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v shel shoshamin
Erev shel shoshanim Evening of roses
Nitzeh na el habustan Let's go out to the grove
Mor besamim ulevana Myrrh, spices, and Frankincense
L'raglech miftan.
Are a carpet for your feet
장미가 가득한 저녁에
우리 작은 숲으로 함께 나가보아요.
몰약, 향신료와 乳香으로 가득한
당신을 위한 아름다운 길을 따라서
Erev shel shoshanim Evening of roses
Nitzeh na el habustan Let's go out to the spice garden
Mor besamim ulevana Myrrh, spices, and incense
L'raglech miftan. Are a carpet to walk on.
장미가 가득한 저녁에
우리 작은 숲으로 함께 나가보아요.
몰약, 향신료와 乳香으로 가득한
당신을 위한 아름다운 길을 따라서
Erev shel shoshanim Evening of roses
Nitzeh na el habustan Let's go out to the spice garden
Mor besamim ulevana Myrrh, spices, and incense
L'raglech miftan. Are a carpet to walk on.
장미가 가득한 저녁에
우리 작은 숲으로 함께 나가보아요.
몰약, 향신료와 乳香으로 가득한
당신을 위한 아름다운 길을 따라서
Layla yored le'aht The night comes slowly
Veru'ach shoshan noshvah A breeze of roses blows
Havah elchash lach shir balat Let me whisper a song to you quietly
]Zemer shel ahavah A song of love.
이제 서서히 밤이 다가와
산들바람에 향긋한 장미 향이 풍겨오면
당신에게 조용히 노래불러 주고 싶어요
당신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를
Shachar homa yonah At dawn, a dove is cooing
Roshech ma'ale t'lalim Your hair is filled with dew
Pich el haboqer shoshanah Your lips to the morning are like a rose
Eqtefenu li. I'll pick it for myself.
새벽에 비둘기가 구구하고 짝을 찾아 지저귀면
당신의 머리도 이슬에 촉촉히 젖어있고.
아침이 되어 당신의 입술이 장미꽃처럼 붉게 타오를 때,
저는 당신의 입술에 키스하고 싶답니다.
Layla yored le'aht The night comes slowly
Veru'ach shoshan noshvah A breeze of roses blows
Havah elchash lach shir balat Let me whisper a song to you quietly
Zemer shel ahavah A song of love.
이제 서서히 밤이 다가와
산들바람에 향긋한 장미 향이 풍겨오면
당신에게 조용히 노래불러 주고 싶어요
당신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를
Erev shel shoshanim Evening of roses
Nitzeh na el habustan Let's go out to the grove
Mor besamim ulevana Myrrh, spices, and Frankincense
L'raglech miftan. Are a carpet for your feet
장미가 가득한 저녁에
우리 작은 숲으로 함께 나가보아요.
몰약, 향신료와 乳香으로 가득한
당신을 위한 아름다운 길을 따라서
Nana Mouskouri-Even Now
Even Now
Moon in the sky softly creeping
Over the time from above
And I lie awake hardly sleeping
So lonely for only your love
하늘의 달이 저 위로 시간을 지나
부드럽게 움직이고
나는 깨어있는 채로 누워
당신의 사랑에 그리워 잠들지도 못해요
Even now, each night, I remember
Days of summer when blossoms filled each bough
In the cold, gray days of December
My darling, I miss you even now
지금도 매일밤 나는 기억해요
꽃들이 가지마다 만발했던 그 여름날들을
12월의 차가운 잿빛 나날들 속에서
내사랑, 난 지금도 그대를 그리워해요
When will I see you again?
Come to my arms where you belong
My world will be empty till then
For you are the words to my song
언제 쯤 그대가 있어야 할 내 품속으로
다시 돌아온 그대를 볼 수 있을까요?
그대가 내 노래의 노랫말이기 때문에
내 세상은 그때까지 텅 비어있을거예요
Even now, each night, I remember
Days of summer when blossoms filled each bough
In the cold, gray days of December
My darling, I miss you even now
지금도 매일밤 나는 기억해요
꽃들이 가지마다 만발했던 그 여름날들을
12월의 차가운 잿빛 나날들 속에서
내사랑, 난 지금도 그대를 그리워해요
노래하는 지중해의 요정,푸르른 초원에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연상시키는 음악의 여신 Nana Mouskouri, 본명은 Ioanna Mouskouri (이오안나 무스꾸리)로 1934년 10월 13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생입니다.
