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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음악( Newage* )

Al Di Meola -The First No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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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Di Meola -The First Noel,

 

 



 

 

 

 

 

 

 

 

 

 

 

1970년대 중반 재즈-록-퓨전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며 발표했던 Land of The Midnight Sun

(1976), Elegant Gypsy(1977), Casino(1978)등을 시작으로 1990년대 들어서는 아르헨티나 탱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영향 아래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크게 바꿔 탱고-라틴-재즈가 혼합된 어코스틱

월드음악앨범 ‘월드 심포니아’ World Sinfonia(1990)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최근에는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 그리고 쿠바 출신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 Gonzalo Rubalcaba 등과

함께 아프로 쿠반Afro-cuban음악을 가미한 앨범 Pursuit of Radical Rhapsody(2011)를 발표하며 다시 한번

진화된 월드뮤직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알 디 메올라는 1954년 미국 동부 저지 시티Jersey City의 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접한 악기는 기타가 아닌 드럼이었다. 꽤 높은 수준까지 드럼연주를 익혔던 그는 수년 후 기타연주에 매력을 느끼게 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하루 8~9시간을 연습할 정도로 기타연주에 몰입했다.

 

당시 그의 기타선생이었던 재즈기타리스트 로버트 에슬라니안Robert Aslanian는 알 디 메올라에게 팝, 록 그리고

재즈 등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프로뮤지션으로서 꼭 갖추어야 할 악보읽기와 작편곡 그리고 디테일

 한 테크닉에 이르기 까지 알 디 메올라의 연주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먼저 재즈에 심취해 있던 그는 어떤 계기에 의해서 인지 점점 다양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 동기에 대하여 질문해 봤다.  


재즈피플: 미국 뉴저지에서 출생하였고 버클리음대에서 수학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당신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정취는 미국의 그것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느껴지는데 당신의 음악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집시음악, 플라멩고, 라틴 등 월드뮤직의 느낌을 갖게 된 직접적인 요인은 혈통의 영향인가? 아니라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알 디 메올라: 모두가 알다시피 뉴욕은 음악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문화가 혼합되고 새롭게 태어나는 곳이다.

나는 뉴욕에서 다양한 음악과 이국적인 문화를 경험하며 자랐다.

이것은 나의 음악에 있어 아주 소중한 것인데 뮤지션이 된 후에도 많은 월드뮤직 공연을 보고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뉴욕의 뮤지션들과 연주하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이렇듯 다양한 음악이 존재했던 뉴욕이지만 알 디 메올라는 재즈연주자였던 기타 스승 로버트 에슬라니안의 영향으로 탈 팔로우Tal Farlow, 케니 버렐Kenny Burrel 등의 연주에 몰입하게 된다.

비밥과 모던재즈에 심취해 있던 그는 재즈-록 퓨전기타의 시조 격인 레리 코리엘Larry Coryell의 연주를 듣는 순간

 완전히 그의 연주에 빠져 버리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가지고 있던 혈기왕성한 청년에게 록적이며 사이키델릭한 레리 코리엘의

연주는 재즈의 새로운 미래를 보는 듯 했을 것이다.
재즈피플: 뮤지션을 꿈꾸던 시절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준 기타연주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최근 젊은 기타리스트들 중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뮤지션이 있다면 누구인가?


알 디 메올라: 고등학교시절 레리 코리엘의 연주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버스를 타고 내가 살던 뉴저지에서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작은 클럽들을 수없이

 오갔다. 그리고 최근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젊은 기타리스트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랄프 타우너RALPH TOWNER와 에그베르토 지스몬티EGBERTO GISMONTI의 음악을 듣고 많은 것을 느끼며 배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레리 코리엘 음악의 실험적이고 다양한 시도들은 고스란히 미래에 있을 알 디 메올라의 퓨전적인

 작업들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런 레리 코리엘에 대한 그의 로망은 1990년 비렐리 라그렌Bireli LaGrene과 함께 Super Guitar Trio라는 라이브 녹음으로 만남을 갖게 된다.

