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겨 읽는 명상록

現代哲學, contemporary philosophy]

 

 

 

 

 

 

본문

 

 

19세기 독일 철학의 정상이었던 헤겔 철학의 붕괴는 헤겔학파 내에서 L.포이어바흐의 헤겔 반박을 거쳐 마르크스변증법적 유물론을 탄생시켰고, G.W.F.헤겔의 합리주의적인 절대관념론에 반발하고 나선 S.A.키에르케고르

 A.쇼펜하우어비합리주의 철학은 F.W.니체를 통해서 현대의 생의 철학과 실존 철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는 경험주의를 토대로 한 신실재론()과 분석 철학에서는 빈의 논리실증주의

 결합되어 발전해 갔다.

 

헤겔 철학의 반박에서 시작된 철학의 여러 경향과 함께 신()칸트주의 철학은 20세기 철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현대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상가들은 1930년대까지 출판된 저서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무렵에는 M.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 K.야스퍼스의 《철학》(32), J.러셀과 A.N.화이트헤드

 《수학원리》(1910∼13), R.카르나프의 《세계의 논리적 구성》(18), L.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21)를 비롯하여 J.듀이, E.카시러, H.베르그송, E.후설, G.E.무어, G.루카치 등 현대철학자들의 핵심적인 사상을 담은

 저서들이 출판되었고 이들이 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 오늘날까지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현대철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자연과학의 발달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상대성이론플랑크양자물리학을 비롯한 현대과학의 성과들은 근대철학이 기반으로 삼았던 뉴턴

 물리학에 도전하게 되었다.

실체개념이나 절대시공()의 관념 위에 세웠던 근대철학의 절대이념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또한 생물학의 발전은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측면을 제시하였고, 특히 S.프로이트나 C.G.융의 심리학은 인간의

무의식 세계의 탐구를 토대로 지금까지 신뢰해 왔던 이성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하였다.

자연과학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수학의 발전은 철학의 대상과 방법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현대철학 형성에 영향을 끼친 다른 요인은 정치사회적인 변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제1, 2차 세계대전은 인간존재의 생존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양극현상을 심화시켰다. 이에 따른 철학적 논의의 대상이 좀더 구체적인 인간문제사회문제로 집중되어 갔다.

 

이와 동시에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된 공업화는 현대사회에 필연적인 부조리를 안겨주어 이 문제의 극복이 철학적

관심의 주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여건 아래 현대철학은 근대철학에서와는 전혀 다른 자기 모습의 새로운 전개가 요청되었다.

 

 그러므로 현대의 철학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 이유로서는 현대의 철학사상들이 점진적으로 유럽 중심에서 탈피하여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발전해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또 모든 철학사상간의 상호영향 관계가 밀접하게 이루어져 한 철학사상을 어떤 뚜렷한 철학사적인 입장에 고정시켜서 이해할 수만은 없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현대철학의 유형은 대체로 지역에 따라 유럽 철학과 영미 철학() 및 동유럽 철학으로 나누어

이해한다.

유럽 철학에는 삶의 철학과 실존철학, 구조주의철학과 네오 마르크스주의(비판이론)를 포함시켜 논의하고, 영미 철학 영역에는 실용주의와 논리실증주의 그리고 분석철학과 신실증주의(비판적 합리주의)철학 등을 포함시킨다.

동유럽 철학은 국가철학이 되어버린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의미한다.

 

 

 

 

 

 

 

 

 

 

<신칸트주의>

 

 

 

 

낭만적 형이상학의 사변()이 유행하고 있을 무렵, 비판적 사고의 가치를 되찾기 위하여 ‘칸트로 돌아가자’는

 구호와 함께 일어난(1865년경) 신칸트주의는 I.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토대에서 인식이론적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

서남독일학파와 마부르크학파로 나뉘어 발전한 신칸트주의는 모두 칸트의 사상을 출발점으로 한다.

