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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음악( Newage* )

George Winston - December (2)

 

 

 

 


 

 

December (1982)
Composed and Performed by George Winston.

1 - Thanksgiving -
0:00
2 - Rest Your Head - 4:07
3 - Joy - 6:51
4 - Prelude - 10:08
5 - Carol of the Bells - 11:25


6 - Night (Snow) - 15:25
7 - Night (Midnight) - 17:21
8 - Night (Minstrels) -
9 - Variations on the Kanon -
21:25
10 - The Holly and the Ivy - 26:49

11 - Some Children See Him 31:46
12 - Peace - 35:39


 

 

 

 

 

 

 

 

1949년 몬타나주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몬타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등지에서 유년기를 보낸 조지 윈스턴은

플로이드 클레이머(Floyd Cramer), 더 벤쳐스(The Ventures), 부커 티 앤 더 엠지스(Booker T&The MGs),

 킹 커티스(King Curtis)등과 같은 팝 연주곡들에 심취하게 되었다.

 

레이 찰스(Ray Charles), 지미 리드(Jimmy Reed), 샘 쿡(Sam Cook)등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과도 친숙했던 그는 라디오 뉴스직전 30초동안 흘러나오는 짧은 연주곡들을 열심히 듣곤 했다.

블루스와 록, R&B, 그리고 재즈에서 감명을 받은 조지 윈스턴은 196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렉트릭 피아노를

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1, 전설적인 스트라이드(Stride) 피아노의 대가 토마스 팻츠 월러(Thomas 'Fats' Waller)

 테디 윌슨(Teddy Wilson)의 레코드를 들은 후 어쿠스틱 피아노로 전향했다.

(Stride 피아노란 오른손으로 즉흥곡을 연주하면서 왼손으로는 베이스와 화음을 번갈아 연주하는 기법이다.

 

이러한 연주법은 Ragtime 스파일에서 비롯되어 1920년대에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Fats Waller

스트라이드 피아니스트의 대가중 한 사람이다)

그 시기에 그는 작곡과 편곡을 통해 팝 연주곡들을 자신만의 색채를 입혀 솔로 피아노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여

1972, 그의 첫 앨범 'Ballads and Blues'를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WALLER의 위대함을 넘을 수 없다는 좌절감에 1977년 잠시 연주활동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R&B 피아니스트 LONGHAIR의 심플한 음악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은 후 다시 음악을 하기 시작했고

 뛰어난 예술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Windham Hill레이블을 통해 1980년에 'Autumn'을 발표하며 그의 새로운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

 

이 앨범은 Windham Hill레이블의 통산 12번째 앨범으로 당시에는 크게 호평을 받지 못했으나 이듬해 발매된 그의

계절 연작 2번째 작품인 'Winter into Spring' 에서부터 서서히 재즈팬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다.

2번째 작품은 첫 앨범과 흐름을 같이하는 계절 연작이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앨범이다. 이러한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는 그가 하려는 음악색과도 일맥상통한다.

 

2년후 1982, 조지윈스턴은 계절연작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인 December'를 발표하게 된다. 미국이 자랑하는 탁월한 사진작가 그렉 에드먼드의 설경이 아름답게 자켓에 담겨졌던 이 앨범은 캐롤집으로 기획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December'는 이듬해인 1983년 내내 미국의 주요 네트워크를 떠들석하게 했으며 뒤늦게 그의 진가를 발견한 음악지들은 그를 90년대의 피아니스트란 칭호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후 그는 계절연작의 마지막 작품인 'Summer'를 발표하였고 계속해서 94년에 'Forest' 그리고 96년에

 'Linus & Lucy'를 발표하며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The Velveteen Rabbit', 'Sadako와 천마리의 종이학', 'Pumpkin Circle',

'This is America, Charlie Brown'등의 영화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에 조지 윈스턴은 대표적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이 신보 `Montana-A Love Story'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지난 1999`Plain' 이후 5년만에 내는 정규음반으로, 지난 2002년 리메이크 앨범

`Night Divides the Day' 이후로는 2년만에 음반을 발표하는 셈이다.

