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0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민주당에서 2주마다 실시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고됐다고 한다. 통상적인 여론을 살펴보는 이 조사에는 현안을 묻는 내용이 추가적으로 포함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여론조사에는 행정수도 이전이란 내용이 새롭게 들어가 있었다.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고 한다.
민주당의 A관계자는 “이해찬 대표가 이 결과를 보고 행정수도 이전은 오래전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했는데, 이런 내용을 앞으로 여론조사에 넣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날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한 김태년 원내대표는 당시 이와 관련해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당은 실익도 없는 싸움에 휘말려”
최고위원 회의가 끝나고 열린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김태년 원내대표는 행정수도 이전을 제안했다. 중앙일보는 이틀 뒤 기사에서 김 원내대표가 사전 여론조사로 찬성 여론을 확인한 후 연설문에 담았다고 보도했다. A 관계자는 “김태년 원내대표가 그날 ‘비장의 한수’를 갖고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 최고위원 회의에서 침묵했다가 곧바로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꺼낸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김태년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제안은 민주당에 일단은 ‘신의 한수’가 됐다. 곧바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행정수도 이전은 부동산 파동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김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행정수도 완성은 국토균형발전과 지역의 혁신성장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면서 “이렇게 해야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의 충청지역 일부 의원들이 이전 찬성에 손을 들었다. 정진석 의원이 대표적이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찬반 의견이 뒤섞이면서, 통합당은 이 사안에 관한 의견 표명을 자제해달라고 의원들에게 요청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민주당으로서는 이슈 바꿔치기 측면에서 성공했다”면서 “민주당이 수도권 과밀해소와 부동산 가격 안정 등의 명분을 확보한 반면, 통합당은 명분도 잃고 실익도 없는 싸움에 휘말린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 제안으로 부동산 가격 급등을 비판하던 여론은 주춤해졌다. 민주당 내부 여론조사뿐만 아니라 일반 여론조사에서도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찬성이 많았다. SBS가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에 의뢰해 7월 24∼25일 조사한 여론조사(유무선 전화면접조사)를 보면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한 응답자는 48.6%였다. 반대는 40.2%였다.
‘모름/무응답’은 11.2%였다.(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 여론조사 심의위의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에서 충청권과 호남권에서는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산·경남(PK)에서도 찬성 여론이 많았다. 수도권에서는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반대 여론이 많았다.
연령별로 보면 30∼50대에서 찬성이 많았다. 여성보다 남성에서 찬성 의견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엄경영 소장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할 당시와 비교해보면 찬성이 더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그때와 비교하면) 수도권 과밀 문제가 심각해졌고, 수도를 이전하더라도 수도권의 경제에 악영향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행정수도 이전이 현 국면을 피해가기 위해 꺼낸 카드가 아니라 오랫동안 고려해왔던 카드였음을 부각시켰다. 민주당의 원내 B관계자는 “김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제안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한 것이 아니다”며 “평소의 신념이었던 것을 이 시점에서 화두로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충청권의 C의원은 “총선이 끝나고 난 뒤 의원들 사이에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7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 완성추진단 1차 회의에서 김두관 의원으로부터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는 악재될 수도
김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제안이 절대적으로 여당에만 유리한 ‘신의 한수’가 아닐 수도 있다.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여당에 악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은 7월 27일 “민주당이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공약으로 내걸고 서울 시민의 의사를 확인해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지금은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 카드로 유리한 국면을 가져왔지만, 내년 4월 보궐선거에는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이런 점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공약화를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놓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유·불리 전망은 엇갈린다.
