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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Piano Concerto No.1 in C major, Op.15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Paul Lewis, piano
Jiří Belohlávek, conductor
BBC Symphony Orchestra
BBC Maida Vale Studios, London
2009.07
Paul Lewis - Beethoven, Piano Concerto No.1 in C major, Op.15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피아노 협주곡은, 작곡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장르이자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었기에 많이 써졌다.
모차르트가 빈에 머물 때의 협주곡들이 그 전형적인 예이며 베토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여러 작곡가들의 협주곡은 바로크 시대의 양식에서 벗어나 소나타 형식을 확립했으며, 이른바
고전파 협주곡의 틀 안에서 작곡되었다.
특히 1악장은 관현악으로 시작하여 그대로 제시부를 마치고, 이어서 피아노가 가세하여 독주 제시부로 들어갔다.
재현부와 코다 사이에는 피아노 독주에 의한 카덴차가 주어졌다.
카덴차는 즉흥적으로 연주하도록 독주자에게 맡겨져 있었다.
이런 구성은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유지되었으며, 여러 작곡가들은 이런 틀 안에서 자신의 음악을 펼치기 위해 고심했다.
그런데 베토벤이 이런 전통을 깼다. 우선 독주자에게 맡겼던 카덴차를 작곡자인 베토벤 자신이 직접 써 넣었다.
또한 1악장을 관현악 제시부로 시작하는 전통을 깨고 피아노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초기의 협주곡에서부터 갑자기 혁신적인 서법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1번과 2번 협주곡에 베토벤이 쓴 카덴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독주자에게 그것을 반드시 연주하도록 했던 것은 아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단순히 카덴차의 즉흥 연주를 폐지하고 피아노를 제시부에 도입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피아노 협주곡 4번 이후에 두드러진 관현악의 충실한 사용은 브람스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교향적 협주곡’을 낳게 했다.
또한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에서 보이는 거장적인 피아노 연주 양식은 낭만파 시대에 이르러 한층 더 진척된다.
‘대협주곡’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이름 붙이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작품번호로는 2번보다 앞서지만 실제로는 2번 뒤에 작곡되었다.
좀 더 손을 보느라 2번의 악보 출판(1801년 12월)이 늦어지는 바람에 1번이 먼저 세상에 소개된 것이다
(1801년 3월). 베토벤은 이 피아노 협주곡 1번에 자신만만하게 ‘대협주곡’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렇다고 이 명칭이 단순히 겉치레로 붙여진 것은 아닌 듯하다.
관현악 편성이 당시의 일반적인 협주곡보다 대규모여서 교향곡 규모라고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이런 대편성의 관현악에 맞설 수 있는 피아노 사용법에서 이미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Op.7과 Op.10의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에서 기존 피아노에는 없었던 새로운 피아노 서법을 개척하였고, 이 무렵
피아노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었던 터였다.
이 곡은 베토벤이 빈에 체류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은 1794년경에 스케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1795년에 완성되었다.
초연 날짜는 확실하지 않으나 1798년 세 번째 프라하 여행 때 콘빅트잘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작곡가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것이 초연으로 보인다. 이 곡은 바르바라 오데스칼키 후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그녀는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연주 실력을 뽐냈다.
체르니에 의하면 베토벤은 그녀를 사랑했다고 한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형식적으로는 모차르트 양식의 고전 협주곡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며, 모차르트 이외의 선배
작곡가들에게 받은 영향도 보이기는 하지만 베토벤 특유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베토벤은 이 곡의 1악장을 위해 3종류의 카덴차를 남겼다.
그러나 이 카덴차는 초연 후에 한동안 연주되지 않았다.
카덴차의 최고음을 당시의 피아노가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이 음들을 연주할 수 있도록 새롭게 개량된 피아노를 1804년에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809년에 따로 쓴 것으로 보이는 이 카덴차는 친구이자 제자이며 후원자이기도 한 루돌프 대공의 피아노 연주를
돕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베토벤이 사용하던 피아노. 악기 제작의 거장 그라프가 베토벤을 위해 만든 것으로,
4개의 현이 움직여 더 강한 소리를 냈다.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
협주곡 풍 소나타 양식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3번까지의 1악장 빠르기말은 모두 알레그로 콘 브리오이다. 화려한 연출 효과를 내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제2바이올린, 비올라, 더블베이스가 가벼운 기분으로 신선한 주제를 조용히 내면 곧 오케스트라가 이를 힘차게 반복한다. 이것이 일단락되면 다시 바이올린이 중심이 되어 좀 더 우아한 제2주제를 연주하고, 다시 오케스트라의 투티가 온다.
