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less Whisper
I feel so unsure As I take your hand
and lead you to the dance floor
As the music dies Something in your eyes
Calls to mind a silver screen
And all those sad goodbyes
나는 무척 불안해요
당신의 손을 잡고 플로어로 이끌 때
음악이 죽어갈 때 당신 눈에 무언가 있어요
영화를 떠올려 보면 모든 건 슬프게 이별하죠
Guilty feet have got no rhythm
Though it's easy to pretend
I know you're not a fool
다시는 춤을 추지 않겠어요
죄책감의 발걸음은 박자를 놓쳐요
시치미 떼는 건 쉽지만 당신은 바보가 아니죠
And waste the chance that I'd been given
So I'm never gonna dance again
The way I danced with you
친구를 대하는 것 처럼 해야 했어요
내가 가진 기회를 놓쳤어요
그래서 다시는 춤을 추지 않겠어요
당신과 추었던 것 처럼
The careless whispers of a good friend
To the heart and mind If your answer's kind
There's no comfort in the truth Pain is all you'll find
시간은 결코 해결하지 못해요 친구의 경솔한 속삭임
가슴과 마음으로 만약 당신의 대답이
진실은 편하지 않아요 고통속에 빠질 거예요
* repeat *
What am I without your love ?
Tonight the music seems so loud
I wish that we could lose the crowd
Maybe it's better this way
We'd hurt each other with the things we want to say
당신의 사랑 없이 나는 무엇인가요 ?
오늘밤은 음악이 무척 시끄러운 것 같아요
우리가 사람들을 벗어나길 바래요
아마도 이게 더 좋겠죠 우리는 서로에게 아픔을 줄테니
We could have been so good together
We could have made this last forever
But now, who's gonna dance with me ?
Please stay And now it's never gonna be That way...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우리는 영원히 지킬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 누가 나와 춤을 추나요 ? 제발 여기 있어요.
이제 결코 이룰 수 없어요 이렇게는
Now that you're gone (Now that you're gone)
Now that you're gone Was what I did so wrong ?
So wrong that you had to leave me alone ?
이제 당신은 떠났어요 (이제 당신은 떠났어요)
이제 당신은 떠났어요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요 ?
너무 잘못해서 당신이 나를 떠난 건가요 ?
Wham
사실 우리는 왬(Wham!)이라는 듀오를 영국의 아이돌 팝 듀오로 기억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에 대하여 이제는 80년대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남성 팝 보컬리스트 조지 마이클
(George Michael)의 음악 커리어를 위한 전주곡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왬이 발표했던 음반들이 음악사적으로 길이 남을 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앞으로도 안하는 것이 아직까지도 왬의 이름을 사랑하는 골수팬들에게는 정신 건강(?)에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이들은 활동 당시에는 상업적인 인기는 물론 모든 면에서 홀 & 오츠에 버금가는 스타덤을 얻었으며,
이 시절의 성공이 없었다면 과연 조지 마이클이 지금과 같은 자신감에 찬 솔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게다가 우리는 그들의 외형적인 모습에만 현혹되어 이 듀오의 음악에 대한 구체적 재평가를 못한 것이 사실인데,
비록 아이돌 팝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한 듯해도 이들의 음악 속에는 6-70년대의 미국 소울 사운드
(특히 모타운 소울과 훵크의 영향)가 녹아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80년대에 대중적인 팝으로 정착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실례가 됨이 분명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들의 음악에도 감히(!) ‘블루 아이드 소울’이란 용어를 붙여보고자 하는 것이다.
블루 아이드 소울의 진정한 팬들에게는 불만의 소지가 있더라도 여기에서의 의미는 다분히 ‘어휘적’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더욱 원숙한 보컬과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가 왜 결혼을 안하는지 해답을 알아버린!) ‘Coming-out Guy’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과 그 시절만큼은 오히려 전세계 여성 팬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든 남자 앤드류 리즐리(Andrew Ridgeley). 그들의 짧은 활동기간을 되돌아보면서 이미지 속에 감추어졌던 이들 음악의 속모습과 그것이 조지의 솔로 활동에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가를 되돌아보자.