통합당의 D관계자는 “서울시 안에서도 주택 보유자와 미보유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내년 초가 돼야 여론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보유자는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엄경영 소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에는 악재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이슈들이 많아서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홍형식 소장은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의 제안(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화)을 민주당이 받아들인다면, 주택 보유자든 미보유자든 서울의 민심은 민주당에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치권 관계자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행정수도 이전이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에 유리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의 E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김태년 원내대표가 치고 나가고, 이해찬 대표가 당위성을 언급하면서 개헌 사항이라고 한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김태년 원내지도부는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 여야 합의를 통한 특별법 제정을 대안으로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표가 2022년 대선까지 내다보는 장기적인 선거 전략을 갖고 있는데 반해, 김 원내대표는 당면한 현실의 전략에 치중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행정수도 이전 제안은 결국 지금 국면에서는 민주당에 유리하나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불리한 이슈이고, 202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에 유리한 이슈”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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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이전 논의 (PG)
[김민아 제작] 일러스트
'행정수도 이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
우원식 의원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의 꿈이자 박정희의 꿈" 朴, 1977년 '행정수도건설 백지계획' 추진…법안 만들고 각종 연구 전문가 150명 투입 총력검토…現세종시 지역 포함된 최종후보지까지 선정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된 행정수도 이전을 완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여당 일각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도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았다.
27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행정수도완성추진단 1차 회의에서 추진단장을 맡은 우원식 의원은 "국토균형발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이자 1977년 서울시 연두순시에서 행정수도이전을 천명하고 같은 해 7월 임시행정수도건설 특별조치법을 통과시킨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 완성을 두고 미래통합당발로 반대 목소리가 나오자 보수층으로부터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돌파에 나선 모양새였다. 이 문제를 이념적 대립 또는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
소위 '강남 개발'에 앞장섰던 박 전 대통령이 사실은 노 전 대통령보다 앞서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다는 주장에 대해 온라인상에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박 전 대통령도 서울 집중보다는 대구·경남 산업단지 개발 등 각 지역의 발전을 꾀했다. 행정수도 이전은 국가 발전에 득이 되는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반면 "부동산 문제로 괜히 여론이 안 좋으니 박 전 대통령이 지나가듯 했던 말을 죽자고 물고 늘어지고 있다"는 상반된 반응도 나온다.
행정수도 완성추진단 회의서 발언하는 김태년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 완성추진단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7.27 hwayoung7@yna.co.kr
◇ 행정수도 건설 법안 국회 통과까지 시켰지만…10.26으로 좌절
우 의원의 발언처럼 박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꿈'이라고 칭할 만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을까? 박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구상은 1977년 2월 10일 서울시 연두순시 과정에서 처음 공개됐다.
시정보고가 끝난 뒤 박 전 대통령은 지시사항을 전달하면서 서울 인구 억제와 도로 확충을 위해 '통일될 때까지의 임시 행정수도'를 서울이 아닌 곳에 새로 건설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냉전시기 남북대치 상황에서의 안보상 이유도 고려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그해 3월 16일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한 뒤 2년 동안 청와대가 직접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복안을 밝혔다. 곧바로 청와대 직속 기관인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산하에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실무기획단'을 구성했고, 1977년 6월 8일엔 실무기획단이 보고한 '행정수도 건설 종합보고서'를 토대로 행정수도 연구사업계획을 전격 재가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단순히 정책 검토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하는 등 행정수도 이전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같은 해 6월 27일 행정수도 이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임시행정수도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안'을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발의했다. 법안은 국회 발의 9일 만인 7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85명 중 135명 찬성으로 가결됐다. 신민당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정부가 법안 통과에 강력한 의지를 내보이면서 전광석화처럼 입법이 이뤄졌다.
하지만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 사망으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이듬해 8월 실무기획단이 폐지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구상은 좌절됐다.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 선정 2차 조사' 문건 중 행정수도 후보지
[자료=세종시 홈페이지]
◇ 2년간 전문가 150명 투입해 연구…정권 차원서 총력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구상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을까? 당시 실무기획단이 내놓은 연구 보고서 등을 살펴보면 박 전 대통령의 구상은 상당히 구체적인 수준까지 연구가 진척된 것으로 평가된다.
2년 동안 150여명의 국내·외 전문가가 투입돼 마련된 행정수도 건설 계획에는 당시엔 생소한 개념이었던 '도시기본구조 계획'은 물론 '중심지구 공간계획'과 '주택모형 계획', '도시유통 계획', '지역냉난방 계획', '주거지 배치 계획', '도시조경 식재 계획' 등 다양한 연구결과가 포함됐다.
