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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Dire Straits - Brothers in Arms

 

 


 

 

 

Dire Straits - Brothers in Arms

 

 

 

 

 

 

 

 

 

These mist covered mountains
이 먼지들이 산을 덮고
Are a home now for me
내 살 집이 되는군


But my home is the lowlands
하지만 내 집은 산아래 있고
And always will be
항상 거기 있을 것이고
Some day you'll return to
언젠가 넌 돌아올 것이다


Your valleys and your farms
너의 계곡과 너의 농장으로
And you'll no longer burn
이제 더는 불을 뿜지마라


To be brothers in arms
친구에게 총뿌리를

 

Through these fields of destruction
이 포악한 전쟁터에서
Baptisms of fire
불의 세례를 받으며


I've witnessed your suffering
고통스러워 하는게 보인다
As the battles raged higher

전투는 더 거칠어지고


And though they hurt me so bad
그들이 처참히 날 치더라도
In the fear and alarm
두려움과 놀라움속에

You did not desert me
날 방치해두지 마라
My brothers in arms
총든 내 형제여

 

There's so many different worlds
많은 세상이 있고
So many different suns
많은 태양도


And we have just one world
우리는 그 중 한 세상에 살고
But we live in different ones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Now the sun's gone to hell
태양이 이제 지옥으로 내려가
And the moon's riding high
달이 높이 떠오르고


Let me bid you farewell
네게 작별을 고하니
Every man has to die
어쩔 수 없이 모든 사람은 죽어
But it's written in the starlight
그 죽음을 별빛에 적어두마

 

And every line on your palm
네 손금에도 적어두마
We're fools to make war
우리는 전쟁속의 바보다


On our brothers in arms
친구에게 총뿌리를 향하는

 

 

 

 

 

 

 

 

[Dire Straits]

 

70년대 후반, 후기 펑크시대에 등장했지만, 펑크음악과 거리가 먼 펍 록(pub rock)에 기초를 두고 심지어 멜랑꼴리한

느낌마저 주는 영국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는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음악을 고수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가 이끄는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제이제이 케일(J.J. Cale)의 블루스 록에 기반을 둔 사운드를 구사했고, 때때로 재즈와 컨트리 음악, 심지어 프로그레시브 록의 서사적인 구조도

답습했다.

1977년에 마크 노플러와 데이비드 노플러(David Knopfler, 기타) 형제가 주축이 되어 마크의 친구 존 일슬리

(John Illsley, 베이스)와 함께 그룹을 결성한 이들은 드러머 픽 위더즈(Pick Withers)를 영입해 데모 테입을 만들었다.

로큰롤 고전인 'Sustans of Swing'으로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대단한 인기를 얻어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오프닝 밴드로 투어를 하게 된 이들은 78년 워너사(Warner)와 계약을 맺고 셀프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데모 버전으로 인기를 끌었던 'Sustans of Swing'으로 톱 텐 진입을 하게 된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미국과 영국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어 발표한 두 번째 앨범 [Communique](79)도 전세계적으로 3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쾌거를 기록하였다.

데이비드가 솔로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하고 이전 달링(Darling)의 멤버였던 할 린즈(Hal Lindes)로 교체되면서

 발표한 3번째 앨범 [Making Movies](79)는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지 못하다는 비평에도 불구하고 MTV 히트곡인

 'Romeo and Juliet', 'Skateaway'에 힘입어 가볍게 골드를 기록했다.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82년 장중한 실험곡들로 이루어진 [Love Over Gold]를 발표했다.

 싱글 'Private Investigations'가 UK 차트 2위에 오르면서 앨범은 영국 차트 톱에 4주 동안 머물렀으며 미국에서도

골드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둔다.

 

이후 마크는 영화음악을 작곡하거나 밥 딜런(Bob Dylan), 아즈텍 카메라(Aztec Camera), 티나 터너(Tina Turner) 등 다른 뮤지션들에게 곡을 선사하는 등 한동안 밴드 활동을 접는다.

84년 다시 활동을 재개하여 라이브 더블앨범 [Alchemy]를 발표한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새 키보디스트 가이 플리처

(Guy Fletcher)를 맞이해 다섯 번째 앨범 [Brothers in Arms](85)를 발표,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가미된 뮤직 비디오로 반향을 일으킨 'Money for Nothing'에 힘입어 9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앨범은 미국 차트 정상의 자리를 9주 동안이나 지켰고, 영국에서는 80년대 최고 판매고를 올린 앨범이 되었다.

