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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OST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빌 어거스트 감독

리스본행 야간열차

Night Train to Lisbon, 2013

제레미 아이언스(그레고리우스), 멜라니 로랑(스테파니아), 잭 휴스턴(아마데우), 마르티나 게데크(마리아나), 톰 커트니(주앙)

고전문헌학을 강의하며 일상을 살아온 그레고리우스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우연히 위험에 처한 낯선 여인을 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비에 젖은 붉은 코트와 오래된 책 한 권,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끌림으로 의문의 여인과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게 되는데…

 

Mozart, Piano Sonata No.12 in F major, K.332 2nd mov. Adagio (Soundtrack)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은 반드시 드라마틱한 사건과 함께 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예기치 않게 우연히 다가올 수도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경우도 그랬다. 스위스 베른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며 평범하게 살고 있던 그는 어느 비 오는 날,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한 여자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자는 빨간 코트와 책 한 권, 그리고 15분 후에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는 여자를 찾기 위해 리스본행 열차가 떠나는 기차역으로 가지만 여자를 만나지 못한다. 그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동안 리스본행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강렬한 느낌에 휩싸여 기차에 올라탄다.

리스본행 열차에 올라타려는 그레고리우스

여자가 두고 간 책은 포르투갈의 의사이자 레지스탕스였던 아마데우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 아마데우가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자신의 삶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리스본에 도착한 그레고리우스는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아마데우 프라두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먼저 그는 아마데우의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아마데우의 여동생인 아드리아나가 살고 있다. 아드리아나는 오빠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레고리우스는 가정부로부터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는다.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난 바로 그해에 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아마데우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판사였다. 본래의 꿈은 작가였다. 그러다가 아픈 사람을 돕겠다는 특별한 사명 의식을 가지고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의사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썼다. 그 결과물이 바로 우여곡절 끝에 그레고리우스의 손에 들어온 <언어의 연금술사>이다.

책이 쓰인 시점은 포르투갈의 역사적인 카네이션 혁명이 있기 1년 전인 1973년. 무려 40여 년이나 이어진 살라자르 정권의 독재에 지친 시민들이 저항군을 조직하고, 젊은 장교들까지 조직을 결성해 혁명을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책 속의 ‘아마데우’ 사진

책 속에서 그레고리우스는 여러 사람의 얘기를 읽는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마데우의 절친한 친구인 조지, 반독재 투쟁을 함께 한 주앙 그리고 레지스탕스들의 명단과 연락처, 접선 코드를 모두 외우고 있는 스테파니아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이들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안경을 새로 맞추려고 안과를 찾아 의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그녀로부터 자기 삼촌이 아마데우와 레지스탕스 운동을 같이 했던 주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는 요양원에 있는 주앙을 찾아간다. 그리고 주앙으로부터 과거의 얘기를 듣는다.

소설 속 아마데우의 인생을 쫓아가보는 그레고리우스

아마데우, 조지, 주앙, 스테파니아는 반독재 투쟁이라는 대의를 위해 한데 뭉친 끈끈한 동지였다. 하지만 조지의 연인인 스테파니아가 아마데우를 사랑하게 되면서 이들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질투의 화신으로 변한 조지는 스테파니아를 죽이려고 한다. 이유는 만약 모든 것을 외우고 있는 스테파니아가 잡히면 동지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의 생각을 알게 된 아마데우는 스테파니아와 함께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도피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스테파니아와 아마데우

하지만 두 사람은 곧 헤어진다. 아마데우는 스페인에서의 새 삶을 계획하지만 스테파니아가 이를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 후 포르투갈로 돌아온 아마데우는 혁명이 터진 바로 그날인 1974년 4월 25일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가족과 동지들이 그의 관 위에 혁명의 상징인 붉은 카네이션을 올려놓는다.

아마데우는 혁명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 후 살아남은 그의 가족, 친구, 동지들 역시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아마데우의 절친한 친구였던 조지. 그는 야채상의 아들이었다. 판사 아버지를 둔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아마데우와 신분부터 달랐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누구보다 돈독했다. 중간에 스테파니아가 끼어들기 전까지.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았을 때, 아마데우는 약사인 조지를 위해 약국을 차려 주었다. 지금도 조지는 그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밤마다 약국에 불을 켜 놓은 채 떠난 친구에 대한 회한을 달래며 살고 있다. 한편 레지스탕스 동지인 주앙은 요양원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한창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고 있을 때 악명 높은 경찰 멘데스로부터 모진 폭행을 당해 지금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다. 그에게 삶의 유일한 낙이 있다면 그것은 의사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또한 아마데우의 연인이었던 스테파니아는 스페인에서 혼자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으며, 아마데우의 동생 아드리아나는 여전히 오빠가 살아 있다고 믿으며 박제된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조지를 만나기 위해 약국을 찾아간 그레고리우스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우연히 리스본행 열차에 몸을 실은 그레고리우스는 그곳에서 한 사람의 치열했던 삶을 경험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고 또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우연히 왔으나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필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기차에 타려고 하는데, 마중을 나온 안과의사 마리아나가 이렇게 묻는다.