격자형 도로망을 이용해 도시의 주요 영역을 행정지구와 상업지구, 주택지구 등으로 구분하는 공간계획과 생필품을 비롯한 주요물자 공급체제를 최적화하는 도시유통 계획 등은 지금도 눈여겨볼 만한 신도시 건설계획이란 평가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재원조달방안'과 '민간기업 참여방안' 등 재정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연구결과와 '행정수도 광역권 개발'과 '2000년대 국토구상' 등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후속대책까지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정권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인 사업이었던 셈이다.
◇ 행정수도 최종후보지에 현 세종시도 포함
박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구상은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책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행정수도 정책의 구체적인 모습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방안과 마찬가지로 청와대와 행정 각부, 입법부인 국회, 대법원 등 사법부까지 주요 헌법기관을 다 이전하는 방향일 것으로 관측된다.
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행정수도 이전도 대통령관저와 중앙청, 국회, 대법원 등 주요 국가기관은 물론 서울 소재 주요 대학도 함께 이전하도록 해 사실상 서울의 주요 기능을 대부분 옮기는 방안이었다.
당시 행정수도 최종후보지로 선정된 부지가 현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 지역을 포함한 일대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당시 실무기획단은 2차례에 걸쳐 행정수도 후보지 10곳을 검토해 당시 공주군 장기면 일대인 '장기 지구'를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 현 세종시 도심지인 연기면과 바로 서쪽에 위치한 장군면 일대를 모두 포함한 곳이다.
당시 실무기획단에 참여했던 박병호 충북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는 2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이 구상했던 행정수도는 중앙청과 국회, 대법원 등 국가의 주요기능을 모두 이전하는, 정권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인 도시계획 사업"이었다며 "지금의 세종시도 당시 최종 후보지로 선정된 공주군 장기면 일대의 동쪽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hyun@yna.co.kr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31일 오전 세종시 밀마루 전망대에서 이춘희 세종시장과 함께 정부세종청사 및 국회 이전 유보지, 생활권 등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행정수도 이전] 방향성엔 공감하지만 타이밍은 글쎄…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천도론’…추진 속도 놓고 당·청 미묘한 온도차
“정쟁화될 일이 아닌데 이게….”
정권마다 뜨고 가라앉길 반복해 온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 아직은 명확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 탓에, 여당이 섣불리 군불을 때 혼란만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은 연내 로드맵을 구체화해 속전속결로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들이 운을 떼기 무섭게 야당에선 자체 ‘함구령’까지 내리는 등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야 일각에선 백년대계가 과거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정쟁의 도구로만 소모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필요성에 대한 여야 대립각은 본래 그리 크지 않았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선 여야 후보 불문하고 이 문제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앞다퉈 발표했다. 오히려 당시엔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의 스탠스가 다른 대선후보에 비해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금의 야당에서도 충청권 지역구 의원뿐만 아니라 다수가 행정수도 이전에 공감대를 나타낸 바 있다.
다만 야당에선 정부·여당이 이슈를 띄운 현시점과 명분이 명백히 틀렸다는 입장이다. 여당이 호언장담 중인 연내 ‘여야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불과 나흘 전 대통령 국회 연설 때도 한마디 없지 않았나.” 야당은 7월20일 김태년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회·청와대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고 발언하기 4일 전인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개원 연설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여당에서 오랜 고민과 준비 없이 국면전환을 위해 서둘러 던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부동산 대란과 소속 지방자치단체장 문제 등 악재들을 쓸어낼 청소기 역할이 필요했을 거란 얘기다.
