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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Take Me Home, Country Roads - ,John Denver

 

 

 

 

 

 

 

 

 

 

 

 

 

Live in Japan, 1981

 

 

 

 

Olivia Newton John

 

 

Ray Charles

 

 

Dolly Parton

 

 

Lisa ono

 

 

 

 

 

 

 

 

 

 

 

 

Almost heaven west Virginia
Blue Ridge Mountains, Shenandoah river
Life is old there, older than the trees
Younger than the mountains, growin' like a breeze


웨스트 버지니아의 푸른 산맥과
세난도 강은 천국에 가까운 곳
그곳에서 삶은 나무들보다 더욱 오래되고
산들바람처럼 자라고 산보다 더 젊음이 넘친다네

 

Country roads,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West Virginia, mountain mama
Take me home, Country roads


고향으로 향한 나의 길이여,
그곳으로 날 데려다 주오
내가 속한 곳
웨스트 버지니아, 산은 내 어머니
날 고향으로 데려다 주오

 

All my memories gather around her
Miner's lady, stranger to blue water
Dark and dusty, painted on the sky
Misty taste of moonshine, teardrop in my eyes


그녀에게 얽힌 나의 모든 추억들
푸른 물에 낯선 광부의 여인내가 속한 곳
어둠과 먼지, 그리고 채색된 하늘
달빛의 희미한 안개, 내 눈물

 

Country roads,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West Virginia, mountain mama
Take me home, Country roads


고향으로 향한 나의 길이여,
그곳으로 날 데려다 주오
내가 속한 곳
웨스트 버지니아, 산은 내 어머니
날 고향으로 데려다 주오

 

I hear her voice in the morning hours she calls me
The radio reminds me of my home far away
And driving down the road I get a feeling
That I should have been home yesterday yesterday

이른 아침, 그녀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네
라디오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고향을 노래하고
바로 어제 고향에 다녀온
길을 따라 운전을 하고 있다네

 

 

Country roads,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West Virginia, mountain mama
Take me home, Country roads


고향으로 향한 나의 길이여,
그곳으로 날 데려다 주오
내가 속한 곳
웨스트 버지니아, 산은 내 어머니
날 고향으로 데려다 주오

 

Country roads,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West Virginia, mountain mama
Take me home, Country roads


고향으로 향한 나의 길이여,
그곳으로 날 데려다 주오

내가 속한 곳
웨스트 버지니아, 산은 내 어머니
날 고향으로 데려다 주오

 

Take me home, Country roads
Take me home, Country roads


날 고향으로 데려다 주오
날 고향으로 데려다 주오

 

 

 

 

 

 

 

아름다운 세상을 찬미하고 있는 이 곡의 오리지널 곡은 Randy Sparks 가 1961년에 결성한 포크 그룹

 '뉴 크리스티 민스트렐스'(The New Christy Minstrels) 가 1964년에 발표하여 17위를 기록했던 곡이다.

그 후로 글렌 캠블과 존 덴버 등에 의해서 크게 히트하였던 곡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존 덴버의 노래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존 덴버의 본명은 존 헨리(John Henry)로, 1943년 12월 31일에 뉴 멕시코주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피터 폴 앤 매리에게 <Leaving on A Jet Plane>을 작곡해 주었고, (Rhythms And Reasons)로

 가수의 자리에 섰다. 그리고 존 덴버의 이 곡은 두 장의 앨범에 발표되었는데 제일 먼저

 (An Evening With John Denver) 앨범과 또 하나는 그의 컨츄리 클래식 앨범에 발표되었다.

 

 '32세의 그는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가수'라고 <뉴스 위크>지가 1976년 공언한 대로 존 덴버는 전성기 시절 내내

 '미국의 목소리'(The voice of America)로 통했다. 그의 청량제 같은 노래들과 수더분한 '촌놈' 외모는 곧

1970년대 중반의 '미국 그 자체'였다.그는 산을 사랑한 컨트리 보이였다.

 

공군 조종사의 아들로 존 헨리 듀센도르프가 본명인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산이 많은 도시 덴버의 이름을 따 개명했다.

