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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Schubert - Der Fluß (The River) D.

 

 

 

 

 

 

 

프란츠 슈베르트

 

 

Schubert / Der Fluß (The River) D. 693 

 

(바리톤) : Matthias  Goerne

 

 

 

 

 


Schubert : Der Fluss / Matthias Goerne

 

 

 

 

 

소프라노 / 군둘라 야노비츠 Gundula Janowitz - Schubert

 "Der Fluss" live1972

 

 

 

군둘라 야노비츠(독일어: Gundula Janowitz, 1937년 8월 2일 ~ )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소프라노 성악가이다.

20세기 독일 소프라노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며 학구적인 성악가로 알려진다.

학구적인 면 때문에 독일가곡의 대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베를린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그라츠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타이피스트 일을 해서 고학을 하다가 그라츠 바그너

재단의 장학금을 받았다.

1959년 카라얀이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바르바리나 역으로 발탁되었다.

 

카라얀 외에 오토 클렘페러, 레너드 번스타인, 라파엘 쿠벨리크, 카를 뵘, 게오르그 솔티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함께 공연했다.

 

1978년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의 이름을 딴 요제프 마르크스 상을 수상했다.

야노비츠는 찰스 매케라스가 지휘하는 글루크의 오페라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마지막 주연을 맡았으며

 

1990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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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마르 출신인 괴르네는 영국의 정통 클래식 음반 레이블 하이페리온이 발굴한 스타다.

하이페리온이 1987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제작한 슈베르트 성악곡 전곡 음반'슈베르트 에디션'에 자넷 베이커,
토머스 햄슨, 페터 슈라이어 등 슈퍼스타급 성악가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괴르네는 슈베르트 에디션 시리즈 중 27집 '슈베르트와 슐레겔 형제', 30집 '겨울 나그네'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했다.

특히 '겨울 나그네'는 97년 타임지의 '올해의 베스트 음반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끌었다.
페터 슈라이어와 함께 독일 리트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애제자이기도 한 괴르네는 리트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오페라 가수로서도 활동을 넓히고 있다.

 

 

 

 

 

 

 

 

 

 

 

 

 

 

 

 

 

 

 

 

 

 

프란츠 슈베르트는 1797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나타내 8살 때부터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오르간을 배우며 음악의 기초를 다졌다.

 

11살이던 1808년, 슈베르트는 왕실 예배당의 소년 성가대원을 교육하는 국립신학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훌륭한 교사로부터 수준 높은 음악교육을 받았지만, 음악 이외의 과목에서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슈베르트는 1813년에 국립신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후 교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성 안나

 

사범학교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아버지가 운영하는 학교의 보조교사로 취직했다. 이해에 그는 미사곡 제1번과 괴테의 시에 의한 가곡 〈물레질하는 그레트헨(Gretchen am Spinnarde)〉 등을 작곡했다.

 

 

 

18살 때인 1815년은 슈베르트의 일생에 있어서 보기 드문 다작(多作)의 해였다. 이 한 해 동안 〈

 

들장미(Heidenröslein)〉, 〈마왕(Erlkönig)〉, 〈끊임없는 사랑〉을 비롯해 약 145개의 가곡과 〈교향곡 제3번〉, 〈현악 4중주 제9번〉 등을 작곡했다. 이 무렵 슈베르트는 쇼버라는 친구를 만났다.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기질의 소유자였던 쇼버는 매우 방탕한 생활을 했다.

 

자기 자신은 그것을 탐미주의적 철학으로합리화시켰지만, 대다수의 친구들은 그의 방종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슈베르트만은 예외였다.

 

슈베르트는 나중에 아버지에게 쫓겨난 후 쇼버의 어머니 집에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는데, 바로

 

 이 시기에 쇼버와 함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매독에 걸렸다.

 

그럼에도 쇼버에 대한 슈베르트의 우정은 식지 않았다. 예술가적인 재기가 번뜩였던 쇼버는 슈베르트의 예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슈베르트 초기 가곡 중 상당수가 쇼버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슈베르트는 쇼버의 대본으로 〈알폰소와 에스트렐라(Alfonso und Estrella)〉라는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보조교사 일은 슈베르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었고, 이 일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져 집에서 쫓겨났다.

