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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POST

아웃사이더

          

 

 

 

 

 

     아웃사이더

 

 

 

 

1954년 크리스마스날 영국의 한 젊은이가 돈이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런던의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쓸쓸히 저녁을 먹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그는 자기가 그동안 읽은 수많은 문학작품 속의 인물들과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

 

즉 다른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고 있는 이 세상과 자신은 별개라는 생각,

자신은 세상과 단절되어 동떨어진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그날의 일기장에 기록하고 이 문제를 좀더 정리하여 책을 쓰기로 맘을 먹고

일년에 걸쳐 쓴 책이 바로 이 <아웃사이더>이다

 

이 책이 출판되자 많은 비평가들은 마치 전기쇼크를 받은 것처럼 당황했으며

전세계 매스컴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탄복했고 그의 비평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그때 그의 나이 24세였고, 16세에 학교를 중퇴한 뒤론 어떤 공교육도 받지 않았다.

 

 

 

 

 

 

 

 

 

아웃사이더의 사전적 의미는 국외자 또는 열외자인데, 저자는 소설 속의 주인공을 예를들어 너무 깊이 본 사람,

그러나 이렇다 할 재능도 없고, 완수해야 할 사명도 없으며, 전달해야 될 감동도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즉, 자기에게는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있지만 그걸 어쩌지 못하고 그냥 혼자 삭히며

지신이 속한 사회에서 이질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까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전형적인 예다

          "오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소설 전편에 흐르는 이 무관심한 기분은 그가 거의 아무것도 느끼지않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는 그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이 현실세계가 생소하게 느껴지거나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비현실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뫼르소는 장례식을 치룬 후 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고 일광욕을 즐기다가 영화관엘 가고 여자와 자고 마침내 특별한 이유없이 살인을 한다

재판과정에서도 이런 무관심한 태도로 인해 그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처형 전날 밤 그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는다

          "어머님은 죽음에 임박하여 자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과 같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었으리라

           나도 역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그는 늘 막연하게나마 그의 인생이 비현실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에 직면하여 자기의 인생이 비현실적이었음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저자는 헤밍웨이, 사르뜨르, 헤세등의 작중 인물들

그리고 로렌스, 고흐, 니체등의 예를들며 아웃사이더의 특징을 더 파헤친다

 

그러면서 그들은 변종이 아니라 낙관적이고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보다

민감한 인간이라고 얘기한다

 

 

아웃사이더에겐 자기가 태어난 세상은 언제나 무가치한 세계이다

목적과 방향을 찾는 그의 욕망에 비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사는 것이 아니라 표류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웃사이더의 비극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군중심리적 본능이 있어 다수가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게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세계가 질서정연한 사회이다

 

불합리하고 두려운 불온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똘스또이가 말한 동양의 우화를 인용하며 보통 사람과 아웃사이더를 비교한다:

한 사나이가 동굴 옆 나무에 매달려 있으며 밑에서 으르렁거리는 짐승과 위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용을 피하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두 마리의 쥐가 그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를 갉아 먹고 있다

 

나무에 매달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이 사나이가 어쩌다가 나뭇가지 밑에 몇 방울의 꿀이 발려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기울여 그 꿀을 핥아먹는다. 이것이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다

 

절박한 상황하에서도 먹고 마시고 영화를 보고 좋다고 웃는다 - 라 돌체 비타 (La Dolce Vita: 달콤한 인생)

그러면서 벌꿀에 식욕을 느끼지 않는다고해서 아웃사이더를 병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이 인간이다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 산다고 아웃사이더는 판단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옥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자유를 모르는 우리 속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도 역시 감옥에 있다. 다만 그는 자기가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탈출하고자 열망한다. 그러나 탈옥은 쉬운 일이 아니다

 

뫼르소는 죽음에 임박해서야 깨달음을 얻는다 - 자기의 인생이 비현실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제 곧 이 비현실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

그러나 깨달음을 얻기위해 모두가 사형수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도스또옙스끼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 아웃사이더의 구원에 대하여 고찰하면서

인간은 자기를 휘감는 사소한 문제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되면 언젠가는 순수한 존재에 대한 통찰의 순간이 온다고 한다

그 통찰은 세계의 여러 종교에 거듭 나타난 사상 -

 

