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LASSIC

Haydn -String Quartet Op.33 Nos.1~6

 

 

 

1 악장   Allegro 

 

 

하이든은 1792년에는 빈에서 베토벤을 만나 그를 지도하였고, 1795년 에스테르하지가(家)를 위해 궁정 악장직을 다시 맡고 니콜라우스 2세와 그의 부인을 위하여 6편의 미사를 작곡하였다.

그밖에도 몇 편의 현악 4중주와 종교음악, 영어로 된 6편의 시편송을 작곡하였고, 1797년에는 '황제의 찬미가'로 알려진 Gott! erhalte Franz den Kaiser (신이시여! 프란츠 황제를 보호하소서)를 작곡하여 황제의 생일에 헌정하였다.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국가로 사용되다가 1922년에 민네징거의 시에서 채택된 새 가사가 붙여졌고, 히틀러 통치 기간에는 나치당의 파티 노래로 쓰였으며 1990년에는 또다른 가사를 붙여서 독일 연방 공화국의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

 신교도 찬송가 <시온성과 같은 교회>의 선율로도 사용되고 있다.

 

 

 

작품 배경 및 구성

Op.76에는 원숙한 하이든의 양식이 나타나 있다. 제1곡 1악장에는 제1주제를 대담한 푸가로 전개시킨다. 2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각각 옥타브로 진행되는 2성부 카논의 미뉴에트(Hexen menuetto, 마법의 미뉴에트)를 사용하고 있고, 제2곡 1악장의 제1주제에는 하행하는 5도가 사용되어 '4중주를 위한 5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3곡 2악장은 찬미가 <Gott! erhalte Franz den Kaiser>의 선율을 완전하게 차용한 변주곡이고, 제5곡은 낭만적인 라르고 악장이 유명하며 제6곡은 반음계와 빈번한 전조로 이루어지는 판타지아 아다지오(Fantasia Adagio) 악장이 특징이다.

 op.76의 6개의 작품들은 모두 스케르초의 특징이 나타나는 미뉴에트 악장(제3악장)을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1796년경에 작곡한 오스트라아의 국가 [신은 프란츠 황제를 보호한다]의 유명한 선율을 사용하여 변주곡 형식으로 제 2악장을 엮은데서 황제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일생동안 300여곡의 실내악 작품을 작곡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하이든에게 가장 중요한 실내악 장르는 네 대의

악기가 조화를 이루는 ‘현악4중주’였다.

 

아마도 현악4중주의 균형 잡힌 성부 구조는 편성은 빈 고전주의 음악의 형식미를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음악이었기

 때문이리라. 하이든은 이미 1757년부터 이 장르에 손을 대기 시작해 1772년에는 작품20의 6곡의 현악4중주를

완성했으나 그 이후 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 오페라 공연과 궁정악장으로서의 잡다한 업무 때문에 현악4중주에 손을

댈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1781년에 마침내 6곡의 ‘러시아 4중주’를 작곡하면서 이 음악장르에 대한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감각을 보여주면서 동 시대 작곡가들에게 현악4중주의 고전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하이든의 ‘러시아4중주’ 가운데서 하이든의 유머감각이 가장 잘 나타난 곡은 작품33의 제2번으로, ‘농담’이란 부제로

 잘 알려져 있다.

 마지막 악장이 매우 재미나게 끝나기 때문에 이런 부제가 붙게 되었다. 마지막 악장에서 하이든이 청중을 웃기는 방법은 기발하다.

 

4악장은 빠른 템포의 곡으로 네 가지 악구로 이루어진 주제로 구성되는데, 이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2마디로 이루어진

네 가지 악구들 중 하나가 연주된 후에는 같은 2마디의 길이 동안 휴지부가 나타나고, 다시 그 다음 악구가 연주된 후

 또 다시 휴지부가 나타나는 식으로 진행되므로 이 음악을 들으며 휴지부의 음악을 각자의 머릿속에서 상상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지난 후 다시 주제의 첫 머리가 단편적으로 연주되면 그것으로 끝나버리고 청중은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새’라는 부제로 알려져 있는 작품33의 제3번은 ‘러시아4중주’의 여섯 곡 중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1악장의 꾸밈음이나 2악장 스케르초의 중간 트리오 부분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2중주가 새소리와 비슷하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 작품의 어떤 부분에서 ‘새’라는 별명이 나왔는지 그 누구도 확신하지는 못한다.

 

 이 작품에선 새소리의 묘사도 즐거움을 주지만 무엇보다도 마지막 4악장의 유쾌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하이든은 4악장에서 슬라브 민속춤곡의 선율을 넣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음악을 이끌어나간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작품 33의 제6번은 마지막 악장에 비중을 둔 독창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다.

