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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Musical

국립오페라단 '라 보엠' 2013

[공연장 나들이]

국립오페라단 '라 보엠' 2013

2013. 12.05(목)~ 12.0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

오페라 전편을 압도하는 주옥같은 아리아로 빛나는 푸치니의 걸작

 

푸치니는 1858년 이탈리아 중서부 도시인 루카에서 태어났다. 작곡가이며 오르간 연주자였던 푸치니의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아들이 자기 집안의 가업을 이어갈 것이라 예상했고 아들은 그 기대에 부응했다. 루카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푸치니는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했고 스승 폰키엘리의 도움으로 오페라 작곡을 시작한다. 학창 시절에 작곡을 시작한 그의 첫 오페라 <레 빌리>(1884)는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두 번째 작품인 <에드가>(1889)는 완전히 실패하고 만다. 푸치니의 가능성을 믿고 후원했던 리코르디 출판사는 푸치니에게 뛰어난 대본가인 일리카와 자코자를 소개했고 그들의 공동 작업으로 첫 히트 작품인 <마농 레스코>(1893)를 완성한다. 초연의 대성공과 함께 푸치니의 이름은 곧바로 전 유럽의 오페라계에 알려진다. 이때부터 푸치니와 두 명의 대본가는 그의 3대 오페라 모두를 만들어 내는 업적을 남긴다. 그중 첫 번째 오페라가 바로 <라 보엠>(1896)이다.

2013년 국립오페라단의 <라 보엠>은 마르코 간디니’의 연출과 성기선의 지휘로 공연될 예정이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려고 카페에 모인 로돌포와 그의 친구들.

1893년에 이미 <라 보엠>의 대본이 완성되었지만 푸치니는 계속 수정을 요구한다. 이들의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작곡가와 대본가, 그리고 그들 못지않게 오페라에 대한 식견을 지녔던 출판사 사장인 리코르디의 공동 작업이라고 할 정도로 지속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최종 대본이 완성되었다. 물론 이들 중에 최종적인 결정권은 푸치니가 행사했고 거의 항상 그의 생각은 적중한다. 1895년 12월 마지막 4막을 완성하면서 푸치니는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한다. 작품을 완성하고는 미미의 죽음에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토리노에서 공연된 초연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들은 특히 빠르게 전개되는 2막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비평가들과는 달리 청중들의 반응은 오히려 뜨거웠다. 이탈리아 청중들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평가들은 다소 실험적인 푸치니의 음악에 불만이었지만 청중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인 것이다.

푸치니는 오페라의 소재로 연극 작품을 선호한다. 즉 무대에서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그는 작업에 들어간다. <라 보엠>은 연극 버전도 있지만 푸치니와 그의 대본가들은 뮈르저의 소설을 바탕으로 작업했다. 그러다 보니 소설을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던 것이다. 반면에 이어지는 <토스카>와 <나비부인>은 모두 처음부터 연극이었다. 특히 <나비부인>은 영어로 된 연극이었는데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던 푸치니는 그 연극을 본 후에 오페라의 가능성을 확신했다고 한다. 푸치니는 언어보다는 무대 위에서의 효과와 음악으로 오페라를 만들었다. 아마도 <라 보엠>은 푸치니의 오페라 미학에 가장 잘 맞는 작품일 것이다.

Inva Mula/Aquiles Machado/Giancarlo del Monaco /TRM 2006 - Puccini, La Bohème

Mimi: Inva Mula

Rodolfo: Aquiles Machado

Musetta: Laura Giordano

Marcello: Fabio Maria Capitanucci

Schaunard: David Menéndez

Colline: Felipe Bou

Children Chorus of the Comunidad de Madrid

Chorus and Orchestra of the Teatro Real

Conductor: Giancarlo del Monaco

Teatro Real de Madrid 2006

오페라 감상 포인트

1. 푸치니의 졸업 작품은 오케스트라 곡이었다.