인생은 미망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나

갑자기 이 미몽에서 깨어나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 는 사상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결론으로 가면서 저자는 아웃사이더가 아웃사이더이기를 그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여러가지를 시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자기표현을 어떻게 할 것이가를 알고자 한다

 

왜냐하면 자기를 알고 자기 속에 숨은 미지의 가능성을 자각하는 방법은 지기표현 외에 없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의 비극은 결국 자기표현의 비극인 것이다

 

 

저자는 자기가 이 책을 쓴 목표가 아웃사이더 문제에 완전하고 절대적인 해답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뿌리 깊은 전통을 갖는 해결책 혹은 해결의 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있다고 말하며 이 책을 끝 맺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20대 초반의 젊은이의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그의 방대한 독서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양의 철학, 문학, 신학, 심리학등을 두루 넘나들 뿐아니라 동양의 힌두교 불교를 논하고 공맹과 노장의 저서를 인용한다

 

그 나이에 그 많은 책들을 읽은 것도 놀라운데, 그리고 책을 읽었다고 해서 읽은 것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그는 자신이 읽은 책들을 완벽하게 이해했을 뿐만아니라

그 많고 어려운 책들을 일목요연하게 꿰뚫으면서 아웃사이더라는 자기의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을 볼 때

과연 천재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 존재의 슬픔, 불합리, 덧없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겪는 소외의 문제

그로 인해 그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무관심이나 광기등을 설명하며 그들의 문제를 사회가 좀더 이해해 주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고 생활하고 싶어하나 자신들의 희망과는 달리 그게 잘 안되기 때문이다

 

 

금전만능, 성공지향의 사회 속에서 매일매일 앞만 보면 바쁘게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한 걸음 물러서서 사물을 좀 더 깊이 볼 것을

그리고 주변에 있는 소외된 사람들을 좀 더 관심있게 볼 것을 촉구한다

 

 

이 책이 쉬운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읽기 시작할 때 웬만한 어려움은 각오했다

그러나 몇 페이지도 나가기 전에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아 내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이 나이에 20대 청년이 쓴 글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다니...

그러다가 몇년전 헌 책방에서 눈에 띠어 사다 놓은 원서가 생각나서 찾아보니 번역에 문제가 많았다

 

 

번역한 문장이 딱히 틀리다고는 할 수 없으나 원문을 거의 직역 수준으로 번역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말이 이리 돌고 저리 돌고...

 

 

그리고 긴 문장(sentence)을 중간에서 잘라 다음 문단(paragraph)으로 만든 경우가 많았다.

왜 그랬는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글 쓰기의 기본은 한 문단에 한 생각/주장/사상만을 서술하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논리적인 순서로 여럿으로 나누어

한 문단에 하나씩만 기술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며 이것은 글쓰기의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번역자가 자기 마음대로 원작의 문장을 중간에서 잘라 다음 문단으로 넘기는 행위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용납도 안된다

 

 

원서에는 각주가 많이 있는데 번역서에는 많이 생략 되었다

초반부에는 각주를 본문에 포함시켜서 (이것도 이해가 안된다) 누락시키지는 않았지만

뒤로 가면서 아예 각주를 생략해 버렸다

 

저자가 자신의 사상을 피력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각주를 다는데

이러한 각주를 생략하고도 저자의 사상을 백 퍼센트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예를 들어 "붓다가 무신론자가 아니듯이 니체도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는 문장이 있다

불교가 무신교이며, 니체가 '신은 죽었다' 고 말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데

그들이 무신론자가 아니라니.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

 

원서를 보니 각주가 있다 - 라다크리슈난 교수가 '주요한 우파니샤드' 를 편찬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강력한 논쟁을 제기하고 있으며, 또 타고르의 부록도 참조하라고 되어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붓다와 니체를 무신론자로 알고 있지만

인도의 저명한 교수가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고 자신은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런 각주를 생략했으니 번역서를 읽는 독자는 이런 내용을 도저히 알 길이 없어

상식에 반하는 잘못된 지식을 습득하거나 아니면 저자가 틀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용어의 선택에도 문제가 있다:

 

 