 

그 후 그는 쇼버의 어머니 집에 머물며 〈교향곡 제4번 '비극적'〉, 가곡 〈마부 크로노스에게〉, 〈연도〉,

 

〈자장가〉, 〈방랑자(Der Wanderer)〉 등을 작곡했다.

 

 

 

그 후 쇼버의 동생이 외국에서 돌아와 어머니의 집에서 살게 되자 슈베르트는 그 집에서 나와야 했다.

 

할 수 없이 그는 다시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학교 일이 너무 많아 작곡에 몰두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자 결국 다시 학교를 그만두었다.

 

 

 

1817년, 슈베르트는 쇼버로부터 미하일 포글이라는 성악가를 소개받았다.

 

 슈베르트의 재능을 인정한 포글은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가난에 시달리는 슈베르트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상류층 모임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직접 불러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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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시기에 〈죽음과 소녀(Der Tod und das Mädchen)〉, 〈음악에 부쳐(An die Musik)〉, 〈송어

 

(Die Forelle)〉와 같은 가곡의 명곡들이 탄생했다.

 

슈베르트와 포글은 친구이자 음악의 동반자로 많은 일을 함께 했다.

 

1819년, 두 사람이 함께 슈타이어 마을로 여행을 갔는데, 이때 마을 아마추어 연주자의 요청을 받아 피아노 5중주

 

〈송어(Piano Quintet in A major 'Trout' op.114 D.667)〉를 작곡했다.

 

 

 

1818년, 슈베르트의 관현악곡 하나가 유료 공개 연주회에서 연주되었으며, 처음으로 그의 작품이 악보로 출판되었다. 이해 7월, 슈베르트는 다시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 가정교사로 채용되어, 헝가리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궁으로 갔다. 여기서 가곡 몇 곡과 피아노 연탄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해 9월 빈으로 돌아왔다. 이때 다시 학교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으나 뿌리치고 오페라

 

〈쌍둥이 형제(Die Zwillingsbrüder)〉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빈에서는 로시니가 작곡한 오페레타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었다. 슈베르트 역시 오페라를 작곡하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1820년, 그는 오페라 〈쌍둥이 형제〉와 음악극 〈마법의 수금〉을 발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럼에도 슈베르트는 평생 오페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오페라는 단 한 작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가 좋은 대본을 선별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도 알맞은 장소에 놓여야 제 빛을 발하는 법이다.

 

하지만 슈베르트에게는 그런 능력이 부족했다.

 

 오페라에 있어서는 슈베르트도 자신의 재능을 낭비한 셈이다.

 

 

 

 

 

1821년,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곡 〈마왕〉의 악보가 출판되었다.

 

바로 이해부터 슈베르트 동호회 모임이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슈베르티아데는 '슈베르트의 밤' 혹은 '슈베르트 친구들'이란 뜻이다. 이 모임을 통해 슈베르트는 피아노곡이나 춤곡,

 

 가곡 등을 발표했다.

 

 

 

1823년에 슈베르트는 유난히 극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음악극 〈반역자들(Die Verschworenen)〉, 오페라

 

〈피에라브라스(Fierabras)〉, 음악이 있는 로망스 〈로자문데(Rosamunde)〉가 이때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 중 〈로자문데〉만 빈 극장에서 공연되었을 뿐 오페라 작품들은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머지 분야에서는 좋은 성과가 있었다.

 

 

 

물 위에서 노래함〉과 〈그대는 나의 안식〉,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 같은

 

가곡과 피아노곡 〈34개의 감상적인 왈츠〉, 〈음악의 순간〉, 〈12개의 독일 무곡〉 등이 쓰였다. 이해에 슈베르트는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1824년, 건강을 회복한 슈베르트는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Arpeggione Sonata a

 

minor D.821)〉를 작곡했다.

 

이듬해에는 〈피아노 소나타 A장조〉가 악보로 출판되어 북독일과 스위스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1825년부터 슈베르티아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슈베르트의 경제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것이 큰 문제였다.