 

서남독일학파의 W.빈델반트는 철학을 보편타당한 가치에 관한 비판적 과학이라고 하여 자연과학적인 관찰방식과

 역사적인 관찰방식을 대립시키고 자연과학이 법칙설정적인 데 비하여 정신과학은 개성 기술적()이라고

하면서 정신과학의 의미를 더 중요시하였다.

 

H.리케르트도 문화업적에 실현된 가치만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보고 자연과학과 문화과학의 구분을 제창하였다.

이들 사상은 현대의 과학방법론에 대한 중요한 이론근거를 제시하였다.

 

마부르크학파의 대표자들은 코엔, P.G.나토르프, 카시러 등이며 칸트의 인식이론적인 관념론을 더 심화시켰다.

이들은 칸트가 인식할 수 없다고 한 물자체()를 부정하며 사물은 우리들의 의식 속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카시러는 인간의 정신적인 작용에는 인식하는 것 외에 언어와 신화적인 사고가 우리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데

참여한다고 말하여 언어와 문화연구에 대한 현대철학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이들 신칸트주의 철학자들은 실증주의자들의 공격과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특히 H.라이헨바흐, 카르납, 빈학단

M.슐리크와 O.노이라트는 형이상학을 거부하는 지식론을 발전시켜 칸트의 선행주의를 반박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지식론은 경험적인 인식이론과 수학에서 개발된 논리학을 기초로 삼는다. 이같은 대립은 아직도 현대철학의 중요한 논쟁대상이 되고 있다.

 

 

 

 

 

 

 

 

 

<생의철학과 해석학>

 

 

 

헤겔의 합리주의에 대항하는 비합리주의의 경향 속에 이미 생의 철학의 출발이 내재해 있었다.

 생의 철학은 현대사회 속의 계산하는 오성()의 우월한 역할에 반발하여 생동적인 삶의 의미를 보존하려는

철학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기계화나 물상화에 대항하며 인간을 합리적인 도식에 의해서 파악하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서 저항한다. 근대철학의 R.데카르트 이후 인간의 합리성만을 강조해 온 사조를 거부하고 개념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주제로 삼는다.

 

니체, 딜타이, 베르그송 등이 이러한 철학사조에 속한다. 니체는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본능, 욕구나 활력적인 힘의

 해방으로서 삶을 이해했으며, 딜타이는 추상적인 개념에 의해서 파악될 수 없는 인간의 내적인 체험의 지속적인 흐름을 삶이라고 하였다.

 

베르그송은 생동적인 것은 동적인 흐름에 속하기 때문에 추상적 ·정적인 공식들에 의해서 사멸될 수 없는 것을 삶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생의 파악은 오직 직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들의 입장은 대체로 주지주의와 이성주의, 실증주의 그리고 신칸트학파와 대립해 있으며 인간의 생에 대한 고정불변의 이념을 설정하는 형이상학을 거부한다.

 

 특히 W.딜타이의 생의 철학은 인식이론에 공헌한 바가 크다. 그는 생의 철학적 인간학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삶을

 파악하는 방법은 대상을 보편적인 법칙에 귀속시키는 자연과학적인 방법과는 달리 이해()의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을 그는 해석학의 이론에서 다룬다. 해석학의 기원이 성서 문헌의 해석에 있었지만 딜타이는 슐라이어마허

해석학 연구를 토대로 생의 해석학의 방법론적 체계를 처음으로 세웠다.

 “자연을 설명하고 정신생활을 이해한다”라는 명제에서 설명과 이해를 대립시키고 있으며 인간의 정신생활이 표현된

 모든 정신과학 대상들은 이해의 방법에 따라 파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체험, 표현, 이해를 해석학적인 순환관계로 보고 이해는 정신과학의 기초가 되며 지금까지의 철학적 인식론을 해석학이 대행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해석학은 하이데거에 이르러 이해의 개념이 존재론적인 의미를 얻어 철학적 해석학의 체계를 갖추게 되고

H.G.가다머에서 선입관의 해석학으로 발전하였다.

