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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Amy Grant -My Jesus, I Love Thee - Amy Grant

 

 

 



 

 

 

My Jesus, I Love Thee - Amy Grant            

 

  

My Jesus, I love Thee, I know Thou art mine;
For Thee all the follies of sin I resign.
My gracious Redeemer, my Savior art Thou;
If ever I loved Thee, my Jesus, ’tis now.

 

나의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오며 당신이 제것임을 알고

당신께 죄의 모든 어리석음을 내려놓나이다.

제 은혜의 구속주 당신은 내 구주이시니이다.

만일 언제라도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나의 예수여, 그때가 바로 지금이니이다.

 

I love Thee because Thou has first loved me,
And purchased my pardon on Calvary’s tree.
I love Thee for wearing the thorns on Thy brow;
If ever I loved Thee, my Jesus, ’tis now.

 

제가 당신을 사랑함은 당신께서 먼저 저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니이다

그리고 저의 죄사함을 갈보리 나무위에서 (피로) 사셨음이니이다,

당신이 이마에 가시관을 쓰셨음을 인하여 제가 당신을 사랑하오며

제가 당신을 언제라도 사랑한다면  나의 예수님 그때가 바로 지금이니이다.

 

I’ll love Thee in life, I will love Thee in death,

And praise Thee as long as Thou lendest me breath;

And say when the death dew lies cold on my brow,

If ever I loved Thee, my Jesus, ’tis now.

 

제가 사는 동안에도 당신을 사랑할 것이며

죽었을 때에도 당신을 사랑하리이다.

당신께서 제게 호흡을 빌려주시는 한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제 이마에 죽음의 이슬이 차갑게 내릴때에도 말하리이다.

제가 당신을 사랑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이라고

 

In mansions of glory and endless delight,

I’ll ever adore Thee in heaven so bright;

I’ll sing with the glittering crown on my brow;

If ever I loved Thee, my Jesus, ’tis now.

 

영광과 한없는기쁨의 저택들에는 제가 밝은 천국에서 당신을

경배할 것이며 제 이마에 빛나는 관을 쓴채 노래하기를

제가 당신을 언젠가 사랑한다면 나의 예수님 그것은 지금이라고.

 

 

 

 

 

 

 

 

 

 

Amy Grant

 

 

 

 

1978년 소녀 가수 에미 그랜트(Amy Gran)의 등장은 크리스천음악계에 새로운 흐름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앳된 외모의 소녀가 발표한 데뷔앨범이, 그것도 찬양앨범이 50만장이 넘게 팔리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에미 그랜트는 당시 교회와 커뮤니티 중심의 전통적인 가스펠 사운드와 다른 컨트리뮤직을 바탕으로 한 팝스타일의 음악으로 크리스천 음악계에 혁신적인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보수적인 당시 상황에서 최초의 크리스천 엔터테이너로 자주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고 크리스천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 또한 받아왔지만 그녀는 새로운 형식의 크리스천 음악을 통해, 일반인에겐 친숙한 이미지를 통해 선교적인 마인드와 오락적인 면 두 가지를 충족하며 CCM을 진일보 시킨 아티스트로 인정 받고 있다.

 

 또한 에미 그랜트의 등장은 그 해 창간된 크리스천음악을 전문으로 다루는 CCM매거진과 함께 기존의 가스펠과는 다른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정의를 일반화 시킨 계기가 되었다.

 

CCM 매거진은 CCM 판매 차트를 삽입시켰고 곧 일반인들에게까지 보급되면서 CCM은 생소한 장르의 개념을 뛰어넘어 하나의 정비된 음악적 형태로 인식될 수 있었다. 이는 크리스천 음악시장이 성장하고 체계화될 수 있는 외형적인

 기반이 되었고 에미 그랜트는 그 출발점이었다.




데뷔 후 25년간 총 2천 2백만장의 앨범 판매기록. 올해의 아티스트에 4번이나 선정되면서 20개의 도브상과 5개의

 그래미상 수상.

팝계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6개의 빌보드 라디오 싱글 넘버원 히트 기록.

5백만장의 판매를 기록한 크로스오버 앨범으로 가장 성공한 CCM 아티스트, 에미 그랜트! 그녀는 미국 CCM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이며 성공한 팝스타임에 틀림없다.

 

 화려한 바이오그래피는 그녀의 외적인 성공만을 보여주는 단순한 수식에 불과 할 수도 있고 수치만으론 CCM 역사

속에 그녀가 남긴 발자욱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녀는 CCM의 역사를 주도해온 히스토리메이커임에 틀림없다.

1961년 한 내과의사의 가정에서 태어난 에미 그랜트는 어린시절부터 교회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며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15세에 음반사와 레코딩 계약을 맺게 된다. 1978년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하는 데뷔앨범

[Amy Grant]에서 3곡의 히트 곡이 나오면서 신인으로서 경이적인 50만장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성공적인 데뷔를

기록하게 된다.

