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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읽는 명상록

인생의 정석 삶의 묘수

 

 

 

  [인생의 정석, 삶의 묘수]

 

묘수 한 개로 한판의 바둑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적절한 묘수로 인하여 어려운 바둑을 타개하고 유리한 입지에 서게 된다는 것... 그것은 바둑에 있어서의 귀중한 즐거움이 된다.

 

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묘수를 찾아주는 일을 한다.

그러니까 바둑에 있어서도 인생에 있어서도 묘수는 필요한 것 같다.

 

날마다 나에게는 메일이 쌓인다. 많은 곤란한 일들에 대한 해답들을 구하는 문의들이 쌓이고 있다.

딸이 동성연애에 빠졌다든지.. 아들이 마약에 빠졌다든지.. (이런 것은 주로 해외에 거주하는 이들이 겪는 일들이다)

 

배우자가 바람이 났다든지, 아들이 군대에서 사고로 죽었다든지..

성폭행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평생 고통을 겪는 이들.. 빚 문제로 자살 직전에 있는 사람 등..

별의 별 가슴아픈 사연들이 다 오는 것이다.

 

이들에게 어떤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어떤 위로의 말을 줄 수 있을까..

나는 고심을 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그들에게 답을 쓴다.

그러한 처방들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런데 놀라운 응답들이 많았다.

조금 전까지 자살하겠다고 절망해 있던 사람들이 답을 받고는 기쁨으로 가득한 것을 보았다.

가정 문제가 해결되었고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답을 받고 마음을 바꾸었더니 너무나 행복하게 되었다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답도 받곤 했다.

다행히도 나의 처방이 그들에게 묘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쌓이면서 나의 처방으로 인하여 삶이 행복해졌으며 이혼 직전의 가정이 행복해졌으며

10년 동안 서로 증오하던 부부가 너무나 사랑하게되었으며 일체의 대화도 없고

벽이 막혀있었던 자녀와 이제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점점 나를 생명의 은인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나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이들, 중 고등학생을 자녀로 두고 있는 이들이

나에게 아버지라 부르는 경우도 많이 생기게 되었다.

해외에서 나를 만나고 싶어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이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우연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의 문제를 도와주었는데

그것이 점점 퍼져서 십 여명의 선생님들이 우리 집에 방문한 적도 있었다.

우습게도 선생님들에게 우리가 촌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매달마다 선생님들이

선물과 촌지를 우리에게 보내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일을 겪으면서 나는 바둑에서 묘수를 찾듯이 현실의 삶에서도

묘수를 찾고 구하는 것이 가치 있으며 의미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묘수의 기초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것이 마음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벼랑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고 의식이다. 의식을 바꾸면 거기에서 자유로워지게 된다.

의식의 변화는 곧 새로운 창조의 시작인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이가 내게 눈물로 간절히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 모든 일이 막히고 또 막힌다고. 너무나 되는 일이 없다고.. 죽고 싶다고..

 

내가 한 마디 했다.

 

어느 학교에서든지 진급 직전에 시험을 치른다고..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당신은 지금 진급의 직전에 있으며 영혼이 한 차원 상승하기 위한 단계에 있는 것이라고..

그는 눈을 크게 뜨고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나를 포옹하면서 감사하다고 우는 것이었다.

 

평생 벌은 돈을 친구에게 사기 당하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천덕꾸러기로 자라나서 가는 곳마다, 믿는 사람들에게 마다 성폭행을 당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삶은 불우할까? 그대로 평범하게 산다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의식이 바꾸어지게 되자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감사거리가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독한 증오와 원한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잘 살아가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관점, 시각의 변화를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묘수란 중요하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의식, 적절한 묘수를 발견하게 된다면

불리한 바둑은 역전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특별한 묘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많이 들었고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도 이렇게 흔해 빠진 이야기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 있지 않다.

 

언젠가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내용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무튼 그 제목에 대해서는 정말 공감이 간다.

삶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 알아야할 기초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정말 기초적인 것이고 간단한 것이며 누구나 다 어릴 적부터 알고 있는 것이다.

 

바둑에도 인생에도 묘수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묘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원리라고 생각한다.

