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dplay - Gravity
Gravity
baby, it's been a long time coming
자기, 오는데 시간이 길었지
Such a long, long time
그렇게 긴긴 시간을
And I can't stop running
난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어
Such a long, long time
그렇게 길고 긴 시간
Can you hear my heart beating?
내 심장이 뛰는 걸 들을 수 있니?
Can you hear that sound?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
'Cause I can't help thinking
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And I won't stop now
난 지금 멈추지 않을 거야
And then I looked up at the sun and I could see
그리고 나서 태양을 올려다 보고서 난 볼 수 있었지
Oh the way that gravity pulls on you and me
중력이 너와 나를 끌어당기는 방식을
But then I looked up at the sky and saw the sun
그러나 그때 난 하늘로 고개를 들어 해를 봤어
And the way that gravity pushes on everyone, on everyone
그리고 중력이 모두를, 모두에게 미치는 것을
Baby, when your wheels stop turning
자기, 바퀴가 방향 전환하지 않을 때
And you feel let down
그리고 네가 의기소침해 할때
And it seems like troubles
그리고 문제들이
Have come all around
닥친 것으로 보일 때
I can hear your heart beating
난 네 심장이 뛰는 걸 들을 수 있어
I can hear that sound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지
But I can't help thinking
그러나 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And I won't look now
그리고 지금 바라보지 않을 거야
And then I looked up at the sun and I could see
그리고 나서 태양을 올려다 보고서 난 볼 수 있었지
Oh the way that gravity pulls on you and me
중력이 너와 나를 끌어당기는 방식을
But then I looked up at the sky and saw the sun
그러나 그때 난 하늘로 고개를 들어 해를 봤어
And the way that gravity pushes on everyone, on everyone
그리고 중력이 모두를, 모두에게 미치는 것을
On everyone
On everyone
On everyone
On everyone
talk
Oh brother I can't, I can't get through
I've been trying hard to reach you, cause I don't know what to do
Oh brother I can't believe it's true
I'm so scared about the future and I wanna talk to you
Oh I wanna talk to you
You can take a picture of something you see
In the future where will I be?
You can climb a ladder up to the sun
Or write a song nobody has sung
Or do something that's never been done
Are you lost or incomplete?
Do you feel like a puzzle, you can't find your missing piece?
Tell me how do you feel?
Well I feel like they're talking in a language I don't speak
And they're talking it to me
So you take a picture of something you see
In the future where will I be?
You can climb a ladder up to the sun
Or a write a song nobody has sung
Or do something that's never been done
Do something that's never been done
So you don't know were you're going, and you wanna talk
And you feel like you're going where you've been before
You tell anyone who'll listen but you feel ignored
Nothing's really making any sense at all
Let's talk, let's ta-a-alk
Let's talk, let's ta-a-alk
- 크리스 마틴(Chris Martin) - 리드 보컬, 피아노, 키보드, 기타
- 조니 버클랜드(Jonny Buckland) - 기타, 하모니카, 백 보컬
- 가이 베리먼(Guy Berryman) -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 백보컬, 하모니카
- 윌 챔피언(Will Champion) - 드럼, 피아노, 백 보컬
콜드플레이(Coldplay)는 1998년 영국 런던 UCL 에서 결성된 얼터너티브 록 밴드다.
밴드의 멤버로는 그룹의 보컬이자 피아니스트, 또 기타리스트인 크리스 마틴과 리드 기타리스트 조니 버클랜드,
베이스에 가이 베리먼, 그리고 드러머와 기타 악기 연주로 윌 챔피언이 있다.
콜드플레이는 싱글 Yellow를 냈을 때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직후 머큐리 상을 받은 그들의 데뷔 앨범
Parachutes를 2000년에 발표했다.
이후 2002년에 나온 다음 앨범 A Rush of Blood to the Head는 NME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이후에 나온 앨범 X&Y는 2005년에 발표되었으며, 그전의 앨범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 앨범 수록곡 "fix you"는 크리스 마틴이 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심해 있는 자신의 아내(#기네스 펠트로)를 위해 만든 노래이다.
