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ur Grottger (1837-1867) - Evening Prayer of a Farmer
건강하고 아름다운 ‘늙음’에 대하여
현대사회의 특성가운데 하나는 노인계층의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준비할 틈도 없이 급격한 인구고령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통계청의 2000년도 인구주택 총 조사 결과에 기초한 장래인구추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총인구중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구성비가 7%인 고령화 사회(Ageing society)가 되었으며, 2019년에는 14%인 고령사회 (Aged society), 2026년에는 20%인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이다.
이러한 인구 고령화 속도는 1865년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고령화 사회가 된 프랑스의 경우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가 되는데 115년이 소요되었으며 1975년에 가장 먼저 고령사회가 되었던 스웨덴의 경우는 85년이, 가장 빠른 속도의 인구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의 경우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가 되는데 24년이 소요된 것에 비교해볼 때 그 속도가 매우 빠른 것으로 ‘압축적 고령화’라고 명명할만하다.
1960년대에 경우 노인인구는 8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3% 수준에 불과하였지만 2006년도 현재는 459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0%를 웃돌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노인인구가 그 구성비나 절대적인 규모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459만명의 노인인구는 552만명인 20대 전체 인구의 규모와 거의 비슷한 것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필요로 하는 대상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양적 규모를 확보한 것이며, 따라서 사회적 통합이라는 측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 된 것이다.
지역사회 혹은 국가의 인구구성을 살펴보았을 때, 노인 인구의 구성 비율이 높아 진 것은 전체 인구집단의 평균수명이 연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의학 및 과학기술의 발달과 출생률 및 사망률의 저하와 생활수준의 개선이라는 이유로 인구의 고령화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일간지인 뉴욕데일리뉴스(New York Daily News) 본사에 혼자 살고 있는 어느 할머니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날아 왔다.
"나는 몸이 불편하여 외출도 못하고 하루 종일 방안에만 살고 있어 사람구경을 못 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전화가 있지만 한 번도 울리지 않습니다.
나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외롭게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너무나 외로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할머니는 편지에 3달러와 6개의 우표를 동봉해 보내면서, 3달러는 자기한데 전화해줄 사람의 비용으로 쓰고,
우표는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사용해 달라는 부탁을 덧붙였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젊음을 숭상하고 젊음의 문화가 중심인 사회이다.
젊음은 아름답고, 새것은 신선한 것이며,늙은 것은 추한 것이요, 오래된 것은 낡고 쓸모없는 것처럼 인식되어져 왔다.
자동차도 가구도 오래되면 새것으로 갈아치우듯이 사람도 나이 먹으면 폐기물 취급을 받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젊어지기를 강력하게 원한다.
젊어지기 위하여 각종의 비타민, 보약, 약초를 복용한다.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보톡스(Botox)와 같은 주사제를 투입, 주름살을 제거하는 등 화장품,
헬스클럽, 성형수술 등을 통해 한 살이라도 더 젊어 보이려는 노력을기울이고 있다.
그러기에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니, 의로운 길을 걸어야 그것을 얻는다."
는 잠언 16장 31절의 말씀은 현대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백발이 영광의 면류관이 되지 못하고 부끄러운 가시관이 되어 모두가 백발을 숨기려고 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노인됨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노화되어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일반적으로 인구학이나 사회학분야에서는 ‘노인(Aged)’을 65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학적 입장에서 ‘노화(Aging)’란 수정에서부터 출생, 성장,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물이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서서히 모든 장기의 기능이 저하되어 체내의 항상성이 붕괴되어 결국 사망에 이르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노쇠(Senescence)‘는 노화의 마지막 단계로 나빠지기만 하는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늙어서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죽음을 향하여 날마다 노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노화되는 것은 삶의 한 과정이고 필연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며, 사람의 숙명의 길이다. 그러기에 이마에 생기는 주름살과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에 대한 불안과 염려보다는 자신의 삶을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찾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피조물의 본분인 것이다.
노년기란 자유함과 성숙이 있는 기간임을 인식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노년기를 불행한 기간, 기쁨이 없는 기간으로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인생의 계절마다 플러스, 마이너스 요인이 있다. 유년기는 근심걱정이 없고 행복한 기간이다.
그러나 유년기에도 가정과 사회변화로 인한 두려움과 극심한 실망을 체험할 수 있는 기간이다.
청년기는 새로운 경험을 맛보며 무한한 가능성을 향하여 도전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청년기는 자기의 정체성 찾기를 위한 고뇌와 번민이 있는 질풍같은 때이기도 하다.