두점 머리는 두드려라.. 끊으면 뻗어라.. 하는 식의 기본적인 행마법 말이다.

 

이 기본적인 행마가 되어 있지 않으면 묘수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다시 말하자면,

묘수도 중요하지만 그 묘수는 이러한 기본적인 기리의 기초 위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둑에서 삶에도 이러한 기본적인 격언에 해당하는 행마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특별한 묘수를 보여주는 것보다 이러한 기본행마법을 조언하는 것이다.

그 기본을 익히게 되면 구태여 묘수가 필요한 절대 절명의 상황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기본 행마와 정석은 무엇일까.

대강 이런 것이다.

 

 

 

 

 

 

 

 

 

1]. 우리의 삶은 항상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다면

     언젠가 우리는 불친절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좋은 것을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만약 지금의 불쾌하고 힘든 면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과거에 좋지 않은 씨앗을 심었거나

     부모가 심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반성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그 어두움의 계절은 지나가게 된다.

 

3].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단지 억울하다고 느끼고 남의 탓을 하며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고난의 계절이 길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바꾸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억울하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이들은 좀 더 고통을 겪게 되며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4].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에 감사할 때 그것을 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을 때는 라면을 먹더라도 음식에 감사하며 음식을 준 사람에게 감사한다.

     그러면 아무리 나쁜 음식이라도 보약이 된다.

 

     집에 이사를 가면 그 집에 감사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 집에서 계속 좋은 일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면 풍성한 기운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다면? 간단하다.

     그것은 재앙의 기운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되는 일이 없게 된다.

 

5]. 내가 어떤 것을 원한다면 그것을 상대에게 베풀어야 한다.

     남이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좋은 사람은 남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남에게 비아냥거림을 받는 것이 좋은 사람은 자신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6]. 잘못하거나 실수했을 때는 빨리 사과하고 반성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물론 겉으로만 사과하고 속으로는 [두고 보자] 하는 식으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면 영혼과 육체가 서로 충돌하여 분리됨으로 영혼이 마비되고 혼돈스럽게 된다.

     백인들이나 일본에서 그런 식으로 외형적인 친절, 외형적인 겸손 등,

     두 마음으로 사는 문화가 많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고 정신병도 많은 것이다.

 

     마음 속에서 진정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면 거기에는 스트레스가 없다.

     그러나 겉으로 사과하고 속으로 열받은 상태로 있으면 정신병에 걸리기 쉽다. 

     정신병이란 머리와 가슴이 따로 따로 놀 때 생기는 것이다.

 

7]. 옳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논리는 사람을 굴복시킬 수 없다.

     어떤 사람의 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정확하게 급소를 찌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날카롭게 찌르고 공격하며 자신을 변호하고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며 쉬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묘수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이겨봤자 겉으로는 굴복하지만 깊은 속으로는 증오를 품게 된다.

     그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두 친구가 서로 날카로운 논리 싸움을 벌였다.

     두 사람의 언쟁은 점점 깊어져 갔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일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용서해주게. 나는 지금 자네를 사랑하지 않고 있네.]

     그 친구도 다가와서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미안하다고 하며 서로 포옹했다.

 

     옳은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특히 한국 사람은 감정적이기 때문에 감정이 상하면 논리고 뭐고 없다.

 

     논리는 그래서 기분 따라 바뀌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중요한 능력은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이다.

     좋아하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속에서 좋아하는 것이다 

     아마 인간됨의 성숙이란 사람을 좋아하고 좋게 보아주는 능력이 증가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약점과 잘못을 아주 예리한 시각으로 정확하게 발견해내고 끄집어내고 지적하며

     거기에 긍지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주위 사람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옳은 것은 사람을 치유하지 못하며 받아줌이 사람을 치유한다.

 

 

 

 

 

 

 

 

 

 

 

8].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것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종교든 진리든 뭐든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주려고 해서는 안된다.

     내가 좋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의지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며 상대의 수준에서 상대를 돕는 것이 좋은 것이다.

     사랑이란 상대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다.