이 곡은 실제로 상심한 사람들에게 많은 용기를 북돋아 주는 고마운 곡이다.
밴드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는 2008년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가 참여했으며 역시 호의적인 평을 많이 받았다.
또한, 이 앨범으로 여러개의 그래미 상을 수상했다. 콜드플레이는 현재까지 5천여만 장의 앨범을 팔았다[1]
초기 콜드플레이는 라디오헤드(Radiohead)나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U2, 트래비스(Travis)에 비교되곤 했다.[2] 앨범 Parachutes 이후, 그들은 다양한 여러 밴드에서 영향을 받았다.
A Rush of Blood to the Head 앨범 같은 경우는 에코 & 더 버니멘(Echo & the Bunnymen)[3], 케이트 부시
(Kate Bush), 그리고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4] 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X&Y의 경우에는 조니 캐시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그리고 블러(Blur) [5] 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08년 앨범 Viva la Vida는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와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My Bloody Valentine)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6] 콜드플레이는 사회와 정치적으로 활발한 기여를 많이 해왔는데, 옥스팸(Oxfam)에서 시작한 Make Trade Fair
캠페인이나 국제 앰네스티에 관련하여 활동한 경력이 있다.
또한, 콜드플레이는 기부 밴드 20(Band Aid 20), 라이브 8(Live 8), 사운드 릴리프(Sound Relief) 그리고
10대 청소년 암 자선단체 등에 자선기금을 모으고자 공연하기도 했다.
밴드 멤버들은 런던 대학교, UCL(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1996년 9월에 만나게 되었다.
크리스 마틴과 조니 버클랜드가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만나 밴드를 결성했고, 둘은 대학시절 동안 Pectoralz[11] 라는 인디 밴드의 정점기 때 멤버로 활동하면서 메이저 밴드 결성을 계획했다.
이후 클래스메이트였던 가이 베리먼은 앞으로의 음악 성향에 대해 따져보지도 않고 바로 밴드에 참가하게 되었다.
1997년, 밴드는 영국 캠든에서 프로모션을 위해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이때 밴드는 이름을 Starfish로 바꾼 상태였다.[12] 크리스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옥스포드에서 함께 공부했던 필 하비를 밴드의 매니저로 영입한다.
[13] 이때까지 그들은 필 하비를 밴드의 다섯 번째 멤버로 영입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14] 밴드의 구성은 윌 챔피언이 드럼과 그 외의 타악기 일을 맡으면서 끝나게 되었다.
윌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기타, 베이스, 그리고 피리 등을 연주해왔는데, 덕분에 그는 그때까지 경험도 없었던 드럼
연주를 빨리 배우게 되었다.
[15] 밴드는 결국 동명으로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던 같은 지역 친구인 팀 크롬턴의 조언을 받아 지금의 밴드명
"콜드플레이"에 정착하게 되었다.[16]
1998년, 밴드는 "Safety EP"라는 앨범을 500장 발매하게 되었다.
[17] 대부분의 앨범은 레코드 회사와 친구들에게주었으며, 단 50장만이 시장에 나왔을 뿐이었다.
12월, 콜드플레이는 인디펜던트 레이블의 피어스 판다(Fierce Panda)에 사인했다.
[17] 그들의 첫 번째 싱글은 3개의 트랙이 들어간 Brothers and Sisters EP로, 1999년 2월 4일 만에 녹음했던
앨범이다.[17]
마지막 시험을 마친 뒤, 콜드플레이는 1999년 봄, 팔로폰(Parlophone)에 사인하고 5개의 앨범 계약을 하게 되었다.
[18]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후, 밴드는 그들의 세 번째 싱글인 The Blue Room을
녹음했다.
[19] 이 앨범은 5000 여장의 카피가 만들어져 10월에 발매되었다.
[20]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 'Bigger Stronger'는 라디오1에서 방송되었고, 콜드플레이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The Blue Room 앨범의 녹음 도중에 밴드 내에서는 소동이 있었다.
크리스 마틴은 윌 챔피언을 밴드에서 탈퇴시켰다가 후에 다시 돌아오라고 간청했으며 죄책감에 술잔치를 벌이는 등
여러 일이 있었다.