 

연속해서 'Walk of Life'와 'So Far Away'로 86년까지 계속해서 차트를 지키며 200회가 넘는 공연을 강행한 이들은

 다시 프로듀서로,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게 된 마크에 의해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89년 컨트리 록 그룹인 낫싱 힐빌리즈(Nothing Hillbillies)를 결성한 마크는

[Missing… Presumed Having A Good Time](90)을 발표한 후 다시 다이어 스트레이츠로 돌아와

[On Every Street](91)를 발표한다.


그러나 팬들의 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이들의 앨범은 단 한 장의 히트 싱글도 내지 못했을 뿐더러, 영국에서는 차트

 40위에도 진입하지 못했고 미국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한 것에 그쳤다.

이후 93년 라이브 앨범인 [On the Night]를 발표한 밴드는 다시금 휴식기에 들어가게 되고, 96년 마크는 그의 첫 솔로

앨범인 [Golden Heart]를 발표한다.

비록 밴드의 핵심인 마크 노플러에 의해 좌우되어 밴드 활동에 영속성을 보이지 못하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지만,

 진보적이며 다분히 혁명적인 음악으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필 콜린즈(Phil Collins), 스티브 윈우드

(Steve Winwood)와 함께 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최고로 어필했던 80년대 후반의 베테랑 로큰롤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자료출처: 음악창고]

 

 

 

 

 

 

[Mark Knopfler]

 

“중요한 건 곡이다. 현란한 테크닉의 솔로는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곡과 연관되는 솔로가 좋은

 연주인 것이다.”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에서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기타연주를 들려주는 마크 노플러는 1950년

8월 12일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에서 태어났다.

 

음악 애호가인 부모들 덕분에 그는 어려서부터 쉽게 음악과 접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문학과 저널을 공부하고 고교 교사와 신문사 기자도 했던 그는 Brewers Droop이라는 밴드에 가입해

그룹활동을 했으나 오래가지 못해 탈퇴하고 77년 현재의 다이어 스트레이츠를 결성하게 된다.

1년 후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셀프 타이틀 의 데뷔앨범을 발표하였다.

'Sultans Of Swing'같은 명연이 담긴 이 앨범에서 그는 펜더 스트라토의 깔끔한 톤으로 오른손의 검지, 중지, 약지 등을

모두 활용하는 핑거피킹을 선보였다.

이어서 2집 [Communique]와 80년의 3집 [Making Movies] 등을 계속 발표하며 개성적인 록 기타의 세계를

완성해갔다.

84년에는 라이브앨범 [Alchemy Live]를 발표했고, [Brothers In Arms]는 28회 그래미상에 8개 부문이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룹활동 이외에도 영화음악에 관심을 가진 그는 데이빗 퍼트냄(David Puttnam)의 의뢰로 영화 [Local Hero]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한 바 있고, 이후에도 몇 편을 더 만들었다.

 또한 윌리 닐슨, 티나 터너, 밥 딜런, 쳇 에킨스 등의 앨범에 참여해 또 다른 음악적 영역을 보여주었다.

마크 노플러는 지(知)적인 기타리스트이다. 하지만 ‘지’에 ‘감(感)’까지 적절히 융합하는 센스가 있어,
곡 해석력이

뛰어난 솔로를 만든다.

 

그는 결코 특정 스케일에 기초한 연주를 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詩)적 표정을 기타에 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기타는 ‘연주된다’기 보다는

 ‘읊조린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내츄럴 톤을 잘 살리며 프레이즈를 진행하는 점도 돋보인다.

'Sultans Of Swing'을 발표할 초기 때만 하더라도 그는 다분히 테크닉적인 면과 센스를 함께 보여주는 연주를

추구했었다.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솔로위주의 전개를 줄이고 노래를 보조하는 기능으로서의 애드립을 아주 짧게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Brothers In Arms], [On Every Street] 등 일련의 앨범들에서 그의 이러한 기타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기타를 연주해도 결코‘기타’임이 느껴지지 않고, 또 특정파트가 리드하는 류의 음악을 절대 만들지 않으며, 오로지

 모든파트가 동등하게 ‘잔잔한 자기주장’을 통해 아늑하고 편안한 기분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마크 노플러의

연주관인

것이다.

 

사 용 장 비
◇Schecter, Fender Stratocaster, Fernandes Stratocaster
◇Marshall Amps
◇MXR Analog Delay 등

 

그외 글 조성진 ]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영국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출세작

 

 

아마 팝 세계에서 다이어 스트레이츠 그룹의 리더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처럼 평범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뛰어난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이기도 한 마크 노플러. 그를 설명하는 것은 바로 다이어 스트레이츠를 이해시키는

길일것이다.

 

 부드럽고도 뛰어난 테크닉을 자랑하는 마크 노플러의 기타 연주는 "기타의 재"로 불리우는 저 유명한 쳇 앳킨스

(Chet Atkins)도 감탄을 금치못해 자신의 앨범 제작시 그를 특별 게스트로 초대했을정도다.

