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9월부터 쏟아낸 경제 정책에 부정적인 여론이 예상되는 민감한 사안들은 빼고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것
위주로 담아 벌써부터 내년에 있을 총선 모드로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에는 꼭 필요한 해결책은 뺀 채,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부가 지난 9월부터 이달 17일까지 발표한 경제 정책 가운데 굵직한 것은 ▲기획재정부 주재 범정부부처 태스크포스
(TF)의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향’ 4대 정책(9월18일~ 11월 13일) ▲국토교통부의 ‘광역교통 2030’ 비전(10월 31일)
▲국토부의 분양가 상한제(11월 6일) 등이었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인 고령화와 인구감소, 일부 지역의 과도한
집값 상승으로 인한 거주 불안 등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내용을 다루는 정책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발표한 정책에 ‘한국 경제 구조 개혁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지지율 하락을 불러올 법한 부분’은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의 경우 시장의 움직임과 괴리돼 있어, 의도대로 효과를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서 "최근 발표된 정책을 보면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방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국가에서 무언가를 주는, 즉 대중적인 인기와 관련돼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근 부동산. / 연합뉴스
◇분양가 상한제에 민주당 지역구는 열외, 조정 지역은 해제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군 것은 국토부가 이달 6일 발표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과 조정대상지역 해제 지역이다.
국토부는 최근 집값 추이와 규정에 따라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 지역을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총선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지역이 강남구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한 서울 강남구 내 동(洞)은 8개로, 전체 14개 동 중 절반 이상이다.
강남구 14개 동 중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6개 동은 신사·논현·자곡·세곡·율현·수서다.
6개 동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현희 의원의 지역구인 ‘강남 을’(개포·일원·자곡·세곡·율현·수서)에 포진해
있다.
나머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 동인 개포·대치·도곡·삼성·압구정·역삼·일원·청담동은 이종구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인 강남 갑(신사·압구정·청담·논현·역삼)과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인 강남 병(삼성·대치·도곡)에 대부분 포함된다.
같은 날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지역구 경기 고양시(일산서구·고양 정)와 ‘총선 격전지’로 꼽히는 부산 동래·수영·해운대구 등 3개구가 청약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것도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조정대상지역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이 제한되고, 청약과열지구와 똑같은 청약 규제를 받는다. 이 같은 제한이 풀리면 해당 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지역 민심이 민감하게 움직인다.
국토교통부의 ‘광역교통 2030’ 비전도 ‘총선을 앞둔 선심성 대책’ 논란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2030년까지 수도권 서부
지역에 광역급행철도(GTX)를 신설하는 등 수도권 광역거점 간 통행 시간을 30분대로 줄인다는 내용이다. 주요 내용은 ‘GTX D’노선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GTX A 노선은 현재 막 짓기 시작했고, B·C노선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했는데 새 노선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나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진행을 검토한다’ ‘추진한다’는 확답하기 어려운 대책을 줄줄이 내놓았다.
◇인구 대책, 곪은 부분 도려내는 정책은 빠져
정부는 지난 4월 범정부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낮은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대책을 올해 9~11월 순차적으로 발표했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무척 빠른데다,
지금까지 내놓은 출산율 제고 정책들이 하나같이 효과를 내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합계 출산율이 1미만(0.98·2017년 기준)인 국가로, OECD 회원국 평균치인
1.65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대책은 국가 재정을 투입해 고령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주를 이룬다.
주택연금 수급 대상 확대, 노동자를 60세 정년 이후에도 일정 기간 고용하면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계속고용제도’ 등이 포함됐다.
고령화로 부담이 점점 커지는 국민연금 개혁, 노인 연령 상향 등 반발이 예상되는 내용은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향의 주요 내용/기획재정부
정부가 국민연금 재정 개혁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집권 초기였던 2017년 12월에는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민·관 합동기구인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도 설치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뾰족한 묘안 없이 공을 사회적 합의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이어 국회로 돌렸다. 하지만
정치권도 4월 총선을 앞두고 인기 없는 사안인 ‘국민연금 개혁’에는 손대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이다.
만 65세로 돼 있는 ‘노인’ 연령을 상향하는 것도 ‘인기는 없지만 꼭 논의해야 할’ 정책이다.
노인복지법상 노인은 기준은 기대 수명이 66.1세였던 1981년에 정한 기준이다.