런던의 반항아 청년 두 사람이 틴 팝의 스타가 되기까지
1963년 런던에서 아랍계 아버지 덕분에 Georgios Kyriacos Panaiotou라는 조금 이상한 본명을 갖고 태어난
조지 마이클은 런던 교외에 위치한 Bushey 종합학교에 전학을 가게 되면서 동갑내기인 앤드류 리즐리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조금은 자기도취적 성향을 가졌던 앤드류와 차분하지만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조지는 자기들도 모르게 금새 친구가 되어버렸고, 16살이 되었을 때 두 사람은 마침내 밴드를 결성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미 청소년기부터 조지는 곡을 쓰기 시작한 경험이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그는 ‘Rude Boy’라는 곡을 만들고
이어서 79년에 스카 성향의 밴드 Executive를 결성하고 활동하지만, 별 반응도 없이 밴드는 해산해 버리고 만다.
이후 이들은 계속 작곡을 하고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는데, 이때 만든 트랙들이 바로 Wham! Rap, Club Tropicana,
그리고 나중에 이들 최고의 히트작으로 기록된 Careless Whisper였다.
수많은 음반사들에게 그들의 데모 테이프를 보내고 수없이 퇴짜를 맞은 이후 결국 이들을 받아준 곳은
Innervision이라는 소규모 레이블이었으며, 여기서 그들의 데뷔 앨범 FANTASTIC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이들의 이후 앨범보다 오히려 더욱 훵키 소울에 가까운 트랙들이 주종을 이뤘는데, 첫 싱글 Wham! Rap은 당시 영국 음악으로서는 드물게 랩 가사가 주종을 차지하는 훵크 트랙으로서 처음 발매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비슷한 성향의 두 번째 싱글 Young Guns가 영국차트 10위권에 들며 이들의 이름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이후 경쾌한 훵키-팝인 Bad Boys와 Club Tropicana의 연이은 성공은 결국 앨범까지 영국차트 정상에 올려놓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명성을 얻어 갈수록 Innervision 레이블과는 점점 마찰을 빚게 되었는데, 그 결과 법적 투쟁까지
거치면서 레이블의 손아귀에서 독립하게 되었고 그 후 본격적으로 메이져 음반사인 Columbia/Epic과 계약을 채결, 세계 시장에 나갈 준비를 마친다. (결국 앨범 FANTASTIC은 Columbia 레이블을 통해 재발매된다.)
일단 새 레이블에서 둥지를 튼 두 사람은 첫 앨범보다는 훵키한 색채를 조금 누그러뜨린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들의 2집이자 이들에게 전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앨범인 MAKE IT BIG이었다.
첫 번째 싱글 ‘Wake Me Up Before You Go-Go’는 영국에서 먼저 1위를 차지하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의 반바지와 글자로 채워진 하얀 셔츠가 인상적인) 뮤직 비디오의 힘을 빌어 드디어 MTV와 미국 음반시장에
진출, 역시 정상에 오른다.
게다가 이미지상으로도 데뷔 앨범에서의 반항아적 이미지를 버리고 깔끔하게 단장한 미소년 이미지로 변신한
이 두 남성에게 이제 전 세계는 열광하기 시작했고, 이어 발표한 Careless Whisper,
Everything She Wants, Freedom도 연속 1위에 올라 이들은 어느덧 당대 최고의 대중적 인기를 모은 팝 듀오로
인식되었다.