 

 그리고 존경하는 대선배 쳇 앳킨스의 부름을 받은 마크 노플러는 자신의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감수, 예약한 모든 자기 일을 취소하면서까지 대선배의 레코딩 세션에 참여함으로서 그 깊은 인간미와 개성을 보여주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1979년초까지도 마크 노플러가 누군인지,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었다.

그러나 1977년 영국 런던에서 데뷔, 78년 초에 첫 앨범 "Dire Straits"를 낸 영국의 록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1979년 2월 싱글곡 "Sultans Of Swing"(스윙 음악의 제왕들)을 빌보드 팝 싱글스 챠트 4위에 올려놓으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77년 이들이 데뷔했을 때의 라인업은 기타와 보컬에 마크노플러, 세컨 기타에 그의 동생 데이빗 노플러

(David Knopfler), 베이스에 죤 일슬리(John Illsley), 드럼에 픽 위더스(Pick Withers)였다.

 

이들은 이 데뷔 앨범을 내놓자마자 세계 각국으로부터 즉각 반응을 얻었다.

특히, 캐나다, 호주, 독일, 프랑스 등에서의 인기는 대단했다.

 

79년에는 이들의 이름이 인기챠트 상위에 오르면서 50여회에 달하는 전미국 순회공연을 성공리에 치루었다.

이어서 그 해 6월에 나온 두번째 앨범 역시 미국은 물론 전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히트했다.

 

82년의 4집 앨범 "Love Over Gold", 그리고 84년 초에 내놓은 "Alchemy"(연금술)도 대단한 관심을 모은

앨범이었다.

그러나 1985년 그 유명한 "Money For Nothing" "Walk Of Life" "Why Worry"가 실린 앨범

 "Brothers In Arms"가 나오면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다이어 스트레이츠를 출세시킨 데뷔 앨범인 이 작품은 사실상 "Sultans Of Swing" 한 곡만으로도 그 모든 가치가

인정되는 명반이다.

물론 런던 서부 고급동네 <웨스트 엔드>의 모습을 풍자한 "Wild West End"라든가 다른 가수들이 자주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하는 "Setting Me Up", "Water Of Love"같은 노래도 훌륭한 팝넘버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Sultans...."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한 것이다.

특히 이 노래의 후반부의 마크 노플러가 밀물처럼 쏟아놓는 멋드러진 기타연주는 그 누구도 매료되지않고는 못배기는

매력의 하나로 꼽힌다.

 

그에게 음악을 느끼게 했던 미국의 스윙 재즈음악의 대가들을 그 멋진 기타연주로 기막히게 표현해준 마크 노플러의

재능은 팝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1992. 7 글. 이양일(팝 저널리스트)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다가오는 기타 연주를 전면에 내세운 영국의 록 그룹 [Dire Straits(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싱어 송라이터이자 기타 연주자인 [Mark Knopfler(마크 노플러)]의 그룹이라고 표현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그룹에서 [Mark Knopfler]가 가지는 영향력이 큰 그룹이다.

[Mark Knopfler]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에서 영국인 어머니와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곱살 때 어머니의 고향인 영국 북동부 [Tyne]강 하구에 있는 항구 도시 [Newcastle Upon Tyne(뉴캐슬 어폰 타인)]으로 가족이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린 시절 [Mark Knopfler]의 삼촌은 곧잘 그에게 하모니카 연주와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었고 그로인해 

[Mark Knopfler]에게 음악적 영감을 심어주게 된다.

 이후 [Gosforth High School(고스포스 고교)]에 입학한 [Mark Knopfler]는 기타 연주자 [Hank Marvin

(행크 마빈)]처럼 분홍색의 [Fender Stratocaster(팬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를 갖고 싶어했으나 50파운드 짜리 트윈-픽업 [Hofner(호프너)] 기타로 기타 연습을 하면서 십대 시절을 보내게 된다.

당시 [Mark Knopfler]는 스쿨 밴드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면서 [Chet Atkins(쳇 애킨스)], [Scotty Moore

(스코티 무어)] [Jimi Hendrix(지미 헨드릭스)], [Django Reinhardt(장고 라인하르트)], [James Burton

(제임스 버톤)] 같은 기타 연주자들의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또한 열여섯살 때에는 친구와 함께 듀오로 지역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1967년 [Mark Knopfler]는 [Harlow Technical College(할로 테크니칼 단과 대학)]의 [Journalism(신문학과)]에 진학하여 학업을 계속하였고 학기를 마치자 웨스트요크셔 주의 [Leeds(리즈)]에 있는 [Yorkshire Evening Post

(요크셔 이브닝 포스트)]에 학생 기자로 취직하여 일을 하게된다.

