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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Chopin, Prelude Op.28 No.15 'Raindrop'

 

 

 

 

 

 

Chopin, Prelude Op.28 No.15 'Raindrop'

쇼팽 ‘빗방울 전주곡’

Frédéric Chopin

1810-1849

 

 

 

Yeol Eum Son plays Chopin's prelude 'Raindrop'

 

 

 

손열음이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준우승하기 전 KBS 예술극장에 출연하여 연주하는 모습입니다. 쾌거를 거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물의를 빚은 심사로 손열음은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쉐드린 에튀드 특별상, 모차르트 콘체르토 특별상, 심사위원상을 받아 사실상 우승자임을 인정받았습니다

 

바흐가 활동하던 18세기까지만 해도 전주곡은 여러 춤곡으로 구성된 독주 모음곡의 서두를 여는 음악이었지만, 19세기가 되면 새로운 형태의 전주곡이 인기를 끌게 된다. 훔멜과 쇼팽은 이 시대에 전주곡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한 음악가였다. 그들이 선보인 전주곡은 더 이상 다른 음악을 위한 전주가 아니라 독립된 독주곡이었다.

 

 

 

여러 개의 전주곡을 묶어서 하나의 세트로 만들다

쇼팽은 전주곡만 24곡을 묶어서 하나의 세트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이 작품에는 24개의 짧은 전주곡만 있고 다른 곡들이 전혀 없는 조금 특이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전주곡은 본격적인 연주에 앞서서 간단하게 워밍업을 하는 곡이지만, 쇼팽은 전주곡에 대한 그런 고정관념을 바꿔서 전주곡을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음악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쇼팽의 전주곡 24곡은 비록 길이는 짧지만 하나하나가 아주 독창적이고 뚜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시적인 감수성을 표현해낸 만큼, 그가 작곡한 전주곡에서도 피아노의 시인으로서의 면모가 확연히 전달된다. 각 작품마다

고유의 숨결이 느껴지는 쇼팽의 전주곡 24곡은 하나의 ‘음악 장르’라기보다는 하나의 ‘음악적 영감’으로 승화된 것이다. 전주곡은 보통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도입 역할을 하는 음악을 가리킨다. 쇼팽은 독립적 완성도를 가진 짧은 전주곡들을 묶어 하나의 세트를 만들었다.

사진은 쇼팽이 사용하던 피아노

쇼팽의 전주곡에는 한 곡 한 곡마다 재밌는 제목이 붙어 있다. 쇼팽 자신은 이 곡들에 따로 부제를 붙이지 않았다. 이 곡들이 유명해지자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별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전주곡 10번에는 그리스 신화 하계의 신 ‘하데스’의 이름을 붙였다. 쇼팽의 24곡의 전주곡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곡은 ‘빗방울 전주곡’이다. 이 곡은 15번에 해당한다. 쇼팽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영감을 받아서 작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이 곡의 왼손 반주가 반복하는 음울한 음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빗방울’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붙여졌던 것이다.

전주곡이 24개인 이유는 모든 조를 다 썼기 때문이다. 이 점은 바흐의 전주곡과 같다. 다른 점은 바흐는 전주곡에 푸가가 붙어 있고 반음씩 올라가는 순서로 배열했지만, 쇼팽의 전주곡은 독립적이며 완전5도씩 뛰어 5도 원(circle of fifths)을 그리는 순서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24개의 전주곡이 발표되었을 때, 곡들이 너무 짧고 구조적이지도 않아 평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곡들의 아름다움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던지, 지금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명곡이 되었다. 

 

 

 

Valentina Igoshina plays Chopin's prelude 'Raindrop'

 

 

빗소리 속 우울한 심사로 조르주 상드를 생각하며 작곡

1836년 쇼팽은 마리 다구 백작부인(프란츠 리스트의 연인)이 연 한 파티에서 여류소설가 조르주 상드를 만났다.

상드는 쇼팽보다 6살 연상이었고 아이 둘이 있었다. 상드는 쇼팽을 모성애적인 애정으로 돌보았다.

당시 쇼팽은 폐결핵이 깊었고 상드도 관절염을 앓고 있어서 추운 파리의 겨울을 피해 따뜻한 곳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간 곳이 스페인령 지중해의 섬 마요르카이다.

 그런데 막상 1838년 11월 초에 섬에 도착해보니 기대와는 달리 날씨가 좋지 않았다. 숙소도 마땅한 곳이 없어 폐허가 된 발데모사 수도원 근처의 오두막에서 지내게 되었다.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

악천후로 급기야 쇼팽은 각혈까지 하게 되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은 관계였으므로 가톨릭 신자인 주민들은 눈을 흘기고 수군댔다. 또, 파리에서 쇼팽의 피아노를 가지고 오는데 세관에 묶이는 바람에 피아노를 찾게 된 것은 섬에 도착한 지 5주나 지나서였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여러 가지로 우울한 상황이었다. 어느 날 상드와 두 아이들이 외출하고 쇼팽이 숙소에 남아 있을 때 마침 비가 왔다. 쇼팽은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상드를 생각하며 이 곡을 지었다고 한다.

마요르카 섬에는 1839년 2월 중순까지 머무르다 결국 나쁜 날씨로 쇼팽의 건강이 더 악화되자 그들은 스페인으로 건너가 요양을 하게 된다. 그때 힘들게 찾은 피아노도 팔아버릴 정도였으니 그들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마요르카에서의 나날은 힘들었지만 쇼팽의 많은 곡들이 여기서 작곡되어, 이때가 쇼팽의 작곡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로 평가받고 있다.

 ‘빗방울 전주곡’뿐 아니라 24개 전주곡의 나머지 곡들도 대부분 마요르카에서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쇼팽의 ‘전주곡’은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녹음하고 싶어 하는 명곡이다. 알프레드 코르토(1934, EMI)의 탐미적인 연주는 쇼팽 해석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마르타 아르헤리치(1975, DG)의 연주는 극적인 전개에 집중한 연주로 거대한 흐름이 인상적이다. 마우리치오 폴리니(1974, DG)의 연주는 섬세하고 투명한 음색으로 곡의 짜임새를 을 잘 드러내고, 그리고리 소콜로프(1990, Naïve)의 연주는 자유로운 해석과 낭만적 열정으로 많은 이들의 찬탄을 받은 명반이다.

 

 

 

Chopin 의 가슴속의 연인 이었던 George Sand (조르쥬 상드)는

'수도원의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연상케 한다'라고 평했는데,
오늘날에는 '빗방울 전주곡'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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