 

 작품이 악보로 출판되는 일이 조금씩 늘기는 했지만 충분한 수입이 되지는 못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슈베르트는 1826년 오스트리아 황제의 궁정 예배당 부악장이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1827년, 슈베르트가 존경해 마지않는 작곡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그의 장례 행렬에서 횃불을 들었다. 이해에 그는 마지막 연가곡인 〈겨울 나그네(Winterreise)〉를 완성했다.

 

1828년 1월 28일 밤, 슈파운의 집에서 슈베르티아데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슈베르트는 방대한 구성의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를 작곡해 빈 악우협회에 제출했으며, 3월 26일에는 슈베르트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공개 연주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친구들이 동분서주한 덕분에 이 연주회에서 예상치 못할 정도로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무렵 슈베르트의 건강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져 있었다.

 

 

 

그해 9월 마지막으로 〈현악 5중주 C장조〉를 완성하고, 그로부터 2달 후인 1828년 11월 19일에 3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가운데)와 친구인 음악가 프란츠 라흐너(왼쪽), 극작가 에두아르트 폰 바우에른펠트(오른쪽)

 

 

슈베르트는 일생 600곡이 넘는 예술가곡을 작곡한 '가곡의 왕'이다.

 

17살 때 작곡한 〈물레질하는 그레트헨〉을 시작으로 〈들장미〉, 〈마왕〉, 〈음악에 부쳐〉, 〈아베 마리아〉,

 

〈송어〉, 〈죽음과 소녀〉, 〈세레나데〉 등 수없이 많은 예술가곡의 걸작들을 쏟아 냈다.

 

 

 

슈베르트는 일반적인 가곡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가곡을 모아 놓은 연가곡에도 손을 댔다.

 

1823년과 1827년에 발표한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는 모두 20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방앗간 아가씨와 젊은이의 사랑을

 

 그린 소박하고 밝은 작품이다.

 

 

 

 

 

 

 

 

 

 

 

 

 

 

 

 

 

반면 말년의 작품인 〈겨울 나그네〉는 허무주의적 낭만주의의 극치를 보여 준다. 이 연가곡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은 젊은이가 추운 겨울날 방랑을 떠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모두 24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인에게 버림받고 떠나는 나그네의 춥고 어두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곡들이 단조로 작곡되었다.

 

 

 

중간에 나그네가 달콤한 봄날을 꿈꾸는 〈봄꿈(Frühlingstraum)〉에서 잠시 밝고 화사한 장조가 나오지만,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피아노가 음산한 단조로 돌아간다.

 

개들이 쇠사슬을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묘사한 〈마을에서(Im Dorfe)〉와 노인의 손풍금 소리를 묘사한

 

〈거리의 노악사(Der Leiermann)〉에서 피아노의 쓰임새가 인상적이다.

 

 

 

유명한 곡으로는 성문 앞 우물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는 〈보리수(Der Lindenbaum)〉, 나그네의 슬픈 마음을

 

한탄조로 그린 〈넘쳐흐르는 눈물(Wasserflut)〉이 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 '미완성'〉 악보 복제본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 '미완성'〉 악보 복제본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에서 슈베르트는 고전주의의 전통을 계승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영향을 보여 준다.

 

 

 

슈베르트는 일생 13편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스케치만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 온전히 번호가 매겨진 교향곡은 8개뿐이다.

 

 

 

 현재는 이 중에서 〈교향곡 제8번 '미완성(Unfinished)'〉과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Great)'〉만 주로 연주된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미완성'은 1822년 작으로 1악장과 2악장만 있기 때문에 '미완성'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슈베르트가 왜 곡을 쓰다가 말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제1주제는 오보에와 클라리넷, 제2주제는 첼로가 제시한다.

 

 두 개의 주제 모두 가요풍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갖고 있다.

 

 

 

이어지는 제2악장은 느린 템포의 2부 형식으로 제1주제는 혼과 파곳, 제2주제는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연주한다.

 

2부에서는 1부에 나온 것을 조성과 악기 편성을 달리해서 재현한다.

 

슈베르트의 실내악곡으로는 현악 4중주와 피아노 3중주, 피아노 5중주, 현악 5중주, 현악 8중주 등이 있다.

