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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Saint-Saens-Concerto for Piano no 2 in G minor, Op. 22



 


Piano concert No 2, in G minor op.22 연속듣기

 


제1악장 Andante sostenuto





제2악장 Allegro scherzando




제3악장 Presto

 

 

Saint-Saens Camille (1835-1921 F.) 

 

 

 

 

 

 

 

 

 

 

 

 

 

 

 

 

 

 

 

 

 

 

 

 

 

Saint-Saens, Camille (1835-1921 F.)
 피아노 협주곡 제2번 g 단조 작품 22
 Concerto for Piano no 2 in G minor, Op. 22


 

 

1913년 프랑스 파리의 음악회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는 생상스

 

 

 

 

생상스는 19세기-20세기의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의 음악 진흥에 힘쓴 위대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물론 피아니스트, 지휘자, 평론가, 시인, 화가, 나아가서는 문학 방면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사람으로 국내외에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12세 때 파리 음악 원의 오르간 과에 입학하였으며 16세 때에는 제1교향곡을 발표하였습니다.
17세 때, 성 마리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취임하였으며 21세 때의 제2교향곡은 성 세실리아 협회의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26세 때부터 4년간 니데르메이르 종교 음악 학교의 피아노 교수로 있으면서 포레, 메사제, 지구와 같은 유능한 제자를

 육성하기도 했습니다.
1879년에 유명한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를 발표했으며 그 후 그는 10여 편의 오페라와 8편의 극 음악을

 작곡하였습니다.

한편 그는 국민 음악 협회를 조직하여 프랑스의 새로운 음악 진흥에 전력하였으며 젊은 세대의 작곡가들을 많이 세상에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이 때 기악곡을 많이 작곡했는데 지금 널리 알려진 곡은 <파에톤>, <죽음의 무도>, <헤르쿨레스의 청년 시절>,

 피아노 협주곡 제4, 5번, 바이올린 협주곡 제2, 3번 그 밖에 실내악곡 들을 많이 썼습니다.

바야흐로 그의 명성은 자자했으며 그는 자작의 피아노 협주곡을 가지고 독일,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지를

순방하였습니다.
1906년에는 아메리카를, 1916년에는 프랑스를 대표하여 파나마 태평양 박람회에 참석했으며 남미 등지도 방문했습니다.
86세 때 알제리를 방문했는데 그 곳에서 애석하게도 객사하였습니다.
그의 조국은 그의 공로를 참작하여 파리에서 국장으로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그는 독일의 고전과 낭만파를 이해하였으며 풍부한 음악성으로 밝고 아름다운 구성 미를 이루는데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생상스의 음악 기법에 있어서는 베를리오즈, 슈만, 멘델스존, 바그너 등의 영향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고전주의적인 우아한 균형과 세련미가 있습니다.
로망 롤랑은 말하기를 “생상스의 예술은 라틴적이어서 명랑하다. 정밀하고 간소하게 표현되어 극히 우아하다.

부드러운 화성, 흐르는 듯한 조 바꿈, 넘쳐 흐르는 청춘의 희열은 어디까지나 글룩, 모짜르트 등의 고전의 기초 위에

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면과 함께 그의 보수적인 한계도 인정 하여야 합니다.
이제 프랑스의 새로운 국민 음악의 창조는 선구자로서의 프랑크, 생상스를 거쳐 인상주의적 세대의 등장을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작품 번호 169를 헤아리는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Concerto for Piano no 2 in G minor, Op. 22

프랑스에 연주 여행 온 안톤 루빈스타인의 의뢰로 1868년에 작곡된 제2번은 생상스 초기의 대표작이며 전5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유려하고 색채적인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곡은 관현악의 환상적 분위기에 피아노의 풍부한 선율과 화려한 비르투오소적 기교가 어울려 신선한 활기가 넘칩니다.
이 작품은 1850년 이래 친교를 맺어온 리스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색채감과 피아노의 기교에서 그런 경향이 농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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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악장 Andante sostenuto
제2악장 Allegro scherzando
제3악장 Presto

 



Camille Saint-Saens(까미유 생상스 1835-1921)

파리에서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아버지를 잃은 생상은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면서 숙모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3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5세 때 첫 피아노곡을 작곡할 정도로 음악적 자질이 출중했던 뛰어난 그의 음악적 재능은

 흔히 모차르트의 유년시절과 비교되었다.

 

1846년 10세에 샬 플레이엘 홀에서 정식 데뷔 무대를 펼쳤다. 1848년 12세 때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하여 작곡과

오르간을 배웠다. 1853년에 첫 교향곡과 미사를 작곡해서 구노, 베를리오즈, 리스트 등에게 절찬을 받았다.

1853~1877년 마들렌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근무하면서는, 오르간 ·피아노 연주의 명수, 즉흥연주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또 1861∼1865년에는 에콜 니데르 메이에르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교수하였는데, A.메사제, G.포레 등은 이 시기의

제자들이다. 1871년 유지들과 파리에서 프랑스 작곡가들의 신작발표를 독려하기 위해 '국민음악협회'를 결성하고

유력한 멤버로서 프랑스 음악계에 교향악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작곡가로서는 1852년과 1864년에 로마대상에 낙선하여 그 이후 1880년경까지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국민음악협회, C.라무뢰 등의 오케스트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1888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부터 오랜 시간을 여행으로 보냈다. 알제리와 이집트 여행은 그의 작품에서

《알제리 모음곡》이나《피아노 협주곡 제5번》, 《이집트풍》으로 표출되었다.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박학다식했던 그는 륄리, 샤르팡티에, 라모 등의 악보를 재발굴하기도 했으며, 고대 로마 악기에

관한 출판도 하고, 시와 연극에 관한 책도 펴낸 바 있다. 그가 남긴 대표작으로는 오페라《삼손과 데릴라

 

Samson et Dalila》(1869~72), 《교향곡 제3번 '오르간'》(1886), 《교향시 '죽음의 춤'》(1874), 관현악곡

《동물의 사육제》(1886),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1863)를 비롯한 13편의 오페라, 교향곡 4, 피아노협주곡 3, 그 밖에 피아노곡을 비롯한 많은 기악곡이 있다.

작품은 모두 고전적인 단정함, 세련된 관현악법에 의한 화려한 표현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