흰 장미의 은은한 향기, 검은 테의 안경을 걸친 그녀의 모습이란 그야말로 갈 데 없는 여학생. 청순하고 이지적인
품위를 보이고 있지만 결코 빼어난 미모라고 말하긴 어려운 용모입니다.
그러나 그 독특한 마스크와 가냘픈 몸매와 그것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가 목소리와 조화될 때, 아무도 그녀를
가리켜 결코 평범한 여가수라고 부를 수 없게 됩니다.
나나 무스꾸리.
마치 푸르른 초원에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을 연상시킬 만큼 신선하다. 그녀의 그 이미지와, 그리고 우리들과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친숙해 온 '하얀 손수건' '여름의 마지막 장미' '아테네의 흰 장미'를 들으면서 그녀가 어느새 83세나 되었다고 생각하는 팬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나나 무스꾸리의 이미지는 소박하고 청순해서 세속과는 저멀리 떨어진 존재처럼 느껴지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나 무스쿠리와 같은 가수는 목소리의 아름다운 추억만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좋을 뿐,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 아로새긴 현실의 모습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그녀는 분명히 금세기 최고의 가수 중의 한 사람입니다.
나나 무스꾸리는 그리스 아테네의 어느 작은 영화관에 근무하던 영사기사의 딸로 1934년 10월 13일에 태어났다.
집안 형편은 넉넉치 못했지만, 조촐하고 평화로운 살림이었고 의좋은 가족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음악 듣는 것을 가장 좋아했죠. 당시 나의 아버지는 영사 기사였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관 뒤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 영화관의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영상은 그녀를 환상의 세계로 인도 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뮤지칼 영화에 나오는 노래들이 가장 좋았했고 집으로 들아와 본 영화의 주인공을 흥내내면서 마음껏 소리를
높여서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외곤 했다고하네요.
어린 마음에도 그녀는 기어이 노래로 성공해 보겠다는 의지를 품었었던 것 같습니다.
나나 무스꾸리는 처음에는 오페라 가수를 지망하여 성악도로서의 재질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음악원의 졸업 시험을 눈앞에 둔 어느날, 그녀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음악에 넋을 잃고
끌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새로운 음악세계를 접했을 때를 후일 나나 무스꾸리는'갑자기 밝은 햇빛이 비친 듯 나의 음악 세계가 눈부시게 밝아진 느낌이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뮤지컬을 때려치우고 본격적으로 재즈라는 음악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15세 되던 해, 매일같이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주신 라디오로 아테네 방송의 재즈 프로를 듣는
것이 나의 첫 일과였습니다.
때문에 음악원의 공부시간에는 몰려드는 잠을 쫓느라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죠. 그러나 그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부분의 노래들을 노트에 적어가면서 노래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그녀는 정말 학교 공부는 젖혀 놓고 재즈에 미쳐 있었습니다.
빌리 홀리데이 듀크 엘링턴의 재즈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죠니 미첼 ·죤 바이에즈의 포크송도 무척 즐겼고, 자크 브렐이나 조르지 브라상, 레오 페레 같은 샹송 가수들은
그녀의 우상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나나 무스꾸리의 남달리 적극적이고 민감한 예술적 감각은 그녀를 아테네 음악원의 이단아로 만들고, 졸업을
불과 몇 달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상황을 낳게 합니다.
학생의 신분으로 대중가수에 뜻을 두고, 아테네 라디오방송국에서 소편성의 밴드가 반주하는 유행가를 노래한 사실이 물의를 일으켜 규율이 엄격한 음악원 측에서는 그녀의 졸업시험 응시자격을 박탈한 것입니다.
흔히 '오페라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마리아 칼라스도 아테네 음악원에서 로시니의 오페라로 널리 알려진 스페인의
명가수히달고에게 사사한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나 무스꾸리의 퇴학은 어쩌면 마리아 칼라스를 이을 인재를 잃은 반면, 유로 팝스의 역사상 불후의 위대한 스타를 탄생시킨 전화위복의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수년간 나나 무스꾸리에겐 기약 없는 무명의 나이트 클럽 가수 시대가 계속됩니다. 이 고달프고 기나긴
슬럼프에서 그녀를 구해낸 사람이, 그녀의 평생의 은인이며 친구가 된 위대한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였습니다.
