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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Leoš Janáček, Sinfonietta 야나체크 ‘신포니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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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š Janáček, Sinfonietta

야나체크 ‘신포니에타’

Leoš Janáček

1854-1928

Jukka-Pekka Saraste, conductor

WDR Sinfonieorchester

Großer Sendesaal, Köln

2007

 

Jukka-Pekka Saraste - Leoš Janáček, Sinfonietta

 

클래식 음악작품들 가운데는 영화나 문학을 통해서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하게 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흐르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널리 알려진 말러의 교향곡 5번 중 아다지에토 악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최근의 사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 등장하여 새삼 인기몰이를 했던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들 수 있다.

사실 <신포니에타>는 오랫동안 <타라스 불바>와 더불어 야나체크의 대표적인 관현악 작품으로 꼽혀 왔지만,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역시 소설 <1Q84>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소설에 나왔던 말처럼, 기존에는 이 곡의 첫 부분을 듣고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라고 맞힐 사람은 ‘아주 적다’와 ‘거의 없다’의 중간쯤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야나체크와 그의 아내 즈덴카, 1881년

<신포니에타>는 야나체크가 72세 때인 1926년에 쓴 곡으로 다섯 악장으로 구성된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18세기 유럽 귀족들의 유흥을 위해 작곡된 일종의 무도곡) 형식의 작품이다. ‘신포니에타'(sinfonietta)는 이탈리아어로 교향곡을 의미하는 단어 '신포니아'(sinfonia)에서 나온 용어로, 통상적인 (후기 낭만주의 시대 이후의) 교향곡에 비해 간소한 규모나 형식을 취한 관현악곡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곡의 악기 편성은 제목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즉, 정규 편성의 현악ㆍ목관ㆍ타악 파트들에 더하여 네 대의 호른, 열두 대의 트럼펫, 두 대의 베이스 트럼펫, 네 대의 트롬본, 두 대의 테너 튜바, 한 대의 베이스 튜바로 이루어진 대규모(총 25대)의 금관 파트가 가세하는 것이다. 그런데 악기 편성이 이처럼 기형적으로 커진 데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었다. 이 이례적인 관현악곡은 <글라골 미사>, 현악 4중주 2번(일명 ‘비밀 편지’)과 더불어 야나체크의 ‘만년의 3대 걸작’으로 꼽히기도 하는데, 그 창작 동기는 ‘소콜’과 관련이 있다.

소콜 체전과 조국의 새로운 미래

체코어로 ‘매(새)’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소콜'(Sokol)은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민체육운동을 가리킨다. 이 운동은 체육 활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교육 활동을 병행한 것으로서, 체계적인 조직의 지휘와 지도 아래 진행되었고 특히 체전이나 체육 소풍을 중시했다. 소콜은 1862년 프라하에서 시작되어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각지로 급속히 번져나갔으며, 그 결과 1889년에 체코 소콜 연맹이 결성되었고 그 직후 각 지역을 관할하는 연맹이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1900년대 체코의 소콜 클럽 멤버들.

그런데 소콜이 그처럼 빠르게 확산된 이유는 이 운동의 직접적인 목적이 체코슬로바키아의 해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은 독일 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꾸준히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그 일환으로 체육 활동을 통해 체력을 증진하는 한편 민족 정신과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야나체크는 1925년 피세크에서 열린 소콜 체전에 참석했다가 브라스 밴드의 연주를 듣고 영감을 얻어 이 곡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스케치 해 놨던 아이디어들을 소콜 체전 조직위원회의 위촉을 계기로 발전시켜 이 곡을 완성했던 것이다. 당시 그의 조국은 1차 세계대전 종전의 결과로 독립을 쟁취한 직후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었고, 야나체크는 그런 조국에 대한 긍지와 기대를 이 곡에서 표현하고자 했다.