 

 

 

현악 4중주로는 극음악 〈로자문데〉의 선율을 느린 악장에 채용한 제13번 '로자문데', 가곡 〈죽음과 소녀〉의

 

멜로디를 2악장 주제 선율로 채택한 제14번 '죽음과 소녀'가 유명하다.

 

가곡 선율을 주제로 작곡한 실내악으로는 이 외에도 피아노 5중주 〈송어〉가 있다.

 

 

 

이 곡은 1819년에 작곡한 것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바스가 연주한다.

 

모두 5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4악장이 가곡 〈송어〉의 선율을 주제로 한 변주곡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변주는 여섯 번에 걸쳐 이루어지며, 연주에 참가하는 다섯 악기 모두가 각각의 변주곡에서 돌아가며 주제 선율을

 

연주한다.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한 독주곡도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슈베르트는 모두 21곡의 피아노

 

소나타와 8개의 즉흥곡, 〈음악의 순간〉, 〈방랑자 환상곡〉, 〈군대행진곡〉 등을 남겼다.

 

그 밖의 독주곡으로 첼로의 전신인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작곡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있다.

 

 가곡집으로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유작들을 한데 묶어 놓은 〈백조의 노래〉가 있다.

 

 

 

슈베르트의 두 번째, 그리고 그 자신이 의도한 것으로는 마지막 가곡집이 된 <겨울 나그네>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보다 4년이 늦은 1827년에 작곡되었다.
시의 작가인 뮐러는 이 해 9월 30일에 겨우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슈베르트는 다음 해에 그보다 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뮐러의 이 시를 하나도 빠짐없이 24편 전부에 곡을 붙였다.

 순서는 다소 바뀌었지만 이 시집에는<아름다운 불방앗간 아가씨>와 같은 뚜렷한 줄거리가 없기 때문에 문제는없다.
작곡은 두 번에 나누어 하였는데, 전반부는 2월에, 후반부는 10월에 만들어졌다.

<겨울 나그네>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둡고 무겁다. 물론, 시에도 원인은 있다.
현실과 환각 사이를 방황하는 외로운 남자의 마음은 이미 보통사람의 비애의 범위를 넘어 미친 사람에 가깝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에서는 비애를 던질 곳도 있었고, 그것을 위로해 주는 소리도 있었지만 이 가곡집에서

방황하는 남자에게는 비애를 처리할 방법도 장소도 이 세상에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지친 몸의 멍에를 그대로 영원히 등에 지고 가야 하도록 운명 지워진 정말로 구제할 수 없는 남자이다.

줄거리가 명확치 않고 내팽개쳐진 사나이의 마음이 확실한 맥락도 없이 하나하나 보이고선 다시 사라지는 수법과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어디로 아무도 모르게 떠날 것 같은  남기고 있는 점이 이 시집을 한층 쓸쓸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슈베르트가 부여한 음악은 시집보다 더욱 우울하다.

이것은 슈베르트가 당시에 이미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고,가난함도 도를 넘어서 극도에 달하고 있었음과 결부시켜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20대 중반에 겨우 성숙해진 인간에게 당시의 어려운 사회가 얼마나 큰 중압감으로 느껴지고 감수성을 어두운 쪽으로만 가져갔는가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즉, 슈베르트도 이 가곡집의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었던 그 당시 사회의 희생자였전 것이다.

<겨울 나그네>에서 노래의 선율은 아주 유연하고 자유롭게 되어 있고, 가사와는 불가분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와 관련해서 유절가곡은 현저하게 그 수가 줄고 있다.
반주는 여기서도 묘사적인 수법은 보이지만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같은 단순함은 없어지고 보다 음악적이고 심리적인 의미 깊은 울림으로 연주되고 있다.

 

 


초연은 제1곡만이 1828년 1월 10일에 빈 악우협회에서 연주되었다. 전곡이 초연된 시기는 현재까지는 알 수 없다.
자필악보는 현재 남아있지 않고 다만, 미국 뉴욕에 있는 피퐁트 모건 도서관에 남아 있는 초판출판에 사용되었던

 

자필로 사보된 전곡의 악보가 존재한다.