이 책에서 많이 언급되는 구제는 원서의 save를 번역한 것이다

물론 저자가 비종교인이고 이 책이 종교서적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책의 내용은 영혼의 구원(기독교적인 의미는 아니지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구원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구제빈민구제와 같이 정신적인 면보다는 물질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6장의 제목 The Question of Identity동일성의 물음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동일성보다는 정체성이 맞는 말이다 -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의 정체성

 

 

7장의 제목 The Great Synthesis거룩한 합일로 번역했는데

여기서는 굳이 종교적인 용어를 쓸 것 없이 그냥 위대한 합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종교 용어를 쓸 데와 안쓸 데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소한 잘못/실수들이 눈에 많이 띤다:

 

 

다른 작가의 연극을 소개하는데 극중에서 갑자기 에라노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누군지 알 수 가 없다

원문을 보니 앞 페이지에서 "스트로드의 누이인 에라노가 런던에 가고..." 라는 문장이 있어

그녀가 주인공의 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번역서에는 "스트로드의 누이가 런던에 가고...

 

" 로만 번역되어 있어 그녀가 주인공의 누이라는 것을 몰라 극의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름이 Eleanor이므로 엘리노어라고 해야 하는데 에라노라고 한 걸로 보아

혹시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또 같은 연극 대본에 Evan이라는 등장 인물이 있는데

한 곳에서는 에반이라고 하고 다른 페이지에서는 이반이라고 하여 번역서만 읽는 사람은 두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다

 

 

역시 같은 대본에서 스트로드가 미국에서 죽어가는 애인을 찾아 런던을 떠난다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그가 캐나다의 사우스앰튼에 도착하기 전에 그 여인은 죽는다

아니, 캐나다의 사우스앰튼이라니?

 

아마 역자는 스트로드가 미국으로 떠났으니까 미국에 있는 사우스앰튼을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미국에는 사우스앰튼이라는 항구가 없다

 

그런데 캐나다에는 있다. 아마 그래서 캐나다의 사우스앰튼이라고 한 것 같다

그러나 캐나다에 사우스앰튼이라는 항구가 있기는 하지만 바다가 아닌 내륙 호수에 있다

그럼 어떻게 된건가?

 

원래의 뜻은 영국에 있는 사우스앰튼을 가리킨다고 봐야한다

배를 타고 여행하던 당시에 영국의 사우스앰튼은 대서양으로 출발하는 아주 중요한 항구도시였다

 

청교도들을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출발한 곳도, 또 비운의 타이타닉호가 출발한 곳도 모두 이 사우스앰튼이다

그러니 스트로드가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런던을 떠나 영국에 있는 사우스앰튼으로 가는 도중에 그 여인이 죽은 것이다

 

 

"모든 인간은 탄생의 유물인 진흙과 알의 껍질을 끝까지 몸에 지녀 나른다" 라는 문장이 있다

진흙이라니? 인간을 흙으로 창조했다는 기독교적인 의미인가?

 

원문을 보니 slime이라고 되어 있는데, slime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진흙이라는 뜻이 맨 앞에 나오지만

그 다음에 점액이라는 뜻도 있다. 즉, 계란을 깨면 나오는 흰자위와 같은 끈끈한 점액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slime이란 말 다음에 알의 껍질이라는 말이 나오므로 바로 그 점액을 얘기한다고 보는게 더 옳을 것 같다

 

 

Anti-humanist휴머니즘이라고 잘못 번역했는데

바로 그 앞 페이지에서는 반(反)휴머니즘이라고 제대로 번역한 걸로 보아 실수로 보여진다

그러나 원서를 안보고 번역서만 읽는 사람은 앞뒤가 연결이 안되어 이해가 안된다

(휴머니스트를 휴머니즘으로 한 것은 문맥상 문제가 없다)

 

 

Not을 빼먹어 뜻을 정 반대로 만들고 있다

즉 원서에는 not to limit (한정시키지 않으려고)인데 번역서에는 한정시키려고로 번역되었다

 

 

Wales웨일즈라고 하지않고 웰즈라고 번역해

이 책에 언급된 작가 H. G. Wells (웰즈)와 혼동시키고 있다

 

 

러시안 룰렛 (Russian Roulette)러시아 공굴리기로 번역했다

바로 다음 문장에 권총에 탄환을 넣고 총알을 잰 다음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설명이 있는데도...