 

이번 앨범은 그의 고향 몬태나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묘사하고 있다. 앨범은 또한 아일랜드, 중국 등 세계 각국의 전통 음악과 그에게 영향을 준 음악인들의 곡들까지 담아내고 있다.

첫 트랙 `엄지공주'는 작곡가 마크 아이샴이 고전동화 엄지공주를 떠올리며 작곡한 노래를 조지 윈스턴이 편곡하고

연주했다.

 

 조지 윈스턴은 이 앨범에서 `High Plains Lillaby'를 비롯해 `The Mountain Winds Call Your Name' 등 자연과

호흡하는 신곡 5곡을 선보이고 있다.

 

조지 윈스턴의 음악에 대하여 / 팝 칼럼니스트 임진모

 

 

 

 

 

주변에서 좋다고 하길래 음악에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주저하지 않고 사서 들었다.

예상대고 참 편한 음악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뭔가 사색에 잠기게 하는 힘이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이성적인 연주음악이었다.'

 

지난 86년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조지 윈스턴의 음반 12(December)에서 받은 감동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성적인 음악 애매한 듯 하면서 꽤 적절한 묘사라고 생각을 했다.

그 친구만이 아니라 당시의 많은 음악팬들이 그와 비슷한 느낌을 얘기하곤 했다.

 그렇듯 확실히 다른 느낌 때문에 정말 다수의 대중들이 조지 윈스턴의 투명하 피아노 공명음에 너도 나도 '접속'되었다. 피아노 연주음악으로는 이전 그 어디에도 그런 것은 없었다.

 

피아노 연주곡이 감상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편안함과 애잔한 무드 등 지극히 감성적인 것들이다.

싱제로 조지 윈스턴에 앞서 국내에서 인기를 누렸던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나 프랭크 밀즈의

<시인과 나>를 통해 우리의 음악수요자들은 '낭만'을 얻었다.

 

 

조지 윈스턴의 것은 그러나 분명히 종이 달랐다. 팝 연주음악의 고전적인 분위가라 할 낭만과 감성의 수준에서

머물지않았다. <12>의 대표적인 곡인 추수감사(Thanksgiving)이 나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Variation on the Kanon by Pachelbel)에는 그것들 뿐 아니라 사색과 명상'이란 고부가가치가 있었다.

 

지친 사람들을 보듬는 감성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제와 내일을 추스르게 하는 이성'의 중력까지 갖춘 것이었다. 어쩌면 이 때문에 그 무렵 감각적인 발라드가 유행전선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그 시대 자체를 고단하게 여기고 있던 사람들한테 유독 조지 윈스턴의 음악이 특별히 다가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춘기 소녀가 아니라 성숙한 여인이 들어야 제법일 것 같은 음악임은 분명했다.

조지 윈스턴의 음악은 이러한 점에서 피아노 연주는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에 함께 주목 받은 케니 지(Kenny G)

음악과도 차별화 되었다.

 

색스폰의 마술사 케니 지의 연주는 이정선씨(기타리스트)의 말대로 '우리 정서에 딱 들어맞는 말랑말랑한 맛'

가득했다.

 

둘 다 아름다움을 생명으로 하는 선율위주의 유사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케니 지의 연주는 조지 윈스턴과 같은

명상의 세계를 제공하진 못했다.

그가 조용한 호수라면 조지 윈스턴은 그 옆의 '울창한 숲'까지 그려진 더 큰 화폭의 그림이었다고 할까?

 

물론 이러한 비유가 두 연주음악의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적 지명도를 떠나 그만큼 조지 윈스턴의

 음악세계가 독특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 뿐이다.