 

현대의 해석학 논의는 J.하버마스에게서 수용되고 사회철학과 관련되어 보편적 방법으로서의 해석학을 요청하며 또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언어철학과 관계를 지은 P.아펠의 선험적인 해석학으로 발전하였다.

이제는 해석학이 단순한 정신과학의 방법으로서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의 방법을 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현상학과 실존철학>

 

 

 

현상학은 생의 철학이나 해석학과는 달리 철학의 과학적인 토대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E.후설에 의해 시작된 현상학은 그 당시 유행하는 실증주의유물론에 의해서 상실될지도 모를 철학의 중요관심인

이성과 정신을 본질인식과 본질파악으로 구제하려 하였다. 그가 말하는 제일철학()의 구성은 현상학의 기본과제였는데, 이는 수학적 보편성의 토대 위에서 인식하고 가치평가하며 실천하는 이성의 보편이론으로 삼으려 하였다.

 

과학의 객관성을 의식의 주관성으로 전환시키면서도 의식의 상호주관성[]을 확보하는 길을 현상학적 방법이

보장한다고 보았다.

이 방법은 의식의 현상에서 주관성을 배제하는 환원()의 과정을 거쳐 순수의식의 인식에 도달한다.

후설은 철학이 곧 현상학이라고 하여 본질적인 것으로의 전환을 ‘사실자체로’라는 구호에서 밝혀준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실과 본질의 문제는 내적 의식현상의 주체성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후설의 현상학은 하이데거

 이르러 실존철학으로 넘어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현상학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방법론이 철학 이외의 영역에 끼친 영향도 매우 크다.

 

 비록 현상학이 실증주의와 대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석학과 같은 계통에 서 있지만 해석학이 비합리주의적인 심리주의에 서 있다는 점에서 해석학과의 논쟁이 치열하였다.

실존철학의 연원은 헤겔의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나선 키르케고르니체에서 그 근거가 주어지지만 하이데거의

현존재의 기초존재론 없이는 실존철학이 그 체계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비록 스스로를 실존철학자로 자처하지 않았지만 야스퍼스와 함께 실존철학의 중요한 개념과 체계를

만들었다.

잘 알려진 실존철학자로는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이외에도 J.P.사르트르와 G.마르셀 등이 있다.

 

이들은 주체로서의 인간의 고유한 존재를 다른 사물의 존재와 구별시켜 ‘실존’이라고 부르는 한편, 실존은 순수한 인격이기 때문에 자유의 핵심이며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인간일 수 있음은 자신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흔히 무신론적인 실존주의유신론적인 실존주의를 구별하기도 하며 독일의 실존주의와 프랑스의 실존주의를

구별하기도 하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그들의 내적인 연관 때문에 엄밀한 구분이 힘들다. 야스퍼스의 실존은 한계 상황

(죽음 ·죄책 ·고뇌 ·싸움) 속의 인간을 말하며 한계상황의 극복은 사랑과 신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은 현존재의 분석에서 출발하며, 현존재의 기본존재방식을 ‘세계 안에 있음’과 ‘서로 어울려 있음’에서 찾아 관심과 불안을 현존재의 기본정서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사르트르의 실존은 휴머니즘이며, 비록 인간은 절대적인 자유를 보장받았지만 이웃을 위한 책임 속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철학의 결합을 성취시켰고, 사회비판이론에 속한 H.마르쿠제는 하이데거와

마르크스주의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비판이론과 네오마르크시즘 >

 

 

 

좁은 의미의 문화비판과 사회비판의 문제가 제기된 것은 그다지 오래지 않다. 현대의 사회비판

(소위 프랑크푸르트학파)은 종래의 사회비판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사회비판은 F.퇴니에스에서 비롯하여 W.좀바르트, A.겔렌, 셸스키 등으로 이어졌다.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시작된 비판이론사회구조경제체제 ·정치체계의 근본적인 개혁을 의도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기원은 1920년대의 독일적인 정치사회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M.호르크하이머

 T.W.아도르노에 의해 시작된 비판이론은 헤겔의 철학사상과 관련된 마르크시즘을 출발점으로 삼아 독일의 곤궁한

상황을 구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야기한 현대사회의 비합리성과 현대에 와서

 도구화된 합리성이 파시즘의 정치체제를 굳힌다고 보아 기존하는 체제의 전적인 부정을 주장하였다.

