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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대통령 자문그룹 ‘7인회’ 大해부

 

대를잇는 충성,촘촘한 인적 네트워크가 파워 원동력

 

“휴대전화에 입력돼 있는 번호만 받고 나머지는 안 받은 지 한 4~5개월 정도 됐습니다.” 2008년 18대 총선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용갑 전 총무처장관은 몇 달 전부터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생소한 번호는 아예 무시한다고 했다. 그런 전화의 대부분은 방송 출연, 언론 인터뷰 요청이거나 안부 인사를 빙자한 청탁성 전화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올해 희수(喜壽·77세)에 접어든 김 전 장관에게 모르는 전화가 걸려오고, 그가 그 전화를 애써 외면하는 건 왜일까?

 

이유는 한가지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의 원로 자문그룹으로 알려진 이른바‘7인회’의 멤버라서 그렇다. 그가 외부 전화를 차단한 지도 새 정부의 출범 시점(2013년 2월 25일)과 대략 겹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7인회 멤버인 그가 뉴스메이커로서 가치가 있거나 힘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8월 5일 박근혜 정부 청와대 2기 인선에서 같은 7인회 멤버인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 기용되고부터는 전화가 빗발친다. 김 전 장관은 “나는 이미 망각의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이므로 모르는 전화까지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7인회가 뭐길래 이렇듯 세인들의 주목을 받는 걸까? 이 모임의 연원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근혜 후보 경선 캠프에 참여한 몇몇 원로급 인사는 경선 패배 후에도 지속적인 모임을 갖기로 했다. 김기춘 비서실장(74)을 비롯해 김용환(81) 새누리당 상임고문, 강창희(67) 국회의장, 현경대(74)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김용갑 전 장관, 최병렬(75)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75) 기파랑 대표 등 7인이다.

 

이들은 경선 캠프에서 선대위원장, 고문, 외곽조직 책임자 등으로 활동했기에 경선 패배의 아쉬움이 더욱 컸다. 이 모임의 좌장 격인 김용환 상임고문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2007년 경선 패배 후 그냥 흩어질 게 아니라 박 대통령의 미래를 위해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만든 친목 차원의 모임으로 출발했다”고 밝혔다.(26쪽 김용환 상임고문 인터뷰 참조)

 

이 모임이 세상에 알려진 건 지난해 4·11 총선 직후다. 김 상임고문이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7인회라고 부르는데 가끔 만나서 식사도 하고 환담을 나눈다. 총선이 끝난 뒤에도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 한 번 모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와 따로 만나는 친박계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에 관심이 쏠렸다.

 

이들 대부분은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공직에서 일했거나 청와대와 인연을 맺었다. 김용환 상임고문은 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김 실장은 검사 시절이던 1974년 묵비권을 행사하던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의 입을 열게 해 자백을 받아냈고, 1979년 박 전 대통령 서거 직전에는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일했다.

 

현경대 수석부의장은 법무부 검사, 최병렬 전 대표는 조선일보 정치부장, 안병훈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를 지냈다. 육사 17기 출신인 김용갑 전 장관은 1971년 소령으로 예편한 뒤 중앙정보부에서 일했고, 육사 25기 출신인 강창희 의장은 1979년부터 육군대 교수를 지냈다.

 

박 대통령은 7인회 멤버를 모른다?

 

박 대통령 일가와 대를 이은 인연, 또 풍부한 정치·언론계 경험으로 인해 영향력 있는 자문그룹이라는 인상을 주고도 남는다. 이들 가운데 강창희 국회의장,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이미 권력의 한가운데에 진입한 상태고, 김기춘 비서실장까지 ‘2인자’, ‘왕실장’, ‘여권의 군기반장’ 등의 호칭과 함께 화려하게 컴백함으로써 7인회의 주가도 덩달아 치솟았다.

 

언론에서는 이 모임을 일러 ‘멘토 그룹’, ‘숨은 권력’, ‘살아있는 권력’ 심지어 ‘박근혜 정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을 자문했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배출한 모임이라는 이유에서다.