 그 차별화된 그리고 '특화'된 연주음을 음악 관계자들은 새시대의 음악이란 의미에서 '뉴 에이지 뮤직

'(New Age Music)이란 신조어를 갖다 붙였다.

80년대 후반 는 어느 면에서 뉴 에이지 음악으로 선전(?)되면서 한층 음악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사실이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음악팬들은, 특히 매니아들은 새로운 경향이라 하면 일단은 귀를 쫑긋 세운다.

 

조지 윈스턴을 비롯해 강제로 뉴 에이지 사단으로 분류된 음악인들은 이 용어를 극도로 싫어한다. 우선은

그 음악업자들이 마치 새로운 상품인 듯 과포장해 손쉽게 마케팅하려고 만들어낸 음험한 상습분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뉴 에이지가 신을 부정하는 음악이라는 혐의를 받으면서 음악계의 고질적인 종교와 음악간의 논쟁을 야기시킨 것도 크게 작용했다.

 

두 차례나 내한했던 야니도 이러한 피해에 시달렸던지 자신과 자신의 음악에 절대로 뉴 에이지라는 말을 쓰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한 바 있다.

그걸 떠나서 하기사 어떤 뮤지션이 그 만이 음악으로 얘기되길 원하지 한 장르에 속한 음악으로 구분되길 원하겠는가.

 

조지 윈스턴은 자신의 고유 음악영역을 <12>을 비롯한 '사계절' 연작 앨범으로 굳게 확립했다.

<12>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졌으나 실은 Windham Hill 레이블을 통해 80년에 가을(Autumn) 그리고 2년 뒤

겨울에서 봄으로(Winter into Spring)를 먼저 발표했다.

 

<염원/사랑>(Longing/Love)을 위시한 서정적인 곡으로 채색된 <가을>은 비록 히트하진 못했으나 조지 윈스턴의

앨범 가운데는 물론 재즈사의 명반으로 손꼽힌다.

 

<가을>은 그야말로 수채화처럼 맑은 자연의 서정성을 조지 윈스턴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단선율의 피아노 연주로

유려하게 주조해냈다. 자연, 그리고 환경이란 말도 조지 윈스턴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어휘들이다.

실로 '환경음악' 또는 '녹색음악'이 따로 없다.

 

<12>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이 앨범과 <겨울에서 봄으로>등 전작들이 국내에서 모두 발매되어 지각히트를

 기록했다. 조지 윈스턴은 91년 마침내 여름(Summer)을 공개, 사계 시리즈를 완성했다.

 이후 92년에는 비슷한 범주에 포함될 앨범 숲(Forest)를 내놓았며 이 작품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역량과 음악세계가 세계적으로 공인된 순간이다.

 

 

조지 윈스턴의 음악의 서정성과 자연성은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 한파로 고개 숙인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모두 더할 나위 없는 'IMF 음악'이다. 더욱이 그는 내한공연의 출연료를 우리 실직자를 돕기위한 기금을 희사했다.

 

이상하게 그의 음악을 들으면 힘이 솟는다.

 두다리 뻗고 누워 듣다가도 벌떡 일어나 다시 구두끈을 매도록 만든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에게 조지 윈스턴의 음악이 더 어울려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감동으로 눈을 감고 또 이성의 힘으로 다시 눈뜨도록 하자.

 

조지 윈스턴을 보는 다양한 시각 / 칼럼니스트 김병만

 

 

 

 

 

음악장르를 떠나 어떤 특정한 부류의 음악만 고집하는 사람들도 조지 윈스턴의 THANKSGIVING 같은 곡을 듣고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한 조지 윈스턴의 음악을 뉴에이지라는 장르에 극한 시켜 조용한 피아노 소품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조지 윈스턴의 극히 일부만을 듣고 있는 것이다.

 

 그의 한폭의 풍경화 같은 레코드 자켓에서 볼 수 있듯이 조지 윈스턴의 음악은 맑고 깨끗하며 투명하다.

