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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Jimi Hendrix - Voodoo Child

 

 


 

 

 

 

 

 

 

Voodoo Child(Slight Return) By Jimi Hendrix from his 1968 album ''Electric Ladyland''

Lyrics:

Well, I stand up next to a mountain
And I chop it down with the edge of my hand
Yeah


 

Voodoo Child

 


Well, I stand up next to a mountain
And I chop it down with the edge of my hand
Well, I pick up all the pieces and make an island
Might even raise a little sand

Yeah

cause I'm a voodoo child
Lord knows I'm a voodoo child baby
I want to say one more last thing
I didn't mean to take up all your sweet time
I'll give it right back to ya one of these days

Hahaha

I said I didn't mean to take up all your sweet time
I'll give it right back one of these days

Oh yeah

If I don't meet you no more in this world then uh
I'll meet ya on the next one
And don't be late
Don't be late

cause I'm a voodoo child voodoo child
Lord knows I'm a voodoo child

Hey hey hey

I'm a voodoo child baby
I don't take no for an answer

Question no
Yeah...

 

 

 

 

 

 

 

 

 

 

 

 

Hendrix

 

출생 : 1942년 11월 27일 (미국 워싱턴)
사망 : 1970년 9월 18일
데뷔 : 1967년 1집 앨범 [Are You Experienced?]
경력 : 1970년 밴드 오브 집시즈 결성
         1969년 일렉트릭 레이디랜드 설립
         1966년 ~ 1969년 지미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멤버
         1969년 8월 우드스탁 페스티벌 출연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라는 이름은 하나의 신주단지와도 같다.
그의 전성기는 60년대 말이었고 70년대가 열리자마자 이 세상을 떠나 이미 오래 전 역사 속으로 들어간 인물이지만

그는 지금도 불멸의 기타 천재로 많은 뮤지션들의 추앙을 받는다.


 

누구 말마따나 '아직까지도 일렉트릭 기타 음악이 위대한가 아닌가 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다.
아마 그의 위대함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동시대의 그룹이었던 도어스(The Doors)의 건반주자

 레이 만자렉(Ray Manzarek)의 말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천재로 추켜세우는 이유는 그가 진짜로 천재였기 때문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이처럼 먼저 뮤지션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록 뮤지션들은 한결같이 그가 창조해낸 폭발적인 기타 연주에 넋을 잃었다.

마이크 블룸필드(Mike Bloomfield)라는 기타연주자는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놀라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 연주음은 마치 수소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고 유도미사일이 날아다니는 듯 했다.
난 그 앞에서 내 기타조차 꺼내들 수가 없었다.”

당시 큰 소리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그룹 더 후(The Who)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센드

(Pete Townshend)와 기타의 신(神)이라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등 초일류 연주자들도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피트 타운센드는 그 소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경쟁심이고 뭐고 다 떠나서 지미 헨드릭스의 기념비적인
미국 몬터리 팝 페스티벌(Montery Pop Festival) 데뷔를 주선했으며 에릭 클랩튼은 지미가 죽었을 때

하루종일 슬피 울었다고 한다.

스스로 최고라 뻐기고 있던 그를 긴장시킨 천재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대중음악 역사에서 지미 헨드릭스가 터뜨린 두 가지 혁명적 대사건이 있다.

 

하나는 상기한 67년 몬터리 팝 페스티벌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전설적인 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

(Woodstock Festival)에서였다.

 

켈리포니아의 몬터리 공연에서 그는 Voodoo Child을 연주하고나서 뜻밖에 기타 앞에 무릎을 꿇더니

 기름을 부어 불을 질러버렸고 마치 의식을 거행하듯 그 기타의 화염을 애무(?)했다.

객석은 순식간에 절정의 도가니로 변했다.
필름과 사진으로 잘 알려진 이 사건은 격동의 60년대를 주도한 '성난 젊은이'의 포효로서 록의 혈통에 면면히 흐르는

항거와 도발의 전형적 의식(儀式)으로 기록되고 있다.

영국의 음악전문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ew Musical Express)는록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의 하나로 꼽으면서

'바로 이 순간 록의 전설이 탄생했다'고 했다.