마노스 하지다키스는 영화 '페드라' '희랍인 조르바'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더불어 현대 그리스 음악계의
최대의 거인으로 손꼽히는 작곡가로, 1960년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 Never on Sunday'의 음악으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최초의 외국인이었다.
1959년, 마노스 하지다키스는 아테네의 한 작은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부르고 있는 이 가냘픈 몸매의 무명가수
나나 무스꾸리를 발견하고 그녀의 대성할 자질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마노스하지다키스 같은 대작곡가의 작품으로 그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나 무스꾸리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가수였습니다.
그녀는 1960년 9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지중해 가요제'에 그리스 대표로 출전하여 우승의 그랑프리를
획득, 새로운 스타로 탄생하여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녀가 부른 곡이 마노스 하지다키스 작곡의 '아테네의 흰 장미'였고 그녀의 인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입니다.
나나 무스꾸리를 놓고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는데 프랑스 '필립스 레코드'의 디렉터 루이 아장입니다. 그는 나나 무스쿠리의 매력을 발굴하여 대스타로 만드는 데 공헌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를 루이 아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공개 이후, 영화에서 부둣가 창부 역의 멜리나 메르쿠리가 흥얼거린 주제가의 인기는
파리를 뒤흔들 만큼 굉장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이 곡을 따라 불렀고, 독특한 울림을 전해 주는 그리스의 민속악기 부주키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에서 전해 오는 음악 중에는 보다 색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의 레코드사에 연락해서 그곳 가수들의 샘플 레코드를 부탁해 직접 찾아내기로 결심했다.
며칠 뒤 산더미 같은 레코드가 그리스에서 도착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듣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많은 시간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게다가 멜로디가 꽤 아름다운 곡이 몇 곡인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단조롭기 그지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지루해졌다.
그 순간이었다.
전에 전혀 들어 보지 못했던 새릅고 신선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넋을 잃고 어느새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 도취되었다.
얼마나 맑고 투명한 목소리인가!
누구의 노래일까? 그리스 어를 약간 아는 내 처 오딜이 레코드를 듣고 가수의 이름을 읽었다.
나나 무스꾸리~~
그러나 그녀는 우리들에게 전혀 미지의 인물이었다. 우리는 곧 바캉스를 취소하고 때마침 열리고 있는 에레니크
가요제에 참석하기 위해 아테네로 향했다.
나를 사로잡았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미 무대에 나타나기를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렸던지 지금도 나는 그때 일을
잊지 못한다.
아름답고 자신에 찬 미녀가수들이 무대에 나타날 때마다 나나 무스꾸리가 아닌가 하며 가슴을 두근거렸으나,
번번이 나의 기대는 어긋났고 그럴수록 초조감은 더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검은 드레스로 몸을 감싼 한 젊은 여성이 등장했다.
화장기 없는 깨끗한 얼굴에 코 위에는 안경을 걸친 그녀는 겨우 40킬로그램을 넘을 듯한 가냘픈 몸매를 한 볼품없는
여성이었다. 설마 저 촌스런 아가씨가 나나 무스꾸리는 아닐 테지~
그러나 그녀가 수줍은 듯한 몸가짐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드디어 만났던 것이다.
나나 무스꾸리는 이때부터 유럽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프랑스와 영국 ·독일로 연주여행을 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6l년 아테네에서 나나 무스꾸리를 만난 해리 벨라폰테는 3년후인 1964년 그녀를 미국에 초청했습니다.
넓은 미국 무대에의 데뷔는 나나 무스쿠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꿈이었지만, 인종 분규가 절정에 이르렀던 미국사회의 분위기는 흑인 가수와 함께 무대에 서는 백인 여성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백인들의 숱한 협박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흑인 가수 해리 벨라폰테와 공연한 유일한 백인 여성으로,
카네기 홀을 비릇한 미국 각지의 대학 캠퍼스와 극장에서 연주회를 가져 대단한 환영과 절찬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미국을 정복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나나 무스꾸리는 계속해서 그 소녀와도 같은 가련함, 그러면서도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닌 풍모와 섬세한
목소리를 과시하면서 숱한 히트송들을 발표해 왔습니다.
디 로즈 Die Rose' '나부코 Nabuco' 등 FM 방송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그녀의 노래들은 모두
그 목소리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잊을 수 없는 주옥과 같은 히트 송들인 것입니다.