그리고 이것이 조지 윈스턴의 음악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동기를 제공한다.

하지만 ECM레코드사의 재즈 앨범 자켓이 깔끔하고 아름답다고 클래식 음반이 아닌 것처럼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곡이

 비록 뉴에이지 스타일로 연주됐지만 그의 음악은 엄밀히 따져서 뉴에이지도 클래식도 아닌 재즈이다.

 

 물론 즉흥성도 없고 스윙감도 없지만 초기 '발라드 & 블르스'의 앨범이 뚱보 재즈 피아니스트 팻츠웰러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지 윈스턴은 위대한 재즈피아니스트 이다. 윈턴 켈리의 브루지함이나

 빌 에반스의 서정성과는 조금 틀리지만 조지 윈스턴의 터치에는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깔끔함이 베어 있다.

 

여기서 그의 음악에 좀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 '센티멘탈'로 유명한 클로드 볼링과 비교해 보기로한다.

우선 대머리에 피아노를 전공으로 하고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시킨 음악형식은 비슷하다.

하지만 클로드 볼링은 몸이 뚱뚱하고 클래식보다는 재즈풍의 연주로 일반인들에게 친숙하고 그의 특유의 스윙감은

 플롯이나 여타 클래식 악기와 잘 어울려 독특한 감각을 자아내고 있다.

 

반면에 조지 윈스턴은 마른 체구에 조금 건조하다 싶은 터치로 사람의 기분을 차분하게 해주는 마약같은 성분을

가지고 있다.

 음악에 관한 서적을 읽다 보면 끌로드 볼링은 주저없이 재즈 피아니스트로 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지 윈스턴은 뉴에이지계의 최고 피아니스트로 알려 졌을뿐 재즈와 연관 지으려는 기사는 본적이 없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앨범에서 빌 에반스의 연주에는 버드 파웰의 연주처럼 스윙감이 풍부하지는 않다.

오히려 빌 에반스의 음악은 클래식과 같은 깔끔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KIND OF BLUE 앨범에서의 빌 에반스가 다른 피아니스트들 보다 스윙을 덜 한다고 해서 그를 재즈계의 이단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이 앨범을 재즈사의 획을 근 위대한 앨범으로 평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윈스턴의 음악도 803? 새로 나타난 스윙하지 않는 재즈일 뿐이다.

 재즈에 꼭 베이스와 드럼이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조지 윈스턴의 투명한 피아노곡에 어울리지 않느다면

 없어도 무관하다.

 

오넷 콜맨의 프리 재즈나 마일스의 퓨전 재즈를 계승하는 80년대의 뉴재즈가 바로 조지 윈스턴의 뉴에이지라는 재즈가

 아닐까 생각한다.

 혹자는 즉흥연주와 스윙이 없는 음악은 재즈가 아니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오넷콜맨의 프리재즈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비평가들은 '재즈는 죽었다.'라고 말했고 현대의 일부 비평가들도

 뉴에이지라는 장르를 가지고 '악마의 음악'이니 '사람을 나른하게 만든다'느니 하는 식으로 매도하고 있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 프리재즈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듯이 20년쯤 후 재즈 역사책에는 존 콜트레인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이름 뒤에 조지 윈스턴의 이름이 더해 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조지 윈스턴에게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디셈버'의 성공이후 그의 음악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거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케니 지의 최근 발표 앨범을 들어보면 그 곡이 그 곡 같고 재탕한 느낌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윈스턴도 마찬가지로 무언가 새로운 감각이 부족하다.

 존 콜트레인이 거장으로 인정 받았던 것은 그의 뛰어난 연주실력에 있던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아발전의

 노력 때문이었다.

 

마일스 데이비스도 별로 뛰어나지 못한 연주실력에도 불구하고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음악에 대한 열정과

 탐구정신에 있다고 본다. 조지 윈스턴도 이제 다시 '발라드 & 블르스' 앨범의 신선함으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거장의 거만함이나 오만함이 아닌 참신한 새내기의 입장에서 연주하는 또 한명의 존 콜트레인을 기대해 본다.

