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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Luciano Pavarotti -La Donna E Mobile ,Caru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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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ano Pavarotti - La Donna E Mobile (여자의 마음)

 

 

 

 

 

 La Donna E Mobile (여자의 마음)

 

 

 

 

La donna e mobile, qual piuma al vento,
muta d'accento, e di pensiero. Sempre un amabile, leggiadro viso,
in pianto o in riso, e menzognero. La donna e mobile, qual piuma al vento,
muta d'accento, e di pensier e di pensier, e di pensier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눈물을 흘리며 항긋 웃는 얼굴로 남자를 속이는 여자의 마음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여자의 마음 변합니다
변합니다, 아~~~~ 변합니다

E sempre misero, chi a lei s'affida, chi le -confida, mal cauto il core!
Pur mai non sentesi felice appieno chi su quel seno non liba amore!
La donna e mobil, qual piuma al vento, muta d'accento e di pensier,
e di pensier, e e di pensier!

그 마음 어디에 둘곳을 모르며 항상 들뜬 어리석은 여자여
달콤한 사랑의 재미도 모르며 밤이나 낮이나 꿈속을 헤맨다
바람에 날래는 갈대와 같이 여자의 마음 변합니다
변합니다 아~~~~ 변합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루치오 달라 / 라이브 버전

 

 

 

 

Caruso

 

 

 

 

Qui dove il mare luccica e tira forte il vento
su una vecchia terraza davanti al golfo di surriento
un uomo abbraccia una ragazza dopo che aveva pianto
poi si schiarisce la voce e ricomincia il canto.

 

Te voglio bene assaie ma tanto bene sai
e una catena ormai
che scioglie il sangue dint'e vene sai.

 

Vide le luci in mezzo al mare
penso alle notti a in america
ma erano solo le lampare e la bianca di una elica
senti il dollre nella musica si alzo dal pianoforte
ma quando vide la luna uscire da una nuvola
gli sembro dolce anche la morte.

 

Guardo negli occhi la ragazza quegli occhi verdi com il mare
poi all'improvviso usci una lacrima e lui credette di affogare.

 

Te voglio bene assaie ma tanto bene sai e una catena ormai
che scioglie il sangue dint'e vene sai.

 

Potenza della lirica dove ogni dramma e un falso
che con un po'di trucco e con la mimica puoi diventare un altro
ma due occhi che ti guardano cosi vicini e veri
ti fan scordare le parole confondono i pensieri
cosi diventa tutto piccolo anche le notti la in America
ti volti e vedi la tua vita come la scia di un'elica
ma si e la vita che finisce ma lui non ci penso poi tanto
anzi si sentiva gia felice e ricomincio il suo canto

 

Te voglio bene assaie ma tanto bene sai e una catena ormai
che scioglie il sangue dint'e vene sai.

 

여기 빛나는 바다에서 거센 바람이 일어나 테라스를 불어대면
여기는 소렌토 만의 정면 한 남자가 한 아가씨를 포옹하고 그리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네
그러면 그는 목소리를 맑게 하여 노래를 다시 시작하네
당신의 목소리는 아주 들떠서 나는 벌써 잘 안다네
여기 하나의 사슬이 있어서 그것이 풀리면 피가 흐르는 것을

 

바다의 엷은 빛도 사라지고 아메리카의 밤을 생각하며
나는 홀로 등불을 들고 방황하네 하얀 뱃자국이 솟아오르며
음악 속의 회환을 느낄 때면 피아노 소리는 고조되는데

그러면 달빛이 구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 모습은 부드럽지만 죽음을 닮고 소녀의 시선을 응시하면
그것은 바다와 같은 청록빛 그러면 예기치 않게 흐르는 눈물 이는 그를 숨막히게 하고
당신의 목소리는 아주 들떠서 나는 벌써 잘 안다네
여기 하나의 사슬이 있어서 그것이 풀리면 피가 흐르는 것을

 

