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닥 신기루였을까. 아니면 의도적 거짓말이었을까? 이명박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보를 막아 물을 가두면 4대강의 수질이 깨끗해지고 자연이 되살아난다는 MB의 주장은 허구로 끝났다.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지난 5월 낙동강 일대를 찾았다. 제작진에 눈에 띈 것은 폐준설선이었다. 확인해보니 현재 17척이 방치돼 있었는데, 이 가운데 4척은 침몰한 상태였다. 22조 원을 쏟아부은 허망한 돈 잔치의 끝물을 보는 듯 했다.
▲ 양산신도시정수장 근처에서 4대강 당시 작업을 했던 배가 장기간 방치된 채 반쯤 가라앉아 있다.
강변에는 4대강사업 당시 오탁방지막을 치는데 사용했던 닻이 방치돼 있었다. 성인 한 사람이 들기에도 벅찰 정도로 무거운 쇳덩이다. 이런 종류의 닻의 상당수가 강물 속에 방치돼 있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이 끝난 후 오탁방지막만 수거하고 강바닥에 깔아둔 닻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닻을 수거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오탁방지막을 수거하는데 참여했던 기방웅씨는 “닻을 회수하지 않은 채 밧줄을 잘랐다”고 증언했다.
▲낙동강 강변에서 발견한 닻
검은 오니로 범벅이 된 바닥
그렇다면 물 속 상황은 어떨까? 낙동강 하구에 있는 함안보 인근 강물은 얼핏 보기에도 혼탁해져 있었다. 물 속을 들어가봤다
. 전방이 한치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강바닥에는 버려진 폐선과 건설자재가 어지럽게 방치돼 있었고 악취 가득한 개흙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 2017년 5월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이 직접 낙동강 하구로 들어간 촬영한 모습
강 바닥을 손으로 훑어봤다. 강 바닥은 온통 뻘밭이 돼버려 더 이상 모래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였다. 검은 오니로 범벅이 된 모래, 녹조가 강바닥으로 침강하면서 모래가 녹조를 흡착했기 때문이다.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 낙동강 바닥에서 파낸 모래는 뻘색을 띠며 악취가 진동했다.
낙동강 달성보 구간 화원 유원지. 강바닥을 팠다. 악취가 풍기는 진흙 속,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실지렁이와 깔따구 유충이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실지렁이와 깔따구 유충은 원래 흔히 말하는 수채나 시궁창 이런 곳에 주로 사는 것들이라며 물이 굉장히 최악의 상태로 전락하면 나온다”고 말했다. 그만큼 수질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물고기 씨가 말라버린 강, 생계가 끊긴 어민들
4대강 사업 전 낙동강은 붕어와 메기, 장어 같은 토종 어류들이 많이 잡혔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이후 토종 물고기는 사라지고, 강준치와 블루길 등 외래어종만 그물에 잡혀 올라왔다. 오염된 강에 적응한 어종들이다. 수질 악화와 치어 서식지인 강변 수풀이 사라진 게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민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해 온 어민들은 블루길 등 외래어종을 잡아 정부에 팔아 수입을 얻고 있었다. 생태 보호 차원에서 구매해 사료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외래어종 1kg에 4천 원에 거래됐다.
‘독’을 품은 강바닥
낙동강은 영남지역의 취수원으로 쓰이기 때문에 좋은 수질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이후 사라지지 않는 녹조로 수질은 계속 악화돼 왔다. 특히 유독한 남조류인 ‘마이크로시스티스’가 문제가 되고 있다. 독성물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환경단체인 낙동강 네트워크와 일본 신슈대 박호동 교수는 낙동강의 남조류 마이크로시스티스 세포 내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의 양을 측정했다. 김해 대동 선착장, 구포역, 본포취수장, 창녕함안보, 달성보, 강정보 등 모두 6개 구간의 강바닥 흙을 채취했다. 조사를 실시한 전 구간에서 일정하게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 낙동강 유역에서 검출된 장소별 마이크로시틴 함량 결과
이미 22조 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은 2012년 이후에도 매년 3조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수질개선 비용 명목이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 4대강 살리기 사업 이후 수질개선 비용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1일 4대강이 설치된 총 16개의 보 중 6개의 수문을 열었다. 날로 악화된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다고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피해는 막대하지만 책임자는 없는 형국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이번주 4대강의 실태를 취재한 <‘2017 MB의 유산, 4대강 1부 고인 물, 썩은 강>편에 이어 6월 9일(금)에는 4대강 사업을 선전하고 추진했던 책임자들을 조명하는 2부 '사라진 책임자들'편이 방송될 예정이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 구성 정재홍 촬영 김한구 취재 연출 권오정
▲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면서 4대강 사업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4대강 보가 홍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의견과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진은 대구 달성군 낙동강 강정고령보의 수문이 열려 물이 방류되는 모습.