결국, 밴드는 멤버들 간 서로 차이점을 인정하고 밴드가 흔들리지 않도록 암묵적인 규칙을 정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밴드는 '모든 것은 개개인을 위해서'라는 방식을 선언했다.
콜드플레이는 유투(U2)나 알이엠(R.E.M.)이 그러했듯, 민주적 정신으로 모든 수익을 공정하게 분배받을 것이며
두 번째로 밴드는 마약을 사용하거나 하는 멤버가 있으면 당장 탈퇴시키겠다는 것이 그것이었다.[21]
Parachutes (1999-2001)[편집]
1999년 3월, 콜드플레이는 프로듀서 켄 넬슨과 함께 Rockfield Studios에서 그들의 데뷔 앨범을 녹음한다.
그들은 Carling Tour(NME 투어)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3개의 싱글을 냈음에도 히트곡이 없었던 밴드는 이때 싱글 Top 40 차트에 "Shiver"가 수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2000년 3월에 발매된 이 앨범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35위에 기록되었으며 MTV에 처음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22] 2000년 6월은 밴드에 있어 매우 중요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그들은 처음으로 메인 밴드로서 투어 공연을 돌게 된다.
이후 그들은 획기적인 싱글, "Yellow"를 발매하며 명성을 얻게 되었다.
[23] 이 곡은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4위에 등극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2000년 7월 콜드플레이는 정규 앨범 Parachutes를 발매했다.
이 데뷔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에서 1위에 등극하는 영예를 누렸다.
[24] 그들의 곡 "Yellow"와 "Trouble"은 큰 인기를 끌어 미국과 영국의 라디오 방송에서 정기적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팔로폰 레이블은 이 앨범이 대략 40여만 장이 팔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자 앨범은 영국에서만
160만여 장이 팔렸다. 이 앨범은 2000년 9월에 머큐리 음악상(Mercury Music Prize)에 추천되기도 했다.
유럽에서의 성공 이후 밴드는 북미에서의 두 번째 성공을 겨냥하여 2000년 11월에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25] 그들은 2001년 초에 US 클럽 투어에 착수하게 되며 캐나다 밴쿠버에서 첫 공연을 했다.
또한, 그들은 Saturday Night Live 쇼와 Late Night with Conan O'Brien, 그리고 The 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Parachutes 앨범은 미국에서 천천히, 그러나 뜨겁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결국 더블 플래티넘까지 이르게 된다.
앨범은 2002년 그래미 수상식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음반상을 거머쥐게 되었다.[26]
A Rush of Blood to the Head (2001-2004)[편집]
콜드플레이는 2001년 10월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프로듀서 넬슨과 함께 두 번째 정규앨범 준비를 시작했다.
A Rush of Blood to the Head는 2002년 8월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이 나온 이후 발매된 싱글 "In My Place", "Clocks", "The Scientist"는 상당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27]
2002년 6월에서 2003년 9월까지 밴드는 두 번째 앨범의 이름을 딴 A Rush of Blood to the Head 투어 공연을 돌게 되었다.
그들은 5개의 대륙을 돌며 공연을 했는데 그중에는 Glastonbury Festival, V2003, 그리고 Rock Werchter 페스티벌도 있었다.
[28] 여러 무대에서는 정성들인 조명 장치와 밴드를 위한 전용 스크린 등은 U2의 Elevation 투어를 생각나게 하였다.
[29] 투어 공연을 돌던 와중, 밴드는 라이브 DVD와 CD인 시드니 Hordern Pavilion에서 Live 2003을 녹음하게 된다.
2003년 12월, 밴드는 롤링 스톤즈 잡지의 독자들에 의해 올해의 베스트 밴드로 뽑히게 되었다. 이때에 콜드플레이는
The Pretenders의 1983년 히트곡 "2000 Miles"를 리메이크했으며 그들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하도록 링크해두었다.
이 파일은 영국에서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파일이 되었고 이로 말미암은 수익은 Future Forests 와
Stop Handgun Violence 기구 등에 기부했다.