 

이후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크리스천 아티스트로는 드물게 밴드를 대동하고 투어를 시작하며 인지도를 넓혀갔고 독자적인 프로모션을 통해 공중파에 진출하면서 일반음악계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82년에는 세션과 작곡자로 투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싱어송 라이터 게리 채프먼(Gary Chapman)과 결혼했고 당시 발표한 앨범

 [Age to Age]는 그래미상과 올해의 아티스트를 포함해 3개의 도브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그녀는 스타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85년에는 앨범 [Unguarded]가 워드와 일반 메이저 팝 레코드사인 A&M사와 계약으로 일반시장에까지 보급되면서

Top40 진입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CCM의 크로스오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보수적인 가스펠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85년 MTV의 개국으로 뮤직비디오 산업이 성장했고 이어 등장한 크리스천 MTV를 통해 많은

CCM관련 뮤직 비디오들이 제작되면서 최고의 CCM 아티스트로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곧 그녀는 유명한 팝그룹 [Chicago]의 리더였던 피터 세트라(Peter Cetera)의 솔로앨범에 듀엣으로 참여하여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The next time I fall'을 함께 불러, CCM은 아니었지만 일반 차트로는 처음으로

 정상에 서기도 했다.

1991년 워드사의 음반들이 팝시장에 보급되면서 상당수의 CCM 앨범이 일반시장에 보급되었고 에미 그랜트는

CCM출신 아티스트라는 수식어를 단 크로스오버 앨범 [Heart in Motion]을 통해 댄스적인 리듬과 락비트를 과감히

도입한 새로운 패턴의 음악을 선보이며 팝계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건강미 넘치는 섹시한 이미지가 강조된 싱글히트곡 ‘Baby Baby’는 처음으로 에미에게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의

영예를 안겨주었고 이 앨범은 다음해에 열린 92년 그래미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를 포함한 4개 부문에

 노미네이션되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

 

러나 이 앨범 역시 경건치 못한(?) 크로스오버에 대한 문제로 다시 한번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이듬해 발표한크리스마스 앨범은 시즌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3백만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했고 94년 발표한

 [House of Love]는 빌보드 13위로 등극하며 명성을 이어갔고 97년 [Behind the Eyes]와 98년의

[A Christmas to Remember]가 각각 골드를 기록하면서 에미 그랜트의 성공가도는 끝없이 전개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99년 오랜 결혼생활을 함께 해온 게리 채프먼과 이혼하고 [House of Love]앨범작업 때 공동 작업자였고

 투어를 함께 했던 컨트리 뮤직 스타 빈스 길(Vince Gill)과의 재혼 뉴스는 많은 크리스천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

 

모범적인 크리스천 가정으로 부러움과 축복을 받던 이들이었기에 충격은 클 수 밖에 없었다.

크리스천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어느 아티스트보다 사랑받아온 그녀였기에 팬들의 실망은 커져만 갔고

 급기야 몇몇 라디오 방송국들은 그녀에 대한 방송을 거절하기까지 했다.

 

계속해서 온라인상에서는 공개포럼이 열리기도 했고 비난과 기도가 이어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2001년 겨울에 열린 그녀와 빈스의 크리스마스 투어 때, 공연장 앞에서는 이혼 반대론자들의 피켓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CCM 아티스트로도 음악 인생의 큰 위기를 맞게 된 그녀는 음악뿐 아니라 실패한 결혼에 대한 스스로의 자괴감으로

음악 활동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그것은 곧 공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고 얼마전인 5월 21일 에미 그랜트는 앨범 [Legacy...Hymns & Faith]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Legacy...Hymns & Faith]

에미 그랜트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삶 속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지난 3년간의 침묵을 걷고 발표한 찬송가 앨범 [Legacy...

Hymns & Faith]를 통해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이한 그녀에게 이번 앨범은 17번째 정규앨범으로 오랫동안 무르익은 그녀의 음악적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힘든 시간 속에 무엇보다 그녀가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음악과 영적인 삶 속에 뿌리를 이뤄온 믿음에

대한 회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앨범의 주된 컨셉은 앨범 타이틀이 말해주듯이 ‘유산’이다. 찬송과 믿음의 회복을 통해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유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믿음의 유산, 그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어린시절의 찬송을 회상하며 첫사랑에 대한 회복을 경험했다.

‘어린시절부터 습관화된 수동적인 신앙으로부터 열정을 회복해 주님께 친밀함으로 나아가게 됐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그녀는 이번 작업을 통해 데뷔시절 뜨거웠던 사역의 열정을 회복하며 자신에게 이정표가 되어 준 찬송이 갖는

 본질적 감흥을 다양한 음악적 표현 속에 담아 전달하고 있다.