 

 

 

 

 

 

 

2년 뒤 우드스탁 축제에서의 사건 또한 너무도 유명하다.
공연 마지막 순서에 나와 일절 딴 악기 없이 오로지 기타만을 가지고,그것도 다른 곡도 아닌 신성한 미국의 국가 를

'린치하듯' 연주해낸 것이었다.

 

(지미는 영국에서 먼저 이름이 났지만 미국 흑인이다).
거기에는 구사된 갖가지 파열음과 소음을 들은 사람들은 즉각 그것이 총격과 포화의 전쟁터를 묘사하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그 연주는 곧 '미국은 현재 전쟁(월남전)중'이라는 암시였고 동시에 기성의 미국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을

 축약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백인 보수적 중산층에게 그는 하나의 공포일 수밖에 없었다.
68년 민주세력의 염원과 달리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은 젊은이들의'반(反)문화'를 파악하기 위해 지미 헨드릭스와

만남을 시도했었다는일화를 남긴다.

지미 헨드릭스는 그리하여 대중음악의 예술성외에 '시대성'을 소유한 역사상 드문 인물이다.
그에게는 반드시 기존체제와 질서의 해체를 부르짖었던 60년대 베이비붐세대의 카운터 정서를 연주로

대변한 뮤지션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이것이 다른 기타 영웅들인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Jimmy Page), 제프벡(Jeff Beck),

리치 블랙모어(Richie Blackmore) 등과 뚜렷하게 차별되는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서태지가 그렇듯 하나의 음악가인 동시에 '사회적 인사'로서 의미를 지녔던 셈이다.
지미 헨드릭스의 말을 들어본다.

“젊은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크고 거칠고 폭력에 가까운 어떤 것을 찾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록 공연장에 가지 않는다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가 시대와 음악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기타 오케스트레이션'을 창조해낸 데는 전문적인 용어로

 '피드백'(feedback)과 '와우와우'(wah-wah) 주법의 힘이 컸다.

피드백은 기타와 앰프 사이에서 나는 불협화음인 하울링(howling)을
화음의 소리로 들리게 하는 지점을 찾아 사운드를 이어가는 방식을 가리킨다.


와우와우 역시 효과음페달로서 마치 어린아이 우는 소리처럼 들리는

이 이펙터(effector)를 지미 헨드릭스만큼 유효하게 또 인상적으로 다룬 연주자가 없다는 게 정설로 되어있다.
그는 피드백과 와우와우를 통해 당시 젊은이들의 심정을 관통하는, 마치 고통으로 흐느끼고 울부짖는 기타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신음하는 기타, 말하는 기타였다.
더욱이 그의 음악은 슬픈 블루스였고 그 블루스는 지미 헨드릭스에 의해 록의 기반과 뿌리임이 낱낱이 증명되었다.
그를 '블루스의 혁명아'로 일컫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는 흑인특유의 끈끈함이 배어 있는 블루노트 펜타토닉을 기반으로 강렬하고 공격적이며 격한,

그리곤 외로운 명 프레이즈들을 남겼다.

그의 피킹은 힘이 없는 듯 하면서도 격정적이며, 핑거링은 아무 생각없이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잘 정돈된 질서가 있다.

또한 블루스 락 기타리스트답게 여러 가지 핑거 테크닉을 다양하게 구사한 바 있다.

솔로의 경우 1현에서 2현으로 프레이징 되다가도 순간적으로 아무 의미 없이 오픈코드에 의해 줄 전체를 피킹해 버리는
비형식적인 면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Voodoo Chile' 등에서와 같이 커팅을 이용한 프레이즈도 즐겨썼고, 반음튜닝에 의한 갖가지 폭발적인 벤딩과

비브라토 아밍을 구사하였다.

 

로버트 존슨으로부터 B.B.킹이 블루스를 넓혀갔다면, 지미 헨드릭스에 와서 그것은 프로그레시브한 모티브를 얻어
그 방법적 틀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생전에 남긴 정규 앨범은 1967년의 The Jimi Hendrix  Experienced 1집 Are You Experienced.
1968년의 2집 Axis: Bold as Love. 3집 Electric Ladyland 등 3장 밖에 없다.

