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s |
떠나라. |
프라하 오페라에서의 공연모습
1987년 5월 7일 파리의 St. Marie Madeleine 교회
프랑스는 그녀를 참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단지 샹송가수로서의 달리다가 아닌, 정말 프랑스인 가슴속에 그녀는 모두의 연인 이었다.
1933년 이집트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미스 이집트로 뽑혔을 만큼 뛰어난 미모를 앞세워 프랑스로 건너와
영화배우로 데뷔했는데 샹송계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프랑스에선 달리다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그렇게 프랑스 땅에 안치되었다.
몽마르뜨 묘지에 지금도 달리다의 팬들은 꽃을 들고 찾는다.
세계적인 스타로서 모든 것을 누렸던 그녀에게도 사랑으로의 고통은 있었던 듯 하다.
그녀가 자살을 하기전까지 불륜의 관계로 고통을 토로했다고 한다.
달리다는 평생의 절반을 우울증으로 보내다 결국에 자살로 마감 1987년 5월 3일 그녀의 자택에서 위스키에
수면제를 타 마신채.
여자로서의 달리다의 인생은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어서 그녀의 사랑은 언제나 상대방이 상처를 입거나 자살을 하는
불운이 뒤따랐다.
더우기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66년, 이탈리아의 칸초네 가수 '루이지 탱고'의 자살사건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1967년 2월 27일, 이탈리아의 관광 도시 산 레모 시 중앙에 위치한 사보이 호텔에 투숙한 가수 '루이지 탱고'가 그 방에서 38구경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제 17회 '산 레모 가요제'의 결선을 불과 하루 앞두고
일어난 사건 이었다.
'루이지 탱고' 자살사건은 두 말 할 필요없이 입상 노이로제 때문이었다.
산 레모 가요제에서의 낙선은 인기 생명에 지울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였기 때문에, '루이지 탱고'는 심리적 압박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이다.
이 급보를 들은 달리다는 급히 비행기 편으로 파리에서 날아와 애인 루이지 탱고 대신 그의 참가곡 '차오 아모레 차오'를
울면서 열창하여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였다.
이미 저 세상으로 가 버린 애인의 사랑에 매달리는 '달리다'의 애처로운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여
결국 이 곡은 입상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그러나 무엇인가 그녀의 주변에는 요기가 서려 있는지, 루이지 탱고의 자살이 준 아픈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전 남편 뤼시앙 모리스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두 죽음의 충격으로 딜리다는 한때 자살을 기도했으나, 오히려 그와 같은 비운이 거듭된 끝에, 그녀의 노래는 전보다
더욱 깊이를 더해갔으며 발표하는 노래마다 히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달리다의 노래는 열정 그 자체로, 성숙하고 풍만한 육체로부터 발산하는 요염한 열정적 매력과 그것을
표현하는 가창력의 양면이 그녀를 마침내 일류 스타로 끌어올려 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 시대의 모든 이의 사랑을 받았던 달리다는 떠났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1000곡에 이르는 주옥같은 곡들은 꾸준히 프랑스인들뿐 아닌 전세계 달리다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남아 사랑을 받고 있다.
출처 : http://blog.daum.net/smelan/6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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