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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Violinist 정경화가 말하는 음악인생 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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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말하는 음악인생 52년

 

정경화/앙드레 프레빈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40년이 넘은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정경화의 나이 23살 때 연주입니다.

  

신념에 찬 77세 제르킨의 연주, 지친 나를 흔들어 펑펑 울게 만들었다”

문이 열리자 강아지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암컷은 클라라, 수컷은 요하네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4)가 애지중지하는 ‘아이들’은 신통하게도 인터뷰가 시작되자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조용히 엎드렸다. 지난 20일 오후, 고국에서 유난히 바쁜 한 해를 보낸 정경화를 서울 구기동 자택에서 만났다. 집 안은 고즈넉하고 단출했다. 거실의 CD플레이어 옆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음반이 덮개가 열린 채 놓여 있었고, 한쪽 벽에는 정경화의 상반신이 커다랗게 인쇄된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한국 출신 연주자로는 가장 높은 곳까지 나아갔던 그는 “이 옷이 좋을까? 저 옷이 좋을까?” 하며 사진기자에게 잠시 패션 감각을 선보이기도 했다. 도도하고 까칠한 연주자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는 그렇게 60대 중반의 ‘넉넉한 누이’의 모습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의 귀환

정경화는 “고국에서 이렇게 바쁜 한 해를 보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떠오른 이후부터 최근까지 ‘세계적 연주자’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할 것 없는 활약을 펼쳐 왔지만, 고국의 팬들에게는 언제나 ‘해외에 사는 한국계 연주자’로 인식돼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고국에서 적어도 스무 차례가 넘는 연주회를 펼친 것을 비롯해 첼리스트인 언니 정명화(68)와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예술감독을 맡아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또 지난 6월에는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부임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렇게 올해는 정경화의 음악인생에서 '귀환'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겨우 열두 살이던 1960년에 줄리아드 음대로 떠난 이후부터 헤아리자면 52년 만의 귀환인 셈이다.

 

지난 20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자택에서 자신의 음악인생 50여 년을을 회고하고 있다.

“예전엔 한 번 들어왔다 나가면 또 언제 올까 싶었는데, 이젠 한국에서의 생활이 아주 자연스러워졌어요. 사람들도 날 편하게 대해줘서 고맙고. 물론 아직도 어색한 점이 없지 않죠. 내 나이가, 이젠 후학들을 생각할 때잖아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난 사회생활이란 걸 안 해봤거든요. 연주만 해왔잖아요. 그래서 인간관계에 많이 서툴러요. 줄리아드 음대 교수를 하면서 한 번 깨졌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많이 깨지고 있죠. 앞으로 또 깨질 거고. 그러면서 배워나가야겠죠.”

알려져 있다시피, 정경화는 2005년 왼손 손가락에 마비 증상이 오면서 연주를 잠시 접어야 했다. 그것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치명적이랄 수 있는 부상이었다. “다시는 연주를 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데 꼬박 5년이 걸렸고, 브람스의 협주곡(2010년)과 프랑크의 소나타(2011년) 등을 선보이며 어렵게 다시 무대에 섰다. 하지만 정작 그의 복귀를 완벽하게 선언했던 것은 올해 연주한 바흐의 대곡 ‘소나타와 파르티타’였다. 사실 재기 연주회로는 매우 무모할 수도 있는 ‘난곡(難曲)에의 도전’이었다. 게다가 정경화는 “바흐 연주를 제안 받았던 지난 2월, 나는 사실 손가락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고 털어놨다.

“그 상태로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연주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치료 중이었거든요. 하루에 두 시간 이상 바이올린을 켜는 게 불가능했죠. 손가락에 통증이 오면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연습했어요. 5월에 연주회가 시작됐는데, 그때가 마치 10년 전처럼 아득하다니까요. 처음엔 좀 불안했는데 연주회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안정감을 찾았죠. 내년에 그 곡을 음반으로 낼 마음도 갖고 있어요.”