나흘 전 대통령 국회 연설 때 한마디도 없었잖나”
이명수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런 중요한 사안이 대통령 연설에 없고 원내대표 연설에 있는 게 말이 되나. 안에서 오래 준비했으면, 대통령이 먼저 운을 띄워 국회 협조를 구한 후 원내대표가 이를 받아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모양새를 연출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김 원내대표의 연설 직전 이 사안과 관련해 비공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등의
준비는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행정수도 이전에 긍정적인 조사 결과를 청와대에 알리고 이를 연설에서 공론화하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그 전부터 이를 전면에 띄울 준비를 치밀하게 해 왔던 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방분권에 대한 정책을 추진하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도 김 원내대표의 언급 전 정부·여당과 사전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사열 위원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꾸준히 논의해 온 사안 중 하나이긴 하지만 최근에 유독 특별하게 다루거나 강조하진 않았다”며 “원내대표 연설이나 민주당 TF 구성 등은 우리하고 사전 논의를 했던 게 아니었다. 행정수도에 관한 부분은 정치하시는 분들이 주도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 위원장은 “지금 행정수도 이전 추진을 정치공학적이라는 시선도 있고, 언론과 국민이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잖나. 오히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버리니까 우리가 적극적으로 행정수도 이전 이슈를 꺼내기가 조심스럽고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자칫 개헌 전반에 대한 논의로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청와대에선 별로 띄우려 하지 않았을 거란 추측도 나온다. 대통령 임기 후반인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헌 이슈와 같은 장기적인 정치 공방으로 시간을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2004년 이미 한 차례 위헌 결정이 난 사안에 청와대가 적극 나서는 것도 부담으로 느낄 수 있다. 청와대가 “행정수도 이전은 국회 논의가 우선돼야 하며 여론도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도 이 때문으로 읽힌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임기 말 청와대가 중점을 둬온 선호도 또는 우선순위와는 다소 달랐을 것”이라며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띄우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조율이 잘 안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고, 여당이 이 사안을 띄우는 데 더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우원식 민주당 행정수도완성추진단장 역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로선 아무래도 걱정이 있을 순 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확실히 당이 주도해 끌고 가는 사안은 맞다”고 말했다. 연내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가시화된 성과를 내겠다는 여당의 의지는 상당하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대선 전까지 끌고 가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며, 우원식 단장 역시 “여야 합의만 이뤄지면 과거와 달리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이 ‘여야 합의’ 부분이다.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 이전에 대한 심적 동의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야당이 이를 쉽게 합의해 줄 리 만무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준한 교수는 “야당 의원 일부가 이탈해 수도 이전에 동의하긴 할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도 그랬다”며 “그런데 이 정도로 얼마나 동력을 얻어 최종 합의에 이를지 미지수다. 특히 지금처럼 여당이 의정을 주도하는 데 대한 야당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는 분위기에선 더 합의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한 정쟁 속에서 세종의사당 설치 등 그나마 추진 중이던 사안마저 멈춰버릴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 세종의사당 추진 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이상민 의원은 “세종의사당 설치는 진작 컨센서스(의견 일치)가 이뤄진 사안이고 예산도 편성돼 있어 당장 기초 설계에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며 “수도 이전이 정쟁으로 커져 세종의사당 추진까지 휩쓸려버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안 될 경우 국회 세종분원부터 실현할 가능성도
여당에서도 여러 트랙을 가동하며 다각도로 추진할 계획이다 . 제정되더라도 또다시 헌법소원 과정이 필요한 특별법이나, 200석 확보가 필요한 개헌 등의 어려움을 고려해 지자체와의 협의만 잘되면 당장 가능한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함께 추진 중이다.
여당은 100여 개에 이르는 기관 이전만으로도 어느 정도 수도권 인구 밀집을 완화할 수 있을 거라고 관측한다. 우원식 단장은 “연내 목표인 방법론 결정이 안 될 경우 국회 세종분원부터 실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이 과연 지금의 수도권 과밀화 현상을 궁극적으로 완화할 수 있느냐는 고민부터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에서도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치밀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수도 이전만 논의해선 안 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정해구 전 대통령 직속 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사람들이 지방으로 내려갈 구체적인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얘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재명 경기지사 역시 “부동산 정책 수단의 일환으로 수도 이전을 추진하면 시장을 더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향후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와 내후년 대선에서의 유불리 또한 앞으로 여당의 설득 및 구체화 과정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여당은 지금의 의지대로 해당 이슈를 끌고 갈 경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충청권 등 지방 민심을 사로잡았듯 당에 충분한 호재가 될 거라 기대한다.