 

  온통 기타와 씨름하며 고등학교를 마친 알 디 메올라는 재즈아카데미의 메카, 버클리음대에 진학하기 위해 1971년

 보스턴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작곡, 편곡 등 좀더 음악의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에 대한 갈증을 해결할 수 있었으며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동료들로부터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된다.

 

 버클리에서 만난 키보디스트 베리 마일즈Barry Miles와 퀄텟을 만들어 활동하던 그는 그의 음악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수퍼밴드 ‘리턴 투 포레버Return To Forever’를 이끌고 있던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의 러브콜을 받은 것인데 기타리스트 빌 코너스Bill Connors의 갑작스런 탈퇴로 급히 기타리스트를 찾고 있던 칙 코리아는 우연히 베리 마일즈 퀄텟의 공연연주를 녹음한 테이프를 듣게 되었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알 디 메올라의 기타소리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재즈피플: 수퍼 밴드 리턴 투 포레버와의 만남은 당신의 음악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어떤 변화가 있었으며 밴드리더 칙 코리아와의 만남은 어떠했나?

 

 

 

 

 

 

 

 

알 디 메올라: 어느 한가로운 금요일 오후 아파트에서 쉬고 있을 때 칙 코리아의 전화를 받았다.

리턴 투 포레버가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혹시 당장 뉴욕에서 리허설을 할 수 있느냐고 묻길래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십 분도 안되어 짐을 싸 뉴욕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는 보스턴에 친구들과 함께 쓰던 그 아파트로는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의 작곡과 편곡 그리고 밴드리더로서 완벽한 역할을 존경한다. 내 연주에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항상 나의 진정한 서포터이자 친구였다.


  그 후 알 디 메올라는 리턴 투 포레버의 “Where Have I Known You Before(1974), No Mystery(1975),

Romantic Warrior(1976)등의 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오른손을 브릿지에 기대고 강하게 피킹하는 전통적인 플렛-피킹 Flat-picking(블르그레스, 유로피언 음악등을 연주하는 전통적인 피킹방법) 으로 연주하는 속주와 강한고 선명한 사운드는 장르를 초월하여 전세계 기타리스트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밴드는 곧 해체되었고 그룹을 떠난 알 디 메올라는1976년 자신에게 집중된 세상의 관심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발 빠르게 Land Of The Midnight Sun(1976), Elegant Gypsy(1977) 등 솔로앨범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기타 히어로로 등극하게 되었다.

특히 지중해지방의 전통적인 선율과 라틴리듬 그리고 유로피언 클래식, 재즈-록 등이 가미된 그의 음악은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월드뮤직으로써 뮤지션과 평론가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에 이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두 번째 앨범 Elegant Gypsy에는 플라맹고 기타의 대가 파코 디 루시아

 Paco De Lucia가 함께 참여하여 완성도를 높혔는데 이미 알 디 메올라의 트래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일랙트릭과

어코스틱의 균등한 비중의 연주가 유감없이 발휘된 앨범이다.

 

   특히 이런 컨셉의 연주는 파코 디 루시아와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과 함께 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기타트리오 실황앨범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1980)”을 기획하는 초석이 되었다.

 

세 명의 대가가 만들어내는 어코스틱기타의 완벽한 조화는 오늘날 까지도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영감과 도전 그리고 감동을 주고 있다. 

알 디 메올라는 1990년 대 들어 자신의 연주와 앨범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자신의 음악에 더욱더 큰 비중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재즈피플: 90년대 들어 발표한 Di Meola Plays Piazzolla(1990), Heart of The Immigrants(1993),

Diabolic Inventions and Seducation for Solo Guitar(2007)등의 앨범을 통해 탱고음악을 깊이 있게 연주하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었나?


알 디 메올라: 탱고를 연주한 것은 피아졸라의 영향이다. 그는 나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 한 뮤지션으로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그러했다.

 

지금 까지 나는 늘 그의 음악을 곁에 두고 지내고 있다.