Album Review Make It Big (84) 왬이라는 듀오의 두 번째 앨범이자 Wake Me Up Before You Go Go의
그 경쾌한 ‘Jitterbug(우리가 일명 ‘지루박’이라 일컫는 그 춤의 이름)’ 인트로가 아직까지 생생한 이 앨범은
80년대 영국식 블루 아이드 소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물론 여기서의 ‘블루 아이드 소울’은 미국식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인데, 미국식 블루 아이드 소울이 다분히
정통 소울과 필라델피아 사운드에 뿌리를 둔 것이라면 영국에서의 블루 아이드 소울은 글자그대로 ‘백인이 하는
R&B/Soul’로서 기존 소울 뮤직은 물론 모타운식 사운드나 70년대의 Funk적 요소까지 영향을 받았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하여간 첫 번째 앨범의 틴 팝(Teen-Pop)적이면서도 거칠었던 사운드를 (그들의 외모처럼) 말끔하게 다듬은
이 앨범은 궁극적으로 ‘영국화’된 흑인 음악이 대중적인 팝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데, 우리에게는 가벼운 팝송으로만 기억되었던 Wake Me Up이나 Freedom같은 트랙들을 주의 깊게
다시 들어본다면 바로 60년대 말의 모타운 소울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계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래 속에 등장하는 혼 섹션과 코러스, 리듬 파트를 다시금 경청해 보시길!)
그리고 리믹스 버전이 더욱 사랑을 받았던 Everything She Wants는 조지 마이클의 초기작 가운데 다시 봐야
할 수작으로, 지금 들으면 약간 촌스러운 듯해도 훵키한 리듬감이 살아있는 리듬 파트와 신서사이저 이펙트,
그리고 조지의 (기존의 백인 소울 싱어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개성 있는 보컬이 조화를 이룬 Synth-Soul-Funk를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앨범의 백미이자 왬의 최고의 히트곡인 Careless Whisper는 Everytime You Go Away의 폴 영 버전과 함께 영국식 블루 아이드 소울의 80년대의 대표작으로 꼽힐 발라드로 그 애상적 정서는 분명 조지 마이클의 음악적 정체성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비록 첫 앨범보다 훵크의 색채가 옅어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러한 대중성의 확보로 인해 이들은 당대 최고의 영국 듀오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최고의 자리에서 이루어진 해체, 그리고 두 사람의 솔로 활동
85년 동안 이들은 그 어는 팝 스타들보다 바쁜 활동을 보였다.
팝 아티스트 사상 최초의 중국 공연을 감행함으로써 아시아권에서 자신들의 인기를 절대적으로 다지는 데 성공했음은 물론 쉼 없이 전 세계 투어를 돌면서 탄탄한 인기 전선을 구축했다.
그리고 행여나 공백기라도 생길까 85년 가을에는 싱글 I’m Your Man을 발표하여 팬들의 환호에 답례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의 히트 행진은 계속될 것이며, 이 듀오의 앞날은 창창하다고 많은 일반 팬들은 예측했으나, 이미 평론가들은 그룹 음악의 대부분(거의 99%)을 작사, 작곡하고 제작까지 하는 조지 마이클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즉, 평론가들은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그가 솔로로 나서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86년 벽두에 들어서 결국 조지 마이클은 자신의 이름으로 첫 싱글 A Different Corner를 발표하면서 이러한 예측은 점점 현실화되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는 두 사람은 해체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86년 초 3집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을 완성할 즈음 두 사람은 기자회견을 갖고 ‘최정상에
올랐을 때 해체하자고 다짐했었다’는 모호한 변명(?)으로 그룹의 해체를 공식화했다. 결국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되어
버린 MUSIC FROM은 사실 EP성격의 앨범으로 4곡의 신곡과 함께 2집 이후 발표된 싱글 트랙들 - Last Christmas, I’m Your Man, A Different Corner 등 -을 담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타이틀곡인 The Edge Of Heaven과
Where Did Your Heart Go?가 히트하면서 이들의 히트 행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특히 웸블리구장에서 있었던 이들의 고별 공연에는 7만 2천명의 관중들이 모여 당시 팝 팬들이 이들의 해체를 얼마나 아쉬워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음악 관계자들이 예상한대로 이후 두 사람의 활동은 거의 그 명암이 뚜렸했다.
먼저 조지 마이클은 87년에 곡 자체는 물론 비디오로도 논란을 불러일으킨 싱글 I Want Your Sex
(‘베벌리 힐즈 캅 2’의 수록곡)와 존경하는 대선배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과 함께 부른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로 성공적 솔로 데뷔를 장식하고 그해 말에 앨범 FAITH를 발표, 타이틀곡을
비롯하여 5개의 Top 5 히트를 거두며 단번에 정상급 솔로 아티스트의 지위를 차지한다.
