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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Sylvie Vartan-Love Is Blue ,La Maritza

 


 

 

 

 

 



Sylvie Vartan-Love Is Blue


 

 

 

Love Is Blue

 

 

 

 
Blue blue, my world is blue
Blue is my world now I'm without you
Gray gray, my life is gray
Cold is my heart since you went away

우울해요, 우울해요.
내 세계가 우울해요, 이젠 그대 없는 세상은
우울해요, 우울해요, 내 세계가 우울해요
그대가 떠난 후 내 마음이 차가워졌죠.

Red red, my eyes are red
Crying for you alone in my bed
Green green, my jealous heart
I doubted you and now we're apart

내눈이 붉게, 붉게 되었어요.
홀로 침대에서  그대를 생각하며 울고
내 마음에서 질투가 나요.
난 그대를 의심했고 이제 우리는 헤어졌죠

When we met how the bright sun shone
Then love died now the rainbow is gone
Black black, the nights I've known
Longing for you so lost and alone

우리가 만났을 때 태양이 무척 밝게 빛났죠.
그런 후 사랑이 시들고 이젠 무지개가 사라져 버렸어요
어두워요, 어두워요 그대를 잃은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그대를 갈망하며 지내왔던 밤들이...

Gone gone, the love we knew
Blue is my world now I'm without you
Ru ru ru ru ru ru

사라졌어요. 사라져버렸어요. 우리가 알던 사랑이...
그대가 없을 때 내 세계는 우울해요
루루루 루루루
 

 

 

 

 

 

 

 

 

 

La Maritza

 

 

(마리짜 강변의 추억)

 

 

 

 

 

La Maritza c'est ma riviere
마리짜는 나의 강입니다

Comme la Seine est la tienne
센 강이 당신의 강이듯이

 

Mais il n'y a que mon pere
그러나 지금 기회있을 때마다

Maintenant qui s'en souvienne
그것을 회상하는 것은

 

Quelquefois...
나의 아버지 뿐...

De mes dix premieres annees
처음 10년간의 추억은

 Il ne me reste plus rien
나에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Pas la plus pauvre poupee
가엾은 인형과

 Plus rien qu'un petit refrain
옛날의 보잘 것 없는 후렴구 외에는

D'autrefois...
아무 것도...

 La la la la ... La la la la...

Tous les oiseaux de ma riviere
내 강의 새들은

Nous chantaient la liberte
모두 우리에게 자유를 노래하고 있었어요

 Moi je ne comprenais guere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Mais mon pere lui savait
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었어요

 Ecouter...
다만 듣고 있을 뿐...

Quand l'horizon s'est fait trop noir

지평선이 훨씬 멀어졌을 때

 

Tous les oiseaux sont partis
새들은 모두 희망의 길 위로

Sur les chemins de l'espoir
날아가고 있었어요

Et nous ont les a suivis
그리고 그 뒤를 쫓아 우린 온 거예요

A Paris...
파리로...

 



 

Love Is Blue는 1966년 프랑스 작곡가 [Andre Popp(앙드레 포프)]에의해 작곡 되었다.

작사는 [Pierre Cour(피에르 쿠르)]가 불어로[Brian Blackburn(브라이언 블랙번)]이 영어로 했다.

 

 

1967년 제12회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서 룩셈부르크 대표로 출전한 [Vicky Leandros(비키 레안드로스)]가

 [L'Amour Est Bleu]로 불러서 1등은 못하고아쉽게 4등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를 [Paul Mauriat(폴 모리아)]가 1968년에 편곡하여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5주동안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Paul Mauriat]는 세계적인 악단으로 발돋움해서 지금까지도인기를 얻고 있다.

이후 많은 가수와 악단이 이곡을 연주하고 노래하였다.

 

대표적으로는 [Al Martino(알 마르티노)], [Andy Williams(앤디 윌리암스)]그리고 [Andy Williams]의 아내였던

[Claudine Longet(끌로딘 롱제)]가 불렀다.
위 3명중에서는 [Claudine Longet]가 부른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제법 알려져 있다.



 

 

 

 

 

 실비 바르탕 (Sylvie Vartan) 1944. 8. 15 -  불가리아계 프랑스

 

 

실비 바르탕(불가리아어 : Силви Вартан, 프랑스어 : Sylvie vartan, 1944년 8월

 15일생)은 프랑스의 가수이며, 프랑스의 1세대 락(rock) 가수 중 하나이다.