 

9]. 이기적인 삶은 현실적으로 유리한 것 같고 이익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망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다른 이를 섬기고 돕는 것이 결국은 행복이며 기쁨이 된다.

 

10]. 외로운 사람은 자신보다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좋으며

      어려운 사람은 자신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사람을 생각해주고 돕는 것이

      자기 영혼이 성장하며 그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는 길이다.

      자신의 외로움이나 고통에 집중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그를 통하여 다른 이들의 외로움이나 고통을 느끼고 돕는 자들은 새로운 영역으로 올라가게 된다.

 

11].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에게 우연하게 다가오는 고통이란 없다.

 

     우리가 거하고 있는 이 우주 안에 우연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오는 것이며

     우리가 충분히 그 교훈을 습득하면 그 고통은 사라지게 되어있다.

 

12]. 인간은 영혼의 발전을 위해서 이 땅에 왔으며 나의 성장을 위해서 악역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보면 내가 피해자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나의 성장을 위하여 악역을 맡게 되는 그 사람이 피해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악역을 맡지 않게 된다.

 

13].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뇌에 에너지가 몰려있기 때문에 논리적이며 옳다.

     그러나 가슴에는 에너지가 모자라기 때문에 대체로 정이 부족하고 차갑다.

     가슴에 에너지가 몰려 있는 사람은 정이 많지만 뇌에너지가 모자라기 때문에

     분별력이 부족하며 귀가 얇아 남의 말을 잘 믿고 변덕이 심하다.

     배에너지도 부족하므로 자기 방어가 부족하며 상처도 잘 받는다.

 

     배에 에너지가 몰려 있는 사람은 강하고 단순하지만 둔감하며 의식수준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능적, 동물적인 수준의 즐거움으로 만족하며 그 이상으로 자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장이란 곧 균형과 조화이며 힘과 지혜와 사랑에 있어서 자라가는 것이다.

     사람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는 새로운 영역의 행복을 맛보고 살게 된다.

     그러므로 어린 것이 모든 고통의 문제이며 성장하면 할수록 그는 자유롭고 행복해지게 된다.

 

 

 

 

 

 

 

 

주로 이런 것들이 내가 바둑 격언처럼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조언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들을 현실에 적용하면 실제의 삶에서 기적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정말. 기가 막히네요. 그 악마 같은 사람이 변화되었어요. 천사가 되었어요..]

나는 대답한다.

[변화된 것은 당신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죽이려고 목을 조르고, 아내는 입만 열면 독기가 가득한 언어의 비수를 퍼붓던 이들이

서로 용서를 고백하고 울고 난리를 친 후에 나중에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변했다고.

남편은 말한다. 아내가 갑자기 새사람이 되었다고..

역시 나는 대답한다. 당신들의 의식이 바뀐 거라고..

 

바둑에는 묘수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본 행마를 모르면 묘수를 아무리 두어도 여전히 바둑은 나쁘다.

그러니 묘수도 중요하고 또한 기본 행마도 아주 중요한 것이다.

 

나는 바둑 격언을 아주 좋아한다.

거기에는 바둑 뿐만 아니라 인생의 교훈이 되는 행마법이 아주 많이 있다.

 

[상대방의 급소가 나의 급소다]

나에게 아픈 것은 상대방에게도 아프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세력이 강한 데서 싸우지 마라]

아무 데서나 분위기 파악 못하고 까불면 혼이 난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적당하게 눈치도 보고 꼬리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력을 집으로 만들려고 하지 마라]

유리한 상황이라고 마음을 놓고 실리를 탐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인생도 바둑처럼 너무 실리를 취하지 말고 두터움을 취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나중에 두터움에서 여러 이득이 생기게 된다.

 

[중앙으로 한 칸 뛰는 수에 악수 없다]

때로는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초연해야 한다.

하늘을 보고 한숨을 돌리는 것이 좋다.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시야가 트이며 좀 멀리 많은 것을 보고 수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교훈이 바둑에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러니 바둑의 묘수와 기본기리를 찾듯이 삶의 묘수와 행마의 기초를 찾는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아름답고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9단의 바둑을 관전하고 있었다.