대구 뉴스1
2020 홍수의 결론-"4대강사업은 틀렸다"
한반도 집중 호우와 홍수로 인해 4대강 사업이 다시 소환됐다. 섬진강의 제방이 무너지고 피해가 확산되자 미래통합당은 “섬진강까지 4대강 사업을 했어야 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명박 정권의 2인자였던 이재오 전 특임장관은 “4대강 16개 보가 있는 지역에는 피해가 없었다.
그러니 보가 홍수를 막는 기능이 있다”고 까지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대강 보에 홍수조절 기능이 있는지 조사하라고 환경부에 지시했다.
큰 피해 낳은 제방 붕괴의 직접 원인은 안전상식 위반한 시설물들
4대강 사업과 홍수 관련 논란이 진행 중인 가운데 뉴스타파 취재진이 홍수 피해 현장을 확인한 결과 막상 큰 피해를 낳은 제방 붕괴의 직접 원인은 안전을 감안하지 않은 시설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낙동강의 무너진 제방은 모래로 축조된 제방이었다. 섬진강의 제방 붕괴는 제방보다 낮은 다리가 원인이었다. 구례읍을 침수시킨 홍수 피해의 원인은 다리 밑에서 갑자기 높이가 낮아진 제방으로 인한 것이었다.
낙동강의 붕괴된 제방은 모래제방
뉴스타파 취재진이 현지에서 점검한 결과 이번에 붕괴된 낙동강 합천보 상류 제방의 경우 거의 모래로 축조된 제방이었다.
▲ 낙동강 합천보 상류 붕괴 제방의 절단면. 일반적인 제방과 달리 모래재질로 구성돼 있다.
제방의 재질이 모래였다는 사실은 제방 붕괴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 주민 서병화 씨는 뉴스타파에 “모래로 만들어진 제방이라서 불안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제방이 터지던 날 배수문 구조물이 닿는 부위에서 누수가 생긴 현상을 관찰했다고 말했다. 이 주민도 “제방은 모래로 만들어진 것이다”고 확인했다.
낙동강 제방이 무너질 당시 수위는 17.57미터, 계획 홍수위인 18.57미터보다 1미터 낮은 상태였다. 제방의 높이인 21.7미터까지는 4미터 이상 남은 상황이었지만 제방은 무너졌다. 구조물과 제방 사이의 누수현상과 모래제방의 취약성이 제방붕괴를 낳았을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국립한경대 토목안전환경공학과의 백경오 교수는 “무너진 제방이 모래제방이라는 것은 낙동강의 다른 지역에도 모래제방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모래제방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앞으로 홍수가 났을 때 또 어디서 문제가 생길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낙동강 제방을 관리하는 책임을 가진 부산지방국토관리청 하천공사 2과장은 “모래제방일 리 없다”면서 “육안과는 다를 것이다. 제방은 양질의 재료로 만들어진다”라고 답변했다.
섬진강 금곡교 제방 붕괴 원인은 제방보다 낮은 다리
섬진강 제방 붕괴 원인도 안전의 상식을 위반한 시설들이었다. 섬진강 금곡교 인근 제방이 붕괴된 것은 지금까지 섬진강 물이 불어나 제방을 넘어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제방 높이보다 낮게 설치된 금곡교를 타고 섬진강 물이 들어간 것이 제방 붕괴의 일차적인 원인이었다. 서의열 이장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은 뉴스타파에 “금곡교 다리가 제방보다 낮아서 물이 다리로 들어왔다. 그 물이 제방 안 쪽을 허물기 시작했고 결국 제방이 무너졌다”고 전했다.
▲ 섬진강 물이 금곡교(화면위쪽)를 통해 제방을 넘어들어오고 있다. 제방은 멀쩡했지만 금곡교가 제방보다 낮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제방은 무용지물이 됐다. (서의열 이장 촬영영상)
실제로 당시 서 이장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금곡교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볼 수 있는데 주변 제방은 다리보다 높아서 여전히 온전한 채로 서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다리로 들어온 물이 제방을 안쪽부터 허물기 시작했고 결국 제방은 무너졌다.
▲ 제방이 먼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제방보다 낮게 위치한 금곡교를 통해 들어온 강물이 제방의 안쪽을 허물어버렸다.
