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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Bruckner Symphon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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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 교향곡 이야기

최은규 l 음악평론가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마치 높고 험준한 산을 오르는 기분이 듭니다. 연주시간도 긴데다 선율의 호흡이 너무 길어서 인내심을 갖고 듣지 않으면 그 윤곽을 파악하기도 힘들지요. 관현악 편성이 커서 웅장한 느낌은 있으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말러의 관현악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운 소리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재미있는 음악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들을 이유는 충분합니다. 끈기와 인내를 갖고 그의 음악 속에서 서서히 변화해나가는 역동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어마어마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브루크너 교향곡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사실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접한 사람이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브루크너 교향곡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이 많습니다. 아마 브루크너 당대 사람들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발표될 때마다 음악평론가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특히 빈 음악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던 한슬리크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심하게 비판하곤 했습니다. 브루크너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마저도 브루크너를 가리켜 ‘반 천재, 반 바보’라 부를 정도였지요.

교향곡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브루크너의 개시’

브루크너가 비판을 받은 것은 그의 작품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정치적 입장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빈 음악계는 전통 형식을 고수하는 브람스를 옹호하는 한슬리크 일파와 새로운 음악 형식을 추구하는 바그너 일파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브

루크너는 바그너를 ‘대가 중의 대가’라 부르며 노골적으로 바그너를 숭배했으니 브람스의 강력한 지지자인 한슬리크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겠지요. 어찌 보면 브루크너는 19세기 말 빈 음악계를 뒤흔들었던 ‘음악정치’의 희생양인 셈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당시 빈의 음악평론가들이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에 대해 여러 가지로 비판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된 비판은 브루크너의 여러 교향곡들이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1악장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의 대부분이 베토벤 교향곡 9번의 1악장처럼 현악기의 조용한 트레몰로로 시작되어 점차 크레셴도(점점 크게 연주하라는 악상 지시어)되고 상승되면서 장엄하게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베토벤 교향곡 9번은 교향곡으로선 매우 특이한 개시 방법을 보여줍니다. 대개의 교향곡은 크고 웅장한 소리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인데, 베토벤 교향곡 9번은 들릴락 말락 매우 작은 소리로 시작해 그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 큰 소리로 주제를 연주하는 방식으로 시작됩니다. 브루크너 교향곡의 도입부도 이와 비슷합니다. 현악기의 잔잔한 트레몰로로 시작해 점차 악기가 추가되며 크고 웅장한 소리로 변화해가는 브루크너 교향곡의 도입부를 듣고 있으면 마치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브루크너는 이런 식의 도입을 매우 자주 사용했기에 이를 ‘브루크너 개시’라 부릅니다. ‘브루크너의 개시’는 그의 거의 모든 교향곡 도입부를 장식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교향곡마다 다르고 특유의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이 다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브루크너의 휴지’와 ‘브루크너의 리듬’

