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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Lucky Man - Emerson, Lake & Palmer

 

 

 

 

 

 

 

 

 

 

 

 

 

 

 

He had white horses
And ladies by the score
All dressed in satin
And waiting by the door

 

Ooooh, what a lucky man he was
Ooooh, what a lucky man he was

 

White lace and feathers
They made up his bed
A gold covered mattress
On which he was laid

Ooooh, what a lucky man he was
Ooooh, what a lucky man he was

He went to fight wars
For his country and his king
Of his honor and his glory
The people would sing

Ooooh, what a lucky man he was
Ooooh, what a lucky man he was

A bullet had found him
His blood ran as he cried
No money could save him
So he laid down and he died

Ooooh, what a lucky man he was
Ooooh, what a lucky man he was

 

 

 

 

 

 

 

 

70년대 그룹 예스(Yes)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와 견줄만한 또 하나의 수퍼그룹인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Emerson, Lake & Palmer, 이하 ELP)는 클래식과 록음악을 접목시켜 수천만 명의 팝 팬들을 록음악 마니아로

전향시키는데 공헌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이다.

 

 당대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이었던 나이스와 킹 크림슨(King Crimson)에서 각각 활동했던 케이스 에머슨

(Keith Emerson, 키보드)과 그레그 레이크(Greg Lake, 보컬·베이스)는 오디션을 통해 아토믹 루스터

(Atomic Rooster)에서 활동했던 칼 파머(Carl Palmer)를 영입해 70년 그룹 ELP를 결성한다.

 

플리마우스(Plymouth)에서 열린 쇼를 데뷔 무대로 갖고 곧이어 발표한 셀프 타이틀의 첫 앨범으로 UK 차트 5위,

 US 차트 20위를 기록하며 록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이들은 마이너 발라드 곡 'Lucky Man'의 히트에 힘입어

순회공연을 펼치면서 광기 어린 스테이지 연기로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얻게 된다.

 

 또한 이들은 71년 케이스 에머슨의 무그 신디사이저(Moog synthesizer) 구사와 칼 파머의 독특한 드럼 패턴으로

폭발적인 사운드가 돋보인 [Tarkus], 뉴캐슬에서의 실황 공연을 담은 ELP의 첫 라이브 앨범이자 무소르그스키

(Mussorgsky)의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을 록음악으로 편곡한 [Pictures at an

 Exhibition](71)을 발표하면서 클래식 록의 선봉자로서 입지를 굳힌다.

72년 [Trilogy]를 발표, 아론 코플랜드(Aaron Copland)의 곡이었던 'Hoedown'을 히트시킨 ELP는

 알베르토 지나스테라(Alberto Ginastera)의 피아노 협주곡 1번(Piano Concerto No.1)을 록음악에 융합시켜

 'Tocatta'를 만들었고 이 곡이 수록된 [Brain Salad Surgery](73)라는 앨범을 자신들의 레이블인 맨티코어

(Manticore)에서 발매했다.

 

74년 [Welcome Back My Friends to the Show That Never Ends]라는 트리플 라이브 앨범을 선보인 ELP는

한동안 각자 솔로 앨범 작업을 하고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을 프로듀스 하는 등 휴식기를 가진 뒤 77년 [Works]라는

더블 앨범을 발표했다.

 

멤버들 각자가 한 면씩 솔로로 취입하고 나머지 한 면만 공동작업을 한 이 앨범은 프로그레시브 록 마니아들에게는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그레그 레이크의 명곡인 'C'est La Vie'로 다수의 팝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70년대 후반 팝 음악계가 펑크 록과 디스코, 뉴웨이브 그룹에 의해 점유되면서 이들이 추구하는 지적인 록음악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엷어졌다. 결국 78년 혹평을 받은 [Love Beach]를 끝으로 ELP는 79년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한다.

 

이후 영화음악을 작곡하면서 간간이 솔로 프로젝트 앨범을 녹음하던 케이스 에머슨과 역시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영위하던 그레그 레이크는 85년 앨범 작업을 위해 다시 모였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팝 수퍼 그룹

 아시아(Asia)의 멤버로 활동하던 칼 파머를 끌어들이는데는 실패했다.

대신 코지 파웰(Cozy Powell)을 영입하여 에머슨, 레이크 앤 파웰이라는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91년 칼 파머가 합류하여 다시 ELP라는 이름으로 [Black Moon](92)을 발표하며 성공적인 순회공연을 마친 이들은

 93년 [Live At Royal Albert Hall]이라는 또 하나의 라이브 실황앨범을 발매한다.

 

이후 [In the Hot Seat](94)를 발표했으나 이전의 화려했던 음악 스타일에 비해 많이 퇴색된 앨범으로 팬들의

시큰둥한 반응 속에 사실상 ELP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한때 헤비메틀 밴드의 역작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것에 비해 현재는 이들에게서 거창한 수작이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열적인 라이브 무대로 그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이들은 클래식 록음악의 대중성을 입증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jangnams7080/150023783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