하이든은 대개 가볍고 경쾌하게 마무리되곤 하는 마지막 악장에 음악적인 중요성을 더해 전 악장의 균형을 맞추고 현악4중주에 진지함을 부여했다.

 

 하이든의 유머감각과 정교한 작곡기법, 개성적인 양식이 드러난 ‘러시아4중주’ 작품33 이후 ‘현악4중주’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이르면서 ‘영혼을 움직이는 작품’으로 발전해갔다.

그리하여 괴테는 현악4중주를 가리켜 “네 사람의 지성인이 나누는 대화”라 칭하기도 했다

하이든의 ‘러시아4중주’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현악4중주가 18세기에 그토록 중요한 음악장르로 떠오를 수 있었을까?

일명 ‘러시아 4중주’라 불리는 하이든의 현악4중주 작품33의 6곡은 현악4중주의 진정한 탄생을 알린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하이든 자신이 말한 대로 “새롭고 특별한 방식”으로 작곡되었고, 두 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비올라, 그리고 한 대의 첼로가 함께 하는 현악4중주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정교한 기법을 구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후배 작곡가인 모차르트가 하이든에게 바치는 ‘하이든 4중주’를 작곡한 것도, 하이든의 제자 베토벤이 첫 현악4중주 작품집인 작품18에서 그토록 완성도 높은 현악4중주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도, 하이든의 러시아 4중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현악4중주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헌정되어 ‘러시아 4중주’라는 별명을 가진 이 작품에는 다른 별명도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러시아 4중주’라는 부제

 외에 이 작품은 ‘농담’(Gli Scherzi)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하이든이 이 현악4중주에서 처음으로 전통적인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를 썼기 때문이다.

 

‘스케르초’라는 말은 본래 그 말 자체에 ‘농담’이란 뜻이 있으며 해학적인 느낌을 주는 빠른 음악을 가리킨다.

하이든 시대의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에는 중간에 프랑스 궁정에서 유행하던 점잖은 미뉴에트가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하이든은 ‘러시아4중주’의 여섯 곡에 모두 빠르고 해학적인 스케르초를 넣어 발랄한 분위기를 표현해냈기에 이런 별명은 작품33과 잘 어울린다.

 

 

 

 


 

이 작품에는 ‘아가씨’(Jungfern)라는 별명도 있는데, 어떻게 이런 별명이 붙게 된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별명 덕분에 이 현악4중주곡의 초기 출판물에는 표지에 매혹적인 젊은 여성의 그림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이든의 ‘러시아4중주’ 작품33을 이루는 여섯 곡 모두 1781년 크리스마스 날에 페트로비치 대공 부인의 비엔나

저택에서 초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날 초연을 지켜본 청중을 하이든이 이 작품에서 구사한 참신한 음악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하이든의 ‘러시아4중주’에는 우선 밝은 분위기와 민요풍의 주제가 사용되어 인상적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하이든의

노련한 작곡기법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독특한 음정과 복잡한 리듬을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는 한편 대조적인 요소를 집어넣어 대조의 묘미를

추구했는데, 그 교묘하고 능숙한 주제의 처리 방식은 상상력과 영감으로 가득하다. 또한 미뉴에트 대신 들어간 스케르초 악장은 현악4중주라는 진지한 장르를 유희와 유머로 가득한 즐거운 음악으로 바꾸어놓았다.

 

‘러시아 4중주’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가볍고 행복감 넘치는 분위기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떤 전기 작가는

하이든과 가수 루이지아 폴첼리와의 연애사건의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1779년에 에스테르하지 궁에 들어온 폴첼리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하이든에게 많은 위로가 되곤 했는데,

 하이든이 러시아4중주를 작곡할 당시 그들의 친밀한 관계는 하이든에게 많은 힘이 되었으리라.

 

 

 

 

 

 

 

 

 

 하이든’ 현악4중주 - 길고도 수고로운 산고 끝에 낳은 작품


모짜르트 특유의 경쾌함, 가벼움, 화사함 등에 취하여 모짜르트에 입문한 분들이 모짜르트 음악에서 난관에 부딪히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면, 혹시 현악 4중주곡이 아닐까요? 물론 출발점인 경쾌함과 화사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짜르트의 슬픔과 환희, 격정과 투명함 속으로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부딪힐 수 있는 지점 말입니다


<1782년 바로크 음악의 대가 바흐의 곡을 접하기 이전 모짜르트 음악의 경쾌함과 화사함>, <바로크의 대위법과

하이든의 주제음악을 자신의 음악 언어로 만든 이후 모짜르트 음악의 격정과 투명함>, 그리고 <오페라 음악의 마성과

유희>, 이런 식으로 모짜르트 음악의 맛을 무식하고 과감하게 구분해 본다면, 여러분들은 어느 지점에서 모짜르트를

 