평균 기대수명이 80세 이상인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만 65세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인 연령을 올리면 연금 수령과 복지혜택 수혜 시점이 늦어진다.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수가 많은 연령대인 베이비붐 세대를 자극하지 않고자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불황에 정부 지출을 늘려 수요를 진작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금 지급성 복지보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선 굵은 대안들이 필요하다"이라면서 "하지만 최근 발표된 정책들은 대부분 ‘돈을 쓰는 것’에 대한 논의만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국책은행, 국회 예산정책처 등 주요 경제·금융기관들이 잇달아 디플레이션을 경고하고 나섰다. 올해 1%대 저성장과 저금리 속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로 추락하는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에 머물면서, 상품·서비스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농축수산물·석유류·공업제품 등 가격 급락과 온라인쇼핑 등 가격경쟁 확대가 물가 하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울러 문재인케어, 고등학교 무상교육 등 정부 복지정책도 중장기적으로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12일 한국은행, KDB미래전략연구소,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최근 농축수산물·석유류·공업제품 가격 급락으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6~0.7%로 전망되는 등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산물 가격 기저효과와 유가안정에 따른 석유류 가격 하락, 올해 2학기(고3부터 시작) 고교 무상교육을 비롯, 의료비·통신비 인하 등 복지정책 확대로 소비자물가는 9월(-0.4%)~10월(0.0%) 마이너스를 기록한 바 있다.
한은 관계자는 "무상교육 및 의료·통신비 인하 등 가계생계비 경감 복지정책은 물가 하방압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복지정책 강화 등 구조적·제도적 요인이 확대되면서 최근의 약한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안정으로 에너지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면서 전반적인 OECD 국가들의 물가상승률이 둔화됐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KDB미래전략연구소도 "경기둔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물가가 낮은 수준을 보임에 따라 향후 디플레이션 발생
으로 인한 저성장·저물가 지속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단기 디플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복지정책, 온라인
쇼핑 가격경쟁 등으로 중장기 디플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8월 0.5% 상승에 그쳤다.
이는 OECD 국가 중 포르투갈(0.4%)과 그리스(0.4%)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저물가 현상 지속으로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인 '기대인플레이션'은 한국은행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인 1.8%(9월 기준)를 기록했다.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물가하락 예상시 가계는 소비를 미래로 이연시키고, 기업은 투자 및 생산을 축소시켜 기업 고용감소, 근로자 임금하락으로 물가하락과 소비·투자부진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고령화에 따른 노령층 빈곤율이 44%에 달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고, 부동산가격 상승에 따른 주택구매 부담, 소비여력 감소 등도 물가에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소지가 높다는 설명이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따라가나
금융·경제 전문가가 분석한 일본 장기침체 원인과 한국과의 유사성·차이점은?
주진형 "대기업 독과점이 효율성 저해하는 구조 유사…
저출산 등 인구구조 문제는 더 심각" 최배근 "주요 산업인 제조업 둔화에 따른 신성장 동력 부재 닮아…
북한이 돌파구 될 수 있어"
저성장·저물가 추세가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꺾인 경기를 부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본시장 버블이 터지면서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이 지속한 기간을 일컬어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일본 경제가 반등에 실패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바뀌어 부르게 됐다.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 원인이 무엇이며, 한국 경제도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인가.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른지금융·
경제 전문가에게 들어봤다.
▲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뉴시스]
수출→내수 중심 경제로의 구조개혁 실패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일본 장기 불황의 원인을 구조적 측면과 거시적 측면으로 나누어 진단했다.
