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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음악( Newage* )

Al Di Meola & Friends - Rendezvous Rhapsody

 

 

Al Di Meola & Friends - Rendezvous Rhapsody

 

 

 

 

 

 

 

 

 

 

바로크 메탈 기타리스트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친 장본인

 

1954년 미국 뉴저지주 저지 시티에서 태어난 알 디 메올라는 다섯 살 때부터 드럼을 배웠고 여덟 살 때 기타를 처음

잡은 후 이웃에 살던 기타리스트 로버트 애슬라니언(Robert Aslanian)으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가장 크게 영향 받은 것은 래리 코리엘(Larry Coryell)의 연주였다. 그 연주를 듣고 나서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라는

인생의 좌표가 설정되었다.

 

1971년에 알 디 메올라는 퓨전 재즈의 전당인 보스턴 버클리 음악대학에 입학했다. 이 시절 친구 가운데 한 명이 그의

 데모 테이프를 칙 코리아에게 보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훗날 칙 코리아는 알 디 메올라를 뉴욕으로 불렀다.

 

1974년 리턴 투 포에버에 들어간 알 디 메올라는 가입 직후 카네기 홀에서 4만의 관객 앞에서 공연했고,

 「Where Have I Known You Before」(1974) 「No Mistery」(1975) 「Romantic Warrior」(1976) 등의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이때가 리턴 투 포에버가 대중적으로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시기라는 사실은 알 디 메올라가 밴드 내에서 그만큼

중요한 위치였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특히 「Romantic Warrior」는 하드 록적인 전개로 관심을 끌었는데, 알 디 메올라의 지능적인 파워 코드 배치와

 능란한 리드라인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시기 알디 메올라는 불과 스물두 살의 나이에 각종 조사에서 가장 뛰어난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로 선정되며 성가를

높였다. 그러나 1976년 리턴 투 포에버는 갑작스럽게 해체되어 사라졌다

 

 

 

 

 

 

리턴 투 포에버의 해체 이후 알 디 메올라는 1976년 가을 발표한 솔로 데뷔 앨범 「Land of the Midnight Sun」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솔로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수록곡 가운데 〈Short Tales of the Black Forest〉는 칙 코리아가 녹음에 참여해 우정을 과시한 곡으로 지금도

 공연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이때부터 알 디 메올라는 솔로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다수의 명반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도 「Elegant Gypsy」

(1977)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플라멩코와 같은 지중해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Mediterranean Sundance〉와 〈Lady of Rome, Sister of Brazil〉과 같은 곡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특히 〈Mediterranean Sundance〉에서는 이미 파코 데 루치아와 협연하고 있어서 곧 모습을 드러낼 대형 프로젝트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었다.

〈Race with Devil on Spanish Highway〉도 그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로, 스페인의 고속도로에서 악마와 레이스를

 펼친다는 제목 자체가 곡의 성격을 잘 설명해준다.

 

〈Elegant Gypsy Suite〉에서의 연주는 얼터네이트 속주 피킹의 교과서로 꼽히는 명연으로 이 곡에서의 속주는

잉베이 말름스틴, 크리스 임펠리테리 등 바로크 메탈 기타리스트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어진 앨범인 「Casino」(1978)로 알 디 메올라는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그가 스페인과 브라질에 머물면서 만든 노래들로 자유롭고 낭만이 넘치는 음악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Fantasia Suite for Two Guitars〉에서는 기존의 속주에서 벗어나 미묘하고 섬세한 어쿠스틱 기타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알 디 메올라는 솔로로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협업을 통해서도 명성을 떨쳤다.

그는 베이시스트 스탠리 클락, 키보디스트 얀 해머, 바이올리니스트 장 룩 폰티(Jean-Luc Ponty)와 협연했으며 특히

자신보다 훨씬 선배들인 존 맥러플린, 파코 데 루치아라는 두 거장과 함께 한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로

가장 큰 명성과 성공을 거머쥐었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0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으며, 이에 고무된 세 사람은 1983년에 이번에는 스튜디오 앨범인 「Passion, Grace and Fire」를 발표하기도 했다.

 

알 디 메올라는 1980년에 카를로스 산타나와 함께 투어를 돌았고 1983년에는 폴 사이몬의 앨범

 「Hearts and Bones」의 녹음 작업에 초빙되었다.

