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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읽는 명상록

<안네의 일기> 이야기

 

 

 

  1942년 6월 12일, 열세 살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안네의 일기>를 쓰기 시작하다.

6월 12일은 안네가 태어난 날이면서 <안네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이다.

 1942년 13세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이었다.

 

안네는 “생일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당신을 보았다”고 일기에 적었다.

유대인 학살이 전염병처럼 퍼지던 시절에 소녀 안네에게 일기장은 단순한 노트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비밀들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안네는 자신의 일기장을 인격화 시켜 '키티'라고 부르면서 마치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여느 소녀처럼 예쁘고, 개성이 강하고 발랄한 유대인 소녀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실하게 일기를 적음으로써

점점 성숙해 진다. 그녀는 이 일기를 통해 나치 치하를 살아냈던 유대인들의 자서전을 남긴 셈이다.

 

  나는 이 넓은 세상에 외톨이입니다

 

  안네가 일기를 쓰게 된 동기는 감상적인 문학소녀의 모습이다.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가 끔찍한 사고를 당해 병상에서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화상을 그리면서 생의 의미를 찾았던 것처럼, 그녀도 무척 외로웠다. 외로움은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감옥과 같은 은신처에서 ‘외톨이’ 안네는 일기를 쓴다. “드디어 문제의 핵심,

내가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 말할 차례인데, 그건 한마디로 마음을 털어 놓을 만한 참다운 친구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겠어요. 열세 살 먹은 여자 아이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외톨이라고 느끼고 있다.

아니 실제로 외톨이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까요.”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 전시되어 있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출간된『안네의 일기』

 

  안네는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유대계 독일인이다. 은행가인 아버지 오토 프랑크과

어머니 메디트 사이에서 태어난 유복한 집안의 소녀였다.

 

1933년 나치당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유대인 학살 정책이 만연하자, 안네의 집안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망명을 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1942년은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유대인을 색출해서 수용소로 끌고 가던 때였다.

안네의 일기는 바로 그 시기를 그려낸 유대인 소녀 작가의 작품이다.

 

  사춘기 소녀가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참다운 친구가 없다는 고독감을 느끼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꼭 은신처에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중고를 겪는다.

독일군을 피해 은신처에 숨고, 나돌아 다니질 않으니 친구가 없다.

 

이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된 일기 쓰기는 안네가 바라보는 시대 상황, 사랑을 포함한 내면 고백, 나치의 만행을

놀라운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너무나 성숙한 문장이어서, 이 일기의 진위여부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분석결과 그녀의 일기임이 밝혀졌다. 이 놀라운 일기를 보면 훗날 작가로서 대성할 재능마저도

 말살시킨 미친 전쟁의 본질도 보인다.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

 

  안네는 일기장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 고 적었다.

안네의 일생은 너무나 어린 나이에 끝이 났지만, 그녀의 표현대로 종이는 인간보다도 더 잘 참고 견뎠다.

 

 1942년 6월 12일부터 1944년 8월 1일까지 은신처에서 몰래 살았던 기록이, 안네가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고

믿었던 종이에 남았다.

 

 종이는 글을 만나 완성된다. 만년필이건 연필이건 붓이건 간에 손의 연장인 도구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종이는 기다리고 견딘다.

 

 

   암스테르담의 안네의 집. 내부에는 은신처로 통하는 입구를 책장으로 가려놓았다.

 

  안네의 아버지가 마련한 네덜란드의 프린센흐라흐트 263번지 건물 창고에는 안네의 식구를 포함한 모두 8명의

유대인들(오토 프랑크 가족 4명, 일기에는 판 단이라고 나오는 판 펠스 일가 3명, 치과의사 뒤셀)이 숨소리를 죽이면서

살았다.

 

 건물에 교묘하게 만들어진 비밀 공간에는 작은 라디오 하나와, 외부에서 도움을 주는 지인들만이 가끔 들러

생계를 도와주었다.

 

  은신처에서 안네는 집단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들과 자신을 비유하면서 '천국과 같은 생활'이라고 했다.

비록 사냥개 같은 독일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기침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공간이었지만, 맑고 밝은 소녀로서 안네는

어머니와의 말다툼, 같이 사는 다른 가족들과의 반목, 오랜 감금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사춘기 소녀의 성적인 호기심과 사랑이 움트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동경하지만 마음 밖으로 드러내선 안 되는 것

 

  그녀의 일기에는 날이 갈수록 성숙해져 가는 안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숨어산 지 1년 반이 지나자 이렇게 쓴다.

 

  “아마 당신도 1년 반이나 갇혀서 지낸다면 종종 견딜 수 없게 될 때가 있을 거예요.

아무리 올바른 판단력이 있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의 솔직한 느낌까지 억누를 수는 없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세상을 보고, 청춘을 맛보고, 자유를 만끽하고, (…)

나는 이런 걸 동경해요.

