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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Roger Waters collection- Mother외

 

 

 

 

 

 

 

 

 

 

Roger Waters - Mother

 

 

 

 

'벽'에 가려진 사나이 Roger Waters는

1965년에 Syd Barrett, Nick Mason, Richard Wright와 함께

사이키델릭 밴드 Pink floyd를 결성하였다.


처음엔 베이스만 담당하였으나 광기의 중심 인물이었던 Barrett가

68년에 정신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그룹을 탈퇴하게 되어 songwriter의 역할을 맡게 된다.

그는 Barrett의 어둡고 병적이며 신비한 음악을 계승해 나갔는데,

Saucerful of Secret과 Ummagumma와 같은 앨범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Pink floyd는 1973년

앨범 Dark Side of the Moon을 발표하면서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Roger Waters & Ute Lemper - The thin ice

 

 

 

다음 앨범인 Final Cut에서 Roger Waters

더 어두운 분위기의 곡을 썼으며 앨범을 마무리한 후 그도 그룹을 떠났다.

 

1984년에는 Roger Waters의 공식 첫 솔로 앨범인

The Pros and Cons of Hitchhiking을 발표한다.

 

 

 

 

 

Roger Waters - Wish you were here

 

 

 

2년 뒤 Roger Waters는 Pink floyd라는 그룹명의 사용 권한을 가지고

다른 옛 멤버들과 소송을 벌였으나 결국 패소하게 된다.


1987년에 Pink floyd의 Momentary Laps of Reason은 차트에 올랐으며

Roger Waters는 두 번째 솔로 앨범 [Radio K.A.O.S]의 준비에 바빴다.

 

 

 

 

 

 

 

 

Roger Waters - Sunset strip

 

 

1990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기념하는

대규모 콘서트가 베를린 장벽 위에서 거행되었다.

 

앨범 [The Wall]의 전곡을 재현하는 것으로,

Roger Waters는 Sinead O'Connor, Joni Mitchell, Van Morrison과 같은

스타들로 캐스팅된 초호화 멤버들을 거느리고 공연을 하였다.

 

1992년 워터스는

세 번째 솔로 앨범 [Amused to Death]를 발표하였다.

 

 

 

 

 



 

 

 

 

 

 

 

Roger Waters  

 

 

 

 

국민들의 취미생활까지도 통제하려 들었던 군사독재 정권의 눈을 피해, 청계천을 뒤지던 70~80년대의

 음악광들이라면 핑크 플로이드라는 이름에 추억 한두 개 정도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것이다.

바늘을 올리면 노래 소리 반, 빗소리 반이던 조악한 음질의 ‘빽판’을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서로 돌려가며

듣던 또래들 사이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여러 앨범들은 단연 ‘필청’ 음반이었다.

그중에서도 <더 월The Wall>은 ‘청계천 키드’들의 대화에 끼고 싶으면 반드시 섭렵해야만 하는 음반이었다.

 비록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들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이 앨범이 무언가 대단히 불온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은 입소문을 통해 다들 익히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정권이 한 두곡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앨범 전체를 금지시켜버렸을까.

확실히 핑크 플로이드는 ‘정의사회 구현’에 어울릴만한 밴드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밴드의 중심에 서있던 로저

워터스는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선언한 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5공화국의 문화공보부는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신군부에 단단히 찍힌 록 밴드



당시 국내에는 ‘학교 교육에 대한 반항’ 정도로 알려졌던 <더 월>은 그 이상의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의 반 이상은 로저 워터스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더 월>의 주인공인 ‘핑크’와 마찬가지로 로저 워터스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때 전사했다. 아내가 출산하기

전에 입대한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생후 5개월이 됐을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사망했다.

   
  ▲ 로저 워터스
 

로저 워터스의 부모는 공산주의자였다.

 비록 아버지 얼굴 한번 본 적 없었지만 부모의 영향은 어린 그를 일찍부터 사주의에 눈 뜨게 만들었다.

스스로가 밝힌 바에 따르면 10대 시절 로저 워터스는 노동당의 청년 조직인 ‘청년사회주의자Young Socialists’의 캠브리지 지부 대표를 지냈다.

캠브리지는 그가 유소년기를 보낸 곳이다.