구례 침수시킨 서시천 제방 붕괴 원인은 다리 밑에서 낮아진 제방
이번 홍수에서 가장 많은 이재민을 발생시킨 구례읍 침수사태는 지천인 서시천의 제방 붕괴로부터 시작됐다. 그런데 취재진이 현장을 점검한 결과 정상적인 높이로 유지되던 제방이 서시1교 지점에서 낮아져 있었다. 당시 현장 영상에 따르면 바로 이 낮은 지점으로 강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구례읍 침수는 서시1교와 맞닿는 곳에서 제방 높이가 낮아져 있다. 이곳 때문에 제방 붕괴가 시작됐다.
(유튜브 'sh Baek' 영상)
구례읍 양정마을 전용주 이장은 “이전부터 제방 문제 때문에 위험하다는 민원을 낸 것으로 안다. 그러나 묵살됐고 이런 사태가 생겼다”고 안타까워했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의 담당자는 “서시1교의 설계도면에는 하천제방을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낮아진 제방문제는 지자체에 문의하라”고 답했다. 반면 관리주체인 전라남도 자연재난과 담당자는 “제방이 낮은 것은 다리 놓을 때 그렇게 한 것 아니겠느냐. 우리는 제방을 깎지 않았다”고 해 제방이 낮아진 정확한 원인은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대강 예산을 홍수 취약지점에 썼다면?
낙동강과 섬진강의 제방이 붕괴된 사례를 종합하면 올해 폭우로 강물이 이전보다 불어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의 직접적인 원인은 모래로 만들어진 제방이나 제방보다 낮은 다리, 높이가 일정하지 않고 갑자기 낮아진 제방 등 안전 상식을 지키지 않은 홍수 대비 시설 때문이었다.
특히 낙동강에서 335km의 노후제방을 보강하는 내용이 마스터플랜에 들어가 있었는데도 안전에 취약한 제방을 방치했다는 것은 4대강 사업이 무엇을 위한 사업이었느냐는 비판을 부를 수 있다. 낙동강은 4.4억톤의 모래를 준설하는데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홍수방지가 아니라 운하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섬진강 제방 붕괴의 원인을 조사하고 있는 김원 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원과 구례의 제방 붕괴는 제방 높이가 균일하지 않고 교량 때문에 낮아진 부분으로 물이 넘쳐 침수의 일차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천설계기준에 의하면 제방의 높이는 계획홍수위에 여유 높이(여유고)를 더한 높이로 하게 되어 있다.
자세한 것은 측량 등을 통해 확인해봐야겠지만 현장 상황으로 보면 두 곳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 이런 지점이 많은데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백경오 한경대 토목안전환경공학과 교수는 ‘교량을 설치할 때 제방보다 높게 해야 하는데 공사비 부담 등 원인으로 낮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며 ‘4대강 사업의 예산을 홍수 취약지점 개선에 투입했다면 지금보다 피해가 적었을 것’이라고 했다. 환경부 집계에 따르면 2018-2019 2년 간의 홍수 피해액 중 98%가 지방하천, 소하천에서 발생했다.
감사원 감사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 효과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착공하던 2009년 “매년 강에서 수해로 4조씩 들어갑니다. 그것을 매년 1-2조 보태서 공사를 해서 한 3년 뒤에는 앞으로 매년 들어가던 4조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국가예산에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라고 주장했다. 4대강 사업 이후에는 홍수 피해로 들어가는 예산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사원은 2017년 4대강 사업 감사에서 ‘홍수예방효과는 0’이라고 결론내렸다.
감사원은 또 “4대강지역과 비4대강지역의 홍수피해액 변화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 4대강 지역의 홍수피해액이 유의하게 감소했다는 결과를 찾을 수 없었고, 4대강 사업이 비가 많이 내리는 경우 더 강한 홍수예방효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일 수 있으므로 사업 후 강수량이 많았던 시군구 대상 추가분석한 결과도 피해를 줄이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4대강사업의 망령 벗어나 새로운 홍수대책 마련해야
4대강 사업은 운하를 만드는 것이 숨은 목적이었기 때문에 4대강의 전체 구간을 깊게 준설하는데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 홍수 위험이 크거나 작거나를 막론하고 강의 전체구간을 파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배가 다닐 주운수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4대강 사업 예찬론자들은 준설의 결과 강바닥이 낮아졌으므로 홍수 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SNS에서 “강바닥 깊이를 수 미터 더 파내서 강의 빗물 용량을 몇 배로 키우면 당연히 홍수 예방 효과가 있는 겁니다.
섬진강도 기존 4대강처럼 준설 작업으로 더 깊이 파내면 범람 방지 효과가 있었을 겁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준설은 효과적인 홍수 예방법이 아니다.