  

 

 

 

 

 

 

 

George Winston 조지 윈스턴에 대해서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요즈음에는 약간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느낌이

있지만 뉴 에이지 음악 하면 조지 윈스턴이 떠오를 정도로 그와 그의 음악은 뉴 에이지 음악의 대명사였다.

 특히 그의 'December'(Windham Hill 1982)앨범은 뉴 에이지 피아노의 전형을 제시한 앨범으로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앨범의 수록 곡인“Thanksgiving”이나 “Canon”같은 곡의 악보를 뒤뚱뒤뚱

 읽어가며 연주를 시도하게 만들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어쩌면 아직까지 우리는 조지 윈스턴의 다양한 측면을 보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뉴 에이지 음악이라 부르는 음악들과 조지 윈스턴의 음악을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뉴 에이지 음악으로 분류하는 음악들 상당 수는 감상적인 멜로디만을 강조하는 것에 그치는 음악들이다.

 

 심지어 뉴 에이지 음악 이전 연주 음악 감상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경음악-일본인들이 만들어 낸 용어로 그저 가볍게

듣는 음악을 의미한다-에 해당할만한 음악들이 상업적인 이유로 뉴 에이지로 포장되어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뉴 에이지는 단순히 아름다운 멜로디만 장점으로 드러나는 음악이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멜로디 외에 들을 것이 없는 음악들은 그 멜로디가 친숙해지면 이내 싫증이 난다.

마치 유행가의 운명처럼 이런음악들은 짧은 빛을 내고 감상자의 과거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조지 윈스턴의 음악은 다르다.

그야말로 뉴 에이지의 의미에 부합되는 음악을 들려준다.

 

 왜 그리 뉴 에이지라는 장르의 의미에 집착을 하냐고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우를 범하는 것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조지 윈스턴의 음악은 뉴 에이지의 순수한 의미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그래서 다른 연주자들과 구분되어야

하는 인물이다.

 

 그의 음악은 클래식의 느낌을 주면서도 결코 무겁거나 낡은 느낌을 주지 않으며, 재즈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결코

 복잡한 면을 보이지 않으며, 일반 연주 음악처럼 가볍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결코 쉽게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연주는 언제나 감상자의 상상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그의 음악이 지닌 특성인 동시에 뉴 에이지 음악의 특성인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조지 윈스턴 본인은 자신의 음악을 꼭 뉴 에이지로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앨범 목록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된다.

 

실제 그의 첫 번째 앨범 'Ballads & Blues'(Windham Hill 1972)가 재즈에 보다 더 가까운 음악을 담고 있으며

 'Linus & Lucy', 'Windham Hill 1996)는 재즈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만화영화 스누피의 음악을 작곡했었던 빈스

 과랄디의 음악을, 'Night Divides The Day'(Windham Hill 2002)는 ?의 전설 도어즈의 음악을 화두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이것은 그만큼 조지 윈스턴이 다양한 음악의 영향을 통해 자신의 순수한 음악적 본령을 발견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양한 그의 음악적 기원은 한국의 뉴 에이지 애호가들에게 그다지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위에 언급했던 앨범들은 그의 명성에 비해 상업적인 측면에서 그다지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Montana: A Love Story'는 계절을 화두로 아름다운 시성과 상상력을 발휘했던 당시, 그러니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조지 윈스턴의 모습을 모처럼 새로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도 이번 앨범에서 조지 윈스턴은 자신의 다양한 음악적 기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것은 수록 곡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조지 윈스턴 본인이 작곡한 곡도 있지만 주로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선곡되어 있지 않은가?