푸치니는 1883년 밀라노 음악원을 졸업하며 오케스트라 작품인 <카프리치오 신포니코>를 발표한다. 우리에게 뛰어난 선율의 오페라 작곡가로 알려진 푸치니는 졸업 작품으로 순수 기악곡을 제출한 것이다. 푸치니가 다른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와 차별되는 특징 중 하나는 그의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솜씨이다. <카프리치오 신포니코>를 들어보면 이미 그의 관현악법은 수준급에 올라 있었으며 기악 음악에서 필수적인 음악 형식에 대한 감각도 충분하게 갖추었음을 알게 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라 보엠>의 1막을 시작하는 오케스트라 음악은 바로 그의 졸업 작품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라 보엠> 1막. 1830년대 파리, 크리스마스이브에 가난한 예술가와 젊은이들이 모인 낡은 다락방.

푸치니 오페라에서 성악 선율의 특징은 오케스트라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진행한다는 점이다. 베르디만 해도 관현악 반주는 성악 선율을 뒷받침하는 정도이지만 푸치니는 관현악이 아리아 중간에서도 선율을 주도하고 성악가는 종종 부수적으로 밀리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푸치니의 오페라는 관현악만으로 연주해도 들을 만하다는 것이다. 교향곡처럼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관현악 선율에 성악이 가세하기도 하고 떨어져 나가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현악과 성악은 소통한다.

2. 첫 만남은 이렇게. (1막)

친구들은 나가고 홀로 남은 로돌포에게 미미가 찾아온다. 잠시 정신을 잃은 미미는 기운을 차리고 자신의 촛불에 불을 붙이고는 돌아가려는 데 열쇠가 없음을 알게 된다. 이 순간 음악은 갑자기 활기에 넘친다. 열쇠를 잃었음에도 걱정이나 근심과는 거리가 먼 흥겨운 선율이 지배한다. 첫 만남을 지속하고 싶은 미미와 로돌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로돌포의 장난기가 발동하여 불을 모두 꺼트리고 어둠 속에서 둘이 열쇠를 찾는 장면은 마치 둘이서 자주 했던 놀이처럼 보인다. 음악적 분위기로 대사에 드러나지 않은 두 주인공의 마음을 표현하는 뛰어난 장면이다.

로돌포가 미미의 차디찬 손을 잡는 순간 관악기 호른은 몸이 얼어붙듯이 한 음에 길게 멈춘다. 본격적으로 로돌포가 자기소개를 늘어놓지만 듣다보면 별 내용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하나, ‘희망’뿐이다. 바로 이 희망의 이탈리아어 ‘라 스페란차’(la speranza)를 로돌포가 그 높은 음으로 멋지게 외처야 미미도 함께 그 희망을 공유할 것이다.

촛불이 꺼진 어두운 방에서 미미와 로돌포는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다.

3. “내 이름은 미미”가 아니다. (1막)

미미의 원래 이름은 루치아이다. 루치아는 이탈리아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남들이 그녀를 미미라고 하니 빛을 잃은 셈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빛’을 잃은 여인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따뜻한 온기일 것이다. 1막 첫 부분에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도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 원고지까지 태울 정도였으니 촛불만으로 온기를 느꼈을 미미는 따뜻함을 더욱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 아리아의 중간에 가면 미미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얼음이 녹으면 첫 햇살과 4월의 키스는 제 거죠”라는 대목을 자세히 들어보기 바란다. 조용히 시작하는 오케스트라 반주가 점차적으로 넓은 음역으로 퍼지면서 마치 따듯한 햇살이 쏟아지며 얼음을 녹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 부분이 멋지게 들리는 만큼 우리는 미미의 간절함을 이해하게 된다.