A Rush of Blood to the Head는 2003년 그래미 수상식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음악 앨범상을 받게 되었다.
[31] 2004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밴드는 그들의 곡 "Clocks"로 올해의 레코드상을 또 한 번 받았다.
X&Y (2004-2006)[편집]
투어가 끝나고, 콜드플레이는 2004년의 대부분을 언론의 관심 밖에서 휴식과 함께 3집 앨범을 녹음하면서 보냈다.
앨범에 대한 여러 음악적 영향에 대해서, 베이시스트 가이 베리맨은 "우리는 데이비드 보위, 브라이언 이노,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에서부터 디페시 모드(Depeche Mode), 케이트 부시(Kate Bush), 그리고 크라프트베르크
(Kraftwerk)까지의 여러 다른 음악들을 X&Y 초기 활동 중에 많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그러는 것처럼 U2도."[32] 라고 말했다.
5월에는 크리스 마틴과 그의 아내, 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그들의 딸 애플의 탄생을 맞았다.[33]
X&Y는 2005년 6월에 유럽과 영국에서 출시되었다.
[34] 이 발매 일자는 당초에 발표되었던 발매 일자의 다음 회계연도로 늦춰진 것으로서, EMI의 주식의 폭락을
불러오기도 했다.
[35][36] 이 앨범은 200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 830만 장이 팔려서 그 해 제일 많이 팔린 음반이 되었다.
리드 싱글인 "Speed of Sound"는[37] 라디오와 온라인 음악 판매 사이트에는 4월 18일에 공개되었고, CD로는 5월
23일에 발매되었다.
[38] 앨범은 전 세계 30개국에서 1위로 데뷔하였고, 영국 차트 역사상 세 번째로 빨리 팔린 앨범이었다.
[39] 두 개의 다른 싱글들도 그 해에 발매되었는데, "Fix You"는 9월에, "Talk"는 12월에 발매되었다.
"Talk"는 1981년에 독일 신스팝 밴드 크라프트베르크가 발매했고, 전해에 노르웨이의 기타리스트 에릭 월로가 재녹음했던 "Computer Love"의 멜로디로 구성되었다.
상업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X&Y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응은 뉴욕 타임스의 비평가 Jon Pareles가 콜드플레이를
'근래 10년간 가장 참아주기 힘든 밴드'라고 불렀을 정도의 이전 앨범보다는 덜 열정적이었다.[40] 콜드플레이와 U2를 비교하는 것은 그 흔함이 더 늘어만 갔다.
[41] 크리스 마틴은 나중에 부정적인 평가는 그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다.[42]
2005년 6월에서 2006년 7월까지, 콜드플레이는 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Isle of Wight
Festival,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그리고 Austin City Limits Music Festival등이 일정에 포함된 Twisted Logic 투어를 했다.
[43] 2005년 7월에는 하이드 파크의 라이브 8에 참여해서 버브의 "Bitter Sweet Symphony를 버브의 보컬인 리처드 에시크로프트와 함께 공연했다.
[44] 9월에는, "How You See the World"의 새 버전을 녹음했다.
이는 War Child의 자선 앨범인 Help!: A Day in the Life를 위해 새롭게 작사된 가사로 녹음된 것이다.
2006년 겨울에는 브릿 어워즈에서 베스트 앨범과 베스트 싱글 아워상을 수상했다.[45]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2006-2009)[편집]
콜드플레이는 프로듀서로 참여한 브라이언 이노와 함께 2006년 10월 그들의 네 번째 정규 앨범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의 녹음을 시작했다.
[46] 콜드플레이는 잠시 녹음 작업에서 벗어나 2007년 초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에서 투어를 하기도 했다.
[47]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와 스페인에서 투어를 하며 교회에서 녹음을 한 후 히스패닉의 영향 받았음과 더불어 발전했음을 보여주었다.
[48] 밴드는 주로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와 녹음 외의 활동에서도 함께 했다.[49]
보컬 크리스 마틴은 Viva la Vida에서의 콜드플레이의 방향을 이렇게 묘사했다.