더구나 그녀는 다른 연예세계의 스타들처럼 화려한 스캔들과 이혼 경력이 전혀 없는 정숙한 현모양처로써 격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나의 여자로서 그리고 가수로서의 행복을 한몸에 모으고 있는 그녀는 '아테니안스 Athenians'의
리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남편 조르지 페실라스와의 사이에 세 딸을 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450여 장의 앨범을 발매, 350여 장을 골드앨범 또는 플래티넘 앨범에 등극시킨 나나 무스꾸리는 팝 역사상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성가수로 기록(3억장이 넘는 경이적인 기록)되고 있습니다.
특히 그녀의 음악은 영화, 드라마의 러브 테마곡으로 사용되어 국내에서 수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것입니다,
1994~1999년까지는 유럽의회의 의원으로도 활동했고, 사전에도 나와있듯 쿠데타로 집권한 그리스 군사독재정권을 비판하여 추방되는 박해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1997년에는 가수 40년 기념 공연을 가졌으며, 2005년에서 2008년 사이에는 전 세계 곳곳을 순회하면서 인생
마지막 공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여 두번씩이나 한국을 방문하여 공연을 한바 있습니다.
Nana Mouskouri(나나 무스꾸리)는 단아한 품위와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가수로 1935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태어나 오페라 가수의 꿈을 키우며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대한 남다른 재능을 보인 Nana Mouskouri는
명문인 아테네 음악 학교에입학해 성악을 전공하게 된다.
그러나 음악 학교의 졸업 시험을 앞두고 우연히접하게 된 재즈 음악에 매료된 후 Nana Mouskouri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맞게 되었다.
그리고 Nana Mouskouri는 Billie Holiday(빌리 할리데이)와Duke Ellington(듀크 엘링턴) 같은 재즈 뮤지션의
음악뿐아니라 포크와샹송 등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다양한 팝 음악을 섭렵하며 제 2의Maria Callas(마리아 칼라스)가 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음악원을 졸업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되었지만 Nana Mouskouri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가수로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번안 가요로 잘 알려진Me T'Aspro Mou Mantili(하얀 손수건의 원곡)와 20세기 그리스 음악사에서최고의 위대한 세계적인 작곡가 Manos Hadjidakis(마노스 하지다키스)의 작품인
White Rose of Athens(아테네의 흰 장미)가 1960년 당시로는 경이로운 판매고인12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를
올리면서 Nana Mouskouri는 일류가수의 반열에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Nana Mouskouri의인기는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영화 Never on Sunday의
주제가를부르며 Nana Mouskouri는 더욱 견고한 명성을 쌓게 되었다.
Nana Mouskouri의 본격적인 성공은 미국 대중음악의거목인 Harry Belafonte(헤리 벨라폰테)가 그녀를 정식으로
미국에 초청하면서 이루어졌다.
미국인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펼친Nana Mouskouri와 Harry Belafonte의 1964년 카네기 홀 실황은 성황을
이루었고 유럽에 이어 미국 시장에서도 Nana Mouskouri의 인기를 이어나가게 한디딤돌이 되었다.
공연장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미공연을 펼치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Nana Mouskouri는 40년이 넘는 활동 기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전 세계에 걸친그녀의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리고 은퇴기념 마지막 세계투어 공연의 일환으로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한하여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공연을 가졌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는 나나 무스쿠리에 대해 '현존하는 세계의 어느 소프라노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음성"이라고 찬탄했습니다.
최고 수준의 정통 성악가들도 그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지만 특유의 투명한 목소리는 세미클래식이나 스탠더드 팝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타레가의 선율을 허밍으로 부르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은 오케스트라와 어울려
블록버스터 영화를 '듣는 듯'합니다.
호아킨 로드리고의 연주로 유명한 '사랑의 아랑훼즈(Aranjuez, Mon Amour)'는 언 땅에 눈물 스미는 듯 애잔한 보컬이 일품입니다. '용서하고 잊어라(Forgive and Forget)'도 특별합니다.