 

이들이 모두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A.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 비판이론의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H.마르쿠제와 E.프롬 등이 이 비판이론에 참여하였고, 이들 사상은 60년대의 미국과 유럽에서 학생운동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호르크하이머는 철학의 참다운 기능을 기존하는 것의 비판에 두고 점진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체제

 결국 혁명을 필연적으로 요청한다고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은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고 하버마스의 등장으로 비판이론의 체계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그들의 초기이론을 포기하였으므로 60년대 말의 비판이론은 하버마스와 미국으로 귀화한 마르쿠제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 후 하버마스가 프랑크푸르트를 떠나고 마르쿠제가 죽으면서 비판이론은 퇴조하고 말았다. 60년대의 ‘사회과학

 방법론 논쟁’에서 변증법과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 간의 대결은 아직도 해소되지 못하였다.

 

비판이론이 마르크스철학에 기초하기 때문에 신좌익() 또는 네오마르크시즘이라고 불리며, 프로이트심리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뜻에서 프로이트 좌파라고도 한다.

이들 모두 비판이론이라는 이름 아래 총괄되지만 관심영역과 방법에서 서로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논리실증주의와 분석철학>

 

 

 

 

이와 같은 사조는 주로 영미 철학의 특징적인 경향에 속한다. 현대의 영미 철학은 여러 가지 사상적인 연원을 가지며

거기에는 영국의 전통적인 경험주의의 바탕과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미국인의 태도, 그리고 유럽 대륙의 사상원천인

독일 ·폴란드수리논리학빈학파의 사상이 융합되어 있다.

 

논리실증주의분석철학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에서비롯되었다. 러셀은 독일의 논리학자이며 수학자인 G.프레게

 영향을 받아 영미철학의 중요한 토대를 구축하였다. 논리실증주의는 낡은 경험주의와 실증주의의 전통을 20세기로

옮겨 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신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낡은 실증주의와는 달리 현대논리학에 관심을 갖고 경험과학적인 방법(귀납법)과

논리적 ·수학적 방법을 엄밀하게 구별하였다.

 그래서 이들의 입장을 논리적 실증주의(에이어) 또는 논리적 경험주의(모리스)라고 일컫는 것이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환상과 같이 애매모호한 말로써 철학적 사색을 즐기는 일체의 전통철학을 부정하고 논리적인 엄밀성이라든지 명료한 철학적 개념의 사용과 구성을 강조한다.

 분명하고 간결한 진술을 추구하는 이들은 어떤 철학적인 진술이거나 그것은 근거가 있어야 하며 검증되어야 하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는 진술이나 명제는 의미없는(sinnlos) 명제로 판정한다.

 

전통적 형이상학의 문제(신의 존재, 영혼불멸 등)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상의 문제(Scheinproblem)가 된다.

 그러므로 논리실증주의가 말하는 철학의 과제는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논리실증주의자는 세계와 인간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려는 입장이라기 보다는 이들의 방법, 곧 분석적인 방법에 관심을 둔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모든 철학은 언어비판인 것이다. 분석철학은 빈학단과 무어의 케임브리지분석학파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빈은 오랜 기간 동안 이름 있는 과학자들을 배출한 곳이어서 실증주의 전통에 익숙해 있었으며, 이와 같은 분위기가

분석철학의 발전을 가능케 하였다.

 

 원래 물리학자였던 슐리크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모여 논리학을 통한 철학의 부흥을 꾀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학자들은 카르나프, 노이라트, 파이글, 카우프만 등이었고, 이들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영향 속에서 새로운 사고

 혁명을 설계했다.