감사원은 2017년 감사에서 4대강사업으로 준설된 구간 중 금강은 28.8% 영산강은 26.5%가 다시 메워졌다고 밝혔다. 하태경 의원 말처럼 준설로 생긴 홍수위 저감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유지 준설을 해야 하고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야 한다. 서식처를 파괴하는 등 강의 생태계를 망치는 것은 당연히 따라오는 피해다.
이번 홍수의 진정한 교훈은 ‘홍수에 대한 대응책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백경오 교수는 “기후위기가 심화된 2000년대 들어 하천관리의 세계적인 추세는 하천에 맞서 대응하는 정책보다는 적응하는 정책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이 강행되면서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백 교수는 또 “이제 4대강 재자연화를 통해 직강화(하천의 물길을 직선으로 바꾸는 것)된 강에서 원래의 자연스러운 강 흐름을 회복해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4대강 재자연화를 서둘렀다면 재자연화가 홍수방어에 효과 있다는 것을 입증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다시 4대강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최승호 choish@newstapa.org
ⓒ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지난 10일 경남 창녕군 일대에서 낙동강 본류 제방 수십m가 무너진 뒤 복구돼 있다. 사진 오른쪽 위 시설물이 합천창녕보다.
/연합뉴스
8월 10일 경기도 연천군 남북 접경지역 호우 피해 상황을 점검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박은호 논설의원
4대강 보 철거 집착하는 정부… 사실과 다른 발언 3가지
논설위원이 본 다시 불붙는 4대강 논란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4대강 보(洑)가 홍수 조절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실증·분석할 기회" "4대강 보의 영향에 대해 깊이 있는 조사와 평가를 해달라"고 했다. 낙동강·섬진강 등에서 일어난 홍수 피해의 원인과 책임 규명까지 주문하면서 4대강 사업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한쪽에선 '보 탓에 홍수 피해가 커졌다'고 하고, 반대쪽에선 '보 덕분에 피해가 줄었다'고 한다. 보가 4대강 본류뿐 아니라 지류·지천의 피해를 키웠는지 등에 대해서도 '그렇다' '아니다'로 정반대 주장이 맞서고 있다. 그런데 이 논쟁은 사실 소모전일 뿐이다. 2011년 4대강 사업 완공 이후 9년간 네 차례의 감사원 감사, 국무조정실·환경부가 주도한 민관 합동 조사 등을 통해 진위가 이미 가려졌기 때문이다.
◇보 상류 쪽 물높이 상승은 자연스러운 현상
여권과 환경 단체 등에선 대통령 지시 직후 "보가 홍수 피해를 키웠다"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다시 공격하고 나섰다. 환경부도 "보는 홍수위(홍수 때 불어나는 강물 높이)를 상승시켜 홍수 소통에 부정적"이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며 논란에 가세했다. 보가 홍수위를 상승시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물 흐름과 특성을 연구하는 수문학(水文學) 용어에 '배수(背水) 효과'〈그래픽〉라는 게 있다. 보가 강물 흐름을 막아 보 상류 쪽 강물의 수위가 소폭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보든 댐이든 방조제든 강을 횡단하는 구조물은 모두 이런 현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러나 하천 전문가 대다수는 4대강 보의 배수 효과는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지형 여건과 유속 등에 따라 보 상류 쪽으로 100~200m 정도 배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보 설계 때 이미 배수 효과가 반영됐고, 상류 쪽 수위 상승 폭도 작기 때문에 보가 홍수 위험을 키운다고 보기 어렵다"(세종대 배덕효 교수)는 것이다. 일부 여권 인사는 "보가 홍수를 유발한다"고까지 주장하지만 이렇다 할 근거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준설로 홍수 피해 줄어"
4대강 사업 이후 홍수 피해는 이전보다 대폭 줄었다. 대규모 준설로 홍수 조절 능력이 커졌다는 것은 상식적 사실이기도 하다. 홍수량이 같은 경우 강바닥을 깊이 파내고 제방을 더 높게 쌓으면 홍수 소통 능력이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간단한 상식을 4대강 사업 반대론자들은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부정해왔다. 그런데 박근혜·문재인 정부 들어 실시한 모든 4대강 조사 결과는 이와 반대였다.