구조적인 측면을 보면, 일본 경제가 수출 의존적인 체제에서 내수 위주 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구조개혁을 통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지 못해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주 전 대표는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에 대해 "전 세계적인 경제 호황으로 세계 무역이 팽창하던 환경에서 대기업의 해외 수출을 통한 성장을 이루던 일본 경제가 내부 혁신이나 서비스 부문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제 전체의 균형 발전으로
가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수출에 의존하던 일본 경제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 가치가 순식간에 두 배 가까이 급등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이 충격을 보완하기 위해 일본은 수출주도적인 경제에서 수출과 내수가 균형된 경제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관(官)이 주도한 경제이기 때문에 대기업과 관 사이의 유착관계로 인한 경직성을 지니고 있어
구조조정 및 개혁이 쉽지 않았다고 주 전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수출만 믿고 몰아가던, 지나치게 불균형한 경제가 꺾였을 때 새로운 경기 운용방식을 만들어가지
못했다"면서 "대기업과 관의 담합에 의해서 독과점 체제가 유지됨에 따라 신생기업이 새롭게 생겨나지 못했고, 혁신을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 대신 기존 대기업의 경영개선 혁신에만 매달린 것이 일본경제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문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경제를 장기침체 수렁으로 끌어들인 자본시장 버블을 야기했다는얘기다.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은행의 부실 대출로 인한 금융 경색이 침체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주 전 대표는 "수출이 막히니까 내수를 진작시키려고 내수 산업 대출을 급격하게 증대시키는 과정에서 은행이 적절한 신용 분석에 의해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담보를 맡고 대출했다"면서 "이에 따라 금융 버블이 형성됐고 이후 부동산 버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시장경제에 기반한 구조개혁 또는 시장 기능에 의한 구조개혁을 성공적으로 못 한 상황에서 버블이
깨지게 된다"면서 "이 상황에서 지속해서 재정 확대에만 의존하면서 2000년대 초반이 될 때까지 부실 은행을 처리하지 못했고, 은행은 부실 채권 탓에 대출을 늘리기 어려워지면서 신용경색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
처럼 구조개혁 타이밍을 놓친 상태에서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가 진행되면서 인구변화에 따른 풀링다운
효과가 가시화됐고, 투자침체와 이에 따른 경제성장 침체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제조업 둔화 보완할 신산업 육성 실패 탓"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 장기침체의 주요 원인으로 70년대의 제조업과 금융 충격을 꼽았다. 최 교수는 "일본의 성장률 추세를 보면 60년대까지는 10%대 성장을 지속하다가 70년대 들어오면서 성장률이 갑자기
절반 미만으로 떨어진다"면서 "성장률이 단계적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잘못된 정책적 대응이 거품을 만들었고, 자산시장 붕괴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70년대에 성장률이 급감한 이유 중 하나로 제조업 성장 둔화를 지적했다. 그는 "제조업 의존이 높은 산업 구조에서 제조업이 둔화하면서 일자리 창출 역할이 줄어든다"며 "제조업의 역할이 줄어들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산업재편이 필요한데 일본은 제조업 육성 방식으로 접근한 결과 신사업 육성에 처참하게 실패한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금융 충격을 꼽았다. 일본은 자본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정부가 은행을 통제한 상태에서 70년대부터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면서 도입된 변동환율제로 엔화 가치가 급등하게 된다.
최 교수는 "이 같은 국면에서 일본 정부가 구조조정보다는 재정을 투자해서 경기 부양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것을 방치하고 경기 회복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푸는 금융완화 정책을 폈다는 설명이다.
그는 "돈이 제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 육성에 투입된 것이 아니라 금융 시장 자산 시장으로 가면서 거품이 만들어졌고, 성장률이 둔화하는데 거품이 지속할 수 없어서 꺼지게 됨에 따라 90년대부터 사실상 경제성장이 멈췄다"고 부연했다. 구조개혁 타이밍 놓친 한국…제조업 위축 현상도 닮아
주진형 전 대표는 "한국과 일본은 대기업이 모노폴리(생산자 독점·Monopoly)와 플러스 모놉소니(수요자 독점
·Monopsony) 형태를 띠면서, 이중구조의 경제인 점에서 유사하다"며 "양국은 대기업의 독과점에 따른 피해가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독과점과 효율적인 지배구조의 결핍이라는 측면에서 일본과 똑같은 숙제를 지닌 것"이라면서 "1인 총수가 돈을
빼먹어서 미운 게 아니라 효과적인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을 이루지 못함에 따라 생산성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독과점 때문에 신생기업에 의한 혁신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자꾸만 기존 업체가 하는 것에만 끌려가는 것 역시 경제 활력을 죽이는 것으로, 우리 경제가 직면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국은 대기업의 착취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주요 과제인데, 주 전 대표는 "이미 구조개혁의 타이밍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최배근 교수는 우리 경제하고 비교할 때 1992년부터 제조업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현상이 유사하다고 봤다. 실제로 지난달 제조업 취업자는 전년 대비 8만1000명 줄어들면서 19개월째 제조업 취업자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는 일본하고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비슷하다"면서 "그 결과 비슷한 패턴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산업 재편에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현 정부에서는 임기 초기만 해도 제조업을 경기 순환적 침체로 받아들이다가 지난해부터 구조적 위기로
인식하면서 4차 산업 혁명 플랫폼 경제 육성에 힘을 쏟고 있으나 아직 이해가 부족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조업 위기를 모면하지 못할 경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의 산업적 측면의 유사성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인구 구조 등은 더 심각…분단 상황서 돌파구 찾을까
한국은 인구구조 측면에서는 일본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주 전 대표는 "일본은 버블이 깨지면서 부동산 시장의 값이 많이 내려온 데 비해 한국은 정부가 부동산 버블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면서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며 "일본이 출산률이 1.4%인데 비해 한국은0.9%로, 1%이하로 내려
가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노령연금제도가 미비함에 따라 소비가 위축되는 측면도 위험 요소라고 설명했다.