존 덴버의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1974년 여름 전미 차트 정상에 오른 '애니의 노래(Annie's song)'. 이 곡은

그가 캠퍼스 커플로 1967년 결혼한 아내 앤 마텔(Ann Martell)을 위해 쓴 곡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80년대 들어서 존 덴버는 이 축복의 찬가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아내 앤 마텔과 1983년 갈라서고 말았다.그후 음주운전,두 번째 아내인 델라니와의 이혼등.환경 운동에 나서고 기아 문제와 복지부문, 그리고 반전 활동에 아낌없이 자신을 바쳤던, 모든 찬란한 순간이 빛을 잃어 가는

순간이었다.


1982년 플라시도 도밍고와 '아마도 사랑은(Perhaps love)'을 함께 부르며 건재를 과시했지만 주류에서는

이미 떨어져 있었다.매우 소박하고 순진한 가사로1970년대 컨트리 송을 전세계적인 음악 장르로 승화시킨 장본인

 John Denver.

그러나, 그는1997년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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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2월 31일 미국 뉴멕시코주 남동부에 위치한 로즈웰(Roswell)의 워커 공군 기지에 근무하던 공군 파일럿의 아들로 태어난 존 덴버(John Denver, 본명 Henry John Deutschendorf, Jr.)는 미국내 여러 지역으로 전속 다니던 아버지의 직업 탓에 어린 시절 부터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친숙하게 되었고 이는 그의 음악 여정에 그대로 반영되게 된다. 또한 존 덴버가 열두살이 되던 해에 할머니로 부터 선물받은 1910년제 깁슨 어쿠스틱 기타는 존 덴버에게 음악을 가까이 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게 된다.

존 덴버는 1961년에 텍사스 공대(Texas Tech University)의 건축 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하던 중

 음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3학년이 되던 해인 1964년에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콜로라도주의 주도인

 덴버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예명으로 삼고, 채드 미첼 트리오(Chad Mitchell Trio)와 함께 음악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채드 미첼 트리오는 순회 공연의 실패로 많은 빚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존 덴버의 합류로 그 빚을

모두 청산할 수 있게 된다.

 

이 당시 Mercury사에서 존 덴버와 트리오는 한장의 음반을 녹음하였는데, 이 음반은 1974년에 존 덴버의 이름으로

 Beginnings With the Chad Mitchell Trio 라는 타이틀을 달고 발매가 되었다.

1969년 존 덴버는 자신이 처음으로 만든 노래인 Leaving on A Jet Plane 을 Peter, Paul & Mary 에게

 취입하게 하여 히트를 기록하게 하였고, 이 곡은 같은 해에 발표된 존 덴버의 솔로 데뷔 앨범 Rhymes & Reasons 에도

 수록하게 된다.

 

1971년 존 덴버는 Poems, Prayers & Promises 음반을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의 수록 곡 가운데 싱글로 발매

Take Me Home Country Roads 는 밀리언 셀링 히트를 기록하였고, 이로인해 존 덴버는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음하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과 고향의 풍경들, 그리고 사랑을 노래하여 '콜로라도의 계관 시인' 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던 존 덴버는

 1997년 10월 12일 시험용 비행기로 캘리포니아 해안을 비행하던 중 사고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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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덴버(John Denver)는 70년대∼80년대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던 포크송 가수이다. 특히 환경문제에 대해 갖고있던

 지대한 관심을 자신의 음악활동과 접목시켜 아름답고 순수한 노랫말, 부드럽고도 감미로운 음악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단정하고도 대중적인 외모와 더불어 나이나 학벌, 배경과 상관없이 거의 전 계층에 의해 폭넓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영화배우 겸 환경운동가로서도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1943년 12월 뉴멕시코주 Roswell에서 출생한 그의 본명은 존 헨리 도이첸도프(John Henry Deutschendorf)으로

공군 장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덴버는 십대에 할머니로부터 1910년형 깁슨 어쿠스틱 기타(Gibson acousic guitar)를 받으면서 음악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텍사스 공과대학에 재학 중에 각종 로컬 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고 그가 사랑하던 록키산 지역의 지명을 따서

'Denver'를 예명으로 삼았다.

 

(그의 노래중에는 'Rocky Mountain High'란 곡도 있으며 자연을 소재로 삼은 곡들이 많다.) 1964년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LA로 이주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한 후에는 채드 미첼 트리오(Chad Mitchell Trio)와 결합하여 그룹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트리오는 존 덴버의 가입과 함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채드 미첼 트리오는 창설자인 채드 미첼의 탈퇴에 따라 덴버,

 보이스 앤 존슨(Denver, Boise and Johnson)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잠시 활동을 하지만 이도 핵심인 존 덴버가

 년 솔로 활동을 위해 떠남으로써 해체되고 말았다.