출판은 전반부가 1828년 1월 14일에, 후반부가 1828년 12월 30일에 빈의 하슬링거 출판사로부터 출판되었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일이었다

 

 

 

 

 

 

 

 

 

 

 

절망을 읊는 한 젊은이의 처절한 독백

이 가곡집은 단순히 실연(失戀)의 비애를 담고 있는 음악이라기에는그 정서가 너무나 어둡고 무겁다.

물론 감정의 어두운 굴곡은 체험해 보지 않은 자는 언급할 수 없는 부분이고,특히 젊은 날의 감정적격동이 결코

 완만하지만은 않겠지만, 이 가곡집에 일관되게 흐르고있는 거의 절망에 가까운 어두운 정서는,그것이 청년기 실연의

 상처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본질적이고 심각한 것이어서 아무래도 인생의 어두운 그림자를 투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슈베르트의 불행한 생애를 미루어 볼 때 좀 더 선명히 이해될 수 있다.
이 곡에 사용된 텍스트는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 (Wilhelm Mueller,1794-1827)의 것인데, 그는 이 가곡집이

작곡되던 1827년 33세의 아까운 나이로 타계했다.

 

슈베르트는 뮐러의 동명(同名)의 시집 속에 포함된 24편의 시를그 순서만 뒤바꿨을 뿐 모두 사용하고 있는데,텍스트의 외형적 의미는 실연의 비애를 눈 쌓인 겨울 풍경과 결부시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그 내면에는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 사회적으로 실패한 한 인간의 처절한 절망감이 담겨 있다.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빈 집 책상 위에 놓인 이 시집을 발견하고그 어두운 세계에 몰입하여,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후 두문불출하고 탐독하다가 마침내 이 가곡집을 작곡하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말해 주듯, 슈베르트 자신도 그 사회로부터는 소외된자, 더욱 선명히 표현하자면 그 사회의 희생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가곡집에는 슈베르트 자신의 어둡고 비극적인 생애가그 이면에 흐르고 있는 듯이 보인다.그리고

 더 나아가 그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좌절에서 더욱 승화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문제로 그 절망의 폭을 확대시켜

 놓고 있다.

 

아무리 길어도 한 순간에 불과한 우리의 삶과 또 삶의 외경에 매달린 허무한 환상 등이 일순간의행복 뒤에 몰아닥친

 어둡고 끝없는 절망감을 통해 잘 표현되고 있는데, 그것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인생의 막다른 길이기도 하다.

"우리 중 그 누구도 타인의 비애를 알지 못한다.."

이 가곡집의 배경은 눈 덮인 겨울의 황량한 벌판과 매섭게 불어오는북풍, 얼어붙은 시냇물, 또 잎이 다 떨어진 채

 서 있는 나무 등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단히 시각적으로 묘사되어 작품의 내용을 더욱 생생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슈베르트 이전의 가곡이 갖지 못한 대담함과 풍부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일은 단순한 가락을 지닌 가곡이 확보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지만 그는 피아노 반주를 극도로 잘 활용함으로써 훌륭히 그 목적을 이뤄내고 있는데,이런 표현법은 후일 독일

리트의 새로운 지표가 되었다.

 

 

 

 

 



이 가곡집의 모티프가 되고 있는 것은 고독과 절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 아무리 괴로워도 인간이 인간답게 되기 위해서는 꼭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과연극복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슈베르트 자신은 결코 극복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 중의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비애를알지 못한다.

또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한다.

람들은 서로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쳐 지나갈뿐이다."라는 슈베르트의 서글픈 독백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이런 생각은 표현 방식 자체는 다르다 할지라도 많은 사상가나 예술가들에 의해 받아 들여지고 있는데, 여기서

 인간의 삶은 이해할수 없는 수렁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문제를 회피하거나 왜곡한다 해도 그 본질 자체는 여전히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젊은 시절부터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슈베르트의

두 가곡집 '겨울 나그네'와 '백조의 노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허무주의적인 자괴감(自壞感)이 아니며, 가장 인생과 삶에 밀착되어 있는 강한 현실주의예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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