오페라 가수의 가능성이 감각의 연극을 거짓 이야기로 꾸미는데
그것은 트릭과 흉내로써 이루어지고 이윽고 전혀 다른 것이 된다네
너를 쳐다보는 두 시선 그렇게 와서
너를 보면 너는 그 가사를 잊지 않으리 혼동하며 생각하며


그렇게 모든 것은 왜소해지고 아메리카의 밤은 그렇게 거기서 돌고 보면서
사는 인생 뱃자국이 솟아오르는 뒤로 인생도 그렇게 끝날 것임을
그리고 인생을 충분히 생각도 못한 채 천사의 소리만 느끼며

그의 노래를 다시 시작하네 당신의 목소리는 아주 들떠서 나는 벌써 잘 안다네
여기 하나의 사슬이 있어서 그것이 풀리면 피가 흐르는 것을
당신의 목소리는 아주 들떠서 나는 벌써 잘 안다네
여기 하나의 사슬이 있어서 그것이 풀리면 피가 흐르는 것을


 

 

 

 

 

 

 

 

Caruso

 

 

 

이 곡의 오리지널은 이태리의 국민가수라 불리우는 루치오 달라가 1986년 자신의 앨범에 수록한 곡이다. 카루소는

 이태리의 항구 도시인 나폴리에서 태어나 유럽과 미국을 무대로 활약했던 엔리코 카루소

(EnricoCaruso 1873~1921)를 추억하는 노래이다.

 

중병을 앓고 있던 카루소는 1921년 자신이 활동하던 뉴욕을 떠나 고향인 이태리로 건너오게 된다.

 고향에 도착한 카루소는 나폴리 만의 남쪽에 위치한 또 다른 항구 도시인 소렌토로 가서 그곳의 유서 깊은 호텔

 Excelsior Vittoria 에서 생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낸다.

카루소가 묵었던 방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고 그 테라스에 서면 가까이 나폴리 만의 푸른 바다와 그 너머 나폴리가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방이 카루소와 루치오 달라를 이어주는 고리가 된다.

80년대 초 어느 날 루치오 달라는 카루소의 방을 둘러 보았다.

그가 방문한 시간은 밤이었는데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나폴리 만의 바다를 바라보며 이 호텔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카루소를 떠올렸고 마침 호텔 방에 있던 피아노에 앉아 거의 즉석에서 카루소를 작곡했다고 한다.

 

[위키백과에서 일부 차용]

이제는 영원한 전설이 되어버린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와 루치오 달라는 1992년에 이 곡을 듀엣으로

불렀는데 이 때 비로소 세계적으로 스매쉬 히트하면서 만방에 이 곡의 존재를 알렸다.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파바로티는 악보를 볼 줄 몰랐다고 한다.

절대 음감의 소유자였던 그는 자신의 귀와 목소리를 믿었으리라. 타고난 천재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했디.

이 곡을 가만히 들어보면 가사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대상에 대한 절절한 그

리움이 묻어 나온다. 오른쪽 엄지 손가락 올린다.

 

 

 

 

 

Luciano Pavarotti

 

 

 

이탈리아의 테너 가수. 다양한 레퍼토리와 높은 음역에서 멀리 뻗어나가는 맑고 깨끗한 음색이 최대의 장점이다.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불렸다.

 

이탈리아의 모데나에서 제빵업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오페라 애호가이자

아마추어 테너가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으며, 1955년 모데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함께 모데나 오페라극장의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1961년 이탈리아 레조 에밀리아의 아킬레 피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그곳 시립오페라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의 루돌포 역을 맡으면서 테너 가수로 데뷔했다. 이 공연의 성공으로

일약 세계 각국의 무대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1968년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에서 《라보엠》을 공연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1971년부터는 그곳에서 정규적으로 배역을 맡았다. 특히 1972년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에서 같은 고향에 같은 유모에게서 자란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Mirella Freni)와 함께 부른 《라보엠》은 대표적인 명반으로 손꼽힌다.