그후 90년도에 발표한 LISTEN WITHOUT PREJUDICE는 자신의 음악적 주관이 더욱 강하게 녹아있는
앨범이었으나, 이 앨범의 상업적 성과가 전작에 못 미친 것에 대한 책임론이 그와 레이블간에 서로 오가면서 결국
그는 몇 년간의 지루한 법정 싸움을 거쳐 왬 시절부터 함께 했던 소니 레이블과 베스트 앨범 LADIES &
GENTLEMEN을 내놓는 조건으로 결별했다.
영국에선 Virgin, 미국에선 Dreamworks로 레이블을 옮겨 발표한 95년작 Older는 긴 공백의 산물이었음에도
Jesus To A Child와 Fast Love의 히트로 그의 명성을 지켜주었으며 이후 여러 싱글들과 베스트 앨범,
그리고 리메이크 앨범으로 만든 99년작 SONGS FROM THE LAST CENTURY까지 그를 감고 도는 수많은 외적
스캔들과 입방아와는 관계없이 꾸준한 활동을 보이며 영국식 블루 아이드 소울의 대중적 계승자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앤드류 리즐리는 듀오의 해체 이후 한동안 자동차 경주와 영화계에 관심을 갖다가 90년 조지와 왬 시절의
세션 팀들의 도움으로 솔로 앨범 ‘Son of Albert’를 발표했지만 본국인 영국에서도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미국 시장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수모를 당한 후 현재까지 음악인로서의 활동은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아, 한 사람 더. 왬의 세션 및 투어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조지의 오른 팔 디온 에스터스(Deon Estus)는
조지의 도움으로 88년에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 때 듀오를 했던 두 사람이 솔로로서는 다른 운명을 걸어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어쩌면 Wham!이라는
듀오가 기존의 듀오들이 가진 공통적 특성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동했던 팀이기 때문일 것이다.
80년대의 다른 대표적 듀오들(Daryl Hall & John Oates, Eurythmics 등)의 경우에서처럼 한 사람이 음악 제작을
전담하고 나머지 한 명이 보컬을 담당한다던가, 아니면 음악 제작에 50:50의 공평성을 유지한 것과는 달리
Wham!의 음악은 전적으로 조지 마이클의 음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듣던 Soul음악, Funk등 흑인음악에서 체득한 감각을 백인 청소년들이 좋아할
Sugar Pop적 멜로디 속에 녹여낼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었고, Wham!에서의 그의 음악은 그의 솔로 시대의
음악보다는 깊이가 조금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재기 발랄하고 패기가 있으며 생동감이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물론 거기에는 음악적으로 도움이 별로 못되었더라도 앤드류와의 우정이 가진 가치도 절하될 수 없을 것이지만
말이다.)
결국 Wham!이란 듀오는 조지 마이클이란 인물에게는 꼭 거쳐가야 했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었으며, 팬들에겐
아쉽겠지만 그렇게 빨리(!) 해체해버렸기에 오히려 그에겐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꽃피울 기회가 부여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Album Review The Final (86) 갑자기 정규 앨범을 놔두고 이 베스트 앨범을 리뷰 자리에 내놓았는지 의아해할 팝
팬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들이 3장의 앨범 속에 담았던 총 24곡의 노래들은 버릴 곡이 하나도 없지만, 그들의 음악 스타일의 점진적
변화를 한 번에 느끼고 싶다면 베스트앨범이 여러분들에게 가장 실속 있고 일목요연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 앨범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후 나온 다른 베스트 앨범에 비해 선곡 면에서 가장 깔끔하고 리믹스가
그리 많이 담기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편집 음반은 왬 해체 직후 일본 CBS/SONY에서
기획, 발매된 것이다.) 이 앨범 속에는 1집에서 4곡, 2집에서 4곡, 3집에서 6곡이 실려있다.