거대한 편성, 경묘한 흐름

레오시 야나체크는 체코를 대표하는 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낭만주의 시대의 이른바 ‘국민악파’에 속하지만, 후기의 전위적인 작품들을 보자면 체코 현대음악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어법은 체코 동부 모라비아 지방의 그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점에서 보헤미아 출신인 스메타나, 드보르자크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두 선배의 음악이 기본적으로 독일 음악의 영향 아래 있는 데 반해, 야나체크의 음악은 러시아 음악에 더 가깝다. 따라서 그의 음악은 보다 슬라브적이며, 한층 차별화된 개성으로 무장하고 있다. 아울러 그의 음악 전반에 모라비아의 자연환경과 토속적인 정서가 투영된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체코 모라비아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

<신포니에타>는 비록 악기 편성은 거대하고 육중하지만, 흥미롭게도 처음의 팡파르를 제외하면 대체로 경묘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모든 악기가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내는 법 없이 시종 차분하고 명료한 음색과 절제된 음량을 내도록 세심하게 다듬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야나체크는 이 곡에 대해서 “이 시대의 자유민, 그의 영적인 아름다움과 환희, 그의 힘과 용기, 그리고 승리를 향한 투쟁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작품은 1926년 6월 26일, 바츨라프 탈리히가 지휘한 체코 필하모닉의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는데, 당시 작곡가는 각 악장에 별도의 제목(괄호 안)을 부여하기도 했다. 또 그 제목들은 모라비아의 중심 도시인 브르노(Brno)의 특정한 이미지와 관련되어 있다.

Mark Elder - Leoš Janáček, Sinfonietta

Sir Mark Elder, conductor

The Hallé Orchestra

Royal Albert Hall

BBC Proms 2011

1악장: 알레그레토 (팡파르)

25대의 금관과 팀파니의 앙상블로 연주되는 팡파르이다. 야나체크가 체전에서 접한 군악대의 연주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악장인데, 그런 까닭에서인지 야나체크가 처음에는 이 곡을 ‘군대 신포니에타’로 명명하려 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야나체크 자필 악보. 1악장 팡파르..

2악장: 안단테 (성)

재빠르게 움직이는 오스티나토(반복 음형) 위에서 펼쳐지며, 두 개의 주제(오보에에 의한 춤추는 듯한 주제와 플루트와 오보에에 의한 감정이 풍부한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3악장: 모데라토 (여왕의 수도원)

약음기를 부착한 현악기를 사용한 은밀한 느낌의 곡. 몽환적인 흐름 속에서 야나체크 특유의 오묘한 시적 정취가 물씬 풍겨 나온다.

4악장: 알레그레토 (거리)

관악기(트럼펫과 클라리넷)가 중심이 되는 폴카로 출발하여 투티에 의한 스트레타로 마무리된다.

5악장: 안단테 (시청사)

지속되는 저음 위에서 멜랑꼴리한 주제가 전개된 후에, 작품 맨 처음의 팡파르가 다시 나타난 새로운 미래를 향한 벅찬 기대를 한껏 부풀어 오르게 한 다음에 마친다.

사실 필자는 아직도 이 작품이 광범위한 대중의 인기를 얻을 만한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그러기엔 이 작품은 너무도 독특하고 지역 편향적인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낯선 느낌이야말로 이 작품이 인기를 끈 비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보자면 수미상관으로 작품을 장식하는 장중한 금관의 팡파르는 이 작품만의 깊고 오묘한 세계로 인도하는 신호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제는 그 팡파르들 사이에 자리한 더욱 다채로운 음악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러면서 하루키가 소설 <1Q84>에서 이 곡을 일종의 테마 음악처럼 부각시킨 이유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추천음반

1. 찰스 매케러스(지휘)/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Supraphon

2. 이르지 벨로흘라베크(지휘)/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Chandos

3. 라파엘 쿠벨리크(지휘)/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Eloquence/DG

4. 사이먼 래틀(지휘)/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Warner/EMI

4. 조지 셀(지휘)/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Sony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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