그러나 그런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죠. 하기는 우리 여덟 사람 모두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낸다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요?”

 

  안네의 일기에 적혀 있는 나치의 만행 소식을 듣고 유대인들을 위해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이나, 총소리, 대포소리,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 등 전쟁에 대한 공포, 실수로 은둔처에서 발각될까 봐 조바심을 치는 모습이 있다.

 

저항문학으로 평가되었던 이러한 면보다는 보통 소녀로서 꿈꾸고 있는 안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어머니에 대한 불만, 언니와의 말다툼, 성적인 호기심, 첫사랑 소년에 대한 그리움들.

 

2년이 넘게 숨어 사는 동안 그녀는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처럼 점점 꿈꾸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었다.

소녀에게 환한 태양 아래서 마음대로 활보하는 잠깐의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숨어 지내는 동안 키가 얼마나 컸는지 문설주에 표시해둬

 

  1944년 7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안네는 드디어 은신처를 떠나 자유를 만끽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어둠이 깊어 새벽이 오는 것이다.

 

그 희망의 새벽별을 바라보던 1944년 8월 4일 나치의 비밀경찰에 은신처가 발각되었다.

누군가의 밀고에 의한 것이었다. 안네의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오던 희망과 자유의 새벽별은 어둠과 죽음의 늪으로 떨어졌다.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육군 장교였다.

 안네의 은신처를 급습한 나치의 비밀경찰 카를 실베르바우어는 그 사실을 알고 잠시 머뭇거렸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조국을 위해 전쟁을 치른 장교마저도 수용소로 보내야 하는 현실이었다.

 훗날 이 비밀경찰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딸 안네를 비롯한 자기 가족이 은신처에서 지낸 2년은 행복했다는 말도 했다.

내가 믿으려 하지 않자 그는 은신처로 온 뒤 안네가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표시를 새겨 넣은 문설주를 가리켰다.

 

” 안네가 있었던 곳이 비록 은신처였지만, 같이 숨어산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았고, 전쟁이 어서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보다시피, 우리 딸은 작가랍니다.”

 

  1944년 9월 6일 안네는 은신처의 사람들과 함께 폴란드의 작은 마을 아우슈비츠에 끌려간다.

그 다음은 영영 이별이었다.

 

판 펠스 씨가 제일 먼저 가스실에서 사라졌고, 안네의 언니 마르고를 ‘어떻게’ 하려던 경비병에게 대들던 어머니가

 두 번째로 사라졌다. 은신처에서 같이 자라면서 사랑을 느꼈던 남자친구 판 펠스 씨의 아들 페터도 사라졌다.

 

 

 은신처에 숨어 사는 동안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안네와 지금도 애도 행렬이 끊이지 않는 그녀의 무덤

 

  1945년 3월경, 아우슈비츠에서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송된 안네와 언니 마르고는 열악한 환경의 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

 

두 자매가 죽은 날짜는 확실하지 않지만, 영국군에 의해 수용소 사람들이 구출되기 한 달 여 전으로 추정한다.

유일한 생존자인 안네의 아버지는 아우슈비츠에서 극도로 나빠진 건강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송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들어와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겪게 되었다.

 

  독일 비밀경찰이 휩쓸고 간 은신처에 버려져 있던 안네의 일기는 이들의 은신생활을 도와주었던 미프 부인에 의해

보존될 수 있었고, 훗날 아버지에 의해 출판되어 전 세계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안네의 일기를 잘 보관하고 있던 미프 부인은 은신처에서도 글쓰기에 열심이었던 ‘안네’에 대해서 안네의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한 말을 들려준다.

 “보다시피, 우리 딸은 작가랍니다.”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안네 프랑크,『안네의 일기』, 홍경호 역, 문학사상사, 1995.5.1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안네의 일기(무삭제 완전판)』를 서가에서 꺼내 먼지를 털어 내고 다시 읽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새롭게 보인다.

 

 책을 '읽었다'라고 하지 않고 ‘보인다’라고 하는 것은 문장의 행간에 내가 조금은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어린이, 청소년용으로 나와 있는 편집본보다 무삭제 완역판인 이 책을 권한다.

 

잔혹한 유대인 학살 정책은 안네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안네가 틈틈이 쓴 일기는 고귀한 인간 영혼이 종이에 깃든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만약에 안네가 살았더라면, 20세기 중요한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쉽지만, 그녀를 대신해서 많은 작가들이 그녀의 영혼을 추모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원재훈 | 시인, 소설가. 글을 쓴 원재훈은 1988년 시 「공룡시대」로 등단했으며 『낙타의 사랑』,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 하네』 등의 시집과 『만남, 은어와 함께 보낸 하루』, 『모닝커피』등의 소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등의 산문집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집필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