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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빚더미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방만-부채 해결못하는 공공기관장 해임, 복지축소등 대수술

 

 

 

정부가 한국거래소 마사회 예탁결제원 등 20곳을 복리후생이 과도한 ‘방만 경영 공공기관’으로 선정했다. 또 석유공사 토지주택공사(LH) 가스공사 등 빚이 많은 12개 공공기관을 ‘부채과다 기관’으로 정해 중점 관리한다. 방만 경영과 과도한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기관장은 해임하기로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5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하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확정했다.

대책에 따르면 기재부는 전체 295개 공공기관 중 2010∼2012년 1인당 복리후생비가 많은 20개 공공기관을 중점 관리 대상으로 분류했다. 1인당 평균 복리후생비가 최대인 곳은 한국거래소로 1489만 원에 이르렀다. 이어 마사회(1311만 원), 코스콤(1213만 원), 수출입은행(1105만 원), 강원랜드(995만 원), 인천국제공항공사(980만 원) 등의 순이었다. 이들 기관은 교육비 과다 지원, 의료비 과다 지원, 비정상적인 경조금 지원, 지나치게 많은 특별휴가 부여, 퇴직금 과다 지원, 느슨한 복무 행태, 고용 세습, 노조의 경영 및 인사권 침해 등 8대 방만 경영 유형에 속해 적극적인 개입 없이는 개혁이 힘든 것으로 기재부는 보고 있다.

거래소는 매년 창립기념일(1월 27일)과 근로자의 날(5월 1일)에 각각 70만 원어치의 상품권을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예탁결제원은 직원 본인과 가족들이 지출하는 의료비 가운데 본인부담금에 대해 연간 1000만 원 한도로 지원하고 있다. 직원 본인은 본인부담금의 90%까지 받고, 배우자는 75%까지 지원 받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 부채는 566조 원으로 이미 국가채무(446조 원)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는 빚이 많은 12개 공공기관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기 힘든 상황으로 보고 있다.

이런 공공기관의 총체적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는 복지혜택을 대폭 축소해 내실을 다지는 한편 기존 사업을 축소하고 자산을 매각해 외형을 줄이는 작업을 추진키로 했다. 당장 내년 예산편성지침에 임원이 받는 연간 보수를 최대 26.4% 삭감하고 업무추진비를 10% 줄이는 내용을 담았다. 대학생 학자금 무상지원제도는 폐지하는 대신 융자방식으로 전환한다. 현 부총리는 “이번 대책은 개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그동안 누적된 부채와 방만 경영의 고리를 끊겠다”고 말했다.


 

신의 직장 ‘그들만의 복지 잔치’ 없앤다

 

 

 

11일 발표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정부가 불과 5개월 만에 다시 내놓은 공공기관 대책이다. 7월에 나온 ‘합리화 대책’이 현 정부 공공기관 정책의 기본 틀을 제시한 것이었다면 이번 대책은 국정감사와 언론 등에서 지적된 방만경영이나 과다부채를 시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무조건 공공기관을 힘으로 찍어 누르기보다는 기관장과 주무부처의 자율에 맡겨 기관 스스로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썼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서는 그간 공공기관 부실의 주요 해결책으로 거론돼 온 구조조정과 민영화, 낙하산 인사 개혁에 대한 언급이 모두 빠져 있다. 따라서 정부가 그간 예고했던 수준에 비해 강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방만경영 제대로 안 고치면 기관장 해임

정부가 이번 대책 마련을 위해 조사한 주요 공공기관의 방만경영 사례들을 보면 민간기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수업료가 비싼 자사고 및 특목고에 다니는 자녀에게도 수업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지출한 금액이 지난해에 1인당 500만 원 선이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대학에 입학한 자녀가 있으면 100만 원의 축하금을 준다. 과다한 휴가나 퇴직자 지원으로 도마에 오른 사례도 많다. 한전은 업무상 부상으로 인해 퇴직하거나 순직한 직원이 있으면 유가족에게 10년간 매년 120만 원과 장학금을 지원한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본인과 배우자 부모의 회갑 휴가를 3일이나 준다.

