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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OST

영화 잃어버린 전주곡 밥 라펠슨 감독

밥 라펠슨 감독

잃어버린 전주곡

Five Easy Pieces 1970

잭 니콜슨(바비 역), 카렌 블랙(레이엇 역), 수잔 앤스파치(캐서린 역)

미국 사회의 문화적 가치 충돌과 젊은 세대의 기성세대에 대한 염증을 담고 있는 영화. 부르주아 가정의 가치와 무정부주의적인 노동자 계급의 삶 사이에서 찢겨나간 외로운 젊은이의 초상을 통해 자기연민과 무기력한 반항심을 드라이하게 그려냈습니다. 주인공 바비가 쇼팽을 연주하는 동안 카메라가 천천히 360도 회전하며 그의 가출 전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여주는 장면은 영상과 음악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명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Movie "Five Easy Pieces" (HD-Full)

영화 <잃어버린 전주곡> 풀 무비입니다. 타이틀 페이지가 나올 때 7080세대의 인기 팝송이었던 태미 와이넷(Tammy Wynette)의 ‘스탠드 바이 유어 맨(Stand by your man'이 나와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네요. 밀로스 포만 감독의 1975년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가짜 정신병 환자 맥머피 역할을 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탄 잭 니콜슨이 자신의 연기에 자신을 갖게 된 작품이 <잃어버린 전주곡>이라고 합니다. 명화로 꼽히니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전주곡>은 미국의 1960년대, 기성세대와의 갈등으로 꿈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바비는 20대 후반의 젊은이이다. 본래 그는 좋은 가문 출신의 음악도였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갈등과 중산층의 틀에 박힌 삶에 대한 혐오감으로 집을 나와 지금은 남부의 한 석유 채취장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장래가 촉망되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지금은 노동자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이런 생활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는 진정한 블루칼라는 되지 못했다.

지금 바비는 식당 종업원인 레이엇과 동거하고 있다. 레이엇은 평범한 여자다. 매사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바비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레이엇은 바비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바비는 그 흔한 애정 표현 하나 하지 않고 그녀를 아주 무심하게 대한다. 비록 동거를 하고 있지만 천생이 화이트칼라인 그는 레이엇에게 전적으로 속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비는 친구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는다. 뒤에서 계속 경적을 울려대지만 앞 차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 참다못한 바비가 차에서 내려 경적을 울리는 차들에게 야유를 퍼붓는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에 피아노가 들어온다. 그의 차 바로 앞에 피아노를 운반하는 트럭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피아니스트로서 바비의 본능이 발동한다. 그는 트럭 위에 무단으로 올라가 피아노로 쇼팽의 <즉흥곡>을 연주한다. 친구는 바비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몹시 놀란다. 

트럭에 올라 갑자기 쇼팽의 <즉흥곡>을 연주하는 바비

그 후 바비는 누나로부터 고향의 아버지가 뇌일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집을 나오기 전, 바비는 아버지와 엄청나게 갈등했었다. 그래서 집을 뛰쳐나와 몇 년째 연락도 없이 살고 있는데, 이제 그렇게 엄했던 아버지가 말도 하지 못한 채 휠체어에 의지하여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바비는 아버지에게 한 번은 가보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냐는 누나의 충고를 받아들여 고향집에 가기로 한다.

처음에는 바비 혼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기가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레이엇이 너무나 슬퍼하자 결국 그녀를 데리고 가기로 한다. 하지만 레이엇을 집안 식구들에게까지 보여줄 용기는 없었던 바비는 그녀를 집 근처의 호텔에 두고 혼자 집을 찾는다. 