4대강 사업 이전 강물 범람 등으로 808㎢에 달하던 상습 침수 구역의 94%(757㎢)가 공사 이후 침수 위험이 줄어들었다. 4대강 본류 제방 357개의 86%(308개)에서 제방 안전도가 개선됐다. 100~200년 빈도 홍수 때 4대강의 최고 물높이는 3.9m까지 내려간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일보
강 본류를 준설하면 지류·지천의 홍수 위험까지 커진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강바닥 준설 등으로 4대강의 물그릇이 커져 본류에 많은 물이 담기면 4대강의 수백 지류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본류 강물에 가로막혀 지류·지천이 넘치게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무조정실 주도로 구성된 4대강 조사 평가위원회는 "4대강 지류 235곳의 72%(170곳)에서 홍수 위험이 줄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91㎞의 지류는 홍수위가 1m 이상, 749㎞ 지류는 10㎝ 이상 홍수위가 떨어졌다.
당시 조사위원회 관계자는 "강 본류의 물그릇이 커져 지류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에 대해 문재인 정부 못지않게 부정적이었다.
◇낙동강 제방 붕괴는 부실 공사 때문
지난 10일 경남 창녕군 이방면 인근 낙동강 제방 40여m가 붕괴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보 때문에 수위가 오르고 수압이 높아져 제방이 무너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제방은 합천창녕보에서 상류 방향으로 2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배수 효과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제방이 원래부터 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많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해온 가톨릭관동대 박창근 교수도 "제1원인은 부실 공사이고 배수 효과가 붕괴를 가속화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 하천 전문가는 "흙과 모래로 쌓은 하천 주변 제방은 겨울철엔 모래 사이의 공기가 얼고 여름엔 물이 침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제방을 만들 때 다짐을 부족하게 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무너진 제방 안쪽에는 강물보다 낮은 지대에 위치한 농경지가 있고, 농경지에 고인 물을 강으로 빼내는 콘크리트 배수시설이 제방을 관통해 설치돼 있다. 콘크리트 시멘트와 제방의 흙이 만나는 부분이 제대로 접합돼 있지 않으면 제방 안전에 결정적으로 '약한 고리'가 된다고 한다. 제방이 부실한데 관리 부실까지 겹쳤다는 것이다.
◇4대강 보만 끈질기게 공격하는 정부
이명박 정부가 밝힌 4대강 사업의 목적은 여럿이다. 강바닥 준설과 제방 보강을 통한 홍수 피해 방지, 보에 채운 물로 가뭄 대비, 수량 확보와 오염 물질 정화 시설 확충으로 수질 개선, 자전거길 등 친수 시설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이다. 현 정부는 이 가운데 유독 보를 끈질기게 공격한다. 보 탓에 수질이 나빠졌고 보가 강의 경관과 생태계를 망쳤다고 본다.
문 대통령은 정권 출범 직후 수질 개선을 이유로 '보 수문(水門) 상시 개방' 지시를 내렸다. 이번엔 '보의 홍수 조절 능력'을 검증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 지시는 엉뚱한 측면이 있다. 보는 홍수 조절용이 아니라 가뭄 대비용이다. 평소 물을 가득 채워 일정한 수위로 유지하는 게 보의 본기능이다.
전국 지류·지천에 깔린 보 수만 개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홍수 때 물이 잘 빠지게 하는 용도로 세운 보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문 대통령의 지시는 보가 갖추지 않은 기능을 분석하라는, 해결 불가능한 주문인 셈이다.
4대강 보는 2018년 가뭄 때 제 역할을 했다. 금강 보에 가둔 물을 도수로를 통해 충남 지역 논밭으로 흘려보냈다. 강물에 물이 가득 들어차 강 주변 지하수 수위가 올라가면서 농경지의 지하수 활용도 크게 좋아졌다.
한 하천 전문가는 "대통령이 가뭄 대비라는 보의 원래 기능에 대한 평가는 제쳐두고 홍수 조절 능력 검증을 요구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창녕군 이틀간 250㎜ 비에도 침수 3가구뿐… "4대강 사업 덕분"]
2003년 태풍 '매미' 때 경남 창녕군엔 300㎜ 안팎 폭우가 순식간에 쏟아졌다. 낙동강 수위가 11.8m(해발 기준)까지 차올라 지천에서 내려오는 물을 역류시키는 바람에 인근 지천 7곳의 제방 3260m가 붕괴되거나 유실됐다. 사망자 9명에 523가구 주택이 침수되고 농경지 침수 피해도 2600헥타르(㏊)나 됐다.
창녕군은 이번 호우 때도 이틀 새 250㎜ 비가 내리면서 낙동강 본류의 제방 수십m가 무너졌다. 그러나 피해는 경미한 수준이다. 창녕군 관계자는 "제방 인근 마을에 사는 수백 가구 가운데 침수 피해를 본 곳은 3가구뿐"이라며 "나머지 가구는 일시 대피한 당일 귀가해 정상 생활로 돌아갔고, 침수된 농경지도 (태풍 매미의 2% 수준인) 50헥타르 정도"라고 했다.