노조가 회사의 경영·인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기관도 많다. 고용세습 규정을 둔 많은 공공기관이 순직자의 가족에게만 혜택을 주는 데 비해, 강원랜드는 직무와 관계없이 사망하거나 정년퇴직을 할 때에도 직계가족에게 채용 우선권을 준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노조 간부를 인사조치 또는 징계할 때 노조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하고, 한국연구재단은 쟁의기간에도 임금을 전액 지급해야 한다.

정부는 우선 방만경영의 중점관리 대상으로 꼽은 20개 기관에서 내년 1월까지 정상화 계획을 받을 예정이다. 9월 말까지 추진실적이 미흡하면 기관장 해임을 건의하기로 했다. 방만경영을 제어할 수 있는 경영평가도 강화해 현재 8점으로 돼 있는 ‘보수 및 복리후생 관리’ 항목의 평가비중을 12점으로 높인다. 이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전체 등급이 크게 낮아져 성과급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기관장·임원 보수 최고 26% 삭감

공공기관의 부채 감축은 ‘자구노력-정책 지원-이행 평가’의 3단계로 진행된다. 정부는 부채 중점관리 대상인 12개 기관에 부채증가율을 당초 전망대비 30% 축소하고, 모든 사업을 사업타당성을 고려해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기관들이 이에 맞춰 내년 1월까지 부채감축계획을 제출하면 정부는 이를 심사해 요금 조정, 재정 투입 등 정책 지원을 한다.

이들 기관은 앞으로 채권 발행도 마음대로 못 한다.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5개 공기업이 공사채 발행을 하기 전에 주무부처 승인을 받게 돼 있는데 앞으로는 12개 중점관리 기관으로 확대된다.

기관장 및 임원 보수는 일률적으로 대폭 깎기로 했다. 기본연봉은 그대로 두되 성과급 상한을 내리는 방식이다. 성과급을 최대로 받는다고 가정하면 지금까지 3억 원대를 받았던 기관장들은 연봉이 2억 원대로 줄어든다. 금융 공기업은 기관장 연봉이 21.6%, 에너지 공기업은 26.4% 각각 깎인다. 직원들의 경우 3급 이상 최상위 직급은 동결하고 총인건비 인상률도 1.7%로 묶는다. 최광해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은 “노조와의 이면합의 내용은 1월까지 자진 공시토록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기관장을 엄중 문책할 것”이라고 말했다.

 

낙하산人事 손 안대고 개혁 가능할까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은 낙하산식 인사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인사를 기관장으로 내려 보내는 관행이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돼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이 ‘반짝 개혁’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올해 중반만 해도 낙하산 이슈는 옛 재무부 출신 관료들을 금융 관련 공공기관장에 선임하는 금융권 인사 문제에 국한돼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최근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기관인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김학송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선임한 데 이어 중요 에너지 공공기관인 지역난방공사 사장에 김성회 전 의원을 내정하면서 낙하산 인사의 구태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런 낙하산 사장은 출근 첫날부터 노조의 반발을 사 한동안 정상적인 근무를 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 노조와 타협하는 방식으로 겨우 출근을 시작하는 경향을 보인다. 첫 단추를 이런 식으로 꿰다 보니 업무 추진과정에서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노조의 눈치를 보는 비정상적인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례로 일부 공공기관은 비정기적인 특별 인사의 경우 노조의 동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한 공공정책 전문가는 “노조가 너무 세서 일부 기관이 정부로부터 미운 털이 박힐 정도지만 낙하산으로 내려온 사장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도 공공기관장들이 파업사태가 벌어질 경우 문책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복리후생과 관련한 단체협상을 소신 있게 추진하기 곤란한 상황임을 인정하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조차 “노조가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을 추진하는 데 협조해 달라”고 호소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낙하산 인사 체계를 개편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본다. 조직개혁 실적을 평가해 해임 건의까지 하겠다지만 권력과 가까이 있는 낙하산 기관장을 손대기는 힘들 것이라는 회의론이 벌써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허경선 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낙하산 인사를 줄이려면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개별 공공기관이 사장 후보를 추리는 임원추천위원회 회의 내용을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보고토록 하면 임원 선임과정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 동아일보(세종=홍수용.유재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