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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Gary Moore-Don't Let me be Misunderstood , The Loner

 

Gary Moore-Don't Let me be Misunderstood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Baby, do you understand me now?
Sometimes I feel a little mad.
Don't you know that no one alive can always be an angel.
When things go wrong, it seems so bad.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Baby, sometimes I'm so carefree
with a joy that's hard to hide.
And sometimes it seems all I do is worry,
and then I show my other side.

'Cause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If I seem edgy, I want you to know
that I'd never mean to take it out on you.
Life has its problems and I get my share,
that's one thing that I never mean to do.
'Cause I love you.

'Cause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If I seem edgy, I want you to know
that I'd never mean to take it out on you.
Life has its problems and I get my share,
and that's one thing I never mean to do.
'Cause I love.

Oh baby, don't you know I'm human
and have thoughts like any other one.
And sometimes I find myself alone,
regrettin' some foolish things that I have done.

'Cause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Cause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No, no, no, misunderstood.
Oh yeah, yeah,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The Loner



 

 

 

 

)

 

Gary Moore

 

 

하드락 기타리스트 중에서 게리 무어(Gary Moore)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여정을 거쳐왔던 아티스트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는 실로 많은 것을 겪었고, 또한 그러한 경험들을 음악을 통해 진실되게 표현하려고 애를 쓴 흔적을

그의 작품마다 남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진지함 때문일까? 그는 제일 커다란 팝시장인 미국에서 보다는 오히려 무게있는 음악을 선호하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특히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현란한 테크닉과 수려한 멜로디로 치장된 그의 연주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부터 느껴오던 쓸쓸함을 진하게 담고 있다.

종교분쟁으로 불안하고 어지럽던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52년 4월 4일에 태어난 그는, 10대에 더블린으로 이사를

 하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유명한 기타리스트이던 에릭클랩튼이나 지미핸드릭스의 음악을 들으며 기타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던 그는, 특히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기타리스트인 피터 그린(Peter Green)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10대 후반에 로컬 락그룹인 Skid Row(미국의 스키드 로우와는 다른 밴드임)에 기타리스트로 참여하면서 그는

 필 리놋(Phil Lynott)과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당시 이 밴드에서 노래와 베이스를 연주하던 Phil은 후에 그에게 음악적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얼마 있지 않아 전설적인 락 밴드인 Thin Lizzy를 만들면서 Phil이 그룹을 탈퇴하게 되고, 음악적 리더로서의 책임을

지게 된 그는, 활발한 클럽활동을 하면서 뛰어난 연주실력을 인정 받게 되고 그의 우상이던 플리트우드 맥의 공연에

오프닝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의 기타실력을 높이 산 피터 그린은 젊은 뮤지션들로 구성 되어있는 Skid Row를 유명한 음반사인 CBS와 계약을 맺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게다가 자신이 아끼던 59년 깁슨 레스폴 기타를 젊은 게리무어에게 팔게 된다. 이후 이 기타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아끼고 자주 사용하는 기타가 된다.

 

이들이 피터 그린의 도움으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을 때 그는 불과 18살이었다. 70년 Skid와 71년 [34Hours]를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음악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지만 대중들의 냉담한 반응으로 팀은 결국 해체되고 만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3인조 Gary Moore Band를 만들면서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게 되고 73년 [Grinding Stone]을

 발표하게 되나, 역시 상업적으로 실패를 하면서 팀이 해체되는 불운을 겪는다.

이때 그에게 힘을 준 사람은 바로 그의 친구이자 음악적 동료인 Phil Lynott이었다.

 

Phil은 그에게 Thin Lizzy에 참여할 것을 권한다. 잠시동안 Thin Lizzy에 몸담았던 그는 75년 프로그래시브 락 음악을

 추구하던 Colosseum II에 참여해서 [Strange New Flesh](76), [Electric Savage](77), [War Dance](77)등

 세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마침 이때 Phil로부터 다시 팀에 합류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꺼이 Thin Lizzy에 합류해서,

그룹 Queen의 오프닝밴드로 미국 순회공연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바쁜 일정과 왕성한 활동 속에서 끈임없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가던 그는 78년 다시 솔로로 독립하고 절친한

친구인 Phil의 도움으로 [Back on the Streets]라는 앨범을 발표하는데, 이 앨범에 수록된 곡 중 Phil이 보컬을 담당한

 "Parisienne Walkways"가 79년 5월에 영국 차트에서 10위안에 드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힘을 얻은 그는 다시 Phil과 함께 [Black Rose](79)를 발표하면서 영국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국 순회 공연 도중 갑자기 그룹을 탈퇴 해서 또다시 그의 음악에 대한 방랑이

 시작 하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약 3년에 걸쳐, 전설적인 드러머 Cozy Powell과 앨범작업을 하기도 하고, 클래식하드락 밴드인 ELP출신의 Greg Lake와 작업을 하면서 끊임없는 음악에 대한 그의 갈증을 채워나간다.