그리고 Quinteto Nuevo Tango라는 그룹과의 오랜 연주로 탱고의 열정과 사랑 그리고 복잡한 하모니와 리듬에서

나오는 매력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알 디 메올라는 이들 앨범에서 대부분 어코스틱기타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전의 테크닉적인 연주보다는 화성과 리듬적인 면에서 완벽한 앙상블을 구현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러던 2006년 앨범 Consequence of

 Chaos를 통해 초창기의 일랙트릭사운드로의 회귀를 선언한다.

 

  폴 리드 스미스 솔리드바디기타를 메고 미소 지으며 서있는 앨범 자켓사진 만으로도 오랫동안 기다렸던 일랙트릭기타 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게다가 칙 코리아(피아노), 스티브 겟(드럼), 베리 마일즈(키보드) 그리고 존 페티투치(베이스) 등의 세션라인업을 보고 무작정 앨범을 집어 들었을 재즈팬들 까지 만족시킬 만한 강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기타선율과 익숙한 멜로디와 대비를

이루는 모던한 화성과 조성 등을 교묘하게 엮어 재즈, 록, 라틴 등이 녹아있는 이전의 Orange And Blue

(1994), The Infinite Desire(1998)등의 앨범의 연장선상에서 완성도를 한 층 높인 새로운 앙상블로 만들어냈다.


재즈피플: 누구보다 뛰어난 연주 테크닉을 가진 당신이지만 그것을 뒤로하고 90년대에 들어 탱고 등 정적인 월드뮤직에 더욱 심취했는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알 디 메올라: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월드뮤직을 연주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꼭 음악적인 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 삶과 생각 등 많은 부분에서 내게 다양한 세계의 음악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탱고음악은 계속해서 연주 할 생각이다.


  최근 그의 밴드 월드 심포니아와 발표한 Pursuit of Radical Rhapsody(2011)에는 월드-퓨전음악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플라맹고, 재즈-록 그리고 유로피언 클래식음악을 혼합한 그의 음악은 펫 메시니그룹, 스므스 재즈, 스페니쉬 퓨전 등 어느 정도 기존에 발표된 음악들을 연상시키거나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면에서

설명이나 정의가 가능했었다.

 

그러나 이 앨범에 그가 가미시킨 아프로-쿠반Afor-cuban 음악은 그의 음악을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로 바꿔 놓았다.

다섯 번째 트랙 Gumbiero와 곤잘로 루발카바의 피아노연주와 알 디 메올라의 드라이브 선율이 절정을 이루는

 Destination Gonzalo 등에서 박자에서 밀려난 듯한 베이스패턴(툼바오 Tumbao)과 타악기가 연출하는 복잡하고

 열정적인 리듬이 빼어난 알 디 메올라 특유의 멜로디와 어우러져 기존에 듣던 깔끔하고 폼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듯한 퓨전사운드를 흩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재즈피플: 현재 당신의 연주스타일은 메인스트림재즈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들과 많이 다른 스타일이지만 당신은 진정한 즉흥연주자란 평을 받고 있다. 당신의 음악에 있어 재즈 특히 비밥의 영향은 어떤 것인가?


알 디 메올라: 비밥재즈의 영향은 내게 있어 너무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년기부터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재즈의 난이도 높은 즉흥연주는 항상 나의 목표이자 끝없이 연마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알 디 메올라의 빠른 속주와 강한 피킹에서 나오는 연주 스타일은 1980년대 등장하게 되는 많은 록 기타리스트 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항상 자신의 연주에 있어 자유를 얻기 위해 테크닉과 다양한 음악들을 섭렵하려 하는 그의 음악에 대한 자세가 존경스럽기만 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조지 벤슨은 자신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며 큰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이

다시금 머리에 맴돈다.

 

공연 중에 들리는 카메라 셔터소리에 방해를 받을 만큼 집중과 주의를 원하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방식 안에서 재즈 그 이상의 인간미와 열정을 연주하는 뮤지션이 있다.

알 디 메올라와 조지 벤슨 두 기타의 거장 모두 후자에 속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명쾌하고 스마트한 피킹 솜씨로 80년대 바로크 속주기타 출연에 지대한 영향을 준 알 디 메올라는 1954년 7월 22일

미국 뉴저지의 버젠필드에서 태어났다.