이밖에 스탠리 조던(Stanley Jordan), 데이브 매튜스(Dave Matthews) 등과도 함께 작업했다.

 

알 디 메올라는 1990년대에는 재즈보다는 월드뮤직에 가까운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재즈와 월드뮤직의 결합이 당시의 주도적인 경향임을 감안한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할 것이다.

「World Sinfonia」(1990), 「Di Meola Plays Piazzolla」(1990) 등이 당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앨범들이다.

 

 

 

 

 

 

 

 

빠름, 정교함, 리듬감

 

속주에 관해서라면 알 디 메올라 역시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주와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생생한 리듬감, 그러면서도 멜로디가 살아있는 유려한 전개는 그의 기타 플레이의 핵심이다.

 

테크닉적인 면에서 그가 기타사에 끼친 영향은 크다. 아르페지오를 활용한 속주 피킹과 손바닥을 이용한 뮤트 피킹 등

 그의 완벽한 피킹 기술은 당대 최고였다. 피킹의 마술적 경지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이밖에도 그는 남미 음악 특유의 리듬감과 플라멩코 스타일의 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에 두루 능했다. 이러한 그의 연주는 라틴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퓨전 재즈의 한 가지 전형을 완성했다.

 

정교하고 빽빽한 경과음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세계 또한 그의 전매특허였다.

알 디 메올라의 빠르고 정확한 피킹은존 맥러플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바로크 메탈 기타 시대의 도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잉베이 말름스틴, 토니 매칼파인(Tony MacAlpine), 비니 무어(Vinnie Moore) 등을 위시한 바로크 메탈 기타리스트들과 본 조비의 리치 샘보라, 드림 시어터의 테크니션 존 페트루치 등이 모두 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후배들이다.

그는 깁슨 레스 폴 기타와 PRS 기타를 주로 사용하며 싱클라비어 기타로도 즐겨 연주한다.

 

 

 

 

 

 

 

알 디 메올라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일렉트릭 기타 대신 어쿠스틱 기타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때 지나치게 테크닉을 앞세우는 그의 연주 스타일이 전체적인 곡의 전개와 흐름을 끊어 놓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는 몰라도 알 디 메올라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일렉트릭 기타 대신 어쿠스틱 기타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의 귀에 이상이 생긴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알 디 메올라 스스로도 빨리 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 했으니 어느 시점에서 기타와 음악에 대한 그의 태도에 변화가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06년 알 디 메올라는 일렉트릭 기타에 대한 사랑을 되찾았고 레버쿠젠 재즈 페스티벌에서 다시 일렉트릭 기타를

손에 들면서 지금은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를 가리지 않는다.

 

알 디 메올라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다섯 차례 연속으로 「기타 플레이어」가 독자 투표로 선정하는 올해의 베스트 재즈 기타리스트로 선정되었다.

기타 평론가 로버트 린치는 "일렉트릭 기타의 역사에서 알 디 메올라 만큼 기술적인 면에서 뛰어난 진보를 이루어낸

인물은 없다.

그의 다양한 연주 스타일과 스케일에 대한 장악력은 우리를 전율케 한다"라고 했다.

 

 한 때 지나치게 테크닉을 앞세우는 그의 연주 스타일이 전체적인 곡의 전개와 흐름을 끊어 놓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는 몰라도 알 디 메올라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일렉트릭 기타 대신 어쿠스틱 기타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의 귀에 이상이 생긴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알 디 메올라 스스로도 빨리 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 했으니 어느 시점에서 기타와 음악에 대한 그의 태도에 변화가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06년 알 디 메올라는 일렉트릭 기타에 대한 사랑을 되찾았고 레버쿠젠 재즈 페스티벌에서 다시 일렉트릭 기타를

손에 들면서 지금은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를 가리지 않는다.

 

알 디 메올라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다섯 차례 연속으로 「기타 플레이어」가 독자 투표로 선정하는 올해의

 베스트 재즈 기타리스트로 선정되었다.

기타 평론가 로버트 린치는 "일렉트릭 기타의 역사에서 알 디 메올라 만큼 기술적인 면에서 뛰어난 진보를 이루어낸

인물은 없다.

그의 다양한 연주 스타일과 스케일에 대한 장악력은 우리를 전율케 한다"라고 했다.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