그러나 가시적 성과 없이 정쟁만 과열될 경우 대선 전에 이슈가 묻혀버리거나, “과거처럼 지역 민심과 부동산 시장만 혼란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할 거란 예상도 존재한다.
여당발 '행정수도 이전론'이 정국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지난 20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공론화 후 민주당은 행정수도완성추진단을 정식 출범시키며 본격 추진에 나섰다.
추진단 간사를 맡은 이해식 의원은 27일 행정수도 이전 방식과 관련해 "개헌, 국민투표, 특별법 중 연말 정기국회까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수도 이전은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났다. 미래통합당은 행정수도 이전론이 부동산 정책 실패를 모면하기 위한 여당의 '국면 전환용 꼼수'라며 위헌 결정이 났기 때문에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다만 개헌이나 제2집무실 설치를 통해 행정수도 이전을 완성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행정수도 이전 실현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1. 개헌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가 24일 오후 세종시청 여민실에서 열린 세종시 착공 13주년 및 정책아카데미 200회 기념 명사특강에 이어서 열린 송재호 의원(왼쪽), 이춘희 세종시장(가운데)과의 토크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4일 세종시청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개헌할 때 대한민국 수도를 세종시에 둔다는 문구를 넣으면 위헌 결정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은 27일 페이스북에서 "국민투표를 수반하는 헌법 개정을 통해서 수도 이전, 천도(遷都)의 가장 확실하고 튼튼한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3년 신행정수도건설추진지원단장을 지낸 이춘희 세종시장은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기업도시 대토론회'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행정수도 명문화 개헌,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3분의 2인 2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미래통합당이 개헌저지선을 넘는 103석을 가지고 있어 현실적으로 개헌은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
2. 특별법
▲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행정수도완성추진단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완성추진단-국정과제협의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특별법 제정에 목소리를 냈다. 김 원내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완성추진단 회의에서 "대선까지 시간 끌지 않고 그 전에 여야 합의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행정수도완성추진단장인 우원식 의원은 2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가장 빠르고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방법은 국회가 해결하는 방법"이라며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만드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이 분할돼 발생하는 비효율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고, 청와대와 국회 용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계도 이미 나와 있으며, 국민적 여론도 높다"면서 "이런 사전 변경이 크게 생겼기 때문에 특별법으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그것만 가지고 부족하다면 국민투표나 개헌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며 다른 방안을 적용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3. 국민투표·보궐선거 공약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페이스북에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민에게 의사를 묻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별법 개정으로 국회부터 이전을 추진하는 방법도 있지만, 수도 이전이 아닌 데다 후에 청와대 등 주요 기관을 옮길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최고위원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합의가 확인되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적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이날 상무위원회의에서 "국회에서 '행정수도 이전 및 국가균형발전 특별위원회'를 함께 구성하고, 이곳에서 나온 합의안을 대통령께서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당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당이 수도 이전에 대한 생각이 굳건하다면 내년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수도 이전' 공약을 내걸고 일단 서울시민의 의사부터 확인하라"고 촉구했다.
4. 제2집무실·제2의사당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주도했던 김병준 미래통합당 세종시당위원장은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이 9월부터 바로 세종청사로 내려가 일주일에 며칠씩 근무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27일에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헌재에 결정문도 보면 국회와 대통령의 집무실 소재지를 지금 수도로 보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자주 내려가서 집무하는 등 할 수 있는 일부터 해 관습을 바꾼다면 헌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분원 아니라 제2원을 설치한다든가, 대통령 제2집무실을 설치한다든가 그렇게 하다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그렇게 하다 보면 관습헌법이라고 했는데 관습이 바뀌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지난 3월 제21대 총선 세종을 출마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세종시 제안자와 초기 설계자"라고 지칭하며 "세종에 제2의 국회의사당이나 대통령 제2집무실 설치는 현 헌법 체제에서도 가능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유나 인턴기자]
행정수도 이전' 도미노…헌재·대법원 지방 시대 열리나
헌재 결정서 자유로워… "법무부는 국회와 가야" 의견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국회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기관을 비 수도권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법기관의 지방 이전은 예전에도 필요성이 논의된 바 있어 행정수도 이전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공론화 가능성도 적지않다. 다만 이전에 따른 효과가 있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행정수도 이전론은 지난 20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청와대와 국회, 정부 부처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당대표 후보 첫 합동연설회에서 수도권 과밀화 현상을 해소하겠다며 그 방안으로 '사법기관 이전'을 들었다. 박 의원은 헌재와 대법원을 각각 광주와 대구로 이전해야 한다는 구체적 주장을 펴기도 했다. 역시 당권 도전에 나선 이낙연 전 총리도 "헌재와 대법원 이전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입장이다.