그가 만난 음악가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1970년 세계 굴지의 음반사 데카(Decca)와 계약한 이후 도이치그라모폰(DG), EMI 등으로 레이블을 옮기며 빼어난 음반들을 수없이 내놨다. 초창기 녹음에서 날카롭고 격정적인 모습을 선보이며 ‘동양에서 온 마녀’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 완벽주의자는, 1988년 EMI로 적을 옮기면서 훨씬 풍성하고 깊이 있는 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또 한 번 사로잡는 것은 정경화와 협연했던 이른바 ‘거장’들의 이름이다. 그는 겨우 18세였던 1970년에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심포니와 협연한 이후, 그야말로 전설처럼 회자되는 거장들과 빈번히 조우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지휘자는 루돌프 켐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이죠. 스물네 살 때, 브루흐의 협주곡을 같이 녹음했어요. 내가 아무리 자유롭게 막 달려나가도, 기가 막히게 뒤를 받쳐주던 지휘자였죠. 요새는 솔리스트를 그렇게 멋지게 받쳐주는 지휘자가 별로 없어요. 그분이 아주 무뚝뚝하잖아요. 그런데 연주를 하다가 서로 눈이 딱 마주쳤을 때, 나한테 보내주던 그 따뜻한 눈웃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같은 곡을 마흔 살이 좀 넘었을 때 클라우스 텐슈테트하고도 협연했는데, 이분은 정말 순진한 장난꾸러기 어린애 같았어요. 동독의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인데,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이죠. 그런데 이분은 가끔 폭발해요. 나하고 녹음을 같이하고 있을 때 프로듀서가 잠깐 연주를 스톱시키니까, 사람이 확 돌변하면서 분노를 터뜨리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못했죠.”

음반사 데카에서 “게오르크 솔티와 협연해보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솔티가 먼저 요청해오면 하겠다”는 것이 당시 정경화의 ‘오만한’ 답변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음반사의 주선으로 영국 런던에서 만났다. 정경화는 “눈에서 그렇게 강렬한 빛이 쏟아지던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1970년대, 유럽 곳곳에서 연주회와 레코딩 요청을 받던 정경화는 아예 런던에 집을 마련해놓고, 미국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좋았던 시절이죠. 음악에 마케팅이라는 것이 도입되기 전이었거든요. 음악가들은 그냥 음악만 생각하면 됐죠. 로맨틱한 시절이었어요. 클래식뿐 아니라 대중음악도 그랬죠. 비틀스가 나오고 롤링스톤스도 이때 등장했거든요.”

1980년, 지칠 대로 지친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겨우 3개월”의 휴식을 취한다. 그때 들었던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의 연주. 그것은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당시의 정경화를 펑펑 울게 만들었다. “그때 제르킨 선생 나이가 77세였어요.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연주했어요. 그분은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었잖아요. 그 겸손한 분이 무대에서 보여준 삶에 대한 애착, 자신의 음악에 대한 신념, 그게 내 가슴을 완전히 흔들어버렸거든요. 엉엉 울면서 파리 거리를 헤맸다니까요.”

정경화는 대중음악에 대해서도 열려 있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약주 한잔에 얼큰해진 아버지가 부르던 박연폭포”가 기억에 생생하단다. 게다가 그녀는 가수 이미자의 오랜 팬이다. “매일 따라 불렀죠. 그 억양과 글리산도(음과 음 사이를 연결하는 것)를 나도 흉내내보려고 했는데, 에이, 안 되더라고요. 레이 찰스, 빌리 홀리데이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재즈 가수 엘라 피츠제랄드하고 ‘에드 설리반 쇼’에 같이 출연한 적도 있다니까요.”

인터뷰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정중하게 시작된 인터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수다스러운 대화로 ‘발전’했고, 클라라와 요하네스는 어느새 등을 맞댄 채 골아떨어졌다. ‘돌아온 정경화’는 내년에도 국내에서 적잖은 연주회를 선보일 예정이다. 물론 해외 스케줄도 여럿 잡혀 있다. 내년 6월 일본 6개 도시를 돌고, 10월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10여 개 도시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미국 줄리아드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학생들한테 해줄 수업이 너무 밀렸다”며 “얼른 갔다가 또 돌아와야지”라고 말했다. [글 문학수 선임기자 l 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경향신문 20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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