‘브루크너의 개시’ 외에도 브루크너 교향곡을 특징짓는 말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브루크너의 휴지’나 ‘브루크너의 리듬’이 대표적입니다. 브루크너는 하나의 주제로부터 다른 주제로 이동할 때 이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대신 음악을 갑자기 멈추고 잠깐 동안의 휴지부를 둔 후 전혀 다른 음악을 시작하곤 했는데, 이를 ‘브루크너의 휴지’라 부릅니다. 브루크너의 음악이 다소 비논리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약간 비꼬듯 표현한 말이지요. 또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선 특정 리듬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일이 많은데, 이는 교향곡 4번 1악장에서 잘 드러납니다. 브루크너가 좋아하던 리듬은 4분음표 두 개와 삼연음부로 구성된 리듬으로 이 교향곡뿐만 아니라 다른 곡에도 지나칠 정도로 자주 나타나고 있어서 ‘브루크너의 리듬’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브루크너의 개시’와 ‘브루크너의 휴지’ 등 갖가지 용어들을 만들어내며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겸손한 완벽주의자였던 브루크너는 당대 음악평론가들의 평가에 매우 민감했습니다. 또한 그 자신의 작품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향곡을 완성한 뒤에도 수없이 개정을 되풀이했습니다. 그 끊임없는 개정 작업 덕분에 브루크너의 교향곡의 여러 버전들이 생겨났고, 브루크너 사후에도 하스와 노바크 등 여러 편집자들이 브루크너가 남기고 간 여러 악보들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에디션의 악보를 출판했습니다. 그 때문에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들을 때는 몇 년도 버전의 어떤 에디션인지까지 구별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처럼 끊임없는 비판과 계속되는 수정 작업에도 불구하고 브루크너는 꽤 많은 교향곡을 남겼습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초기의 습작 교향곡 2곡을 포함해 모두 11곡입니다. 브루크너가 작품번호조차 붙이지 않았던 교향곡 f단조는 브루크너가 린츠의 지휘자인 오토 키츨러에게 작곡을 배우고 있을 무렵에 작곡한 습작이고, 그 이후에 작곡한 d단조의 교향곡 역시 습작으로 ‘교향곡 0번’이라는 특이한 번호가 붙어 있습니다. 브루크너는 이 교향곡들이 본격적인 교향곡의 시작을 알리는 처녀작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42세가 되던 1866년에 브루크너는 마침내 교향곡 1번을 완성했습니다. 그 이후 교향곡 8번까지 완성한 후, 1896년에 그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교향곡 9번의 피날레를 작곡하다가 채 완성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명상적이고 신비로운, 비감각적 음향

습작과 미완성을 포함해 모두 11곡에 달하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신비로움으로 가득합니다. 그 웅장하면서 장엄한 소리는 브루크너가 즐겨 연주했던 오르간과 매우 닮았습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마치 오르간의 스톱(오르간에서 일정한 음색과 높이에 대응하는 파이프를 가리키는 용어)을 바꾸듯 하나의 차원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갑작스럽게 이동합니다. 이는 브람스 교향곡의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전개 방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는 브루크너의 음악은 낯선 신비감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브루크너의 음악이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에 비해 특별한 것은 아마도 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브루크너는 신앙심이 대단해서 강의를 하다가도 삼종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강의를 중단하고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바쳤다고 합니다. 브루크너는 작곡이라는 행위 자체도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으로 생각해 음악을 통해 ‘거룩한 하느님 안에서의 영원한 평화’와 신과의 합일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니 그의 교향곡이 종교적 신비감과 명상적이고 비감각적인 음향을 표현하고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브루크너의 신비로운 음향 덩어리는 종교적인 감흥, 카타리시스를 안겨 준다.

브루크너의 종교적 배경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브루크너의 음악을 처음 들으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질 겁니다. 브루크너 교향곡을 들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 주된 선율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브루크너 음악을 깊이 연구한 음악학자 에른스트 쿠르트도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주제’나 ‘멜로디’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브루크너의 음악 속엔 그보다 더 특별한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하고 진화해가는 에너지의 파동이며, 무한의 경지로 돌입하는 듯 길고 긴 크레셴도입니다.

특히 브루크너 교향곡을 마무리하는 종결부에서 서서히 상승해가며 점진적으로 으뜸화음을 확산시켜가는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그 거대한 음향 덩어리에 완전히 압도될 겁니다. 금관악기를 강화한 오케스트라의 음향은 너무나 거대하고 장엄하여 화성적안 포화 상태를 이루고, 현악기의 끊임없는 트레몰로는 신비와 황홀의 극치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음악학자 파울 베커는 “브루크너는 신비주의자이며 그 존재의 기본 상태는 황홀”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브루크너 교향곡에서 거대한 오르간처럼 울려 퍼지는 브루크너 사운드의 참맛을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이 말에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클래식입문 ABC 2011.11.28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7&contents_id=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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