 

2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고 [Mark Knopfler]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University of Leeds(리즈 대학)]에 편입하여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다.

 

학교를 다니면서 [Mark Knopfler]는 지역의 [Pubs(선술집)]을 무대로 활동하는 여러그룹을 전전하며 음악생활을

지속하였고 [Cafe Racers(카페 레이서)]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 무렵 [Mark Knopfler]는 블루스맨 [Steve Phillips(스티브 필립스)]를 만나 음악적 교류를 나눈다.


1974년 [Mark Knopfler]는 [Summer's Coming My Way]라는 데모 곡을 만들었으나 공개가 이루어지지는

 못하였고 런던으로 옮겨가 [Brewer's Droop(브루우스 드룹)]이라는 밴드에 가입하여 잠시동안 활동을 하게 된다.

 

당시 [Mark Knopfler]의 동생인 [David Knopfler(데이비드 노플러)]는 기타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의

룸메이트가 [John Illsley(존 일슬리: 베이스)]였다.


어느날 우연히 [David Knopfler]의 집에서 [Mark Knopfler]와 [John Illsley]가 만나게 되었고 이 만남이

 [Dire Straits]로 이어지게 된다.

 

 1977년 7월에 [Mark Knopfler]와 [John Illsley]는 [Mark Knopfler]가 [Brewer's Droop] 시절 연이 닿았던

드러머 [Pick Withers(픽 위더즈)]와 [Mark Knopfler]의 동생인 [David Knopfler]를 합류시켜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고 다섯곡의 데모 곡을 녹음하기에 이른다.


이 데모에는 [Sultans of Swing]을 비롯하여 [Wild West End], [Down To The Waterline], [Sacred Loving],

 [Water of Love]가 포함되었다.


 


 

1977년 10월에는 [BBC Radio London]에서 추가로 [Southbound Again], [In The Gallery], [Six Blade Knife] 세곡이 녹음 되었고 11월에는 [Setting Me Up], [Eastbound Train], [Real Girl] 세곡의 데모 테입이 제작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모 테입은 [BBC Radio London]의 DJ [Charlie Gillett(찰리 질레트)]를 통해 전파를 타게 되었고

그 결과로 [Phonogram(포노그램)] 산하의 [Vertigo(베르티고)]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1978년 2월 데뷔 음반 녹음에 들어간 [Dire Straits]는 그해 7월 데뷔 음반 [Dire Straits]를 발표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미국에서도 데뷔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데뷔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Sultans Of Swing]은 영국에서 싱글 차트 8위에 올랐고 미국에서는 빌보드 차트 4위에

오르는 히트를 하였으며 세계적인 그룹으로 부상하였다.

 

[Sultans Of Swing]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Dire Straits]의 초기를 대표하는 곡이다.

 

출처 : http://blog.daum.net/ssp4u/22

 

 

 

Dire Straits [Brothers In Arms]

 

1980년대의 고독한 기타영웅이 쌓아올린 금자탑

 

전통 록으로 인기차트를 정복한 다이어 스트레이트(Dire Straits)의 [Brothers In Arms]이다.

앨범의 중요한 성공요인은 말할 것도 없이 마크 노플러(Mark FreuderKnopfler)의 탁월한 기타연주였다.

 

그는 픽(Pick)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이른바 ‘핑거피킹’ 주자로 유명하다.

 ‘So Far Away’와 ‘Walk Of Life’가 선사하는 풍성한 기타 리프는 가히 특급. 그는 기타의 대가답게 ‘Money For

 Nothing’에서는 강하고 자극적인 선율을, ‘Why Worry’와 ‘Your Latest Trick’과 같은 곡에서는 유연하고 아름다운

 아르페지오 선율을 구사하는 등 곡에 따라 다채로운 느낌을 부여했다.

 

미국에서 900만장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2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블록버스터 히트작으로 남아있고,

25개국에서 차트 1위를 장식했다.

타이틀곡 ‘Brothers In Arms'의 경우는 죽어 가는 한 군인의 상황을 통해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실을 비판했으며,

전범(戰犯)자의 고백을 담은 ‘The Man's Too Strong’과 세상의 조화 부재를 개탄하는 메시지의 ‘One World’

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주의와 배금(拜金)이 활개 치는 현대사회에 던지는 비판의 목소리가 전체 줄거리를 이뤘다.

빌보드 차트에서는 ‘Money For Nothing’이 3주간 정상에 오르고 ‘Walk Of Life’가 7위, ‘So Far Away’가 17위에

오를 만큼 싱글도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팝컬럼니스트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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