중년기는 성취감을 체험하며,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지만 또한 가정과 사회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부담스러운 때이기도 하다.
노년기는 여러 가지 제한이 있는 시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자녀양육, 직장이나 사업의 책임으로부터 자유함을
맛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개발하며 자아실현을 통해 성숙을 맛볼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특히 노년기의 3중고라 할 수 있는 건강, 경제적인 능력, 소외 등으로 인해 불편함과 제한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이러한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고 영적인 차원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은총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과 자신감위에서가 아니고 인간의 약함과 겸손위에 그의 나라를 세워 나가신다.“
라고 말한 영국의 신학자인 존 스튜어트(J. S. Stewart)의 말처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도구로 쓰임받기에
가장 적합한 기간이 노년기가 아닐까?
아놀드 토인비(Amold Toynbee)는 81세에 "우리는 늙어갈수록 미래를 바라보며 성장하려고 하기보다는 과거에
안주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과거를 돌아다보는 자세에만 빠져 있다면, 우리는 육체의 죽음을 맛보기 전에 이미 영혼이 죽은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영혼과 정신은 육체의 한계에 제한받지 아니하고 영원의 세계, 진리의 세계를 무한히 탐색할 수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지향적이 되어서 신체적 제한을 초월해 더 영적으로 진리를 찾아 하나님의 오묘하신 세계를
탐색하며 영적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라고 역설했다.
또한 대지의 작가 펄벅(Pearl S. Buck)은 80세 생일을 맞이하여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창의적이고 더 사회적으로 유용한 사람이 되었다.
50년 전보다, 40년 전보다, 30년, 20년, 심지어 10년 전보다 휠씬 창의적이고 유용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70세 이후에 지나간 10년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해왔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의 삶을 술회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연령기간에 있더라도 계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노년기에는 청년, 중년기에 너무 분주하여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제는 시간이 많이 주어졌기에 행할 수가 있다.
할 일들을 찾으면 창의적이고 보람된 일들이 많이 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깊이 연구하고 묵상할 수 있다.
과학과 철학,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놀랍고도 새로운 그리고 신비로운 세계, 영원하고 풍성한 세계를
성서의 세계 안에서 찾을 수 있다.
평생을 인도 선교사로 헌신하다 70세에 은퇴한 벤쟈민 리리에(Benjamin Ririe)는 은퇴 후 신약성서를 원어로 읽기 위해 헬라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80세부터 역시 더 깊은 묵상을 위해 히브리어를 공부하였으며 90세가 되어 이제 자유롭게 성서를 원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년기에는 무용지물의 시대, 이제는 죽음만을 기다리고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고 포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제2의 세대의 삶을 살고 있다.
노년기는 성장이 정지되며, 퇴보하는 시기가 아니다.
노년기에도 영적, 인격적, 지적인 성장과 성숙이 있다.
그리스도의 영은 사람의 심령을 날로 새롭게 하기 때문이다. 늦은 가을철의 단풍 나뭇잎이 아름다운 것처럼,
노년기에도 독특한 아름다움과 매혹이 있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게 되었다.
그는 정서적으로 심각하게 억압된 상태에서 헤매다가 중세기 유대교 랍비의 가르침에서 큰 위로를 얻게 되었다.
"인생의 황혼기를 기쁨과 희망 속에서 맞이하라.
삶의 마지막 기간을 불안과 초조와 우울 속에서 보내지 말고, 열심과 정열 속에서 보내어라.
삶의 마지막 기간인 노년기는 가장 좋은 기간이다.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이 말에서 큰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그의 아내였으며, 역시 시인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Elizabeth Browning)을 위하여 시를 지었다.
Grow old along with me!
(나와 함께 늙어가자!)
The best is yet to be
(가장 좋은 시절이 앞에 있으리)
The last of life for which the first was made
(인생의 초반기란 노년기를 위하여 만들어 진 것)
Our times are in His hand
(우리 인생은 내가 전체를 계획했노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Who saith, "A whole I planned." Youth shows but half, trust God
(젊음이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See all nor be afraid
(하나님을 신뢰하며 삶의 전체를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말자)
카를로 루스티첼리 곡, Il Ferroviere(철도원)
' 명상 POST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레이데스의 사명 - 인간 생명의 진화 (0) | 2014.11.24 |
---|---|
러셀의 생애와 사상 (0) | 2014.11.24 |
정의란 무엇인가? (0) | 2014.11.22 |
아웃사이더 (0) | 2014.11.22 |
서울대 선정 동서고전 200선 (0) | 2014.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