여기서 모차르트의 세련미를 엿보게 되고 선배들의 영향을 읽게 된다.
오케스트라의 서주 이후로는 독주 피아노가 홀로 카덴차 풍의 선율을 화려하게 펼쳐나간다.
피아노의 활약이 일단락되면 다시 오케스트라의 무대가 와서 화려한 잔치를 벌이게 되고, 끝으로 피아노의 카덴차와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화음으로 끝난다.
2악장: 라르고
3부 형식. C장조의 1악장과 3악장 사이의 이 악장이 A플랫장조인 것은 당시로서는 드문 경우이다.
시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악장이며, 외면적인 효과를 의도한 1악장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피아노가 우아하고 평온한 기분으로 아름다운 주제를 내면 저음 현악이 뒷받침한다.
이것을 오케스트라가가 받아서 반복하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환상적인 협주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곱게 펼쳐진다.
3악장: 론도. 알레그로 스케르찬도
스케르찬도이지만 대단히 큰 스케일과 격렬함을 느끼게 하는 악장이다. 독주 피아노가 처음부터 격앙된 표정으로
짤막한 주제를 내면 오케스트라가가 투티로 반복하고 다시 피아노가 강렬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계속해서 펼쳐지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경쾌한 대화는 베토벤다운 힘을 갖고 진행되고 이윽고 오케스트라의
인상적인 코다로 곡을 마친다.
Martha Argerich - Beethoven, Piano Concerto No.1 in C major, Op.15
Martha Argerich, piano
Claudio Abbado, conductor
Mahler Chamber Orchestra
Ferrara, Italy
2013.04.12
Martha Argerich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열정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1941년 6월 5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5살 때 처음 빈센초 스카라무차로부터 피아노 수업을 받기 시작하여,
8살 때 콜론느 극장에서 모짜르트 피아노협주곡 20번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으로 데뷔했다.
1955년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유럽으로 이주한 후, 니키타 마갈로프, 리파티 부인, 프리드리히 굴다,
베네디티 미켈란젤리, 스테판 아쉬케나제 등으로부터 피아노 수업을 받았다.
특히 프리드리히 굴다는 엄격한 스승으로서 그녀를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과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를 불과 5일만에 독파하도록 요구할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이 과업을 쉽게 해냈다.
1957년 아르헤리치는 불과 3주 동안에 볼자노의 부조니 콩쿨과 제네바의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60년부터 레코딩 작업을 시작하는데, 도이취 그라마폰에서 쇼팽, 리스트, 브람스, 라벨,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을
수록한 앨범을 레코딩하여 한바탕 '아르헤리치 열풍'을 일으켰다.
특히 그녀가 연주한 프로코피에프의 '토카타'와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6번'을 듣고 호로비츠는 두 눈을 깜박거리며
감격스러워 했다.
그러나 1년에 150회 이상의 콘서트와 레코딩 작업으로 잠시 주춤거리기도 했다.
아르헤리치는 1965년 바르샤바의 쇼팽 국제 콩쿨에서 우승과 마주르카 특별상을 획득하면서 다시 등장하여,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되었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배석했던 위젠 리스트는 그녀의 연주에 대해서 '화산처럼 강렬한 열정의 분출'이라고 극찬했다.
1967년 뉴욕, 링컨센터의 연주를 통해 미국에서 데뷔하고, 1968년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와 결혼했다.
1970년 샤를로 뒤트와 지휘, 마르타 아르헤리치 피아노 연주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녹음하여
단번에 베스트셀링 레코드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후에 그녀는 뒤트와와 이혼했다.
아르헤리치의 레파토리는 베토벤, 쇼팽, 슈만, 리스트, 드뷔시, 프로코피에프, 라벨, 바르톡 등을 포괄하지만,
그녀는 주로 19, 20세기의 비르투오조 피아노 작품 연주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그녀 혼자서 연주하는 경우를 만나기가 어렵다.
아르헤리치는
1978년 워싱턴 DC에서 바르톡의 소나타와 아르헨티나의 현대 작곡가 히나스테라의 '아르헨티나 무곡' 세 작품을
공연한 이후 솔로 리사이틀 무대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그녀는 혼자서 연주하는 것보다 다른 연주자와 함께 하는 것을 즐긴다.
17세에 바이올린 연주자 요제프 시게티와 연주했고, 역시 바이올린 연주자인 기돈 크레머,
첼로 연주자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미샤 마이스키와 연주하여 음반을 내기도 했다.
또한 다른 피아노 연주자인 넬슨 프라이어, 스티븐 코바체비치, 니콜라스 에코노무, 알렉산드르 라비노비치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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