 

선곡의 다양성은 실로 너무나 광범위 하다. 같은 동료 뉴 에이지 연주자 필립 아버그의 “Nevertheless Hello”부터,

 소울 성향의 노래를 들려주었던 샘 쿡의 고전“You Send Me”, 재즈와 뉴 에이지를 넘나들며 영화 음악에도 재능을

보였던 마크 이삼의 “Thumbelina”, ? 음악의 기인 프랑크 자파의 “The Little House I Used To Live In”,

 

그리고 중국의 전통 음악 “Bamboo”-그가 동양 음악에도 상당한 관심과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 앨범을 통해 새삼 놀라게 되는 부분이다-까지 하나로 묶는다면 그저 음악이라고 밖에 말하기 곤란한 여러 음악이 선곡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곡들을 연주함에 있어 조지 윈스턴은 각 곡들의 장식적 외연을 제거하고 지극히 기본적인 부분만 남기고

여기에 자신의 느낌을 과장 없이 솔직하게 투영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 처음에 곡명에 신경 쓰지 않고 선입견 없이 앨범을 들었을 때 모두 조지 윈스턴 본인의 자작곡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후에 곡 리스트를 확인했을 때 “어라? 이게 그 곡이었나?”하면서 다시 앨범의 각 곡들을 찬찬히 재감상해야 했다. 이처럼 이번 앨범은 평소 타인의 음악에 대한 조지 윈스턴의 지대한 관심을 드러내면서도 조지 윈스턴 특유의 정제미와 간결미를 잃지 않고 있다.

 

이 앨범의 뛰어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양한 음악들을 재료로 삼고 있음에도 앨범이 결코 백화점 식의 난잡한 구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조지 윈스턴이 뉴 에이지 내에서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앨범은 마치 17개의 조각들로 구성된 하나의 커다란 그림 같다.

 

그리고 그 그림은 다름아닌 조지 윈스턴의 고향인 몬타나의 풍경이다.

따라서 “A Love Story”라는 앨범의 부제는 일반적인 남녀의 사랑이 아닌 조지 윈스턴의 고향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리적 감각이 그다지 좋지 않기에 조지 윈스턴의 고향인 몬타나가 미국 내 어디에 위치하며, 어떠한

 풍광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몬타나의 실제 모습을 모르면 어떠한가? 오로지 음들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무한한 몽상적 기운을

자극하는 것이 뉴 에이지 음악의 특징이 아니던가?

 

조지 윈스턴 역시 내면적인 동시에 인상적인 피아니즘으로 실제가 아닌 그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몬타나를 차분히

 그려나간다.

 그리고 그 몬타나의 모습은 앨범의 표지처럼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들판에서부터, 몇 안되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걷고 있는 작은 도시의 거리, 오래된 조용한 교회, 애정 어린 눈 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들의 시선, 잘 익은 곡식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농부의 행복한 모습 등 익숙하지만 일상에서 쉽게 느끼기 어려운 작은 감정, 이미지들을 통해서

표현된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은 결코 멜로디를 통해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피아노 연주에서

 오른손의 멜로디가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음악적 분위기는 멜로디를 감싸며 공간감을 만들어 내는 왼손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의 오른 손이 스케치를 한다고 하면 왼손은 그 속에 윤기 있는 색을 칠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그저 아름다운 멜로디만을 위해서 이 앨범을 구입했다면 어쩌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는 첫 인상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멜로디라는 부분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 분위기에 관심을 두고 감상을 해보기 바란다.

어쩌면 처음에 발견하기어려웠던 아름다운 멜로디가 침묵의 심연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것을 경험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심연의 멜로디는 매번 모습을 달리하여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조지 윈스턴의 이번 앨범은 결코 한번 듣고 시디 장에 두고 잊혀질 그런 앨범이 아니다.

아직까지 그의 'December'앨범을 간간히 꺼내 듣는 것처럼 이번 앨범도 건조한 방안에 걸린 액자처럼 익숙하면서

동시에 늘 새로운 감상을 전달하는 앨범으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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