4. 첫 만남에서 사랑까지 20분 걸리다. (1막)

푸치니는 어떤 대목의 아리아나 이중창이 중요한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1막 끝부분을 차지하는 두 개의 아리아와 이중창은 이 오페라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지점에 있다. 특히 이중창은 그 아름다움의 정도가 두 남녀의 사랑의 깊이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를 마친 그들은 곧바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감지한다. 1막을 마무리하는 이중창, “오, 아름다운 아가씨”는 실제 시간으로는 20분 전에 만났으나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이 진행했는지를 느끼게 한다. 푸치니의 사랑의 이중창 중에 <나비부인>에 비하면 많이 짧지만 빼어난 솜씨로 둘은 화합을 이룬다. 우리는 이 이중창에 푹 빠지면서 그들이 불과 20분 만에 사랑에 빠진 사이라는 것을 잊게 된다. 현실의 시간이 아닌 오페라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참고: 오페라는 두세 시간 안에 끝나야 하므로 오래 끌 시간이 없음.)

5. 2막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2막)

푸치니 시대는 영화의 등장과 맞물린다. 푸치니 생전에 영화는 대중 예술로서의 오페라의 위상을 강력하게 위협한다. 오페라의 위기를 감지했는지 푸치니는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장면을 구성한다. 오페라는 아리아와 이중창과 같은 노래 때문에 극적인 시간이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시 말해서 아리아가 불리는 동안 극적인 시간은 멈춰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라 보엠의 2막은 다양한 음악이 섞여 있으면서도 극적인 시간과 음악적인 시간이 거의 일치하는 좋은 예이다. 유명한 무제타의 왈츠(“내가 길을 따라”)가 순수한 아리아라면 그 지점에서 극적인 시간은 멈춘다. 그런데 이 아리아는 극 속의 음악이다. 무제타가 가수이므로 연극으로 공연해도 이 부분은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이 노래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극의 진행은 멈춘 듯이 보이지만 중간에 알친도로가 투덜거리거나 미미가 부분적으로 가세하면서 극적인 시간을 그대로 진행시킨다.

2막 전체를 연극이나 영화의 한 장면으로 감상해 보기 바란다. 식당과 그 앞의 혼잡한 광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2막은 혼성 합창과 어린이 합창, 간간이 들려오는 장사꾼들의 외침,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군악대 등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파리 라탱 지구의 혼잡한 광장을 무대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는 2막.

6. 미미의 죽음. (4막)

마지막으로 로돌포를 보기 위해 둘이 처음 만난 다락방으로 미미가 찾아온다. 이때부터 막이 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과정은 치밀하게 미미의 죽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친구들이 모두 나가고 1막처럼 둘만 남게 되자 오케스트라는 1막에서 나왔던 미미의 아리아를 연주하고 이어서 미미가 천천히 새로운 선율을 노래한다. 이때까지 미미는 노래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로돌포가 합세하면서 조각난 첫 만남의 선율들이 등장한다. 행복했던 첫 만남을 회상하면서 미미의 선율은 점점 굴곡이 없어지다가 밋밋한 직선을 이룬다. 마치 병원의 심장 박동 모니터가 멈추는 이미지를 연상하면 된다. 미미가 부르는 노래는 이제 더 이상 살아 있는 선율이 아니라 읊조림으로 변한다. 음악적으로 미미의 숨이 꺼져 가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부터 등장인물들은 거의 노래라고 할 수 없는 선율을 부른다. 더 이상 이들에게 노래는 필요 없다. 그나마 무제타의 기도가 노래에 가까울 뿐이다.

가난 때문에 병든 미미를 치료해 주지 못하는 로돌프는 괴로워한다.

이 장면이 극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두 시간 가까이 노래하던 이들이 연극처럼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다른 세상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오페라에서 노래를 없앤 것이 강력한 극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 아름다운 선율들로 이들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 다음 그 선율들이 숨을 잃어 가는 과정을 통해 미미의 죽음을 음악적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을 수없이 봤고 결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청중이라고 해도 로돌포가 외치는 마지막 ‘미미!’를 들으면 가슴을 세게 짓누르는 슬픔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극적인 죽음이다.

허영한 |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음악학과 교수

 

  출처 : 네이버캐스트 기획물 전체>공연스테이지>공연장 나들이 2013.11.22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91&contents_id=4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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