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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Schumann - `Frauenliebe und -leben op.42

 


 

 


Schumann / 연가곡 'Frauenliebe und -leben 여인의 사랑과 생애', op.42
메조소프라노 Bernarda Fink, 피아노 Roger Vignoles 20'24"

 

 

 



1) Seit ich ihn gesehen 그 남자를 본 이후로,
2) Er, der Herrlichste von allen 그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분,
3) Ich kann's nicht fassen 나는 이해할 수 없네,


4) Du Ring an meinem Finger 내 손가락의 반지여,
5) Helft mir, ihr Schwestern 자매들아, 나를 도와다오,
6) Suesser Freund, du blickest 다정한 벗, 그대 놀란 표정으로,


7) An meinem Herzen, an meiner Brust 내 마음에, 내 가슴에,
8) Nun hast du mir den ersten Schmerz getan 지금 당신은 내게 처음으로 고통을 주었어요

 

 

 

 

 

 

 

1) Seit ich ihn gesehen 그 남자를 본 이후로,

 

첫 곡 ‘그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내 눈은 멀어버린 듯 Seit ich ihn gesehen’은 남자에게 첫눈에 반한 처녀의 설렘을 담고 있지만 감히 꿈꿀 수 없는 행복 때문에 전반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어둡고 차분합니다. 바라보는 곳마다 그 사람의 모습만 보이고, 자매들과의 즐거운 놀이도 시큰둥, 차라리 방에서 조용히 울고 싶은 심경이라고 처녀는 토로합니다. 장엄한 사라반드 리듬으로 시작하는 첫 곡입니다.

 

 

 

 

 

 

 

 

 

 

 

 

 

 

2) Er, der Herrlichste von allen 그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분,

전체 여덟 곡 가운데 가장 찬란하고 두드러지는 곡은 2곡 ‘누구보다도 뛰어난 그이 Er, der Herrlichste von allen’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온화함과 선량함, 사랑스런 입술, 맑게 빛나는 눈, 명료한 의지와 굳센 용기를 칭송하면서도 자신은 그 드높은 별에 비해 너무나 하잘것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게 어울리는 기품 있는 처녀가 나타나길 기원할 뿐이라는, 굴종적일 만큼 겸허한 내용의 노래입니다.

 

 

<클라라가 라이프찌히에서 치던 피아노>

 

 

 

3) Ich kann's nicht fassen 나는 이해할 수 없네,

 

그러나 3곡 ‘이해할 수 없어, 믿을 수 없어 Ich kann's nicht fassen, nicht glauben’에서 여주인공은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선택 받은 기쁨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벅찬 기쁨을 단순하게 표현한 노래가 아니라, 이 일이 현실임을 믿지 못하고 꿈속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반어적으로 기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곡에 쓰인 강하고 메마른 듯한 반복적 스타카토는 이 기쁜 진실을 선뜻 긍정할 수 없는 여주인공의 두려움과 강박적인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4)Du Ring an meinem Finger 내 손가락의 반지여,

 

이 연가곡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곡은 4곡 ‘그대 내 손의 반지여 Du Ring an meinem Finger’일 것입니다. “그대 내 손의 반지/내 작은 금반지여/내 그대에게 경건하게 입 맞추고/내 가슴에 대어봅니다// 어린 시절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꿈을/이제 마무리했습니다/나는 황량하고 무한한 곳에서/홀로 길을 잃고 헤맸죠// 그대 내 손가락의 반지여/그대는 이제야 나를 일깨워주고/내 시야를 열어주었습니다/삶의 무한하고 심오한 가치를// 나는 그이를 위해 일하고 그이를 위해 살렵니다/그이에게 온전히 속하고/그이에게 나 자신을 바치고/그의 광채를 받아 변모한 내 모습을 바라보렵니다.” 격정적 선언을 담고 있으면서도 깊고 차분하게 내면을 관조하는 이 노래는 이제 드디어 여주인공이 결혼을 현실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줍니다

 

 

 

 

 

 

 

 

 

5) Helft mir, ihr Schwestern 자매들아, 나를 도와다오

 

5곡 ‘얘들아, 나 좀 도와줘 Helft mir, ihr Schwestern’는 결혼식을 앞둔 처녀가 친구들에게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해 달라고 부탁하는 곡입니다. 이제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여자 친구들과는 결별할 때가 되었다는 일말의 슬픔이 담긴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곡에서 피아노는 슈만의 ‘헌정 Widmung’에 쓰인 위아래로 물결치는 듯한 음형을 사용해 흥분을 진정시킬 수 없는 주인공의 벅찬 심경을 보여줍니다.

 

 

 

 

6) Suesser Freund, du blickest 다정한 벗, 그대 놀란 표정으로

 

 

6곡 ‘사랑하는 이여, 저를 의아하게 바라보시는군요 Süßer Freund, du blickest mich verwundert an’는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아내의 행복한 고백을 표현합니다. "제 침대 곁에 요람을 놓겠어요/여기 제 사랑스런 꿈이 숨어 있어요/꿈이 깨어나는 아침이 오면/그대의 모습이 저를 향해 웃음 짓겠지요." 들뜬 5곡과는 대조를 이루는 이 차분한 멜로디는 아이를 잉태한 여인의 깊은 만족감과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감미로운 휴식 같은 노래의 종지부는 조화의 여운을 남깁니다.

 

 

 

7) An meinem Herzen, an meiner Brust 내 마음에, 내 가슴에,

 

이어지는 7곡 ‘내 마음에, 내 품에 An meinem Herzen, an meiner Brust’는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이제까지 몰랐던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합니다. 밝고 명랑한 자장가 형식을 지닌 노래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죽음이 찾아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갑니다.