"'삼부작'이라고 불렸던 이전 세 앨범으로부터의 변화." [50] 그는 자신의 목소리의 낮은 음역대를 우선함으로써 이 앨범에서는 가성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50] 《Violet Hill》 은 왜곡된 기타 리프와 블루스적인 저음을 포함했다.[50] 처음 싱글로 발매된 《Violet Hill》은
2008년 4월 29일 라디오에서 방송된 후 발매됐다.[51] 처음 방송된 후, 《Violet Hill》은 콜드플레이 홈페이지에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도록 게재되었다.
게재 첫 주 만에 200만 번의 다운로드를 달성했다.[52] 《Violet Hill》은 영국 차트에서 10위, 미국 차트에서 40위로
진입했고, 전 세계에서도 좋은 차트를 냈다.[53] 타이틀 곡 《Viva la Vida》는 아이튠즈에서만 공개되었다.
이 곡으로 콜드플레이는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에 등극하고,[54] 영국에서는 다운로드 성적만으로 1위에 등극했다.
[55] 2008년 6월 15일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가 판매 시작 3일 만에 영국 앨범 차트에 정상 등극하고 삼십만 이천 장을 팔아치웠다.
이에 BBC는 "영국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앨범"이라고 칭송했다.
[56] 6월이 끝나갈 즈음, 이 앨범은 가장 많이 다운로드 받은 앨범의 기록을 갈아 치웠다.
[57][58] 6월 16일 콜드플레이는 영국 런던 브릭스톤 아카데미에서 무료 콘서트를 시작으로 Viva la Vida 투어를
시작했다.[59] 이틀 뒤 BBC 텔레비전 센터 밖에서도 45분 동안 라이브 콘서트를 가졌다.[60]
2008년 10월, 콜드플레이는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가 최고의 앨범 부문으로, 그들의 평화적이고 봉사적인 행동으로 두 개의 Q 상을 받았다.
[61] 10월 16일 BBC 라디오 1채널에서 제인 로와 함께 인터뷰하는 동안 크리스 마틴은 2009년 콘서트를 영국 허트포드셔 주 넵워스 하우스에서 주최하려고 노력했었다고 말했다.[62]
2008년 11월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에 뒤이어 EP Prospekt's March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의 트랙들은 대부분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세션에서 구상됐으며,[63][64]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의 곡들을 몇 곡 사용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다음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에디션에서도 보너스 디스크로 동봉되었다.[65]
2008년 680만 장의 판매고로 전 세계 앨범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66]
2009년 1월 20일 브릿 어워드 시상식에서 콜드플레이는 이 앨범으로 영국을 빛낸 그룹 상, 베스트 싱글 상
(Viva la Vida), 베스트 라이브 상, 베스트 앨범 상(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을 받았다.
[67] 2009년 2월 8일에 거행된 제51회 그래미상에서 앨범과 노래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로 올해의 노래, 록 앨범상, 듀오ㆍ그룹 팝 퍼포먼스상 등 3개 부문을 받았다.[68]
2009년 2월 2일 Life in Technicolor II가 싱글로 발매되었다.
2009년 3월 14일 콜드플레이는 시드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사운드 릴리프 록 콘서트에서 오프닝 밴드로
연주했다.
[69] 사운드 릴리프 콘서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 산불과 퀸스랜드 홍수의 희생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콘서트다.
[70]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이 콘서트에는 콜드플레이와 함께 에스키모 조, 후두 구루스, 아이스하우스, 조쉬 파이크, 리틀 버디, 프리세츠, 울프마더, 유 앰 아이, 킹스 오브 레온과 여러 음악가들이 참여했다.[71]
2009년 5월 1일 라이브 앨범 LeftRightLeftRightLeft이 콜드플레이 공식 웹사이트에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도록
게재되었다. 이 앨범의 모든 트랙들은 그들이 투어를 도는 동안 녹음되었다.[72]
2009년 밴쿠버에서 6월 20일부터 21까지 있었던 콘서트에서 그들은 그들의 라이브 동영상 앨범을 찍기 위한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말했다.
투어를 도는 동안 찍혔던 영상들만이 앨범에 실릴 것이라고도 말했다.[73]
2010년 12월 1일 크리스마스 싱글 "Christmas Lights"를 발매했다.