8살 때부터 기타를 시작한 그는 이웃에 사는 재즈 기타리스트 로버트 애슬래니언(Robert Aslanian)으로부터

기타레슨을 받았다.

애슬래니언은 그에게 악보 읽는 법과 기교 등을 익혀주었다.

 

 하지만 그는 보다 깊은 음악적 영감을 위해 덕 웻슨(Doc Watson), 케니 버렐(Kenny Burrel), 탈 팔로우

(Tal Farlow) 등의 연주를 들었다. 그러나 그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뮤지션은 래리 코렐(Larry Coryell)이었다. 래리의 선구적인 퓨전기타를 접한 그는 자신의 기타세계의 좌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71년 그는 기타리스트들의 전당인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Berklee College of Music)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그는 배리 마일즈(Barry Miles)를 알게 되고 그가 이끄는 4인조 밴드에 픽업된다.
74년 배리 마일즈와 6개월간의 연주를 마친 그는 편곡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버클리에 입학했다.

 

 그러나 이 수업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그의 기타연주를 녹음해서 칙 코리아에게 보냈는데,

그 연주를 들은 칙이 알 디 메올라를 뉴욕으로 부른 것이다.

이틀 후 알 디 메올라는 칙 코리아 리턴 투 포에버(Chick Corea’s Return To Forever)와 함께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가질 수 있었고, 그 다음날에는 애틀란타에서 수 만명의 관중을 상대로 대대적인 공연을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칙 코리아의 RTF에서 [Where Have I Known You Before](74), [No Mistery](75),

「Romantic Warrior」(76) 등의 역작들을 낳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칙 코리아 - 스탠리 클락 - 레니 화이트 - 알 디 메올라라는 4명의 거장들은 76년 리턴 투 포에버를 해체시켜

 버리게 된다.

 

알 디 메올라가 순식간에 리턴 투 포에버에 영입된 것처럼 그룹의 해체도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당시 리턴 투 포에버는

 앨범 [Romantic Warrior] 홍보를 위한 순회공연 중이었는데, 알 디 메올라가 솔로 데뷔앨범으로 내놓은

 [Land Of The Midnight Sun]이 대히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곧 해체소식이 돌았고, 멤버들 각자 자신의 길로

 떠나버렸다.

이후 그는 솔로로 활동하며, 83년까지 여섯 장에 이르는 기타 명반들을 제작하여 명실공히 최고의 퓨전 기타리스트중의 하나로 떠올랐다.

 

특히 이 당시의 앨범들 중 [Land Of The Midnight Sun](76)과 [Elegant Gypsy Suite](77)는 오른손 손목기능을 최대한 살린 얼터네이트 속주피킹의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으로 잉베이 맘스틴, 비니 무어, 크리스 임펠리테리 등에게

 많은 영향을 준 바 있다.

이후에도 알 디 메올라는 솔로활동과 병행해 존 맥러플린, 파코 드 루치아 등과 함께 기타 트리오에서 다시 활약하며

놀라운 어쿠스틱 기타 인스트루멘틀의 세계를 다시 보여주었다.

기타사에 끼친 알 디 메올라의 영향은 참으로 큰 것이다. 특히 테크니컬한 면을 발전시킨 공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르페지오를 응용한 합리적인 속주피킹이나 뮤트피킹 등 피킹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될 만큼 수준 높은 경지를

 들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남미의 리듬과 정서에 관심을 쏟아 록과 재즈의 어법으로 그것을 음악화해 좀 더 대중 속으로 들어가게 한 것도 그의 공로이다.

조밀하게 쏟아내는 정교한 경과음의 세계와 한음 한음이 명확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속주 프레이즈, 그리고 그 속에

깔린 특유의 애상감은 진정 알 디 메올라에게서만 볼 수 있는 기타미학이다.
90년대로 들어와 알 디 메올라는 그간의 일렉트릭 기타에서 탈피해 완전 어쿠스틱 기타 쪽으로 돌아서 마치 종교적

달관의 경지가 느껴지는 무념무상과 열반 사색적인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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