그 9단은 상대방에게 공격을 허용해서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중앙에도 약점이 있고 변에도 허점이 있었다.

 

어느 한쪽을 지키면 다른 쪽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바둑이 불리해진다.

아. 그런데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군데를 커버하는 마늘모를 놓았다.

 

그 순간 나는 아..! 하고 놀랐다.

마치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속에서 아. 아름답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마늘모는 중앙의 허점과 변의 허점을 교묘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중앙에도 한발을 내디뎌 상대방의 세력을 견제하고 있었고

변의 자기 집도 튼튼하고 완전하게 지켜내고 있었다.

그 멋진 마늘모 행마.. 어쩌면 그리 아름답고 신선하게 보였는지..

 

양쪽의 문제점을 동시에 해결해버린 마늘모의 묘수.

그런데 갑자기 그 상황에서 한 가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것은 이런 이야기였다.

 

한 남자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남자는 어머니의 외아들이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아내와 어머니와 같이 한 집에 살게 되었는데 분위기가 뻔하지 않겠는가.

아들 하나를 평생 바라고 살던 어머니는 며느리와 시시로 부딪쳤다.

 

그 때문에 가정은 날마다 살얼음판이었다. 어머니도 성격이 강했고 아내도 만만치 않았다.

남편은 둘 사이에 껴서 정말 죽을 맛이었다.

 

어느 날 남자가 직장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집안 분위기가 평소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어머니와 아내는 같이 못살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만일 네가 아내를 선택하면 나는 더 이상 살 필요도 없으니 죽어버리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남편이 어머니를 선택하면 자기는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한 문제를 냈다.

유명한 문제다.

 

아내와 어머니가 물에 빠졌다.

그런데 한 사람밖에 건질 수 없다.

그러면 너는 누구를 건지겠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만약 아들이 아내를 건지겠다면 자기는 죽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냥 넘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남편은 심사숙고에 빠졌다.

그리고 나서 한마디로 대답했다.

 

그런데..

그 대답을 듣고 어머니와 아내는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화해를 했다.

 

과연 이 남자는 무슨 대답을 했을까?

그 대답은 이랬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를 건지겠습니다.]

어머니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제 아내에게로 가겠습니다.]

[한 사람밖에 건질 수 없다고 했는데? 아내는 건질 수 없어!]

 

아들은 대답했다.

[예.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저는 어머니를 살리고 아내와 같이 죽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와 아내는 같이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지혜로운 대답인가!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어머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어머니를 구해야한다는 것을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삶과 죽음을 함께 할 사람이라는 것,

운명을 같이 해야할 한 몸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어머니도 사랑하고 아내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서로 종류가 다른 사랑이라는 것을 표현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고마웠고 아내도 남편이 고마웠다.

그들은 그래서 화해를 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 남자는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 멋진 묘수를 터뜨렸던 것이다.

 

나는 이 마늘모의 묘수를 보면서

(사실 그것은 묘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아마 좋은 행마, 멋진 행마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양쪽을 방비한 묘수로 아내와 어머니를 만족시킨 그 남자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저런 수를 찾는 것이 바둑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쪽에도 이런 어려움이 있고 저쪽에도 저런 어려움이 있는 데

그 두 가지 문제를 깨끗이 해결한 저런 멋진 수..

저런 수를 발견하고 찾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아내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버린 그 남자의 묘수처럼 말이다.

 

나는 그 바둑을 누가 이겼는지 모르겠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마늘모의 수는 계속 뇌리에 남아서 즐거운 기억이 되고 있다.

 

한판의 바둑에서 이런 멋진 행마를 찾고 묘수를 찾듯이

우리의 인생에서도 이런 멋진 묘수, 멋진 행마를 발견하고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도 또한 멋진 인생이 아닐까?

 

한 마디의 말, 하나의 작은 행동이 묘수가 되고 좋은 수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와 즐거움을 주고 행복을 준다면 그것은 정말 멋진 한판의 바둑,

한판의 인생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삶의 묘수를 찾는다.

그리고 진리의 기초를 공부하며 좋은 수를 찾는다.

그렇게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도움을 구하는 이들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삶의 방식을

같이 나누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