푸치니의 나비부인 중 '허밍 코러스'를 번안해 부르는데 한 줄기 청량한 기운이 사지백해로 퍼져나가며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영국 그룹 무디 블루스의 록 오페라가 원곡인 '하얀 빌로드 같은 밤(Nights in White Satin)', 제니퍼 러시와 셀린 디온이 불러 히트한 노래를 리메이크한 '사랑의 위대한 힘(The Power of Love)'도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소화하여
온유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독일어 앨범 <<웃고 울었다(Ich Hab Gelacht Ich Hab Geweint)>>에는 나나 무스쿠리 보컬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노래들이 선곡돼 있습니다. '섬(Meine Insel)', '점점 더(Mehr und Mehr)', '아테네의 흰 장미(Weisse Rosen aus Athen)', '일곱 송이 검은 장미(Sieben Schwarze Rosen)', '빛으로 가득 찬 세상(Die Welt ist voll Licht)', 'Wenn Ich träum(영화 '쉬리' 주제가인 When I Dream의 독일어 버전)' 등
주옥같은 발라드가 가득합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하수구를 흐르는 거친 물소리'라고 폄하받기도 하는 독일어가 '천상의 언어'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생명력을 갖춘 언어로 탈바꿈합니다.
나나 무스쿠리 노래의 본령은 기품 있는 투명한 목소리와 가슴에 스며드는 짙은 호소력입니다. 차제에 음악을 비롯한
예술의 효능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예술은 휴식과 감동을 주고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때로 메시지의 전달과 성찰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나나 무스쿠리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위무(慰撫)하고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여 높은 곳으로 인도합니다. 대저 '영혼의 구원'이야말로 뭇 예술이 구현하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이자 궁극적인 테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김창식 / 자유칼럼그룹
나나무스쿠리 공식사이트: http://www.nanamouskouri-50.com/
그리스 태생인 나나 무스꾸리는 어릴적 부터 음악 공부를 해왔고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습니다. 검은 뿔테 안경과
긴 생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녀는 아테네의 음학원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을 때 포크, 재즈, 록큰롤 등 그당시
유행하던 음악에 심취하였고 친구 권유로 시내 카페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음학원 규정에는 사사로히 업소에서 클라식이 아닌 음악을 부르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었는데 담당교수가 이를 어겼다하여 졸업시험을 치루지 못하게 하여 졸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역전의 찬스는 바로 나나무스꾸리가 매우 곤경에 빠져 있을 때 나타납니다.
나나무스꾸리가 노래를 부르던 카페에서 차를 마시러 들르던 유명한 그리스 작곡가가 그녀를 눈여겨 보왔는데
이런 소식을 들었는지 그녀에게 곡을 주고 음반을 취입하게 도와줍니다.
이 때부터 나나무스꾸리 인생은 탄탄대로를 달리게 됩니다. 유럽 송테스트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받고, 그녀는
1960년 독일에서 "하얀 손수건"등 싱글을 발표하고 12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64년 세계적인
대스타 해리 벨라폰테의 초청으로 미국 카네기 홀에서 첫 공연을 가진 그녀는 그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죠.
80년대에 들어서도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오면서 "배트 미들러" "케니 로저스" 곡을 나름대로 리메이크 하여
오히려 원곡 보다 더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청순한 이미지로 많은 팬들이 생기고 포크, 가스펠, 샹송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여가수 입니다.
그동안 그녀가 발표한 노래는 약 1,500곡, 발매된 음반만 약 450장, 판매된 음반은 3억장에 넘는다 한다.
그중 골드앨범(판매 50만장 이상)과 플래티늄앨범(100만장 이상 판매)도 3백여장 이였다 한다. 그녀는 모든 장르의 곡들을 다 소화해 낸 매우 특별한 가수였고, 그리스 출생이지만, 영어 뿐만 아니라,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어, 독일어, 라틴어, 포르투갈어로도 음반을 취입하기도 했고, 프랑스에서는 역대 최대 앨범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다.
그녀의 곡 중 "하얀 손수건 (Me T'aspro Mou Mantili)를 국내에서 "트윈폴리오 (송창식, 윤형주)가 이 곡을 번안해 불러 70년 당시 크게 인기를 끌었고 "사랑의기쁨(Plaisir D'amour)"이란 노래도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곡, "아테네의 흰장미", "지중해의 요정" 또는 "20세기 뮤즈" 라는 최상의 수식어가 붙는 그녀의 노래는 70~80년대 암울한 시절, 국내 팝 애호가에 오아시스와 같았다.
"나나 무스쿠리"는 2008년에 50년의 음악인생을 마무리하였고, 전 세계를 돌며 은퇴 공연을 하던 그녀는 국내에서도 고별 무대를 펼쳐,공연수익금에서 1만달러를 원유 유출 사고를 당한 태안주민들에게 기부, 그후 유럽 국회의원
(1994-1999)과 유니세프(UNCEF) 친선대사로 활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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