사랑하고 계신가요? 혹시 아주 간혹 가다가 그 화사함과 투명함과 현혹적인 마성으로부터 벗어나(말 그대로,

“외도”하여) 베토벤의 의식적인 정열과 낭만파 음악의 병든 감성 등을 살짝 맞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는 없었는지

요? 제가 이제 이야기하려는 곡, 하이든에게 헌정한 현악4중주곡은 바로 그런 유혹을 느끼시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모짜르트는 1781년엔가 1782년에 처음으로 바흐의 곡을 접합니다. 바흐의 곡을 접한 다음 1782년에서 1785년

사이에 작곡된 곡이 바로 쾨헬번호 387, 421, 428, 458(일명, 사냥), 464, 465(일명, 불협화음)의 ‘하이든’ 현악4중주곡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바흐의 곡은 다성 음악과 대위법으로 유명합니다.

 

고전파 이후의 음악과 같이 주제를 형성하는 하나의 선율이 존재하고 나머지 음은 그 선율을 반주하는 화음으로 구성되는 화성음악과는 달리, 대위법에서는 하나의 선율(정선율cantus firmus)이 존재하고 그 선율에 대하여 독립적으로 흘러가는 선율(대위선율punctum contra punctum)이 별도로 존재합니다.

 

선율이 여럿이지요. 그 여럿의 선율, 여러 목소리(다성)를 완벽하게 조율한 대위법의 대가 바흐의 음악은, 비유로

설명하자면, 위대한 건축의 장엄한 내부공간에서 느껴지는 공간감, 전체성, 정치함, 위상감, 신비스러움의 음악입니다.


이 바로크 대가의 대위법을 접하기 이전에 물론 모짜르트는 이탈리아의 다성 음악을 접하긴 했지만, 그는 이탈리아의

 다성 음악과 바흐의 다성 음악이 다르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건축물의 내부공간이 확 달랐거든요.

이탈리아의 다성 음악이 아기자기하고 따사로운 공간이었다면 바흐의 다성 음악은 깊숙하고 신비로운 공간이라고나

할까요.

 

이 대위법과 다성 음악이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음악언어였다면, 하이든의 음악은 당시에는 새로운 음악언어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흔히 주제음악이라고 말하는데, 그 음악에서는 선율로 구성되는 기본 주제가 있고 그 주제의 변주,

 그리고 연결된 주제가 음악을 시종일관하게 됩니다.


비유로 설명하자면, 건축물을 쌓아올리기 위한 각 작업의 반복성, 방향성, 역동성의 음악입니다.

주제음악이 그 뭔가를 향하여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공간을 형성해 나간다면, 대위법은 정지된 상태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공간을 형성합니다.

 

그러므로, 자칫 적멸감과 권태로움을 선사할 수 있는 대위법과는 달리 과단성 있는 결단과 거친 돌진을 표현하기에

적격인 주제음악이 고전파 이후에 대위법을 대신하는 것은 이후의 정신사적인 흐름상 당연한 귀결이 됩니다.

하이든의 새로운 음악이 그만큼 미래의 음악이었던 셈입니다. 다만, 하이든의 음악이 이후의 주제음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낭만파의 효시가 되었던 베토벤의 경우와 같이 웅변적인 과시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일어나는 궁금증! 바흐에게서 차원이 다르게 깊어진 대위법의 공간 안에 주제선율을 스윽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위상감과 역동성이라는 상반된 두 언어가 결합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존재, 꿈틀대는 역동성과 고요한 신비스러움을 동시에, 자유로운 비상과 웅장한 공간을

 동시에 표현하는 존재, 혹시 천사였을 지도 모르는 존재, 아- 모짜르트가 이 지구상에 등장했다는 것은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커다란 축복입니까!


1782년에 착수하여 완성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고 음악학자들이 판단하는 모짜르트의 두 음악 언어의 종합, 그 첫 시작은 바로 이 글 제목의 ‘하이든’ 현악4중주곡입니다.

음악언어를 터득하는데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발휘하였던 모짜르트가 손수 고백하기를, 길고도 수고스러운 작업

끝에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여섯 곡입니다.

 

‘하이든’ 현악4중주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후기 피아노 협주곡(주로 20번대 이후), 후기교향곡, 후기오페라, 종교 음악 등에서 찬란하게 꽃 피울 모짜르트만의 음악언어를 쏟아내기 위한 지난한 탐색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든’ 현악4중주곡을 듣는 동안에는, 양식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긴장감, 탐색의 지난함을 타고 모짜르트를

 엄습하는 마성이 선사하는 무거움과 어두움, 그러나 그러한 기나긴 긴장감과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아연

쏟아져 내리는 선명함, 우리가 사랑하는 모짜르트가 겪은 백 개의 고독과 하나의 투명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 그 하나의 투명함은 앞으로 인류의 크나큰 축복이 될 음악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 나가 확산하게 됩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대위법적인 공간을 표현하는 데는 관현악, 저음부 악기가 어울리고, 주제 선율을 표현하는 데는

독주 악기, 고음부 악기가 어울립니다.