“그냥 여기 머물면 안 돼요?”

영화는 결말을 보여주지 않고 그냥 끝난다. 그레고리우스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또 다른 우연에 운명을 맡겼을까? 아니면 그냥 일상의 필연으로 돌아갔을까? 그 뒤를 누가 알리.

기차역에서 마리아나와 그레고리우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딱 한 곡 나온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2번 K.332의 2악장 아다지오이다. 이 곡은 1778년 여름, 당시 22살이던 모차르트가 프랑스 파리에서 작곡했다. 주앙이 한창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독재정권의 하수인인 멘데스가 다른 경찰들과 함께 그의 집을 찾아온다. 그는 주앙에게 “피아노를 잘 친다지?”라고 묻는다. 그런 다음 한 번 쳐보라고 한다. 주앙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이때 그가 치는 곡이 바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2번의 2악장이다.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한 독주 악기를 위한 소나타는 대개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2악장은 느린 템포의 안단테 혹은 아다지오로 되어 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느린 템포의 악장을 들으면 마치 피아노가 노래를 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2악장, 그중에서도 특히 모차르트 음악의 2악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영화에 나오는 피아노 소나타 12번의 2악장 아다지오 역시 그렇다.

하지만 젊은 시절, 직접 이 곡을 피아노로 쳤을 때는 2악장의 진가를 잘 몰랐다. 중후하고 표정이 풍부한 1악장과, 처음부터 빠르게 질주하는 3악장의 화려함에 비해 2악장 아다지오는 지나치게 지루한 느낌이었다. 정말로 이 곡의 2악장은 처음 들었을 때 귀에 착 달라붙지 않는다. 느린 악장 특유의 멜랑콜리나 로망스가 없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장식음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멜로디 자체가 너무나 단순하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그저 지루한 악장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모차르트의 아다지오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요란하거나 감정을 과다하게 방출하지 않는 단순한 아름다움. 절제된 형식미 속에서 최대한의 선율성을 발휘하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그 느낌이 마치 수채화 같다. 음을 억지로 증폭하거나 연장시키지 않고, 갖가지 악상기호와 화음으로 음들을 덕지덕지 처바르지 않고, 그저 투명하게 피아노 본연의 울림을 들려준다. 단순한 멜로디 속에 스며든 그 순도 높은 아름다움 앞에서 세상 모든 말들이 무색해지고 만다. 도대체 세상 어떤 미사여구가 그 아름다움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을까.

모차르트를 천재라고 하는데, 그의 느린 악장을 들을 때마다 이 말을 절감하곤 한다. 흔히 모차르트 하면 건반 위를 동동거리며 굴러가는 경쾌한 멜로디와 익살맞은 트릴을 생각하지만 사실 작곡가로서 그의 예술성과 천재성이 진정으로 발휘되는 곳은 느린 템포의 2악장이 아닐까 싶다. 모차르트는 어린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얼굴 뒤에 섬광과 같은 천재성을 숨기고 있는 작곡가였다. 그래서 일견 단순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음악을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 귀가 너무 ‘복잡한’ 음악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 아닐까.

석양이 비추는 가운데 서 있는 아마데우

주앙은 멘데스의 명령에 따라 모차르트의 2악장을 연주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울림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굉음이 울린다. 멘데스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주앙의 손 위로 피아노 뚜껑을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그들은 주앙을 테이블로 끌고 온다.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하고는 묻는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스테파니아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주앙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자 곧 잔혹한 폭행이 시작된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주앙의 손을 둔기로 마구 내리찍는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모차르트의 곡을 치던 주앙의 손이 만신창이가 된다.

그 후 그는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음악을 더 이상 연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기 전, 주앙은 모차르트 음악을 즐겨 연주하던 낭만적인 젊은이였다. 그러나 잔혹한 독재정권은 이 젊은이로 하여금 더 이상 편안한 마음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길 수 없도록 했다. 불의에 맞서기 위해 주앙은 피아노를 치던 감성적인 손에 총을 들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멘데스가 그를 찾아온 바로 그날, 그가 누리던 삶의 소소한 행복도 일시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름답게 흘러가다 갑자기 끊어져버린 모차르트 음악처럼,

바위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마데우

진회숙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영화 속 클래식 2014.11.10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6&contents_id=71373&leafId=176

Mozart, Piano Sonata No.12 in F major, K.332

Glenn Gould, piano

30th Street Studio, New York

1965/09-1966/05

Movie 'Night Train to Lisbon' Full Music Alb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