1969년 존 덴버는 자신으로 인해 세인에게 더욱 알려질 수 있었던 이 그룹에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솔로로 데뷔한다.

그의 데뷔앨범인 [Rhymes and Reason](1969)에는 피터 폴 앤 메리가 불러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수많은 가수들의 레퍼토리를 장식하게 되는 명곡 'Leaving on a Jet Plane'이 담겨있다.

 

 불행히도 데뷔 앨범은 그가 기대한 것만큼의 성과를 안겨주지는 못했지만, 그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곡 중 하나인

 "Leaving on A Jet Plane"이 수록되어 있는 귀중한 앨범이다.

 [Whose Garden Was This]와 [Take Me to Tomorrow] 등의 후속 앨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1971년 앨범 [Poems, Prayers and Promises]에 와서야 빅 히트곡 "Take Me Home, Country Roads"와 "Sunshine on My Shoulders"등으로 슈퍼 스타 자리에 오른다. 그를 더욱 확고한 싱어 송라이터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Annie's Song"과 "Back Home Again" 등의 연이은 히트곡들이었다.

 

 뒤이어 발표한 [I'd Rather Be A Cowboy](1973), [Sunshine on My Shoulder](1974)와 3백만장 이상의

놀라운 음반 판매를 기록한 [Anny's Song]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며 197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TV에도 단골로 출연했고 1977년엔 조지 번즈(George Burns)와 함께 히트 코미디 영화에도 출연했다.

'32세의 그는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가수'라고 <뉴스 위크>지가 1976년 공언한 대로 존 덴버는 전성기 시절 내내

 '미국의 목소리'(The voice of America)로 통했다. 그의 청량제 같은 노래들과 수더분한 '촌놈' 외모는 곧 1970년대

 중반의 '미국 그 자체'였다.


그 무렵 미국은 존 덴버와 같은 존재를 필요로 했다. 1974년과 1975년 미국인들은 워터게이트와 월남전 패색이라는

최대의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워싱턴 정가는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렸고 국론은 '고도의 민주주의 나라'라는 위상을 무색케 할만큼 완전 분열되었다.

 

미국인들은 허탈했고 피곤했으며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누군가가 나서서 정체성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에게 '건강한 미국'을 얘기해 주고 공허한 그들의 마음을

위무해 주어야 했다. 그가 가수라면 좋았고 나아가 '쉽고 깨끗한' 노래를 들려준다면 더 좋았다.

거기에 존 덴버는 딱 알맞은 구세주와 같은 인물이었다. 명반 [Blood on The Tracks]를 내놓은 밥 딜런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실의에 빠진 미국인들을 달래 주기란 힘들었다.

 

그는 이름만 들어도 격동의 1960년대가 떠오르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러나 존 덴버는 편했다. 그에게 근심거리란 없어 보였고, 다시 세상은 살 만한 곳인 듯 했다.

그 자신도 1970년대 중반의 상황이 자신을 수면 위로 부상 시켜준 원천임을 알았다.

 

 그는 <세븐틴>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여, 내가 세상이 왜 행복한 곳인가를 노래할 때

내게 그대의 귀를 주오”라고 말했다.
“난 미국에 대해, 가족에 대해, 삶의 축복에 대해 노래한다.

난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노래부른다.”
당시 미국인들은 그의 노래 제목만 들어도 즐거워했다.

 

"Sunshine on my shoulder", "Take me home, country roads", "My sweet lady",

"Thank god I'm a country boy" 등.. 참으로 낙천적이고 전원적이며 명랑했다. 이 곡들은 모두 싱글 차트에서

 1, 2위를 기록했다.

 

 "차라리 카우보이가 되고 싶다(I'd rather be a cowboy)"고 하고 "집에 다시 돌아온(Back home again)" 것을

 찬양하고 산과 바다, 시골이 무대인 그의 노래가 거부감을 줄 리 없었다.
그는 실제로 산을 사랑한 컨트리 보이였다. 산이 많은 도시 덴버의 이름을 따 개명했다.

 

또 유랑과 속세의 삶을 살다가 27세에 로키산에 올라가 새로운 인생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매년 시간을 내 콜로라도의 전원에 있는 아스펜 집에 묵곤 했다. 그는 '콜로라도의 정신'이었다.

 주지사 존 밴더후프는 그에게 '콜로라도의 계관 시인'이란 칭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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