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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 Dreams To Remember
I've got dreams, dreams to remember
I've got dreams, dreams to remember
Honey I saw you there last night
Another man's arms holding you tight
Nobody knows what I feel inside
All I know, I walked away and cried
I've got dreams, dreams to remember
I've got dreams, dreams to remember
I know you said he was just a friend
But I saw him kiss you again and again and again
These eyes of mine, they don't fool me
Why did he hold you so tenderly?
I've got dreams, dreams to remember
I've got dreams, dreams to remember
I still want you to stay
I still love you anyway
I don't want you to ever leave
Girl, you just satisfy me
I know you said he was just a friend
But I saw you kiss him again and again
These eyes of mine, they don't fool me
Why did he hold you so tenderly?
I've got dreams, dreams to remember
Yeah, I've got dreams, dreams to remember
Oh, I've got dreams, dreams to remember
Oh, I got my dreams, yeah, I got my dreams to remember
1941년 미국 조지아주(Georgia) 도슨(Dawson)에서 태어난 오티스 레딩은어린시절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노래를 시작하게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지역 출신의 락앤롤 뮤지션'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에 음악에 매료되어
그와 같은 락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음악에 길을 걷게됩니다
65년 뉴욕의 할렘폭등 LA폭동, 67년 디트로이트 폭동이 일어났으며 이는 흑인들이 스스로 권리쟁취를 위한 일종의
욕구 표출이었습니다.
이때 흑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새로 등장한 용어가 바로 소울(Soul)이었으며, 흑인들은 그들의 발인종차별
투쟁과 소울이라는 말을 동격시하며,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 레이 찰스, 아레사 프랭클린등의 소울가수들이
흑인 민중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순회공연 도중인 1967년 12월 10일 비행기 추락 사고로오티스를 비롯한 4명의 밴드 멤버 전원이 사망하면서
비록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에 떠났지만 짧은 인생동안 수 많은 음악의 업적과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었던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이후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의 곡을 리메이크하였고,
그를 추모하는 수 많은 기념사업들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비록 그의 인생은 짧았지만 그의 소울(Soul)과 음악만큼은
결코 짧지만은 않았음을 입증하는 듯합니다
목사 아들이었던 그에게는 가스펠의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Otis Blue"는 소울과 R&B, 팝을 망라한다.
맴피스의 전설적인 스튜디오 스택스에서 엠지스의 멤버들이 세션으로 참여한 이 앨범은 풍성한 사운드로 가득하다.
모든 편곡은 레딩이 직접 맡았다.
수록곡은 오리지널과 커버곡-두 곡은 레딩의 스승인 샘 쿡의 작품-이 섞여 수록되었는데, 거기에 담긴 감정의 밀도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것이다.
'Respect'에서는 자신감과 박력이 느껴지고 'Down In The Valley'에서는 깊은 울림과 휭키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롤링 스톤스-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영국밴드에게 흑인 소울음악을 사들이고 있었다-의 'Satisfaction' 커버곡은
믹 재거의 목소리를 머쓱하게 만들 정도다.
60년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구가했던 소울 가수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은 비록 짧은 기간동안 팝계에서
활동했지만, 펑크(funk), 가스펠, 소울, R&B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보컬 스타일로 흑인 음악의 모든 것을 한껏
과시했던 아티스트이다.
또한 정통 R&B를 모던 소울 음악으로 전환시키는데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고, 그의 정제된 작곡과 보컬 능력으로
상업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뮤지션이기도 하다.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가스펠 음악에 매료되었던 오티스는
R&B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로컬 밴드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62년까지 지역의 인기 밴드인 조니 앤 더 파인토퍼즈(Johnny and the Pinetoppers)에서 로드 매니저 겸 가수로
활동했던 그는 작곡 솜씨를 인정받아 스택스(Stax)의 자회사인 볼트(Volt)사와 계약을 맺고 62년 솔로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 해 발라드 곡 'These Arms of mine'이 R&B 히트를 기록, 8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명성을 얻었지만,
오티스의 본격적인 히트 퍼레이드는 65년 'Mr. Pitiful'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I've Been Loving You Too Long'(65), 'Respect'(65),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Satisfaction'(66) 등으로 빅 셀러를 기록한 그는 팝 차트에선 그리 크게 히트하지 않았지만,
소울 시장을 평정하며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롤링 스톤즈는 오티스의 'That's How Strong My Love Is'와 'Pain in My Heart'를 리메이크했고,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은 'Respect'로 스매쉬 히트를 기록했다.
67년 칼라 토마스(Carla Thomas)와 듀엣으로 'Tramp'를 불러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백인 팝 팬들에게 어필하게
된 그는, 몬트레이 팝 페스티발에서의 연주 이래로 수퍼스타덤에 오르며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순회공연 도중인 67년 12월 10일, 비행기 추락 사고로 오티스를 비롯한 4명의 밴드 멤버 전원이 사망하면서
그의 전성기는 아쉽게도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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