권영진 대구시장도 헌재·대법원 대구 이전을 주장하며 옛 경북도청 터가 최적지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세종시 갈 뻔했던 대법원·사법연수원…법원행정처는 땅 사놓기도
사법기관 이전이 논의된 역사는 깊다. 2004년 6월 신행정수도추진위원회는 충청권에 건설될 행정수도로 옮길 85개 국가기관을 잠정 확정해 발표했는데, 이 중 대법원과 사법연수원도 포함됐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우리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 사항을 개헌하지 않은 채 하위 법률 방식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건 위헌이라는 이유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행정수도 이전 계획 자체가 틀어지며 극히 일부 행정부처만 충청권으로 옮겨졌다. 사법기관 역시 서울에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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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법원 산하 기관인 법원행정처는 추진위 발표 뒤 "이전하면 근처에 연수원 겸 휴양시설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며 충남 안면도에 1만7000여 평 면적의 땅을 미리 사들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법원행정처는 이전 계획이 무산된 뒤인 2005년 감사원에서 "막연한 장래의 일로 토지를 취득하면 안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법원행정처는 2018년에도 서울 명동의 한 빌딩으로 이전될 뻔 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의 중심점에 있는 법원행정처를 대법원과 떼어 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대법원 차원에서 추진한 이전 계획이었다.
대법원은 국회에 임차비 56억8500만원과 이사비용 약 22억 원 등 80억 원 가량의 예산안을 제출했지만 국회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전 계획은 무산됐다.
사법기관 이전이 국회에서 다시 거론된 건 2010년의 일이다. 세종시 출범을 앞두고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세종시로 이전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김 의원의 제안은 소속당 내에서도 "행정부처에 비해 사법기관은 경제적 실익이 떨어진다"는 반박에 부딪혀 지지를 모으지 못했다. 결국 김 전 의원의 제안은 당소속 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는 당론 변경 투표에 밀리면서, 사법기관 이전은 또 불발됐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사진) 등 사법기관의 지방 이전이 국회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서울에 둔다' 법원조직법 개정해야 대법원 이전 가능
사법기관 이전이 다시 화두로 떠오른 지금, 사법기관의 이사는 법적으로 가능할까. 우선 16년 전 헌재 결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헌재는 수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국가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진 중앙 행정기관들이 소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입법기관, 즉 국회는 수도로서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봤다.
반대로 중앙행정기관이나 입법기관이 아닌 사법기관의 이전은 헌법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헌재는 '헌법재판권을 포함한 사법권이 행사되는 장소', 즉 사법기관은 수도를 결정하는 필수적인 요소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실제로 설립 당시에는 서울에 있던 특허법원(고등법원급)은 '각급법원의 설치와 관할 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만으로 2000년 특허청이 있는 대전으로 이전 됐다.
특허관련 국가기관이 밀집된 대전지역으로 이전해 특허소송 업무가 더 원활히 수행된다는 기대에 따른 결단이었다. 반면 특허법원 판사를 비롯한 일부 법조인들은 특허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변리사는 물론 사건 당사자들도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전 이전을 반대하기도 했다.