낙동강홍수통제소에 따르면 지난 10일 창녕군 제방이 무너질 당시 본류 수위는 17.6m로 홍수위(18.6m)보다 1m 정도 낮았다. 비가 더 내려 강물이 1m 더 차올라도 홍수 방어 능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강바닥 준설 효과다. 여기에다 제방 높이는 홍수위보다 3m 높은 21.9m다.
강물 높이가 홍수위를 넘겨도 제방을 넘지는 않는 것이다. 창녕군 관계자는 "태풍 매미 때와 달리 이번 호우 때는 낙동강 지천들이 범람하거나 제방이 유실되는 사고가 없었다"고 했다. 준설로 본류의 물그릇을 충분히 키운 덕에 지천의 물이 본류로 합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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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사진=박은숙 기자
문재인정부의 4대강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4대강 재자연화가 좌초 위기다. 2018년 말까지 4대강의 보 철거 여부를 결정하고 19년부터 자연성 회복, 복원사업을 하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보 처리 방안을 2019년 말까지는 확정하겠다며 한 차례 미루기도 했지만 그 시한도 지키지 않았다.
보 처리 방안을 확정짓는 임무가 부여된 국가물관리위원회의 허재영 위원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언제까지 결론이 난다고 시한을 약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염형철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간사)은 “지금 결정하더라도 환경영향평가다,
예비타당성조사다 해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2년 내에는 재자연화를 착수하기 어려운데 정부는 결정이라도 하겠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나마 금강과 영산강은 보가 개방돼 수질과 생태계가 개선되고 있는 상태지만 가장 큰 규모의 공사가 이뤄진 낙동강은 보 개방도 거의 되지 않아 녹조가 심해지는 상황이다. 지난 9일 낙동강유역환경청 건물 앞에서 낙동강에서 떠온 녹조물을 뿌리며 보 개방을 요구한 배종혁 낙동강 경남네트워크 상임대표는 “녹조물을 약품으로 정수처리해 먹이는데 수도요금 납부 거부운동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고 분개했다.
4대강 문제에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국제적인 하천학자 한스 베르하르트 독일 칼스루에 공대 교수는 “모든 댐(보)를 없애야 한다. 4대강의 댐은 아무 효용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비용만 늘어나고 강은 파괴될 뿐이다”라고 충고했다. 타파는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4대강 재자연화가 왜 좌초 위기에 놓이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취재했다.
우리에게 남겨진 ‘이무기 운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4대강의 보 개방과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지시했다. 감사원은 그동안 많은 의문을 낳았던 ‘수심 6미터의 비밀'을 밝혀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을 착수했고 낙동강을 최저 수심 6미터로 준설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대단한 비밀을 밝혀낸 것 같지만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그를 옹위한 공무원, 어용 학자들의 주장처럼 홍수를 예방하고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강의 한 복판을 최저수심 6미터가 되도록 깊게 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운하가 되다 만 강’이다. ‘이무기 운하'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강이다. 처절하게 망가진, 고통에 울부짖는 강이다.
▲ 출처 : YTN뉴스
촛불로 되찾은 민주정부가 망가진 강을 되살리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2017년 5월 22일 , 취임하자마자 보 개방부터 지시한 것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듯 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경북지역에서 보 개방에 반발하자 내려간 이낙연 총리는 농업용수가 걱정된다며 추가 개방은 어렵다고 후퇴했다. 그나마 금강의 세종보와 공주보가 개방돼 자연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2018년까지 보 처리 방침을 확정짓겠다고 했는데, 그 업무를 할 4대강조사평가단이 환경부에 설치된 것은 2018년 가을이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이 기획위원장으로 임명돼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2018년 11월이었다.
홍 위원장은 경제성 검토를 통해 보 처리를 결정하겠다는 방향을 잡았다. 보를 남겨뒀을 때 있을 수 있는 편익과 철거할 때 드는 비용을 비교해서 편익이 크면 철거하는 방식이다. 공정성 시비를 우려한 홍 위원장은 환경경제학 전공자들이 아니라 정통 경제학자들을 영입해 경제성 검토를 맡겼다.
2019년 2월 일, 4대강조사평가단은 금강의 세종보, 영산강의 죽산보를 철거하고 금강의 공주보는 공도교를 남기고 나머지를 철거하며 금강의 백제보와 영산강의 승촌보는 상시 개방한 채로 모니터링을 계속한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공주보를 포함해 3개의 보는 사실상 해체하는 결정이다. 백제보, 승촌보는 해체 결정을 하기에는 데이터가 부족해 보를 개방한 채로 더 관찰해보자는 것이었다.