‘What a friends we have in Jesus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How great thou art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등 수세기 전부터 불려진 찬송들은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 다양한 편곡과 전통적인 민속 사운드를 통해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체적인 음악적 컨셉은 부드러운 팝 발라드에서 블루그래스같은 전통적인 사운드까지 어덜트 컨템포러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친숙한 선율의 찬송가를 복고적인 사운드에 색다르게 담아내는 주된 역할을 담당한 블루그래스는 우리에게

서부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익숙한 컨트리스타일의 음악양식으로 마운틴 뮤직을 현대화한 장르로 주로 5현 밴드를

 중심 악기로 만돌린과 피들을 두드러지게 활용하며 싱커페이션(당김음)이 많은 경쾌한 어쿠스틱 선율을 특징으로

하는 음악이다.

 

최근 미국에는 블루그래스 그룹 니켈 크릭(Nickel Creek)과 블루그래스의 진수를 들려준 영화 [O Brother,

 Where art thou?]의 사운드트랙이 큰 인기를 끌면서 복고적인 블루그래스 뮤직의 선풍이 일고 있는데 에미의

 찬송앨범 역시 그런 영향 가운데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컨트리 뮤직 아티스트답게 남편 빈스 길은 이번 앨범에서 프로듀싱, 편곡, 연주 등 다양한 조연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데뷔 앨범부터 함께 해 온 베테랑 프로듀서 브라운 배니스터(Brown Bannister)와 리차드 버넷

(Richard Bennett), 채드 크롬웰(Chad Cromwell), 케니 그린버그(Kenny Greenberg)같은 내쉬빌의 베테랑

 뮤지션들의 참여 또한 앨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빈스 길은 뛰어난 컨트리 뮤지션답게 편견 없이 찬송을 고정화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다양한 편곡으로

 유도해냈고 브라운 배니스터는 전체적인 흐름을 매끄럽게 조율하는 역할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의 찬송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소프트한 발라드 풍으로 변주된 찬송가 78장 ‘This Is My Father's World (참 아름다워라)’, 후렴구로

갈수록 고조되는 흐름 속에 미국 민속춤인 스퀘어댄스의 경쾌한 선율이 연상될 정도로 흥겨운 롤이 인상적인 찬송가

 

 512장 ‘My Jesus, I Love Thee’(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말로다 표현할 수 없던 감동을 감미로운 기타연주로 대신하는 ‘Fields of Plenty’, 빈스 길이 기타와 코러스로 함께 해준 컨트리풍의 ‘Come, Thou fount of every

 blessing (복의 근원 강림하사)’, 에미의 오랜 친구들이 함께 코러스로 참여한 ‘Marching to Zion’ 등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들은 민속적 색채로 새롭게 덧입혀져 또 다른 감동을 갖게 한다.

 

회상적인 테마와 잘 어울리는 하모니카와 클래식 기타 사운드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발라드 ‘Do you remember

 the time‘ 과 2002년 4월에 열린 도브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한 신인 그룹 MercyMe의 ‘I can only

 imagine’을 리메이크한 ‘Imagine’, 에미의 고백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What you already own ’ 등 새롭게 수록된 신곡들은 찬송 앨범이라는 컨셉에 끌려가지 않으며 하나하나 깊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지난 세월의 자취가

묻어있는 에미 그랜트만의 개성적인 보컬은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새 앨범 [Legacy...Hymns & Faith]는 ‘찬송가 프로젝트 앨범’ 임에도 불구하고 2002년 6월, 발매 첫 주에 5만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보이며 빌보드 앨범 차트 21위라는 성공적인 데뷔를 기록했다.

 

그 원인은 계속된 음반업계의 불황 속에 9.11사태 이후 미국에 불고 있는 ‘God Bless America’의 영향으로 크

리스천 음반만의 판매량이 높아진 점과 최근 미국에 유행하는 블루그래스라는 올드한 음악적 코드를 통해 찬송과

 믿음의 회복이라는 컨셉이 잘 맞아 떨어진 점 등 여러 가지 외형적인 측면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에미

 그랜트라는 아티스트의 복귀를 기다려온 팬들의 오랜 기다림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생의 위기 속에서 그녀는 성공적인 자신의 음악 인생이 자칫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했던 삶이었나를 겸허히

돌아볼 수 있었고 믿음의 회복을 통해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 연단의 시간을 통해 그녀는 삶 속에 계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하심을 체험했고 그 감동은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1979년 CCM계에 2가지 커다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 하나가 CCM 잡지의 탄생이고 또 하나가 초대형 가수 에미그란트의 출현이었다.

기독교 현대음악이라고 불리우는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 공식적으로 하나의 음악 장르로

자리를 잡게 되었던 사건이자 계기가 되었던 Gary Chapman 작곡의 Never Alone이 수록된 에미크란트의 앨범이

 발표되었던 것이다. 그 이전까지 CCM이나 가스펠의 정의가 불명확하던 시절이었다.