하지만 연주자나 팬들 그리고 록과 록 기타를 연구하는 사람들한테는 생필품과 같은 작품들로서 모조리 록의 명반으로

꼽힌다.

곡으로는 'Hey Joe' 'Purple haze' 'All along the watchtower' 그리고 'Voodoo child'가 애청된다.

1970년 9월 27살에 요절했지만 그의 천둥 연주는 지금도 쇼크이며, 지금도 아름답고,
지금도 록 무대 특유의 성적 쇼맨십과 오만의 절정을 이룬다.

지금도 그는 많은 기타지망생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지만 '예술성과 시대정신'이 공존하는 그 산을 넘은 사람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우리 밴드의 음악은 전자기타로 된 종교음악이다. 영혼을 때려서 영혼을 열게 하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랄 수 있다.”
록 기타시대를 연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는 1942년 11월 27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지미 헨드릭스의 아버지는 탭 댄서였고 어머니 루실(Lucille)은 알콜 중독자였다.

이들 부모는 지미가 7살 때 헤어지고, 지미는 그 때문에 사랑이 결여된 빈곤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어느 날 지미는 아버지로부터 우쿠렐레를 선물받게 되는 데 이것이 그에게 있어선 최초의 현악기와의 만남이었다.
58년에 어머니 루실이 알콜중독과 결핵으로 병원에서 사망하자 지미는그 충격으로 더욱 음악에만 몰두하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지미는 기타연주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서 공공연히 약물을 복용해대는 문제아였고 오로지 기타만 쳐댔다.

 결국 그는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만다.

이후 지미는 낙하산 병으로 군에 입대했는데 여기에서도 ‘Casuals’라는밴드를 조직해 연주를 계속하였다.
제대 후 지미는 65년까지 리틀 리처드의 보조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기타리스트 스티브 크로퍼(Steve Cropper)와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미의 명성은 66년경으로 오면 더욱 높아져당시 명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마이크 브룸필드나

 에릭 클랩튼 등에 비교되기도 했다.

 

이 당시 지미의 연주를 보던 사람들 가운데엔 ‘프랑스의 엘비스 프레슬리’라 불리우던 쟈니 할러데이도 있었다.
쟈니는 지미를 보곤 자신의 파리 공연에 오프닝으로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지미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멤버를 찾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달려온 인물은 노엘 레딩(Noel Redding)이었다.
원래 노엘은 기타리스트로써 자리를 구하러 왔다가 지미와 한번 연주해보곤 즉시 기타를 포기하고 베이스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또한 미치 미첼(Mitch Mitchell)은 노엘보다는 더욱 큰 확신과 재능을 갖춘 드러머였다.

 (당시 19살이었던 그는 3살 때부터 드럼을 연주했다)

이렇게 해서 멤버를 규합한 지미는 3인조 록 트리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를

출범시키고 3일간의 연습을 거친 후 쟈니 할러데이의 유럽공연에 참가하였다.

공연 후 이들은 ‘Polydor’ 레이블과 계약하고 역사적인 데뷔작 [Are YouExperienced?]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서 지미는 충격적인 사이키델릭 하드록 기타를 들려주어 그는 금새 음악계 최고의 화제대상이 되었다.


화려한 데뷔를 장식한 지미는 계속해서 기타사에 길이 남을 걸작 앨범들을 발표해 역사상 최고의 대 기타리스트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지미는 여러 가지 악성 루머들 속에서 그룹을 해체시키고 드러머 버디 마일즈(Buddy Miles),

 베이시스트 빌리 콕스(Billy Cox) 등과 새로운 밴드를 출범시키고 70년에 [The Band Of Gypsys]라는
데뷔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새롭게 출발한 그룹 ‘밴드 오브 집시’ 는 지미의 죽음(70년 9월 18일 약물중독으로 사망)으로 제대로

 활동도 못한 채 없어지고 말았다.
지미 헨드릭스는 명실공히 역사를 바꾼 대 기타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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