 

이때 이들과 함께 만든 [G-Force](80), [Lake](81), [Manoeuvre]s(83) 등은 그의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이때에도 틈틈이 솔로앨범인 [Corridors of Power](82)을 발표하면서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을 보여왔던 그는,

후에 완전히 헤비메탈을 지향하는 솔로로 전향해서 그 어느때 보다 활발한 음악활동을 펼친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금지곡이 되기도 했던 [Victims of the Future](83), 그의 놀라운 핑거링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Dirty Fingers](84), [Run for Cover](85), [Wild Frontier](87), [After the War](89)등을 발표하면서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된다.

 

특히 그가 87년에 발표한 [Wild Frontier]는 86년 1월에 세상을 떠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Phil Lyintt을

추모하며 그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헤비메탈 앨범들을 발표하던 그가 갑자기 [Still Got the Blues](90)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70년도부터 장장 20년이라는 긴세월을 끊임없는 음악에 대한 갈증을 보이며 극단을 추구해왔던 그가 발표한 앨범이,

놀랍게도 락음악의 가장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블루스곡들로 가들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앨범은 블루스 기타의명인 Albert Collins, Albert King, 그리고 비틀즈 출신의 George Harrison과 함께

작업한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그가 어쩌다 만들어 본 앨범이 아니라는 확신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이후 90년대 발표된 [After Hours](92), [Blues Alive](93)등 진한 블루스의 감성이 가득한 음악들로 채워진 앨범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의 젊은 시절 우상 중 하나였던 에릭클랩턴이 젊은시절 몸담았던 전설의 그룹 Cream출신의 오리지널 멤버인 '기관총 베이시스트' Jack Bruce와 '드럼의 마왕' Ginger Baker와 함께 BBM(Bruce, Baker, Moore)라는

프로젝트 밴드로 [Around the Next Dream](94)을 발표하기도 한다.

 

95년에는 [Blues for Greeny]라는 타이틀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Peter Green을 기념해서 Peter와 함께

앨범작업을 해서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후 97년 [Dark Days in Paradise]와 99년 [A Different Beat]는 또다시

그의 음악적 방랑벽(?)이 발동한 것처럼 실험정신이 엿보이는 작품들을 내놓는다.

 

 2001년에는 다시 그의 마음의 고향인 블루스에 돌아온 듯한 느낌의 [Back to the Blues]를 세상에 선보인다.

 하지만 2002년에 발표한 [Scars]는 얼터너티브음악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앨범이다.

이렇듯 쉬지않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경계(그에게 있어서 장르를 구분하거나, 규정짓는 것은 무의미 한 것처럼

 보인다)를 뛰어넘는 음악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Gary Moore - 언제 어떤 모습으로 또다시 우리를 놀라게 해 주려는

지 기대해 본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Phil Lynott을 그리워하는 쓸쓸함이 진하게 베어있는 연주곡 "The Loner"를 들어보길 바란다.

 

게리무어의 The Loner

 

 

 

게리 무어의 1984년도 앨범 [Dirty Fingers]의 4번째 트랙에 수록됐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입니다.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이자 피아니스트이며 인권 운동가였던 흑인 여가수 니나 시몬(Nina Simone,

1933년생~2003년 4월 21일 사망)이1964년에 처음 선보인 곡으로, 그후 Moody Blues, Animals, Cyndi Lauper,

Joe Cocker, Santa Esmeralda 등이 리메이크 곡을 냈습니다.

 

 

 1952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나 10살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해서 Mr. Guitar Crazy라고 불리던
게리무어는 16세의 나이에 벨파스트의 전설적인 트리오 Skid Row를 출범시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그 후
Fleetwood Mac의 오프닝 밴드로 활동하면서 주목을 받다가 탈퇴하여 Gary Moore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80년의 [G포스]를 거쳐 솔로 활동에 들어갔다.

게리 무어의 연주를 들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비할수 없을 만큼 깊은 연륜의 맛이다.

그 뜨거운 프레이징과 함께... 그는 처음 기타를  일렉기타로 배웠으며 지금까지도 오직 일렉기타만을 연주하고 있다.

 그것도 한곡 한곡에 생명을 넣는 진지한 연주를 했다. 그래서 그의 기타는 언제나 거세게 호흡하며 예리하게

조여드는가 하면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서정 미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제프 벡, 존 스코필드, 마이클 솅커, 심지어 잉위 맘스틴까지 현재 최고의 테크닉을 자랑하는 기타리스트들이 
게리무어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것도 바로 게리무어의 뜨거운 열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90년 "Still Got The Blues"를 발표했을 때 작품의 뛰어남에 놀라기 앞서 그가 20여년이 넘도록 고집해 온
metal guitarist로서의 자세를 버리고 철저히 Blues guitarist로서 자신의 입장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향후 작품들의

 방향성에 대하여 강한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