콜드플레이 (Coldplay)의 멤버들은 1996년 9월 UCL (the University College of London)에서 만났다.
크리스 (Chris)와 존 (Jon), 윌 (Will)과 가이 (Guy)는 학생 기숙사에서 만나 함께 뭉쳐 영국 최고의 기타 밴드가 된
콜드플레이 (Coldplay)를 결성했고, 그 과정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들이 되었다.
“우린 모두 같은 건물에 살았는데, ‘콜드플레이’라는 이름은 기숙사 같은 층에 살고 있던 친구이자 역시 밴드 활동을 하고 있던 팀 (Tim)에게서 얻었어요.
팀은 그 이름이 너무 침울한 것 같아서 자긴 더 이상 맘에 안 든다고 했었죠,
” 리드 싱어인 크리스 마틴 (Chris Martin)이 말한다.
크리스 마틴은 영국 남서부의 데번 (Devon) 지방에서 자라났다. 그는 15살 때 처음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 기타를 놓지 않았다. 기타와 더불어 크리스는 키보드와 피아노를 쳤으며 종종 하모니카도 연주했다.
2001년도의 북미 투어를 통해 그는 일렉트릭 기타 테크닉을 연마하여 무대에서 기량을 펼쳤고 새 앨범을 통해서도
그것을 선보일 예정이다.
기타리스트 자니 버클랜드 (Jonny Buckland; 웨일스 지방의 몰드 출신)은 11살 때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드러머 윌 챔피언 (Will Champion)은 영국 남부 해안 지방인 사우샘프턴 (Southampton)에서 태어나서 자라났다.
윌은 기타 연주를 선호했으나, 밴드가 드러머를 구하자 그 파트를 지원했고 그 이후 계속 드럼을 맡아왔다.
베이시스트 가이 베리맨 (Guy Berryman)은 원래 스코틀랜드의 파이프 (Fife) 출신이나 12살 때 영국의 켄트 (Kent) 지방으로 이주했다. 그는 13살 때부터 베이스를 연주했다.
밴드의 첫 발매작은 “Safety EP”였다. 밴드는 자비인 200파운드를 가지고 5백장 한정으로 EP를 찍어냈다.
싱크 시티 (Sync City)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세 곡- ‘Bigger Stronger’, ‘No More Keeping My Feet on The
Ground’와 ‘Such A Rush’는 원래 데모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것이 EP로서 1998년 5월에 정식 발매되자 밴드는 기뻐했다.
5백장 대부분이 런던 일대에 배급될 예정이었고, 그 나머지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돌려지고 나니 EP는 단지 50장만
남았다.
1998년 9월, 유니버설 레코드의 뎁스 와일드 (Debs Wild)가 콜드플레이를 보고 열광했을 때 이 EP는 비로소 원래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녀는 밴드가 음반업계 관련 최고의 법률가인 개빈 모드 (Gavin Maude)에게 연결되게끔 도움을 주었다.
또한 그녀는 BMG 퍼블리슁의 캐롤라인 엘레이 (Caroline Elleray)에게 그 EP를 건네주었고, 그 결과로서 팔로폰
(Parlophone) 레코드의 댄 킬링 (Dan Keeling)이 그것을 듣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피어스 판다 (Fierce Panda) 레코드의 공동 창립자인 사이먼 윌리엄스 (Simon Williams)가 1998년
12월 7일 캠던 팔콘 (Camden Falcon)에서 콜드플레이를 보게 되었다.
그 자리에 그는 DJ인 스티브 라막 (Steve Lamacq)와 동행했는데, 그 결과 밴드는 스티브가 진행하는 라디오 원
(Radio one)의 이브닝 세션 (Evening Session)에의 출연을 요청받기에 이르렀다. 사이먼은 밴드에게 단발성 계약을 제시하며, 다음 해에 NME (New Musical Express)紙 에 자신이 게재한 기사에서 밴드에 관해 언급하게 된다.
그의 레이블은 밴드에게 따로 곡을 녹음해달라고 할 만큼 밴드를 마음에 들어 했다.