3개는 사실상 해체, 2개는 상시 개방이라는 결과는 어정쩡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4대강의 보들은 뱃길을 만들기 위해 강을 깊게 판 뒤 물을 채울 용도로 세운 구조물이다. 4대강 추진자들은 보로 막아서 생긴 물이 가뭄을 해소시켜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물을 쓸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물을 채운 4대강 본류 주변은 항상 물이 넘치는 곳이고 가뭄지역은 그로부터 먼 산간지역이나 섬 지방이기 때문이다. 본류에서 가뭄지역까지 물을 공급하려면 관로를 뚫어야 하고 가압 펌프로 높은 지역까지 물을 밀어올려야 한다. 공사비와 전기료 등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차라리 가뭄지역 주변에 소규모 물 공급시설을 만드는 것이 낫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국토해양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대로 4대강 사업을 진행했지만 물 공급계획은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감사원 감사 발표(2017년)에 따르면 “국토해양부는 2009년 2월 정종환 당시 장관에게 ‘대통령 지시사항인 준설과 보 설치만으로는 수자원 확보의 근본 대안이 안 된다’고 보고했으나 정 장관이 ‘그런 내용을 어떻게 보고하느냐'고 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못했다”고 한다.
국토부 공무원들은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수심을 깊이 팔 것을 지시하자 4대강 사업은 진행됐다. 결국 보는 녹조 가득한 더러운 물을 가두는 수단이 됐다.
보는 아름다운 산하를 자유롭게 흐르던 강을 막아 저수지로 만들어버렸다. 짧은 시간 내에 흐르는 강에 살던 생물종들은 호수나 저수지에 사는 종으로 바뀌었다. 서식처가 물에 잠기자 생물 다양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보는 물을 공급하지도 못하면서 수질을 악화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시설이 되었다.
효용이 없다면 철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 방향을 택하지 않았다. 많은 돈 들여 만든 시설을 이념으로 때려부순다는 비난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경제성 검토라는 다소 덜 원칙적이지만 국민 설득에 유리한 방향을 선택했다. 환경단체들은 그 방향을 비판하고 반대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함께 갔다.
금강과 영산강에 대한 보 처리 방침은 문재인 정부 뿐 아니라 4대강조사평가단에 참여한 환경단체들도 함께 고안한 제안이었다. 그 방침대로 이행됐다면 지금쯤이면 일부 보에 대한 철거도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고 남아 있는 낙동강과 한강에 대한 보 처리도 결정됐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4대강 재자연화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진척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 처리 방침 발표 이후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4대강 재자연화라는 국정과제를 우선 순위에서 밀어냈다.
국가물관리위원회로 넘겨진 공
문재인정부는 환경부 4대강조사평가단이 제안한 보 처리 방침을 그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 출범하는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이 문제를 심의해 최종 결정하도록 넘겼다. 홍종호 전 4대강조사평가단 기획위원장은 김혜애 당시 청와대 기후환경 비서관이 자신에게 기획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면서 정부의 로드맵을 설명했다고 했다.
“2019년 초에 4대강조사평가단의 발표가 나면 6월 정도에 국가물관리위원회가 결성될 것이고 거기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조사평가단의 제안을 수용할 것이다.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연구하는 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그 결과를 그대로수용할 것이다 . 그런 절차를 거쳐서 확정이 되면 하반기에 집행을 할 것이다.”
결국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사실상 4대강조사평가단의 결정을 추인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꼭 국가물관리위원회에 그 결정을 넘겼어야 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허재영 국가물관리위원장은 “보 처리 문제가 국가물관리위원회의 논의 사안으로 법에 규정돼 있지는 않다. 굳이 근거를 찾는다면 기타사항으로 ‘물관리위원장이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4대강조사평가단의 결정을 바로 이행할 수도 있었겠지만 국가물관리위원회에 논의해달라고 넘겼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회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했다. 국가물관리위원회가 4대강 재자연화라는 큰 국정과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하도록 했다면 그 과제가 이행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우선은 재자연화라는 방향을 공감하는 위원들이 선정됐어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친4대강 인사로 분류될 수 있는 이른바 전문가들을 대거 국가물관리위원으로 선임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 4대강 문제는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국가물관리위원 선정과정을 담당한 김혜애 당시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에 의하면 위원 선정은 각 부처에서 3배수를 추천해 최종 결정은 청와대에서 했다. 4대강조사평가단에 참여했던 4대강 비판 인사들은 거의 배제됐다.