바비와 휠체어에 의지하며 지내는 아버지

그가 고향집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살짝 문을 열고 보니 형 칼과 그의 애인 캐서린이 두 대의 피아노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9번 ‘죄놈’의 2악장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래전에 잊어버렸지만 과거에는 언제나 일상적으로 있었던 너무나 익숙한 풍경.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고향집에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가족들은 모두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하지만 바비에게는 집이나 가족 모두 불편하기만 하다. 가족들은 한때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였던 그가 다른 길로 가버린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모두들 표현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바비는 이런 가족들의 마음을 감지하고 불편해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비와 가족들 사이에 놓여 있는 가치관과 생각의 차이, 문화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화를 나누던 중 바비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록 음악을 했던 얘기를 하자 형이 그런 음악은 진정한 음악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바비와 가족 간의 문화적 갈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고향집에 머무는 동안, 바비는 형의 애인인 캐서린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캐서린은 바비가 한때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였다는 점을 상기하며 그에게 자기를 위해 음악을 연주해달라고 한다. 그러자 바비는 쇼팽의 <전주곡>을 연주한다.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반항아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치는 바비를 보면서 캐서린의 마음도 움직인다. 어느덧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두 사람은 바비의 형이 없는 사이에 몰래 사랑을 나눈다. 

캐서린의 요청으로 쇼팽의 <전주곡>을 연주하는 바비

하지만 이런 두 사람의 관계는 집 근처 호텔에 머물고 있던 레이엇이 지루함을 참다못해 바비의 고향집에 들이닥치면서 위기를 맞는다. 바비는 마지못해 가족에게 레이엇을 소개한다. 가족들은 레이엇을 스스럼없이 대하지만 바비는 대화 중에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는 레이엇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 후 캐서린은 바비에게 이제 그만 관계를 끝내자는 취지의 말을 한다.

“당신은 내 마음을 이해 못할 거예요. 칼이나 음악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안 돼요. 당신은 도무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뭘 원하지요? 자신을 사랑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가족, 일 그 어떤 것에도 애정을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사랑받기를 원하지요?”

고향집에서 아무런 정신적 위안도 찾지 못한 바비는 가족들과 인사도 하지 않고 갑자기 집을 떠난다. 중간에 잠시 휴게소에 들른 바비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거울 속의 자신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러다가 화장실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트럭을 탄다. 차 안에 레이엇을 그대로 남겨 둔 채.

바비는 지갑을 레이엇에게 통째로 주고 재킷마저 휴게실 화장실에 두고 나왔다. 이렇게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상태에서 트럭에 탄 바비는 재킷이 없어서 추울 것이라는 트럭 운전사의 말에 마치 자기 암시를 하듯 “난 괜찮아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렇게 ‘맨발의 청춘’이 되어 또 다른 방랑의 길을 떠난다. 

휴게소 화장실에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바비

<잃어버린 전주곡>에는 쇼팽의 피아노곡이 나온다. 쇼팽은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낭만주의 작곡가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존재다. 200여 곡에 이르는 작품 대부분이 피아노곡이기 때문이다. 음악사를 통틀어 쇼팽처럼 피아노라는 한 가지 악기에 집중한 작곡가도 없을 것이다.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피아노 본연의 아름다움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개척한 작곡가이다.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서 짧고 즉흥적인 성격의 단 악장짜리 피아노곡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여러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소나타가 대표적인 피아노 양식이었지만,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면 규모가 훨씬 작고 즉각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단편적인 양식이 유행하게 되는데, 그 선두에 선 사람이 바로 쇼팽이다. 그는 낭만적인 밤의 서정을 부드럽게 노래한 <녹턴(야상곡)>, 테크닉을 익히기 위한 연습곡이지만 단순한 연습곡을 뛰어넘는 예술성을 보여주는 <에튀드(연습곡)>, 작곡가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악장을 자유롭고 화려하게 펼친 <즉흥곡>, 사교계 살롱 춤곡을 화려한 테크닉으로 변모시킨 <왈츠>, 서사시의 영웅적인 에너지를 강렬한 터치로 그린 <발라드>, 음악적 유머를 발랄하게 풀어 놓은 <스케르초>, 폴란드 민속 춤곡을 예술음악의 경지로 끌어올린 <폴로네즈>와 <마주르카> 등을 통해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쇼팽이 개척한 피아노 양식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것일 꼽으라면 역시 환상곡을 꼽지 않을 수가 없다. 낭만주의 예술의 특징은 현실을 초월해 영원한 것, 도달할 수 없는 것, 환상적인 것을 잡으려 한다는 데에 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확인하고 논증할 수 없는 것은 모두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겼다. 예술에서도 애매모호한 것들은 비판을 받았고, 판단의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는 미학 이론이 발달했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 예술이 무엇인가를 모방한다는 생각은 빛을 잃는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묘사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예술은 이성의 힘으로 포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표현해야만 했다. 따라서 낭만주의에서는 ‘애매모호함’과 ‘불가사의함’이 미덕이 된다. ▶25살의 쇼팽, 1835