밴드는 1999년 초여름 두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Brothers & Sisters’는 스티브 라막에 의해 영국 최고의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원에서 방송되었고 영국 차트 92위에 진입했다.
그때부터 콜드플레이의 엄청난 팬 베이스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99년 4월, 콜드플레이는 피어스 판다 레이블에서 “Brothers & Sisters EP”를 발매했다. 이로 인해 NME는
콜드플레이를 1999년의 밴드들 중 하나로 지목하게 되었다.
The “Safety EP”와 “Brothers & Sisters EP”는 1999년 10월 “The Blue Room EP”가 발매되는데 초석이 되었다. 자신들의 새로운 레이블인 팔로폰을 통해 콜드플레이는 여름 동안 다양한 뮤직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기 시작했고
카타토니아 (Catatonia)를 서포트하기도 했다.
그 무렵 밴드는 자신들의 첫 앨범을 녹음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레코딩 세션은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예정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팔로폰은 밴드가 뭔가 영향력 있는 앨범을 남기길 희망하면서 또 다른 EP를 발표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레이블의 종용으로 인해 콜드플레이는 “The Blue Room EP”를 발매했다.
다섯 개의 트랙들은 옛 곡과 신곡의 조합이었는데, “Safety EP”로부터 뽑아낸 ‘Such A Rush’, ‘Bigger Stronger’과, ‘Don't Panic’, ‘High Speed’, ‘See You Soon’ 같은 신곡들을 포함한 것이었다.
“The Blue Room EP” 발매 직후, 콜드플레이는 같은 영국 밴드인 라디오헤드 (Radiohead) 와 흡사하다는 설과
그들을 모방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러나 밴드의 EP가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 앨범이 발표되는 동안 작곡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며, 이러한 비교는 부분적으로 누그러지기도 했다.
콜드플레이의 영국 차트 top 40에의 첫 진입은 싱글 발매된 ‘Shiver’로써 이루어졌으며 이 곡은 2000년 3월에 35위에까지 이르렀다.
이 시기에 또한 콜드플레이는 데뷔 앨범을 위한 새로운 트랙들을 녹음하고 있었는데 앨범의 트랙 리스팅은 유동적이었다. 트랙 리스팅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새로 녹음된 곡들 중 어떤 것도 B-side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결과 콜드플레이가 B-side용으로 ‘For You’와 ‘Careful Where You Stand’를 녹음하는 것도 보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 ‘Shiver’는 팬들과 평단으로부터 크게 호평 받았다.
이전의 라디오헤드와 비교 논쟁도 사라져갔다.
영국 최고의 방송인 라디오 원과 영국 전역의 유수의 방송사들의 에어플레이와, 유럽 MTV의 ‘Shiver’ 뮤직비디오 방영이 더해져 콜드플레이를 더 부각시키고 있었다.
콜드플레이의 차기 싱글은 ‘Yellow’로 예정되었다.
새 앨범은 거의 완성되고 있었고, 그 성공은 ‘Yellow’의 발매에 달려 있었다.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밴드는 영국 최고의 글래스턴베리 (Glastonbury) 뮤직 페스티벌에서 토요일 오후의 멋진
공연을 펼쳤다.
이후 이들의 공연은 이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로 인정 받았으며, 즉시 콜드플레이의 명성을 드높이고 영국 차트
4위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Parachutes” 앨범이 이들의 데뷔작으로 발표되고 불과 몇 주 후에 영국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함으로써, ‘Yellow’는
앨범에 훌륭한 역할을 했다.
앨범은 밴드에게 수많은 새로운 팬들을 가져다 주었고 “Parachutes” 앨범은 머큐리 뮤직 프라이즈 (Mercury Music
Prize)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2001년, 콜드플레이는 브릿 어워즈 (Brit Awards)에 노미네이트되면서 공연을 펼친 것뿐 아니라 최고의 영국 밴드
(Best British Group)과 최고의 영국 앨범 (Best British Album) 부문을 수상했다. 이에 더하여, 밴드는 NME 어워즈에서 3개 부문- 최고의 싱글 (Best Single- ‘Yellow’), 최고의 신인 (Best New Artist)과 올해의 연주 (Session of
the Year- for Radio 1)상을 거머쥐었다.
