만들고 싶어 했다.
첼리스트의 꿈이 좌절된 아버지, 사는 것은 제법 풍족했지만 신분은 그저 하인에 머물렀던 그는 아들의 음악교육에
매우 열성적이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그는 집안에서조차 헝가리어를 쓰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아마 독일-오스트리아를 향한 문화적 지향이 유난히 강했던 것같다.
그래서 결혼도 독일계 여성 안나 라거(리스트의 모친)와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일설에는 리스트 집안이 집시의 혈통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설(定說)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다.
아버지는 리스트를 데리고 훌륭한 선생들(체르니, 살리에리 등)을 찾아다녔고, 마차를 달려 곳곳에서 순회연주를
펼쳤다.
그것은 마치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리스트가 열여섯 살이던 1827년에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직 열여섯 살에 불과했던, 거의 ‘파파 보이’로 살다시피 했던 그는 파리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방황의 시기를 보낸다.
물론, 연주자로서의 인기는 점점 높아 가고 있었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신들린 비르투오소’의 소문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리스트는 파리의사교계에서도 점점 유명 인사가 되고 스무 살 무렵에는 베를리오즈, 쇼팽, 파가니니 등과 만나 교유를
시작하면서 일급 음악가의 반열에 올라선다.
원 제목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그리고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 말하자면 리스트의 ‘파리 시절’을 상징하는 연애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아들이 여자들에게 휘둘릴 것을 우려했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그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리스트는 스물세 살 때 7년 연상의 유부녀 마리 다구 백작부인을 만난다.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와 쌍벽을 이루던 여인이었다.
화가 요제프 단하우저가 그린 ‘파리의 살롱에서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라는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 파리 예술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와 빅토르 위고, 조르주 상드, 니콜로 파가니니,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 그리고 마리 다구
백작부인이 그림 속에 등장한다.
물론 사진(실사)이 아니라 상상이 가미된 회화이다.
마리 다구 벡작부인은 피아노 치는 리스트의 바로 옆에, 등을 살짝 드러낸 섹시한 뒷모습으로 앉아 있다.
파리의 살롱에서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요제프 단하우저 그림)
리스트는 그 여인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떠돌며 사랑의 도피 행각을 펼친다. 둘은 세 명의 아이까지 낳는다.
그중 두 아이는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등지고 말지만, 둘째 딸 코지마는 리스트를 열렬히 존경했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1830-1894)의 아내가 된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이, 코지마는 훗날 남편 뷜로의 곁을 떠나 자신의 아버지보다 두 살 많은 바그너와 함께 산다.
이렇듯 상궤를 벗어난 예술가들의 열애는 당대 유럽 사회의 풍속도 가운데 하나였던 것처럼 보인다.사회적으로는 근대와 계몽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자유를 향한 희구와 낭만적 방랑,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표출 같은 것들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부인은 1844년에 결별한다.
파리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두 사람의 열애는 1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끝난다.
이후 리스트는 많은 여자들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정확히 말해 1847년에 리스트는 두 번째 운명의 여인과 조우한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귀족이었던 카롤리네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 리스트의 두 번째 사랑이었다.
그녀는 키예프를 찾아온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한눈에 반해 버렸던 모양이다.
남편과 별거 중이던 그녀는 리스트가 있는 독일 바이마르까지, 그 머나먼 길을 딸까지 데리고 달려온다.
그 용감한 여인은 ‘파리 사교계의 꽃’이었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여인으로, 백작부인은
장미처럼 화려했지만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은 지성과 교양이 넘치는 차분한 여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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