또한 50년대 말 영국에서 반핵운동인 ‘핵무기감축캠페인CND’이 거세게

일어났을 때 자신이 열정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90년대 후반 한 인터뷰에서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에 대해 “사회주의 이상이 생명을 다했고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1967년 핑크 플로이드가 정식으로 데뷔한 이후 로저 워터스가 시위에 참가하거나 단체를 지원하는 형태로 공식적인 정치 활동을 벌인 적은 없다. 어린 시절부터 노동당의 지지자였지만 그마저도 블레어의 정치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지지를 철회했다
.

2003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영국에 노동당이라는 정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보수당과

또 다른 보수당만이 있을 뿐이다.

보수당은 보수당이라고 불리고 다른 보수당은 ‘신노동당’이라고 불린다. 그 사람들(신노동당)이 무슨 주장을 하건

간에 말이다”라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사상적 지향은 현실 정치가 아니라 음악 활동을 통해서 표현됐다.

이라크 전쟁으로 노동당 지지 철회

너무나도 유명한 핑크 플로이드의 1973년도 앨범 <달의 암흑면Dark Side Of The Moon>은 경제학보다는 사회학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그러나 이 앨범을 관통하는 여러 주제들 중 하나가 ‘자본주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앨범의 수록곡 중 하나인 ‘돈Money’은 노골적으로 자본주의의 원초적인 토대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쓰면서 제1장을 ‘상품과 화폐’로 시작했듯이 핑크 플로이드도 돈에 대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상반된 태도를

 나열하며 현대인들의 왜곡된 욕망을 그렸다.

이어지는 노래 ‘우리와 그들Us And Them’은 나와 너, 가난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흑과 백 같은 분열과 대립을 노래한다. 요컨대 바리케이드의 이쪽 편과 저쪽 편으로 구분된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달의 암흑면>에 실린 마지막 노래 ‘월식Eclipse’은 더 의미심장하다. 이 노래의 마지막은 이렇다.

“태양 아래 모든 것은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태양 자체는 달에 의해 잠식된다.” 다시 한번 마르크스를 동원하면,

그가 <공산당선언>에서 ‘모든 단단한 것들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고 표현한 현대사회의 불안과 동요가

이 노랫말에 그대로 겹쳐진다.

   
 
 

1977년에 발표된 앨범 <동물들Animals>은 개, 돼지, 양을 통해 각각의 사회 계급을 풍자하고 있다. 3년 뒤에 나온 <더 월>은 더 복잡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부터 전쟁, 억압적 사회체제, 전체주의, 붕괴를 통한 재건까지.

반대로<더 월>의 후속작인 앨범 <최후의 일격Final Cut>에서는 주제를 전쟁으로 좁혀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최후의 일격>은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치른 포클랜드 전쟁에 대한 로저 워터스의 비판 성명이기도 하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그는 핑크 플로이드를 탈퇴했다.

음악은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



전쟁은 로저 워터스가 생애에 걸쳐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주제이다. 솔로로

전향한 뒤에도 핵 전쟁을 다룬 애니메이션 <바람이 불

 때When the Wind Blows>의 사운드 트랙을 제작하는가 하면 지난 2004년에는 이라크 전쟁을 비판한 노래 ‘아이들 죽이기To Kill The Child’와 ‘베이루트를 떠나며Leaving Beirut’를 녹음해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배포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이 두 곡을 작곡했지만 2004년 미국 대선 직전까지 공개를 늦췄다.

부시의 낙선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이 노래에서 그는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를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이 두곡을 제외하면 로저 워터스의 최근작은 놀랍게도 정통 오페라였다.

프랑스 대혁명을 다룬 3막짜리 오페라 “싸 이라Ça Ira”는 2005년 초연됐고 평단의 환영을 받았다.

지난 6월 22일 로저 워터스는 팔레스타인에서 공연을 가졌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을 비판해온 이 노장

뮤지션의 공연에는 아랍인과 유대인을 합한 5만 명의 관객이 모여들었다. 무대에 오른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분리하기 위해 설치한 장벽을 향해 <더 월>에 들어있는 그 유명한 노랫말을 목청껏 외쳤다.