 

 

 

 

 

 

 

 

 

 

 

 

 

 

 

 

 

 

 

 

 

 

 

8) Nun hast du mir den ersten Schmerz getan 지금 당신은 내게 처음으로 고통을 주었어요

 

 

8곡은 ‘이제 그대는 제게 처음으로 고통을 주시는군요 Nun hast du mir den ersten Schmerz getan’입니다. “홀로 남겨져 바라보는/이 세상은 공허하군요/사랑했고 살아왔어요/이젠 더 이상 살아있는 게 아니랍니다//내 내면으로 조용히 돌아가/베일을 내리렵니다/거기 그대가 있고 내 잃어버린 행복이 있지요/그대 나의 세계가.” 어둡고 강렬하게 울리는 피아노는 깊은 슬픔과 고통으로 찢기는 심정을 보여주지만,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온갖 기쁨과 고통과 더불어 한 생애를 살아낸 여인의 당당함이 느껴지는 체념과 안식의 마무리입니다.

 

 

 

 

Image:Lancret Sleeping Shepherdess.jpg

 

 

 

옛 그림 같은 가사, 현대적이고 세련된 화성

리트를 작곡하면서 슈만은 베토벤 이후의 가장 괄목할 만한 음악적 발전은 바로 리트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이네, 뤼케르트, 울란트, 아이헨도르프 등 독일의 탁월한 낭만 시인들이 바로 이런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슈만은 리트를 작곡할 때 단편적인 시들도 사용했지만 특히 연작시를 선호했는데, 연작시는 일정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서 음악의 극적인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인의 사랑과 생애>에서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의 차원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합니다. 슈베르트 연가곡에서도 이미 피아노는 성악과 동등한 역할을 하지만, 슈만의 연가곡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와 음악의 의도적인 어긋남이 두드러집니다.

단순히 성악부 가사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피아노 반주가 아니라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마치 클라라가 직접 썼을 법한 이 노랫말은 놀랍게도 여성이 아닌 남성 시인이 썼습니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 1781-1838). <페터 슐레밀의 환상적인 이야기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라는 작품 하나로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은 프랑스 귀족 태생의 독일 작가입니다. ‘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기이하고 해괴한 이야기는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에도 에피소드로 등장합니다. 그림자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하는데, 샤미소 자신이 프로이센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이민자로서 같은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소설가로뿐만 아니라 식물학자로서도 많은 업적을 남긴 샤미소는 연구를 위해 캄차카 반도까지 여행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베를린에서 식물원 원장 직책을 맡았고, 말년에는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제안으로 베를린 학술원 회원이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시를 썼지만 시인으로서 역량을 인정받은 것은 학문적인 성공 이후였는데요,

 

 비더마이어(Biedermeier. 독일 3월 혁명 이전인 1815~1848년간의 문화예술적 경향. 비정치적, 일상적이며 통속적인 경향을 의미) 시대의 낭만주의적 표현 양식을 대표하는 그의 서정시들은 당대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1830년에 발표한 <여인의 사랑과 생애>였습니다.

 

샤미소의 원래 시에는 남편의 죽음 후 할머니가 된 여인이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 붙어 있었지만 슈만은 이 부분을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8곡에서 전해지는 극적인 분위기를 빛바래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 시에 들어 있는 여성의 절대적인 복종과 헌신의 자세가 우스꽝스럽거나 낯설게 느껴지지만, 샤미소와 슈만의 시대에는 이런 정서가 여성에게나 남성에게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격정적인 토로를 마치 옛 시대의 그림을 보듯 담담하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 연가곡에 쓰인 슈만의 현대적이고 세련된 화성은 슈베르트를 뛰어넘어 예술가곡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용숙(음악평론가

 

 

 

 

 

1840년은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인생 최고의 해였습니다. 결혼을 반대하던 장인의 동의 없이도 클라라 비크(1819-1896)와 결혼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을 얻어 마침내 갈망하던 결혼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으로 이 한 해 동안 슈만은 하염없이 솟아나는 멜로디를 악보에 옮겨 138편의 리트(Lied, 예술가곡)를 작곡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을 꿈꾸던 젊은 시절에는 가곡 분야에 큰 관심이 없었던 슈만이 일 년 내내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오로지 노래 멜로디만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1840년은 슈만의 생애에서 ‘가곡의 해’로 불립니다.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 Dichterliebe>과 <가곡모음집>(Liederkreis) 두 편 역시 이때 완성되었습니다.

결혼해도 좋다는 법원 판결을 받자마자 슈만이 가장 먼저 작곡한 예술가곡이 바로 <여인의 사랑과 생애>였다고 합니다. 한 처녀가 어떤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남자는 처녀에게 너무나 높고 빛나는 존재여서 처녀는 감히 그 곁을 꿈꾸지 못합니다. 그런데 남자는 거짓말처럼 처녀에게 청혼하고, 처녀는 이 믿을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노래합니다.

드디어 결혼식이 거행되고, 처녀에서 여인으로 변모한 그녀는 아이의 탄생을 경험하며 최고의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고 슬픔에 잠깁니다.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연인에 대한 사랑과 인생을 노래한 모노드라마이다.

이 모노드라마 속의 여인은 슈만보다 아홉 살 아래였던 클라라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부부간의 나이 차는 당시로서는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에서는 막 성년이 된 딸을 사회적으로 성공한 스무 살쯤 연상인 남자와 결혼시키려는 부모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동등한 부부관계보다는 어린 신부가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관계가 흔했습니다.

자녀들을 키우며 결혼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클라라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하고 때로 사회 부적응적인 태도를 보였던

 슈만을 이끌고 감싸주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결혼할 무렵에는 아홉 살 연상인 슈만을 아마도 <여인의 사랑과 생애>의 여주인공이 그랬듯 우러러보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