하급심 법원과 달리 대법원의 경우 헌법의 벽은 없지만 법원조직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원의 소재지를 규정한 법원조직법 제12조는 대법원에 대해서만 "서울에 둔다"고 명시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적으로 소재지를 서울로 규정할 정도로 대법원을 서울에 둘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헌재 역시 별다른 소재지 규정이 없다.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사법기관이 꼭 서울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특히 각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이 있기 때문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까지 서울에 모여 있어야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개헌과도 연계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고, 부동산 투기 억제 등을 감안하여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전할 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의가 필요하다"이라고 봤다"라고 봤다.
법무부 이전은 헌법적 문제와 뗄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법학과 교수는 "법무부는 정부조직법상 행정부처로, 국회에 주기적으로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다. 지금도 세종에 내려간 행정부처 관계자들이 차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다만 국회가 움직이려면 개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04년 위헌 결정이 난 행정수도 이전 여론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국토교통부, 환경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세종정부청사.
/임영무 기자
◆대법원·헌재 이전해도 법조인 이동은 적을 듯
일각에서는 사법기관 이전은 경제적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관을 이전하는데 드는 비용과 노고에 비해 해당 기관에도, 이전할 지역에도 이익이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헌재와 대법원처럼 법률심 재판을 하는 사법기관의 경우, 장기간 재판 당사자들이 출석해 변론하는 일이 드물다.
이에 따라 사법기관이 옮겨 갔다고 해서 '서초동 법조타운' 처럼 로펌이 모이거나, 법관과 공무원 등 종사자들이 주거지를 아예 옮기는 일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서초동의 중견 변호사 A씨는 "어쩌다 한 번 가는 대법원과 헌재가 이전한다고 해서 법조인들의 생활이 크게 달라질 부분은 없을 것 같다.
변호사들도 출장 개념으로 선고기일에나 참석하지, 아예 사무실을 옮기는 등의 효과는 없을 것"이라며 "차라리 사법적 수요가 있는 지역에 고등법원·지방법원급 법원을 증설하는 방안을 검토하는게 더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법원과 마주한 대검찰청 이전에 대해서도 "실익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A 변호사는 "실무보다는 전국 검찰을 관할하는 상징적 기관이라, 어디로 이전하든 큰 의미가 있을지 싶다"고 봤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변호사 B씨 역시 "대검이 지방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현안으로 떠오른 수사지휘권 등 검찰 권한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역 발전 측면에서도 사법기관 이전은 큰 실효성이 없을 거라는 의견이 있다. 지역이 발전하려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데, 사법기관 이전이 지역 일자리 생산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설명이다.
마강래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사법기관 이전이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이라고 보기 힘들다. 어떤 기관을 일단 옮겨 놓으면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낙관론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섣불리 대법원이나 헌재 같은 큰 기관을 어느 지역으로 옮기겠다고 말하는 건 이전 지역 물망에 오른 지역 간에 괜한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 지금 주요 사법기관이 서울에 모여 있으면서 내는 시너지 효과를 능가할 만큼 이전 시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지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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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훈 기자 nsh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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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이전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수도 이전’ 발언이 이슈의 중심에 섰다. 참여정부 이후 10여 년 만에 수도 이전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과거 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논의는 이미 상당히 완성된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시 조성에 따른 부담이 크지 않다. 정치적으로도 여당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분명한 목표도 있다.
수도 이전은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패망과 북한의 남침 위협이 높아지던 시절이다. 한국전쟁 당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당했던 악몽이 생생하던 시기라 수도 이전 논의는 다양하게 진행됐다. 그 결과물이 일부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의 한강 이남 이전이었다. 그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이 강남 개발사업이었다.
1971년 11월29일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는 수도 이전에 대한 박병배 신민당 의원의 질의에 일부 행정기관을 대전으로 옮기는 계획을 진행 중이지만 수도 이전은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군 지휘본부는 전시에도 서울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잠잠해지던 수도 이전 논의는 1973년 일본의 수도 이전 검토로 다시 촉발됐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인구 집중과 집값 상승 억제를 위함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수도 이전 구상을 위한 조사비를 예산에 포함시켜 수도 이전을 공식화했다.