 

1970년대에는 도니체티·벨리니·베르디 등의 오페라 배역에 요구되는 벨칸토 창법을 완벽하게 구사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더욱 무게가 실린 창법을 바탕으로 드라마틱한 역으로 레퍼토리를 넓혀 베리스모 오페라까지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1982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국제콩쿠르를 창설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로마월드컵 전야제 때 흔히 세계 3대 테너로 불리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3 테너 콘서트’를 연 것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대규모 관중을 동원하는 야외공연을 열었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높은 음역에서 멀리 뻗어나가는 맑고 깨끗한 음색이 최대의 장점이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과 더불어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클래식 음악가로 평가받았다.

오페라 외에 연주회·음반·텔레비전 등 폭넓은 활동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77년 한국을 방문하여 독창회를

 가졌으며, 1993년·2000년·2001년에도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 2007년 9월 6일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 있는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5670 아름다움 동행_Luciano Pavarotti-09.jpg19세에 사범 학교를 졸업한 뒤 개인 교습을 통해 뒤늦게 성악의 길을

 선택했으며, '오페라(Opera)에 '데뷔(Debut)'한 것은 26세 때였답니다.

 61년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의 '콩쿠르(Concours)'에서

우승한 뒤 그곳 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

 

(Puccini Opera La Bohême)'의 '로돌포(Rodolfo)'역으로 '데뷔

(Debut)'를 했습니다.


63년 영국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 65년 이탈리아 '라 스칼라(La Scala)', 68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Metropolitan)'등 주요 '오페(Opera)'라 극장에 차례로 '데뷔(Debut)'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 '파바로티

(Pavarotti)'가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는 72년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에서 열린 '도니제티

(Donizetti)',의 【연대의 딸】공연입니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 9번의 '하이C(3'옥타브[Octave]' = 하이C란 피아노의 여덟 '옥타브[[octave]'가운데 일곱번째 옥타브의 '도'를 말함)'를 소화해내야 하는 【아리아(Aria】,【친구들이여】,【오늘은 즐거운 날】을 120년 만에 악보대로 불러 '하이C의 제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세계 음악계를 뒤흔들었습니다.

88년 독일 베를린 '도이치 오퍼(Duetsche Oper)'에서 열린 【사랑의 묘약】공연 때는 1시간7분 동안 165번의

 '앙코르(Encore)'를 받아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5670 아름다운 동행_Luciano Pavarotti-03.jpg

'파바로티(Pavarotti)'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테너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와 '플라시도 도밍고

(Placido Domingo)'입니다.

 

 '파바로티(Pavarotti)'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제 무대에서

 이들과 함께 '스리 테너 콘서트(Three Tenors Concert)'를 연

 이후 세계 3대 '테너(Tenor)'로 불리며 세계 구석구석까지 이름을 알렸습니다.

또한 대중 가수들과 함께 한 '파바로티(Pavarotti)'와【친구들】이라는 '시리즈(Series)'를 통해 고아와 빈민을 위한 자선 활동을 펼치기도 하고, 한국에는 77년과 93년, 2000년 세 차례 찾아와 공연을 했지요.



팝바로티 와 만토바니.jpg
하지만 '파바로티(Pavarotti)'의 말년은 음악적 성취와 무관한 사적인 문제로

 얼룩젔고, 막내딸보다 어린 35세 연하의 비서 '니콜레타 만토바니

(Nicoletta Mantovani)'와 염문을 뿌리다 2000년 부인 '아두아 베로니

(Adua Veroni)'와 이혼을 하고, 2003년 '만토바니(Mantovani)'와 결혼을

 해 도덕적으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또 전성기를 넘기고도 은퇴를 하지 않아 지나치게 대중적 인기에 영합한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2004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의 '토스카(La Tosca)'가 마지막 오페라라고 선언한 그는

 고별 '투어(Tour)'를 한 뒤 2005년 10월 이전에 완전히 은퇴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이후에도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뉴욕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을 당시까지도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파바로티(Pavarotti)'의 마지막 무대는

 2006년 2월 '토리노(Torino)' 동계올림픽 전야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Puccini Opera Turandot)'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그가 무대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입니다.

전 세계인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하이C의 제왕', '파바로티(Pavarotti)', 이제 그의 이름은 전설로 남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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