그래서 문장 연결이 안되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And he said; "It looks as if I'll have to drop you off at the next garage." 라는 문장을

'그리고 마치 "나는 다음 차고에서 너를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 고 말하는 것 같았다' 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as ifgarage 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즉 이 문장은 '그리고 그는 "다음 자동차 서비스 센터에서 너를 내려 줘야 할 것 같다" 고 말했다' 라고 번역해야 옳다

왜냐하면 garage라는 말이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주로 차고라는 뜻으로 쓰이나

영국에서는 자동차를 수리/정비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자가 영국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글의 내용을 봐도 도로를 달리다가 차고에 내려주겠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저자는 "Oh no! (아 안돼)" 하고 속으로 외치며 실망스러움을 나타내지만

번역은 "아!" 로만 되어있어 트럭 운전수의 말에 동의하는 걸로 이해될 수 있다

 

 

이상의 것들은 원문번역본을 모두 다 대조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다가 이해가 잘 안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될 때

원서에서 그 부분을 찾아 대조해 본 결과인데 책을 읽는 내내 짜증이 나고 너무 실망스러웠다

 

 

역자의 약력을 보니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 대학을 나오고 미국의 대학원을 수료한 번역 문학가라고 하는데

그런 실력파가 이런 오류들을 범하다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독자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여러 대학의 강사를 역임했다는 약력을 보아

혹시 자기가 번역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원서를 몇 페이지씩 할당해 주어 번역을 시킨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왜냐하면 위에서 지적한 오류들이 최고의 명문 대학을 나오고 미국 유학까지 갔다온 사람이 저지르기에는

 

너무 초보적인 수준이고, 번역 작업에 일관성이 결여된 사례들로 보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학생들이 열심히 사전을 찾아가며 번역하다가 생긴 오류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초보적인 오류들이 여과없이 그대로 출판되었다는 것은

역자가 학생들이 번역한 것을 검토도 하지 않았고, 출판사도 제대로 교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번역자에 대한 실망 못지않게 출판사에 대한 실망도 크다

왜냐하면 이 출판사는 양서를 출판하는 곳으로 알려졌고

나도 젊은 시절 이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서가 영국에서 출판된 것은 1956년이지만 우리나라에 번역본 초판이 나온건 1974년이라고 한다

나도 70년대 이 책이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읽긴 했지만 기억나는게 별로 없다

아마 제대로 이해를 못했나보다. 그러니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겠지...

 

그래서 헌 책방에서 원서를 봤을때 반가운 마음으로 샀고

한국 서점에서 올 해 새로 발간된 이 책을 봤을 때 망설임없이 구매한 것이다

 

 

74년에 번역본 초판이 나왔으니 벌써 40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 출판사는 초판이래 거의 십년에 한 번씩 이 책을 발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오류들이 뻔뻔하게(?) 그대로 있다니...

 

한 번 번역 출판한 책을 몇 년뒤에 다시 출판할 때에는

번역자도 처음 번역때 잘못된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고

출판사도 초판에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너무 말이 길어져 생략했지만 교정 오류도 여럿 있다)

 

그런 것들을 교정한뒤 다시 출판하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번역자나 출판사나 다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잘못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횟수를 거듭할수록 잘못을 시정하여 완벽에 도전하는 자세가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출판한 책을 십년에 한 번씩 아무런 교정도 없이 그냥 복사기로 찍어내듯 출판한다면

이는 너무 무책임한 일이며 이런 출판사는 양서를 출판하는 곳이라고 할 수 없다

 

 

얼마전에 국내 모 일간지에 유명한 영화 감독이 인터뷰한 기사가 실렸다

그는 70년대 젊은 시절에 자기에게 영향을 준 책으로 이 책을 꼽았다

 

그리고 그때 자기의 친구들과 소위 지성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방에 앉아 이 책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또 이 책을 주머니에 꼽고 다니는 것이 일종의 멋으로 간주되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대인 현대사회에서 외국과의 문화교류는 필수이며 중요하다

선진문화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지만, 그들을 제대로 알아야 국제사회에서 그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언제나 그들의 뒷꽁무니만 좇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외국의 문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이러한 중요성과 책임감을 절감하여

자신들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