그리고 마성을 표현하는 데는 관현악, 저음부 악기가, 마성에도 불구하고 찬란하게 비상하는 선율은 독주 악기, 고음부 악기, 인간의 목소리가 어울립니다.

 

 그래서 후기 피아노 협주곡을 듣노라면, 피아노의 주제 선율이 율동감 있게 비상하고 관현악은 그 춤추는 존재를

 포위하려는 듯 대위법의 선율을 강타하며 달려가는 대목들이 등장합니다.

 

주제 선율의 역동성에 대위법의 공간이함몰되는 해결책(베토벤은 이 방향으로 치닫게 됩니다)은 모짜르트에게서는 단

한번 예외적으로만 등장하며, 오히려 계속해서 신비스러운 마성의 공간을 형성하던 관현악이 순간적으로(아, 이 순간은 얼마나 시적이고 황홀한 순간이던가요! 그것은 기적이고 마법입니다.

 

모짜르트 음악을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순간이 있다면 십중팔구 바로 이 기적적인 순간일 것입니다)

정화되고, 그 정화된 선명함에 피아노의 주제 선율이 통통통 안깁니다. 그리하여 농밀하면서도 역동적인 대위법,

 날렵하면서도 웅혼한 주제선율이 동시에 가능하게 됩니다.


모짜르트만의 음악언어는 이렇게 하여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정치한 대위법의 공간에 안겨서 자유롭게 노니는 주제 선율, 주제 선율의 투명한 비상을 감싸면서 공간을 자유자재로

 유영시키는 대위법,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모짜르트만의 대위법은 바로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길고도

수고스러운 작업 끝에 피어난 천송이 만송이 꽃입니다.


그 찬란함을 탄생시키기 위한 산고를 모짜르트와 같이 겪어보시려면, ‘하이든’ 현악4중주곡을 한번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거기 백 개의 고독한 고원에서 희끗희끗 비치던 하나의 투명함, 즉 그 이후의 피아노협주곡, 교향곡, 오페라, 종교음악

등으로 확산되어 찬란하게 꽃을 피우게 될 모짜르트 음악언어의 면모를 슬쩍 엿볼 수 있습니다.

 

여타 모짜르트 음악을 들을 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이며, 이 음악을 들을 때에는 부디 딴 생각하지 말고

집중해서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짜르트 음악의 유적지라 할 그 음악을 듣고 나면 모짜르트라는 존재에 대하여 가슴을 쓸어내리며 더욱

감사하게 될 것이며, 처음에 말한 외도의 유혹은 어느새 사라질 것입니다.

 

참고로, 모짜르트가 하이든에게 바친 헌정사를 번역해 올립니다(여기에서 언급하는 여섯 아들은 ‘하이든’ 현악 4중주

곡 6곡을 가리킵니다)

- 고싱가 숲 님의 글 www.gosinga.net

 

 

 

 


친애하는 벗 하이든 님께

 

자신의 아들들을 넓은 세상에 내보내기로 결정했던 어느 아버지는, 다행스러운 운명으로 최고의 벗이 되었던 한

저명한 동시대인의 보호와 인도에 그 아들들을 맡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없이 사랑하는 벗이자 고명하신 분이시여, 바로 그 의미에서 여기 저의 여섯 아들을 보아 주십시오! 이들은 길고도

수고로운 작업 끝에 낳은 아이들입니다.

한 가지 희망이 조금이나마 용기를 주고서 저를 위로하였습니다.

 

 제게 살갑게, 이 음악 작품으로 인하여 언젠가는 벗을만나게 될 것이라고 속삭이던 희망이었지요. 더없이 신의

있으신 벗, 당신은 저희 수도에 최근 체재하셨을 때에 이 아이들에 대하여 친히 만족감을 표하셨습니다.

그 약속 때문에 저는 무엇보다도 안심이 되었으며, 그래서 저는 제 아이들이 당신의 사랑에 값하지 못하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간곡히 당신께 부탁드립니다.


이들을 호의로 받아 주시고 이들의 아버지, 보호자, 벗이 되어 주시기를! 이제부터 저는 이 아이들에 대한 저의 권리를

 당신께 양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청하옵기는, 제가 눈먼 아버지가 되어 미처 놓쳤을 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결함과

 약점을 잘 보살펴 주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른 모든 것보다 가치 있게 여기는 당신의 우의를 앞으로도 계속 보내 주십시오.

 저 역시 온 마음을 다하여 당신의 진정한 벗으로 남을 것이오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