이런 태도는 작품을 만드는 방식도 바꾸어 놓았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옥죄었던 고전주의 형식의 틀을 깨고, 그 자신의 정서와 직관에 따라 작품을 만들었다. 그동안 예술 창작에 적용되었던 형식과 법칙, 규율은 환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전개를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낭만주의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적인 관념이나 예술 형식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력이었다.

예술가의 자유로운 ‘환상’을 음악으로 옮겨놓은 것이 낭만주의 음악이라고 했을 때, 환상곡만큼 낭만주의 이상을 전면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드러낸 양식도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바비가 트럭 위에서 친 곡은 쇼팽의 <환상곡> F단조 Op.49이다. 음악은 처음에 서정적으로 시작해 중간에 화려하게 폭발하는데, 바비는 화려하게 폭발하는 대목을 연주한다. '환상곡'이라는 제목에 맞게 이 곡의 특징은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은 자유분방함에 있다. 그 자유분방함이 바비의 삶과 닮아 있다. 

18세기 낭만주의 미술가 존 헨리 푸셀리(John Henry Fuseli)의 <악몽(Nightmare)>, 1781

한편 바비가 캐서린의 부탁을 받고 연주한 곡은 쇼팽의 <전주곡>이다. 쇼팽은 바로크 시대에 모음곡이나 오르간 독주곡의 제일 앞에 오던 전주곡 양식을 독립된 독주곡 형식으로 발전시킨 작곡가이다. 쇼팽의 전주곡은 독립된 기악곡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전주곡은 아니다. 하지만 짧고 소박하다는 점에서 전주곡과 비슷한 음악적 착상의 소산인 것은 분명하다.

쇼팽은 모두 24곡의 전주곡을 작곡했다. 영화에 나오는 것은 작품 28의 4번인데, 전주곡 중에서 비교적 쉬운 편에 속한다. 이 영화의 원제목인 <Five easy pieces>도 바로 여기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비는 일부러 쉬운 곡을 골랐다고 캐서린에게 말한다. 하지만 캐서린에게는 ‘쉬운 곡’이라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비가 치는 ‘쉬운’ 전주곡에서 그녀는 음악의 깊이를 보았다. 단순한 음표들의 행간을 채우는 사랑에 대한 간절함,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 인간적 고뇌 같은 것을 읽었다.

하지만 바비는 그것을 부정한다. 그저 ‘쉬운’ 곡을 아무런 감정 없이 쳤다고 얘기한다. 그 말처럼 그의 사랑은, 그의 인생은 그저 ‘쉬운 곡’에 불과한 것일까? 그래서 차에 레이엇을 그대로 버려 둔 채 간단하게 떠나 버린 것일까? 그에게 그것은 정말로 ‘쉬운’ 선택이었을까?

진회숙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영화 속 클래식 2014.09.01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6&contents_id=65806

Martha Argerich - Chopin, Prelude in E minor, Op.28 No.4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중 네 번째 곡으로 음악평론가 하네카는 이 곡에 대해 “이 보석 같은 작품만이 시인으로서의 쇼팽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했습니다. 음악평론가 한스 폰 뷜로우는 이 곡에 ‘질식’이라는 표제를,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는 ‘무덤가에서’라는 표제를 붙였습니다. 6번 B단조와 함께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서 치러진 쇼팽의 장례식에서 오르간으로 연주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