주 전 대표는 "한국 역시 일본보다 훨씬 더 노령연금제도가 취약하다"면서 "국민연금 제도를 뒤늦게 시작했지만, 퇴직 후 죽을 때까지 꾸준히 돈이 나오는 연금제도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베이비붐 세대가 저축을 늘리면서 전체적으로 소비가 부진해진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의 분단 상황이 긍정적인 요인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배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 등이 일본과 유사하지만, 북한이라는 출구가 있다"면서 "일본 경제는 지금도 더 나빠지고 있지만, 우리는 평화체제를 통한 북한경제 재건 특수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플라자 합의 1985년 9월 22일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G5)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외환시장에 개입해 미 달러를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에 대해 절하시키기로 합의한 것을 말한다.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미 달러화가 강세를 지속하면서 화폐가치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한 것이다.
합의 이후 2년간 엔화와 마르크화는 달러화에 대해 각각 65.7%와 57% 절상됐다. *브레튼우즈 체제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튼우즈에서 44개 연합국 대표들은 전후의 국제통화질서를 규정하는 협정을 체결
했고, 이에 따라 발족한 체제를 브레트우즈 체제라고 한다. 이 협정을 통해 미 달러화를 축으로 한 '조정 가능한 고정
환율제도'가 도입됐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구가 설립됐다.
이후 1971년 주요 선진국 통 화제도가 변동환율제도로 바뀌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무너지게 된다.
지난달 발표된 한국의 3·4분기 경제성장률은 시장의 예상보다 낮은 0.4%에 불과했고, 수출은 11개월 연속 하락했으며, 비정규직 숫자는 역대 최고로 급증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9월에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야기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런 상황의 원인을 미·중 통상갈등, 일본의 수출규제, 브렉시트와 같은 2019년 대외경제의 불확실성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2019년 세계 경제는 대체로 양호한 여건을 유지하고 있다.
미·중 통상갈등으로 중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저성장하고 있지만 미국, EU 등은 적절한 통화정책으로 나름대로 선방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이 올해 아일랜드, 터키에 이어 OECD 국가 중에 세번째로 큰 폭의 잠재성장률 하락을 경험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2020년에는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반적인 세계 경제성장률의 하락이 예상돼 그나마 양호했던 대외요인마저도 한국 경제를 힘들게 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2020년에 도래할 이런 총체적인 난국을 어느 정도라도 헤쳐나갈 방법은 없을까?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일순간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더라도 단기적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고 바람직한 방향을 잡을 수만 있다면 다가오는 2020년의 한국 경제가 예상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을 2013년 9월 인도가 경제위기 국면을 벗어난 일에서 찾을 수 있다.
2010년대에 신흥경제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던 인도는 2013년 9월 외환위기에 직면했었다.
2010년 이후 3년 만에 경제성장률이 반토막 되었고, 물가는 급등했으며, 급격한 자본유출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도 악화하면서 인도 루피화의 가치는 사상 최저로 급락했다.
그때 파격적으로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라구람 라잔이 인도 중앙은행 총재로 취임했다. 라잔 총재는 취임과 동시에 기준금리를 인상시켜서 외국인 투자를 유인하면서 루피화의 가치를 안정시키고 인도 주가도 끌어올렸다.
또한 10%에 가까웠던 인플레이션율을 3년 만에 5% 이하로 낮추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을 정도로 거시경제 흐름에 대한 혜안을 가진 라잔 총재의 정책적 결단에 대해 인도와 세계 시장이 깊이 신뢰를 했기에 가능했다.
2013년 인도의 외환위기 상황을 지금 한국과 동일하게 볼 필요는 없다. 하
지만 소비와 투자가 경제위기 수준이라는현재 한국의 상황이 더 낫다고 자부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런 엄중한 시기에 아무리 둘러보아도 현재 한국 정부에는 라잔 총재 근처에 갈만한 사람도 없다.
정말 제대로 된 거시경제학자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제정책을 조언했더라면 소득주도성장이 족보가 있다는 것과 같은 낯 뜨거운 얘기도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낡은 진영 논리에 빠져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맹목적 비판하거나 혹은 영혼 없이 옹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2020년을 한국 경제를 악화일로에 두고 싶지 않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정확히 진단하고 바른 해법을 용감하게 제시할 실력 있는 거시경제학자들을 하루바삐 국제기구에서나 국내에서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은 실력 있는 거시경제학자의 발탁과 경제정책 관여에 반드시 화답할 것이다.
모쪼록 그들의 능력을 빌려 2020년 한국 경제가 새롭게 전환되는 시기를 맞이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