일본의 수도 이전 논의는 1964년 인구 30만 명의 새 도시를 만들어 국회와 내각, 최고재판소 등 국가 중앙기관을 이전한다는 고(故) 노이치로 건설상의 천도론에서 시작됐다. 1976년 새 수도 이전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구체화됐고 이후 198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논의됐다.
출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행정수도완성추진단’을 꾸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연합뉴스
50년 넘게 논의된 행정수도 이전의 역사
일본의 논의는 당시 650만 명에 다다른 서울의 인구 과밀 완화를 위한 대안으로 수도 이전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1974년 10월3일 경향신문 사설은 서울 인구 문제 해결은 강남으로의 이전으로 해결할 수 없고, 중앙 행정기관의 이전을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1977년 2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수도 건설 계획 발표는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박 대통령은 1975년 서울의 인구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은 수도 이전밖에 없음을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밝혔고, 1976년 당시 건설부에 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수립을 지시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수도권 과밀 억제를 위한 방안으로 행정수도 건립을 추진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행정수도 백지계획’ 수립이 1977년 3월부터 시작돼 2년의 작업 끝에 1979년 5월 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지금의 세종시 위치에 행정수도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는 1977년 ‘임시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공포했다.
참여정부 시절 시작됐던 수도 이전 역시 과거의 이런 계획과 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7월20일 행정중심 복합도시 기공식에서 “박 전 대통령의 계획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의 배경과 논의는 5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셈이다.
2020년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과거와 달리 ‘주택가격’이라는 매우 특정한 주제에 초점이 맞춰진 점이 특징이다. 2017년 이후 급등세를 지속하고 있는 서울 아파트 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선 단순한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로는 불가능하고,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집중 추세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인식에서 다시 행정수도 건설 논의가 시작됐다. 단기적인 목표 달성의 수단으로 수도 이전을 검토한다는 점이 과거 논의와 큰 차이가 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실제로 행정수도를 건설하면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가격이 안정될 것인가 여부다. 수도권 인구는 2019년에 2500만 명을 넘어서며 전체 인구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인구뿐만 아니라 경제력 측면에서도 서울과 수도권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집중도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력은 높은 주택가격을 부담할 수 있는 원천이 되고 있으며,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확신은 지방으로부터 부의 이전을 가져와 지방의 축소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과연 행정기관과 국회, 그리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통해 완화되거나 반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기존의 흐름을 살펴보면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2012년부터 진행된 세종으로의 중앙 행정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이주는 거의 마무리됐지만 이와 관계없이 서울의 주택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행정기관의 비중과 역할이 압도적이었던 1970년대와 달리 2020년의 대한민국에서 행정기관과 국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징적인 면을 제외하면 크지 않다. 대규모 발주처인 공공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관련 기업들은 여전히 서울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발언 이후 세종시의 아파트 값이 들썩거리고 있다. 7월27일 세종시 아파트 단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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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도권에 대한 억제정책 유지 여부도 변수
국회와 행정기관의 세종 이전이 가져오는 효과는 단기적인 주택가격 안정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정치와 행정이 서울로부터 분리됨으로써 서울의 중심효과가 완화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서울에서 발생하는 일은 정치 및 행정기관 구성원에게 바로 영향을 미치는 데 비해 지방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서울의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크게, 지방의 문제는 작게 다뤄지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은 이런 추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행정수도 건설 및 이전과 관련해 논의돼야 하지만 간과되고 있는 지점이 바로 세종으로의 이전 이후 서울 및 수도권에 대한 억제정책 유지 여부다. 수도권 정비법을 비롯한 각종 규제 대상이던 서울과 수도권이 규제에서 풀려날 경우 집중현상은 오히려 더 가속화될 수 있다. 인적자원 감소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들의 수도권 이전이 본격화될 수 있으며, 해외로부터의 리쇼어링을 검토하는 기업 역시 수도권을 선택할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됐던 서울로의 집중과 서울의 우월적 지위를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행정수도 이전을 통해 실제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서울과 수도권은 향후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등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행정수도의 이전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