영국에서의 결정적인 갈채에 이어, 밴드는 미국에서 새로운 성공을 구축해 보기로 결심했다.
‘Yellow’가 미국 라디오에서 거듭 방송되고 있는 동안 밴드는 미국 투어를 시작했고,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비록 투어 일부가 크리스의 건강 문제로 취소되어야 했지만). 미국의 TV들이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밴드는 데이빗 레터맨
(David Letterman)쇼를 포함하여 다양한 쇼들에 출연했다.
찬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콜드플레이는 미국 투어를 마치고 “Parachutes”의 차기작을 위한 작업에 임했다.
앨범 작업을 하는 동안, 새 앨범의 많은 후보곡들이 그 해의 다양한 여름 페스티벌에서 선을 보이기도 했다.
2002년, 콜드플레이의 두 번째 앨범을 둘러싼 미디어의 열기가 치솟고 있었다. 6월 18일로 예정되었던 발매일은 이후
8월 27일로 연기되었다.
8월 6일, ‘In My Place’가 발매되어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며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8월 27일, 콜드플레이는고대되던 새 앨범 “A Rush Of Blood To The Head”를 발매했다.
비평가들과 팬들 모두 한결같이 전작을 잇는 뛰어난 새 앨범을 환영했고, 밴드는 투어에 나설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8, 9월 및 10월에 걸쳐,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의 수많은 공연 일정들이 줄을 이었다.
2002년도의 큐 어워즈 (Q Awards)에서, 밴드는 그 권위 있는 최고의 앨범 (Best Album) 부문을 수상했다.
2003년의 초반부는 “A Rush Of Blood To The Head” 앨범 투어에 바쳐졌고, 밴드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까지 돌았다.
6월에 밴드는 미국으로 돌아가 좀 더 많은 지역에서 투어를 벌였다.
투어가 계속되면서, 두 번째 앨범에 대해 더 많은 상들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미 (Grammy) 3개 부문에의 노미네이션이 발표되었고, 밴드는 마침내 U2와 같은 거물 밴드와의 경쟁에서 그들을 물리치고 2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앨범의 엄청난 성공에 이어, 새로운 곡들이 만들어져 월드 투어의 라이브 쇼들에서 연주되었다. 여기에는 ‘Moses’와
‘A Ladder To The Sun’과 같은 곡도 포함되었다.
2003년 11월 11일, 콜드플레이는 “A Rush Of Blood To The Head”의 월드 투어를 기록한 DVD를 출시했다.
이 DVD에는 투어의 절정에 오른 밴드를 포착한 시드니 라이브와 호든 파빌리온 (Sydney’s Horden Pavilion)에서의 연주가 담겼다.
DVD에 실린 40여분의 투어 일지는 세계 각지 (L.A.와 런던 포함)에서 촬영된 투어의 비하인드 씬들을
담고 있으며, 또한 DVD에 포함된 라이브 씨디에는 새로운 트랙 ‘Moses’와 “The Blue Room EP”의 ‘See You
Soon’이 실려 있다.
2004년의 시작과 더불어, 밴드는 “A Rush Of Blood To The Head”에 이은, 보다 열렬한 기대를 모으는 차기작을
위해 스튜디오에서의 시간에 집중하기 원한다고 밝혔다.
2004년 한 해에 걸쳐 크리스 마틴은 다른 아티스트들을 위한 많은 곡들- 임브레이스 (Embrace)의 ‘Gravity’,
자멜리아 (Jamelia)의 ‘See It In A Boy’s Eyes’-을 썼으며, 더 스트리트 (The Street)의 ‘Dry Your Eyes’에 보컬을 제공하기도 했다
(‘Dry Your Eyes’의 B-side 싱글에서 들을 수 있다). 그 결과, ‘See It In A Boy’s Eyes’는 최근 큐 어워즈에서 수상을 했으며, 임브레이스의 싱글인 ‘Gravity’는 라디오 원에서 방송 순위에서 최고조를 타면서 차트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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