 

멤버의 면면이 화려하고 쟁쟁하다 보니 이명박 정부 시절의 실세그룹 ‘6인회’와 곧잘 비교되기도 한다. 6인회는 지난 2007년 이명박 대선 캠프 중진 실세들로 구성된 최고결정기구 멤버들을 가리킨다. 당시 이명박 후보를 비롯해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재오 의원, 김덕룡 전 의원 등은 아침마다 머리를 맞대고 캠프의 선거 전략과 정책을 협의·조정했다. 6인회는 정권 출범 후 권력사유화 논란에 시달리다 이 전 부의장, 최 전 위원장, 박 전 의장 등이 줄줄이 사법처리되면서 와해됐다.

 

정작 7인회는 자신들이 6인회와 전혀 다르다고 강조한다. 김용환 상임고문의 말이다. “6인회는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중심이었고 형인 이상득,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씨 등이 실체로서 존재했다. 또 이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모임을 했던, 어떤 의미에서는 여권의 공식기구였다. 7인회는 일곱 사람이 모여서 간혹 점심 먹으면서 나오는 이런저런 얘기를 정리해 박 대통령에게 전해주는 모임에 불과했다. 그것도 대선 전의 얘기다.”

 

지금은 국정 운영에 어떠한 참견도, 발언도 하지 않는 순수한 친목 모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세상은 이들에게 힘이 있다고 본다.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한다.

 

김용환 상임고문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간 이상 우리의 소임은 끝났다”며 “대선 이후 박 대통령과 연락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도 “이 나이에 어디에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겠느냐”면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원로라는 명분으로 조언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은 근사하지만 일하는 데 이래라저래라 하고 돌아다니는 건 모양새가 사나운 것”이라고 못박았다. 김용갑 전 총무처 장관도 “내 임무는 박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것이었다”고 전제, “대선이 끝나고부터는 나하고 관계없으며 그저 잊혀진 채로 살아갈 뿐”이라고 했다.

 

청와대도 이 모임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7인회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박 대통령과 7인회라는 모임을 결부시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빗장을 걸었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박 대통령 생각에는 7인회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7인회 모임에 간 건 한두 번 정도다. 7인회라는 이름이 붙은 자리도 아니고 원로 몇 사람이 연말에 모여 식사한다기에 시간을 내서 잠시 들른 것이다.

 

그마저도 지난해에는 가지도 않았다. “물론 대통령이 7명 개개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누가 7인회 멤버냐고 물으면 모를 것이다. 7인회라는 그룹으로 그들을 상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선 당시 친박 진영에는 7인회 같은 모임이 도처에 늘렸었다.” 대통령이 과거 이 모임에 관심과 힘을 실어준 적도 없거니와 그렇게 세상에 인식되는 것조차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다.

 

7인회 모임보다 개개인의 역량이 더 파괴적

 

청와대 측은 나아가 지금의 박 대통령과 7인회 구성원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박 대통령은 7인회 멤버들에게 정치적 조언을 구하고, 그들이 조언하는 관계가 아니다.

 

대통령이 전화로 물어보지도 않거니와 그들이 전화해서 대통령에게 이런 게 좋지 않느냐고 얘기한 적도 없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정책이라도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사장되듯 사람과 조직 역시 대통령 안중에 없으면 그들만의 친목 모임에 불과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7인회가 김기춘 실장을 통해 인사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7인회가 김 실장을 청와대로 보냈을 거라는 섣부른 추정도 한다.

 

여권의 사정에 밝은 한 친박계 인사는 박근혜 정부 구성과정에서 일단의 원로들이 인물을 더러 천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주요 인사를 일일이 챙기는 시스템에서 이들의 요구는 거의 반영되기 어려웠다. 정부 출범 후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인물 추천 빈도가 뜸해졌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이는 허태열 비서실장 시절의 얘기”라며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일”이라고 했다. 7인회 멤버인 김 실장이 청와대 비서실을 장악함으로써 교분이 있는 원로그룹의 민원 및 의견수렴 통로가 되리라는 관측이 고개를 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마저도 청와대는 김기춘 실장 임명과 7인회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일축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발탁된 건 그가 김기춘이라서 그렇다. 7인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김 실장을 눈여겨봐왔고, 또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6년 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에 김 실장이 함께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가까이서 지켜본 김 실장은 ‘대단히 명석할 뿐만 아니라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해내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는 인상을 줬다고 한다.