 

카르나프는 세계의 논리적 구성에서 전통형이상학을 무의미한 진술이라고 부정하였고, 노이라트는 과학적인 진술은

물리학의 언어로 옮겨질 수 있다고 보아 과학적인 보편언어를 주장하였다.

 

1938년 빈학단의 학자들은 대부분 미국과 영국으로 이주함으로써 빈학단은 사실상 해체되었으나 영국이나 미국에서

 분석철학의 사조가 꽃을 피우게 되었다.

 카르나프는 인공언어의 도움으로 과학적인 철학은 그의 문제를 엄밀하게 해결할 것이라고 보았다.

 

영국의 라일은 R.툴민, 오스틴 등과 함께 일상용어를 통해서 철학적인 문제를 구성하였다. 한편, 비트겐슈타인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의도하였다.

 빈학단의 경향과는 달리 포퍼는 탐구의 논리에서 귀납법에 근거한 검증원리를 연역적인 반증원리에 대립시킴으로써

현대 영미철학 방법론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현대 영미철학의 경향은 T.쿤의 패러다임 이론과 현상학 및 분석철학의 방법적인 접근에 대한 논의가 주목할 만하다

 

 

 

 

 

 

 

 

실용주의와 도구주의>

 

 

 

실용주의는 특히 미국의 철학정신을 반영하는 사조로서 실제(practice)에 관심을 둔다.

여기서 말하는 실제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하나는 행위의 실제로서 실험적인 과학에 입각하여 사회적 ·경제적인 활동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의 발전과 문화의 진보에 공헌하는 유용성이나 적용가능성으로서의

 실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고는 행위로 옮겨갈 수 있는 활동이다.

 

 사고는 자기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실용주의의 창시자인 C.S.퍼스에게서 ‘무엇을 아는가(know-what)’보다 ‘어떻게를 아는 것(know-how)’, 곧 실제적인 결과에 우월성을 두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퍼스 자신은 실용주의의 체계를 세우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는 수학과 논리학자였기에 현대의 기호이론(semiotics)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의 논문 <어떻게 우리의 관념을 명료하게 하느냐>가 제임스에 이르러 실용주의를 체계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W.제임스는 그의 심리학적인 관심 때문에 과학이론의 실용원칙보다는 형이상학과 종교 ·도덕에 이 실용적인 원칙의 적용을 강조하였다.

 

참이란 제임스에게 있어 사고와 사실의 합치이기보다는 실적 가치(power to work)나 유용성에서 판정된다.

듀이의 도구주의는 실용주의의 특별한 변용이다.

듀이는 자신의 이론을 실험적 과학에 적용되는 방법으로 이해했고, 어떤 진술이 참이라는 판정을 받으려면 진술의

 기능이 성취되고 욕구가 충족되며 경험적으로나 실험적으로 확증되었을 때라고 하였다.

 

마르크스주의에서처럼 듀이는 인간의 사고나 의식은 행위와 실제를 위해서 성장한다고 본다.

분석적인 방법을 토대로 듀이는 사회적인 문제에 관해서 도구주의는 열광주의나 신비주의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훌륭한 무기라고 본다. 실용주의나 도구주의는 미국인의 생활철학과 개척정신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결론적으로 현대의 산업화시대에 철학의 가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능주의와 실용성만을 의미 있는 판단기준으로 행사하는 현대사회에서는 흔히 철학의 무용성이 논의된다.

 그러나 철학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문화와 사회 발전에 대해서 그것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를 새롭게

 반성하도록 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현대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기초로 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에 도취해 사회발전의 방향이 필연성의 노예로

전락해 가고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자기실현과 사회 전체의 행복과 꿈을 보장해 줄 이성적인 사회가 되도록 철학은 끊임없는 비판정신을 발휘해야 하며 이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근원적으로 탐구하는 철학정신은 효용이 없는 듯한 효용성을 갖게 된다.

반박과 비판이 거듭되는 이론적 논의 속에 현대철학의 미래가 있다.

 

 

 

출처 :마음이 머무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