김 전 비서관은 “4대강조사평가단에서 만든 제안을 심의하는 곳이기 때문에 제안에 참여한 사람들은 빼는 게 당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증이 부족했는지 친4대강으로 불릴 법한 인사들이 대거 들어갔다.
운하정책자문단 혹은 4대강 사업 정책자문단의 일원이었던 교수들도 있고 각종 기고와 발표를 통해 4대강 사업을 지원한 전문가들도 있었다. 4대강 턴키 심사위원 출신도 두 사람 있었다. 4대강조사평가단의 보 처리 발표 후 보수언론에 졸속 발표라는 비판글을 기고한 사람도 있었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해온 한 국가물관리위원은 뉴스타파에 “4대강 재자연화를 지지하는 위원과 반대하는 위원의 숫자가 6 대 12 정도 된다”고 한탄했다. 김혜애 전 비서관은 취재진에 “저나 정부로서도 물관리위에서 그렇게 문제제기가 되고 논란이 될지 사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그는 “우리 정부가 위원회를 만들어놓고 몇몇 위원들에게 지침을 주어 밀어붙인다면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무조건 밀어붙인 것과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덧붙였다.
이 말대로라면 현재의 국가물관리위원회 구성 하에서 4대강 복원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위원 구성은 불리한데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갖고 밀고 가지도 않는 것이니 말이다. 4대강 복원이라는 국정과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환경단체들의 한탄이다.
김혜애 전 비서관의 상사인 김수현 전 정책실장은 취재진의 취재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정부 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입장도 변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장 변화다.
2016년 9월 30일 이해찬 당시 무소속 의원은 수자원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학수 사장에게이렇게 요구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 다른 보 전체를 없앤다는 건 무리란 말씀이신데. 실제로 필요 없는, 세종보는 정말로 필요 없는 보거든요. 거기만 보를 철거한다든가.(마이크 꺼짐)...”
세종보 철거를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해찬 대표는 집권 뒤 입장을 바꿨다. 2019년 6월 7일 이 대표는 조명래 환경부 장관을 만나 세종보 철거를 재검토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엄연히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로 남아 있는 4대강 재자연화에 역행하는 입장을 당의 대표가 전한 것이다.
정부 여당의 의지 실종과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공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금강유역물관리위원회와 영산강유역물관리위원회에서 보 처리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양 유역의 물관리위원회는 4대강조사평가단이 작성한 자료에 대한 오랜 검토를 통해 조사평가단의 제안에 거의 부합하는 수준으로 합의를 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한다. 두 유역물관리위원회가 보 처리에 대한 결의를 하면 그 결론이 국가물관리위원회로 올라가게 되는데 극단적인 경우 정반대 결정이 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총리실에서 국가물관리위원회에 또 다른 부담을 지우고 있다. 허재영 국가물관리위원장은 뉴스타파에 “총리실에서 최근 ‘마지막 결정단계에서 여론조사를 한 번 더 해봤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미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한 상황에서 다시 하라는 것은 사실상 보 처리에 대한 결정을 미루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이 있다. 청와대와 총리실, 여당까지 4대강 재자연화에 대한 의지 부족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방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경이다.
염형철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간사)은 “지금 결정하더라도 환경영향평가다, 예비타당성조사다 해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2년 내에는 재자연화를 착수하기 어려운데 정부는 결정이라도 하겠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지금 결정해도 다음 정부 들어서 실행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있다. 그런데 만약 그런 결정조차 미루면 대선 등 정치일정에 따라 4대강 재자연화는 좌초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전 4대강조사평가단 기획위원장)은 “2022년이면 다음 정부가 출범하는데, 그 때면 벌써 4대강사업이 완공된지 10년이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10년이면 이미 보가 만들어지고 나서 생태계 다 바뀌고 수질도 거기에 다 변화돼버리고 맞춤형 농사도 자리잡고, 심지어 배도 띄우고 이런 식으로 이제 생활환경, 경제 환경이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바꾸기 위해서는 또 엄청난 설득의노력과 엄청나게 많은 재원과 갈등이 생길 소지가 많을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4대강사업으로 망가지는 한국의 강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독일 칼스루에 공대, 하천학)는 뉴스타파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모든 댐(보)을 철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어떤 논리도 미친 주장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사업으로 만들어놓은 강의 모습은 ‘변종 운하'라고 규정했다. 그는 “처음부터 4대강사업으로 만든 댐(보)은 아무런 효용이 없이 피해만 발생시키는 구조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댐(보)이 있으니 쓸 방법을 찾자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발상”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