배리맥가이어, 밥딜런 등 많은 팝가수들이 Rock에 신앙적 가사를 담아 간헐적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앨범을 담았지만

Amy Grant를 CCM 가수의 탄생으로 인정한다..

그녀는 1960년 조오지아주의 Augusta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곧 내쉬빌로 이주하여 성장하고 교육을

받고 가수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내쉬빌은 현재 2000여개가 넘는 음악 스튜디오가 있는 음악 도시이다. 컨츄리 웨스턴 음악의 본 고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모든 장르의 음악이 연주되고 녹음되며 공연되는 곳이다.

 오늘날에도 가수나 연주인 혹은 뮤지션을 꿈꾸는 많은 연예 지망생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 드는 곳이다.

 

에미도 그런 여느 가수들처럼 길을 밟는다. 10대 때 기타를 처음 치기 시작하고 학교와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

수의 꿈을 키운다.


스튜디오에서 청소하고 녹음 테이프를 정리하고 녹음 지우는 일 등 허드렛 일을 하면서 다른 가수의 노래를 가족에게 들려주기 위해 녹음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A Word Records 회사의 프로듀서의 눈에 띄게 되고 제작자에게

 소개되어 첫 음반을 내게 된다.


이 때 그 녹음한 노래를 제작자에게 전화로 들려 주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Father’s Eye가 수록된 첫번째 앨범 다음으로 발표된 Never Alone이 세간의 주목을 끌면서 이 앨범에 들어있는

 다른 세곡과 함께 플래티넘에 버금가는 힛트를 하면서 알려지게 된다.

에미가 테네시의 내쉬빌에서 자라고 가수 생활을 한 것이 어쩌면 교회음악과 팝음악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슴에서

음악으로 혼합되었는지 모른다.

깊은 신앙과 교회에서의 생활 그리고 학교와 시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정통 아메리칸 팝은 그녀에겐 별개의 음악으로 들리지 않았다.

 

특히 내쉬빌은 컨츄리웨스턴이라는 정통 미국 음악의 뿌리이기도 한 곳이다. 그래서 그녀의 CCM에는 테네시

 음악이라고도 불리우는 부드러움과 애틋함이 담겨져 있다.

바이올린, 기타, 피들 등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담긴 ‘It’s well with my soul’ 곡을 들으면 그녀의 음악적 배경과

삶의 배경을 엿볼 수 있다. (강추 곡임)

1982년 Never Alone의 작곡자 Gary Chapman과 결혼한다. 그리곤 그 해 ‘Age to Age’란 곡으로 Dove 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올해의 CCM앨범의 영예도 얻게 된다.
그 이후 Straight Ahead가 Radio #1과 Dove에서 수상되고 Angles가 첫번째 Grammy상을 안겨 주는 등 5번의

Grammy와 17번의 Dove 상을 받게 된다.


이 외에도 ‘테네시의 상징’(1992), 기독교인상(1994),’미국의 소리’(1996), ‘올해의 내쉬빌 상’(2001)등 왕성한

 활동과 음악으로 수없이 많은 상을 수상한다.

1987년 아들 Matthew Garrison을 낳고 1989년 첫 딸을 얻는다. 그리고 곧 발표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 Baby Baby’란 곡으로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1985년에 발표된 ‘Find Away’는 CCM곡 최초로 빌보드 차트 40에 오르게 되며 1986년 ‘Unguarded’란 곡으로

10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를 기록하며 플래티넘앨범 상도 수상하면서 항간에는 대중음악과 교획음악에 대한

 Cross over 논쟁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교회음악에 대중음악의 리듬과 화성을 차용하는 문제는 꾸준히 비평의 대상이 되지만 복음의 전도라는 긍정적 효과가 더 우세한 평을 얻는 것 같다. 어쨌든 대중음악과 화려한 미국의 팝음악에 익숙하여진 젊은이들에게

 찬송가와 전통 교회음악의 재해석과 변환은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 아닌가 여겨진다.

25년이 넘는 가수 생활동안 16장이 넘는 싱글앨범 아직도 매달 서너 차례의 초청 Concert등 왕성한 활동과 더불어

 CCM을 통한 복음의 전도에 충실하다.

이제는 CCM의 장르도 훨씬 세분화 되었으며 CCM 가수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거나 대중적인 집회 성격의 콘서트를

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실력 있는 가창력으로 CCM 계의 초대형 가수로 불리우는 에미 그란트 (Amy Grant)는 전 세계C

CM의 시작이며 중심에 굳건히 서서 지금도 새로운 CCM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Amy Grant 공식 홈페이지:
www.amygrant.com
최근 공연 예정 : 2004년 8월 4일 아틀란타- 8월6일 뉴욕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 : Bugs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