 

또한 프랑스 내에서 음반이 가장 팔린 가수이기도 하다.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 외무

공무원의 딸로 태어났으며, 얼마 못 가 불가리아가 공산주의의 억압을 받고, 군주제

 폐지됨으로써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그녀가 1968년에 발표한

《La Maritza (마리차 강의 노래)》의 가사에서 정치적 이유로 조국을 등져야 했던

어린 시절의 회한이 드러나 있다.

 

바르탕은 가장 많이 음반이 팔린 가수이자, 예예 (yé-yé) 스타일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예 스타일의 작가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매혹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공연은 때때로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인기를 끈다.

 그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텔레비전에서 많이 출연하고 있다.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8살때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망명한 [Sylvie Vartan(실비 바르탕)]은 60년대 영화

'우상을 찾아라'의 주제곡 [La Plus Belle Pour Aller Danser(라 플뤼 벨 푸르 알레 단세)]로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고 스타가 됐다.

 

이후 7,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면서 [La Reine De Saba시바의 여왕)], [Love is Blue]와 [La Maritza]등의

히트곡을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을 가진 파격과 낭만의 여가수이다.

 

그녀는 1965년 프랑스의 전설적인 록커 [Johnny Hallyday(자니 홀리데이)와 결혼을 하고 음반을 취입하기도 했었다.

이듬해인 1966년 8월 14일 그들은 사랑의 결실로 아들 [David Michael Benjamin Smet]를 출산했다.

그러나  두사람은 1980년 11월 4일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그녀는 현재 아메리카 미디어 사장인 미국인 [Tony Scotti]와 결혼을 해서 살고 있다,

영화배우 [Michael Vartan(마이클 바턴)]의 숙모이기도 하다.

한때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물로서 에펠탑과 개선문 그리고 그녀의 다리를 꼽을 정도로

그녀가 프랑스에 끼치는 영향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2004년에 회갑을 맞이한 [Sylvie Vartan]은 기념으로 자서전 출간과 함께 신보[Sylvie]도 발표하고 유럽 프로모션

활동을 하기도 했다.

'마리짜 강변의 추억' 제목 하나로 이 노래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첫 번째 구절에서 그녀는 애절한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한다.

'마리짜 강은 나의 강이야, 마치 너에게센느강이 있는 것 처럼'......

 

 

 

 


1944년 8월15일 불가리아 소피아 태생으로 8세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고향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다.

하여 실비 바르땅'은 프랑스 가수이지만 전통적인 '샹송가수'는 아니고, "프랜치 팝싱어"정도로 구별되어질것 같다.
다시말해서, 프랑스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샹송가수는 아니며 '무드 가득하고 문학적인 샹송보다는 과감하게

록큰롤을 혼합한 호쾌한 음악, 기존의 여가수들이 보여주던 다소곳하면서도 나긋나긋한 이미지를 과감하게 탈피하여

당시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적인 태도와 부합되어 최고의 인기를 얻었으며.1963년에 발표한

 'Quand Le Film Est Triste'가 각종 인기차트를 석권하면서 일약 젊은 세대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를 어린시절 부모 손에 이끌려 조국인 불가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을 온 후 프랑스인으로

 살았지만 한번도 자신이 불가리아인이란 걸 잊지 않았다고 한다.

 

 

실비 바르탕은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Love is Blue와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 등의 히트곡을

 불러 한국에서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한 샹송 가수 중 하나로 "파격과 낭만의 여가수"로도 알려져 있다.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8살때 프랑스로 이주한 바르탕은 60년대 영화 "우상을 찾아라"의 주제곡 "La Plus Belle Pour Aller

 Danser"로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올라 1970-80년대 전성기를 누리며 대표적인 샹송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환갑을 맞이한 바르탕은 자서전 출간과 함께 신보 "Sylvie"를 발매하고 유럽 프로모션 활동 등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곡으로 꼽히는 "La Maritza"와 "Love is Blue",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을 비롯해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재해석한 "Caro Mozart"등 대표적 히트곡이다.

아이돌 스타로 등장해서 프랑스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실비 바르땅'은 프랑스 샹송계의 역사와 함께한 대표 여가수다.

 공산체체이던 불가리아를 탈출해서 8살때 프랑스로 망명한 '실비바르땅"은 66살이던 1990년 10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국립극장에서 콘서트를 열면서 불가리아 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 당시 그녀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기다려온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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