 

 

“벽을 허물어라! Tear down the wall”

 

 

1968년 기타리스트 데이빗 길모어가 합류하고 시드가 작곡을 전담하는 5인조로 활동하였으나 1969년 미국 공연을 마지막으로 시드 배릿이 팀을 떠나면서 핑크 플로이드는 4인조 체제를 굳히게 된다.

 

시드의 탈퇴는 분명 아쉬운 일이었으나 데이빗 길모어의 능력도 상당하여 이후 핑크 플로이드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시기는 아직 시드 배릿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때로 실험성이 강하고 극도로 환각적인 난해한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1970년 4집 [Atom Heart Mother]를 발표하면서부터 그룹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전작들에서 보여주던 다양한 음악적 실험의 결과가 점차 결실을 맺기 시작하였으며 그 첫 작품인 대곡 'Atom Heart Mother'를 시작으로 이듬해 5집 [Meddle]의 'Echoes' 등 거대한 명곡들을 잇달아 발표한다.

이전까지 난해하게만 느껴지던 이상한 음향 효과들은 네 사람의 연주와 완전히 융화되었으며 사운드, 구성 등에서

 놀랍게 발전해 나갔다. 가사의 소재를 점차 가까운 일상에서 찾게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이 시기의 공연에서는 360도 써라운드씨스템 같은 진보된 음향 효과를 선보임으로써 공연장의 감동을 한단계 업

그레이드 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1973년 발표된 [Dark Side of the Moon]은 그동안 진행되어온 음악적 진보가 맺은 또 하나의 결실이다. 전작들에서 들려주던 대곡들은 점차 발전하여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컨셉트 앨범을 만들게 되었으며, 초기에 우주, 초자연 등에서 찾던 소재를 일상으로 전환하였던 것도 이 앨범에서는 심오한 함축성을 띤 광기와 무의식의 세계 '달'로 수렴된 것이다.

이 음반은 미국 차트에서 처음으로 정상을 차지했으며 741주 동안 빌보드 차트에 머물러 기네스북에 오르는 등 이들을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게 해준 성공작이 되었다. 이러한 상업적인 성공은 그들의 음악이 지나치게 대중화된 것이

아니라 그 만큼 소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호소력이 생긴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70년대 후반, 디스코 음악의 물결로 락은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시기였다. 특히 프로그래시브락의 거물 그룹들의 활동이 부진해져 가고 있던 시기였지만 핑크플로이드는 오히려 '더 월'을 통하여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1979년에 발표한 '더 월'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소외감, 공포 등을 하나의 줄거리로 표현한 대작으로 로저

워터스는 찢어지는 듯한 광기의 목소리를 직접적이고 저항적인 가사에 담아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등 이전의 음악과는 다른 방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앨범에 수록된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는 가사에 나타난 반사회성 때문에 많은 논란이 되었고, 공연에서는 무대에 설치된 높이 9m, 폭 50m의 대형 벽을 무너뜨리는 쇼를 펼쳐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특히 1982년 알란 파커 감독이 영화화 하면서 더욱 유명해 졌다.

이후 로저 워터스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팀원들간의 갈등으로 분열, 서로 핑크플로이드라는 이름을 갖기 위해 법정 공방까지 가는 사태에 이른다.

 

1988년 로저 워터스 없는 핑크플로이드가 화려한 조명과 대규모 연주인을 거느린 공연 실황을 담은

 [Delicate Sound of Thunder]를 발표해 앨범과 비디오 모두에서 큰 인기를 누렸으며, 로저 워터스는 개인적으로

 1990년 여러 유명 가수들과 함께 한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공연에서 [The Wall]을 재현하였다.

핑크플로이드와 결별한 로저 워터스는 이번 4월 2일의 잠실올림픽의 공연에서 베를린 장벽의 철폐를 기념해 90년

공연된 '더 월' 을 재현할것으로 보인다.

 

당시 참여했던 스노위 화이트(기타), 앤디 페어워더-로(기타,베이스), 그레이엄 브로드(드럼) 등 1급 뮤지션들로

구성된 11명의 백밴드가 함께 하며 공연장은 이제까지의 락공연과 다르게 스탠드 좌석이 없으며 필드에 12,000석으로 제한하여 최상의 음질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