(솔직히 3집은 새 싱글은 4곡뿐이었고 나머지는 그 동안 따로 발표한 싱글들의 다른 버전들이다.) 2집을 따로
언급했으므로 나머지 앨범 수록곡들에 주목해보면, 1집의 수록곡들은 - Wham! Rap부터 Club Tropicana 까지
- 비록 조금 거친 느낌이어도 훵크의 리듬감이 잘 살아있어 조지의 음악적 지향을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본문에서 잠시 언급한 흑인 베이시스트 Deon Estus의 유유하게 넘실거리는 베이스 라인이 돋보이는
The Edge Of Heaven 그리고 Don Was의 곡으로 이들이 원곡보다 더 소울풀하게 리메이크한
Where Did Your Heart Go, 그리고 훵키하면서도 실험적인 Battlestation 등의 3집 수록곡들은 1-2집의 장단점이 성공적으로 보완된 이들 사운드의 완성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이 앨범은 왬을 추억하고픈, 그리고 조지의과거를 확인하고 싶으신 팝 팬들에게는 가장 적합한 컴필레이션이며
80년대가 낳은 영국식 블루 아이드 소울 보컬의 연대기의 첫 권(vol.1)이 되어주고 있다.
나오는 글 두 듀오의 80년대에서의 위상은? 홀 & 오츠와 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두 팀에게서 한 가지
재미있는 공통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두 듀오의 활동 기간은 천지차이이지만 한가지는 두 듀오가 음악적인 지향면에서 비록 서로
흑인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스타일은 틀리더라도 60년대 소울 음악에 뿌리를 둔 소위 ‘블루 아이드 소울’의 후예들로서 각각 영국과 미국 대륙을 대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두 팀 모두 음악적인 주도권과 카리스마를 행사할 수 있는 리더 - 대릴 홀과 조지 마이클 - 가
분명함으로써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아티스트적인 자존심이 담긴 사운드로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90년대 이후 백인들이 흑인음악을 한다면 R&B와 힙합의 검은 색에 그대로
동화되어야만 훌륭한 것처럼 평가받는 현실에서, 이들처럼 흑-백의 요소들을 아우르며 자신들만의 독창성을 확보하고자한 노력은 그러한 지향을 가진 후배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ham 은 초기 앤드류 리즐리의 외모 덕분에 인기를 얻었으나
후에는 조지 마이클의 가창력과 뛰어난 작곡 능력으로 인정을 받았다.
조지 마이클의 두드러진 활동은 상대적으로 앤드류 리즐리의 활동을
위축시켰고 결국 이들은 1986년 해체하고 만다.
1985년 2월 6일부터 3주간 빌보드 챠트 1위를 차지한 'Careless Whisper' 는
후에 빌보드에 의해 최우수 싱글로 선정되기도 했다.
'Careless Whisper' 는 도입부에 연주되는 색소폰과 드럼의 조화,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조지 마이클의 감미로운 목소리,
흑인 음악을 기초로 한 소울적 편곡에 아메리칸 팝 스타일의 음악적 양식 등이
잘 조화되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또한 처음부터 이어지는 일렉트릭 기타는 튀지 않는 편곡으로
곡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이들의 뮤직 비디오도 그 당시
파격적인 영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웸은 고등학교 동창인 조지 마이클과 엔드류 리즐리가 결성한 남성 듀오로81년 싱글앨범 '웸 랩!(Wham Rap!)'으로 데뷔했다.
1984년 발표한 2집 앨범 "Make It Big"은 "Wake Me Up Before You Go Go"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웸을 세계적인 인기그룹의 반열에 올려놨다.
이후 싱글 앨범으로 발매한 "Last Christmas"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1985년 서양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베이징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고, 1986년 영국 웸블리에서 '더 파이널
(The Final)'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공연을 선보인 후 해체했다. 웸의 해체 이후 마이클은 솔로로 8500만장의 음반을판매했으며 1987년 제30회 미국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R&B 보컬상을 비롯해 1988년 제 31회 미국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등을 수상했다.
한편 리즐리는 솔로로 독립하는데 실패해 현재는 가수 출신인 부인 케런 우드와 함께 콘웰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 해체한지 20년만에 다시 재결합한다는 소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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