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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음악( Newage* )

Rick Wakeman - The Sad Dream

 

 

 

 

 

 

 

 

 Rick Wakeman - The Sad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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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k Wak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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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예스(Yes)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릭 웨이크만(Rick Wakeman)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흥미를 보였으며 7세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10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세션 뮤지션으로 명성이 자자하였으며,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브라더후드 오브 맨(Brotherhood of Man), 에디슨 라이트하우스

(EdisonLighthouse)의 레코딩에 참여하였다.

 

1960년대 말에는 알 스튜어트(Al Stewart)와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같은 뮤지션의 앨범에 이름을 나타내기도 하였으며, 포크록 밴드 더 스트롭스(The Strawbs)의 세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1970년 이 그룹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된다.

 

이들과 두 장의 앨범을 발매한 후 릭은 예스에 가입하였다. 이 포스트-사이키델릭 하드 록 그룹은 초기 세 장의 앨범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릭은 예스의 4집 앨범 [Fragile]에서 신서사이저, 멜로트론, 일렉트릭 피아노, 어쿠스틱 피아노를 환상적으로 배합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앨범의 색채를 표현하는데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차트에서 히트를 친 'Roundabout'

 같은 곡으로 인해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다음 앨범 [Close to The Edge]는 앨범 내내 흐르는 그의 연주 덕분에 잠재적인 청중들까지 끌어들이는 호소력을 지닌 앨범이 되었다.

이 앨범 제작 중에 그는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인 [The Six Wives of Henry VIII]를 제작하였는데, 이 앨범은 위의

여섯 여인의 삶과 성에 대한 그만의 음악적인 해석을 보여주었다. 이 앨범은 차트에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다양한 음악들이 섞여있는 예스의 1974년 앨범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는 평론가들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릭은 앨범 발매 후의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팀을 탈퇴하였다.

 

그는 새로이 솔로 앨범 [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를 발매하였는데 록 밴드, 나레이터,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를 포함한 스케일 큰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 앨범은 미국과 영국 양쪽에서 대중들의 엄청난 반응을 얻으며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다.

 

1975년의 [The Myths And Legends of King Arthur And The Knights of The Round Table] 앨범은 역시

그의 큰 음악적 스케일을 보여주었다.

그는 영화음악에도 참여하였는데 켄 러셀(Ken Russell)[Lisztomania] 사운드트랙을 담당하여 평범한 성공을

 거두었다.

 

1977년 그는 다시 예스로 복귀하여 레코딩과 투어를 지속하였으며 솔로 활동 역시 활발히 이루어나갔다. 그의 명성은

 그가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하던 1970년대보다 오히려 1980년대에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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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특이하고 화려한 외모와 의상.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은 건반악기로 마술을 펼치던 뮤지션이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의 키보드 연주자였던 그는 장르를 초월한 건반의 마술을 보여줬던 인물이다.

1949년 5월 18일 영국에서 리차드 크리스토퍼 웨이크먼을 본명으로 태어난 그는 겨우 네살 때 아버지의 피아노 연주

소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여섯살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음악을 공부하더니 1960년엔 처음으로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해 가볍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영국 내에서 열리는 모든 음악 경연대회를 휩쓸며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계속해서 다양한 밴드 활동을 통해 다채로운 음악 경력을 쌓아 갔는데, 열두살 때에는 재즈 스타일의 밴드를 결성할

 정도였다.

1968년이 되자 이 청년은 웬만큼 음악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꿈에서도 보게 되고 동경한다는 영국의 왕립음악학교에

합격하게 된다.

피아노와 현대음악, 클라리넷, 관현악 편곡 등을 공부하게 됐으니 당연히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지만 청년 릭 웨이크먼은 음악 이론이나 연주 기교 연마 보다는 대중적인 음악 클럽에서의 공연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결국 1969년에 자신만의 음악 목표를 위해 그 왕립학교를 과감히 떠났다.

본격적인 클럽 연주 생활을 하면서 실력과 명성이 알려지게 되어 키보드 세션 일도 시작하게 된다.

데이빗 보위의 초기 음반에 참여했고 프로그레시브 록 성향의 유명 밴드 스트롭스와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유명한 음악지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에서는 '내일의 수퍼 스타'라 소개하는 등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시기에 그는 무려 2천여 곡 이상의 작품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다.

블랙 새버스, 캣 스티븐스, 엘튼 존, 티-렉스, 루 리드, 알 스튜어트, 해리 닐슨 등과 함께 작업한 것.

그는 이후 전성기를 맞고 있던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예스'에 가입을 하면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예스'의 리더인 크리스 스콰이어에게서 새벽 3시 30분 경에 받은 전화가 밴드 가입의 발단이 되었다는 당시의 일화는

마치 전설처럼 이어져 온다.

1973년 2월에 발매된 첫 솔로 앨범 '헨리 8세의 여섯 부인'은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주로 역사 내용이나 공상 소설 등을 바탕으로 스케일 큰 음악을 만들었는데 '지구 중심으로의 여행',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 등의 앨범이 대표적인 예.

그는 영화음악 작업에서 뉴에이지 장르에까지 영역을 뻗어 연주를 하고 있는데 놀라운 창작력과 거침없는 활동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다작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음악평론가

 

들으시는 곡은 The Sad Dream(슬픈 꿈)이란 제목으로 조용한 선율에 곡이다.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곡으로 오늘의 곡으로 추천하는 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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