 

그는 또 국회 법사위원장, 검찰총장, 법무장관 등 법조 분야 입법·사법·행정의 최고봉에 유일한 사람이다. 자기관리에 철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경력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오버(전횡)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청와대측은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김 실장은 ‘맡은 일을 잘하는가’와 ‘믿을 수 있는가’를 따져 사람을 쓰는 박 대통령의 구미에 부합했기에 중용됐다는 설명이다. 김용갑 전 장관도 김기춘 실장의 등용과 관련해 “그건 김 실장이 청와대에 필요해서 가는 거고,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고 정색하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도 박 대통령과 7인회가 그렇게 긴밀하거나 막역한 관계가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7인회 자체의 결속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외부에 과대 포장돼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 중진 의원은 “7인회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면 각기 다른 지향과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면서 “박 대통령과 개인으로 직접 연계되는 걸 선호할 뿐, 모임의 이름으로 뭘 도모할 계제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진단했다.

 

개개인의 역량과 인맥은 파괴력이 있겠지만 단체나 집단으로서의 7인회에 무게를 둘 이유가 없다는 관전평이다. 이러한 여권 내부의 역학관계나 생리와 무관하게 세상은 겉으로 드러난 양태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서 열린 현경대 평통수석 부의장 장남 결혼식에는 정부여당의 주요 인사가 대거 몰렸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 허태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선동 정무비서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 7인회 멤버인 김용환 상임고문, 최병렬 전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이 예식장을 가득 메웠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현 수석부의장은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하마평에도 올랐던 인물이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여권의 실세의 모양새였다.

 

또 7인회 멤버들은 앞서 경력이 말해주듯이 자기분야에서 최고 정점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연륜과 두터운 인맥으로 사회 전반에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7인회 멤버중 5인은 서울대 법대출신으로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 박준우 정무수석과 선후배 관계다. 7인회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인사들 상당수가 국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앞으로 7인회 이름의 공식 활동이 없다 해서 7인이 각기 가진 네트워크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인선과 조각이 늦춰지자 정치권에서는 국정원, 검찰, 주요 경제 부처 새 판 짜기에 7인회의 입김이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요직을 지낸 한 인사는 “7인회 모임 자체가 갖는 파워보다는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그 멤버들이 갖는 영향력에 권력에 민감한 이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고 말했다.

 

을(乙)을 부르는 대한민국 권력의 속성

 

더구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국정 주도세력이 안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노무현 정부의 386세력이나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6인회’와 소장파 그룹같이 정권 초반 관료사회를 제압하고,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할 일종의 ‘군기반장’ 그룹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통치 스타일의 산물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정치하는 과정, 집권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인자를 두지 않고 참모들도 철저한 견제와 균형의 틀 속에 관리하려 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보좌진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국정 비전 제시에도 적극 나서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런 참모가 드물다”며 “내부적으로 그런 행위를 우려하고 제어하려는 경향도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7인회 만큼 단일한 이름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조직을 찾아보기 어려운게 지금의 여권이다. 한국사회에는 언제나 ‘갑’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을’이 다수 존재한다. 이들은 조그만 틈이라도 보이면 비집고 들어가 로비를 하려 든다.

 

앞서 나온 이명박 정부 출신 인사는 “한국 사회에서는 실제로 힘이 있고 없고를 떠나 남들이 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권력이 된다”고 말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등장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7인회는 실체와 무관하게 영향력이 있다고 세상이 봐준다는 것이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다.

 

 

                       <자료 : 월간중앙(박성현/월간중앙 취재팀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