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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Savinna Yannatou 젊은 우체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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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 야나투 Savinna Yannatou

젊은 우체부의 죽음

 

그리스의 유명한 작곡가 하면,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함께 또 한 명의 거장을 손꼽을 수 있는데, 그가 바로 마노스 하지다키스이다. 테오도라키스가 불과 같은 저항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하지다키스는 물과 같은 섬세함으로 그리스 민중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음악을 작곡하였다. 테오도라키스를 상징하는 노래가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고’라면 하지다키스를 상징하는 노래는 ‘젊은 우체부의 죽음’이다. 이 노래들이 두 뛰어난 작곡가의 작품세계를 모두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의 노래를 대표하는 곡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젊은 우체부의 죽음 O taxidromos pethane

젊은 우체부가 죽었네

나이 겨우 열일곱인데

사랑은 이제 배달될 수 없다네

사랑은 심부름꾼을 잃었으니

내 모든 사랑의 말을 두 팔에 안고

날마다 찾아오던 그였지

당신 정원에서 꺾은 사랑의 꽃을

두 손 가득 들고 왔던 그였지

푸른 하늘로 그는 떠났네

마침내 자유를 얻어 행복한 새처럼 그렇게

그의 영혼이 그를 떠났을 때

어디선가 밤꾀꼬리 울었다네

예전에 당신을 사랑했던 만큼

나 지금도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말 할 수가 없다네

당신에게 썼던 마지막 말들을

그가 함께 가져갔으니

이제 그는 그 길을 다니지 않아

장미와 재스민 꽃들 만발한

당신 집에 이르는 그 길을

사랑은 이제 배달될 수 없다네

사랑은 심부름꾼을 잃었으니

그래서 내 마음은 감옥에 갇힌 듯하네

그는 떠났네

내 기쁨과 고통을 당신에게 가져다주었던 그 젊은이

겨울은 봄을 시들게 했고

모든 것이 끝났다네 지금 우리 두 사람에게는

매일 사랑의 소식을 전해주던 젊은 우체부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 현대사를 우회적으로 그리고 있는 ‘젊은 우체부의 죽음’. 마노스 하지다키스가 떠나 온 조국에의 그리움을 서정적인 멜로디로 승화시킨 이 노래는 조르주 무스타키의 프랑스어 노래로 먼저 우리에게 소개되었으며 여러 가수들의 목소리로 발표됐는데, 그중에서 사비나 야나투(1959~ )의 목소리가 이 노래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인정받고 있다. 하지다키스가 자신의 작품을 노래해 달라고 직접 부탁했을 정도로 그녀의 차가우면서도 애절한 목소리는 이 곡을 노래한 다른 가수들에 비해 가히 독보적이다. 이 노래가 실려 있는 음반 <사비나 야나투가 노래하는 마노스 하지다키스 걸작선> 부클릿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현대 그리스가 낳은 음악의 여신 사비나 야나투가 20세기 그리스 음악사에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명곡들을 노래한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과 하나가 되는 사비나의 신비로운 천상의 목소리는 하지다키스 작품에 투영된 그리스의 슬픈 아름다움을 가장 감동적으로 전해 준다. (…) 전설적인 그리스의 영화음악가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감동적인 선율을, 그리스 여성 뮤지션으로는 최고로 평가받는 레나 플라토노스의 곡과 키보드 연주, 그리고 귀기마저 느껴지는 애절한 창법에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맑음을 잃지 않는 사비나 야나투의 노래로 불러내는데, 어찌 대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비나 야나투

마리아 파란두리가 테오도라키스의 분신 가수라고 하면, 사비나 야나투는 하지다키스의 분신 가수이다. 1959년 아테네에서 태어난 사비나 야나투는 그리스 국립음악학교를 마친 뒤 런던 길드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83년부터 악단을 꾸려 음악 활동을 해 왔는데, 그녀의 반주를 도맡아주는 악단 살로니코의 봄은 그리스 민속악기 부주키와 현악기 연주자로 짜여 있다.

중세 음악과 바로크 음악에 자신의 음악적 초점을 맞추어 가던 야나투는 1990년대 초부터는 그리스 전통 음악과 지중해 음악을 지속적으로 노래하고 작곡해 오고 있다. 지중해 음악이란 그리스 주변, 이탈리아, 아랍, 이스라엘, 키프로스까지 포함한 지중해 주변 국가들의 음악을 통틀어 말한다. 또한 사비나는 공연, 페스티벌, 연극, TV 드라마, 음악 리코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리스의 뮤즈’라는 찬사에 어울리는 뛰어난 성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스의 뮤즈’ 사비나 야나투

“이 시대에 사비나 야나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비나의 목소리를 통해 하지다키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분명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에겐 커다란 그리고 과분한 행복이다." —황우창(CBS-FM ‘황우창의 월드뮤직’ 진행)

사비나가 발표한 앨범 중 단연 돋보이는 <사비나 야나투가 노래하는 마노스 하지다키스 걸작선>은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현악 반주와 신비로운 사비나 야나투의 목소리가 어울려 하지다키스의 명곡들을 들려준다. 이 시대 그리스 음악의 빼어난 하나의 성과인 이 앨범은 한 곡 한 곡을 통해서 그리스의 문화적 교양과 역사에 대한 감성까지도 절절히 전해준다. 테오도라키스와는 구별되는 여성적인 섬세함을 토대로 하는 하지다키스의 음악은 사비나의 천상의 목소리를 만나면서 그리스 고유의 음악 색깔을 잘 드러내게 되었다.

Savina Yannatou 'Mezza Voce' (2008.09)

마노스 하지다키스 Manos Hadjidakis

마노스 하지다키스 하면 누군지 생소할 것이다. 윤형주와 송창식의 트윈폴리오가 부른 ‘하얀 손수건’의 원곡이며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Me T'aspro Mou Mantili’의 작곡자라 하면 고개를 끄덕일까. 바깥에서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1925년 그리스 북쪽 산티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하지다키스는 네 살 때 피아노 앞에 앉았다고 한다. 10대에 아버지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그는 음악을 접고 아테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66년부터 7년 동안 뉴욕 생활을 하다 그리스 전통악기인 부주키 선율을 절실히 듣고 싶어 고국에 돌아왔는데, 그리스 국립라디오방송국을 지키면서 발레음악과 영화음악에 빠져들었다. 그에게 마리아 칼라스, 아그네스 발차, 현대음악 전공자이자 피아니스트 레나 플라토노스는 좋은 해석자요 동료가 되어주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음악계는 물론 민주화 항쟁 지도자로 우뚝 서 있을 때, 하지다키스는 마치 히피처럼 쓸쓸하고도 자유롭게 시류와 반하는 두 권의 시집을 펴내면서 저만의 ‘다른 세상’을 살아갔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어린 나이에 죽은 우체부의 노래를 만든 그도 그 우체부를 따라 1994년 세상을 떠났다.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가문은 본래 크레타 섬에서 거주했다. 에게 해의 푸른 바다와 하얀 회벽 집, ‘신들의 도시’, ‘에게 해의 보석’이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게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크레타 섬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이자 소설의 무대이기도 하다. 참,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가 출생한 곳이 크레타 섬이라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정리 : 라라와복래 2014.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