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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Sinead O'Connor -Sacrifice ,Nothing Compares 2 U

 


Sinead O'Connor -Sacrifice

 

 

 

Sacrifice

 

 

 

 

It's a human sign
그것은 인간적인 것
When things go wrong
일이 잘 안 풀리거나

 

When the scent of her lingers
그녀의 향기가 아직 남아 있고
And temptation's strong
그 유혹이 강할 때

 

 

Into the boundary Of each married man
결혼한 남자의 주위로
Sweet deceit comes calling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와

 

And negativity lands
부정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죠

 Cold cold heart Hard done by you
그대는 냉혹한 가슴으로 나를 강타했어요

 

Some things look better baby Just passing through
그냥 지나치는 것이 더 나을 적도 있지요

 And it's no sacrifice
그것은 희생이 아니에요

 

Just a simple word
하나의 단순한 단어에 불과할 뿐
It's two hearts living In two separate worlds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산다는 것 뿐이죠

 

 

 and it's no sacrifice

그것은 희생이 아니에요
no sacrifice
no sacrifice at all

 

 

 

Mutual misunderstanding After the fact
진실 후의 서로에 대한 오해
Sensitivity builds a prison In the final act
끝날 무렵 신경은 예민해지고

 

 

We lose direction
우리는 방향을 잃었어요
No stone unturned
뒤엉킨 우리의 삶

 

No tears to damn you, When jealousy burns
질투심이 극에 달하면..

당신을 원망하면서 눈물을 흘릴 필요도 없는거죠

 

 

Cold cold heart Hard done by you
그대는 냉혹한 가슴으로 나를 강타했어요
Some things look better baby Just passing through
그냥 지나치는 것이 더 나을 적도 있지요

 


 And it's no sacrifice
그것은 희생이 아니에요
Just a simple word
하나의 단순한 단어에 불과할 뿐

 

It's two hearts living In two separate worlds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산다는 것 뿐이죠

 and it's no sacrifice

그것은 희생이 아니에요

 

no sacrifice
no sacrifice at all

 

I gave my heart
I gave my heart

 

 

 

 

 

 

 

 

 

 

 

Nothing Compares 2 U

 

 

 

 

It's been seven hours and fifteen days
Since you took your love away

당신이 당신의 사랑을 멀리 가져가버린지도
15일 하고도 7시간이 지났어요.



I go out every night
and sleep all day
Since you took your love away

저는 매일 밤 밖으로 돌아다니며
낮엔 하루 종일 잠만 잔답니다.
당신이 당신의 사랑을 멀리 가져가 버린후로부터는.

Since you been gone I can do whatever I want
I can see whomever I choose

당신이 떠난뒤, 저는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든 원하는 대로 만날 수 있어요.

I can eat my dinner in a fancy restaurant
But nothing I said nothing can take away these blues

저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무 것도, 그 어떠한 것도 이 우울함을 가져갈 수 없어요.

Cause nothing compares
Nothing compares to you

당신에 비교할 만한것은
그 어떠한 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It's been so lonely without you here
Like a bird without a song

 

당신이 제 곁에 없으니 너무 외로와요.
마치 노래하지 않는 새처럼.


Nothing can stop these lonely tears from falling
Tell me baby where did I go wrong

흘러 내리는 이 외로움의 눈물을 그치게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네요.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I could put my arms around every boy I see
But they'd only remind me of you

제가 만나는 남자들마다 어깨에 팔을 두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오직 당신만이 떠오릅니다.

I went to the doctor guess what he told me

guess what he told me
He said girl u better have fun no matter what you do
but he's a fool

의사한테 갔더니,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무슨일을 하든지 즐겁게 살라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그는 바보예요.

Cause nothing compares
Nothing compares to you

당신에 비교할 만한것은
그 어떠한 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All the flowers that you planted mama In the back yard
All died when you went away

 

당신이 뒤뜰에 심어 놓은 모든 꽃들은
당신이 떠난후 모두 죽어 버렸어요.


I know that living with you baby was sometimes hard
But I'm willing to give it another try

당신과 함께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기꺼이 다시 시도해 볼 준비가 되어있어요.

nothing compares
Nothing compares to you

당신에 비교할 만한것은
그 어떠한 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nothing compares
Nothing compares to you

당신에 비교할 만한것은
그 어떠한 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nothing compares
Nothing compares to you

당신에 비교할 만한것은
그 어떠한 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Sinead O'Connor (시네이드 오크너)는 1966년 아일랜드의 Dublin 에서 출생한 독특한 음색을 소유한

싱어 송라이터로, 아일랜드 여가수 가운데 아마도 에냐(Enya) 다음으로 사랑받는 사람일 것이다.

 

1987년 첫 앨범 The Lion and the Cobra, 그리고1990년 발표한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가

 음반순위 1위에 오르며 오코너는 유명해졌고, 그 안에 실린 "Nothing Compares 2 U"가 인기를 얻으면서 세계적인

가수가 되어버린 그녀이다.

 

어렸을 적 부모의 이혼, 그로 부터 받는 아동 학대, 학교에서 퇴학, 소년원등을 거치면서 불우하게 보낸 그녀의 청소년기. 그래서일까 그녀는 대담하고 솔직한 태도, 삭발한 머리에 반항적인 이미지, 독특한 분장과 의상의 주인공인 그녀는 한 때 레스비안에 연루되기도 했고, 33살 때 자살을 기도했던 때도 있을 만큼 그녀의 젊은 시절은 얼룩으로 점철돼 있다.

 

 Sinead O'Connor는 90년대 뮤직 스타 중에서 특징적이고 가장 많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가수이다. 트레이드마크

처럼 늘 아주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그녀의 청아한 모습에서 웬지 서글픔이 배어난다

 

오코너는 5딸 중에 셋째인데 그가 8살 되던해 부모가 이혼을 하는 바람에 위로부터 세 딸은 엄마를 쫓아가 살았지만

가진 학대를 받다가 아버지 밑으로 돌아가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엄마는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그녀는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다.

 

밥딜런 30주년 기념 콘서트에 초대된 시네이드는 야유하는 관중들 때문에 노래를 할 수가 없었다. Saturday Night

 Show에서 시네이드는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보수 종교계를 비난하고 진정한 적과 싸우자며 교황의 사진을 찢고

 걸프전을 일으킨 부시를 비난하는 행위들을 했었고 미국인들이 이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부를 때 그녀는 가사의 일부를 바꿔 천주교의 인종학대(Sexual abuse)에 항의를 시도했으며 가사 중

 racism을 child abuse(아동학대)로 바꿔 불렀다. 당시의 언론에서 논란이 되었던 장면을 아래 화면에서 볼 수 있다.

 

그녀의 곡으로는 "The Emperor's New Clothes", "I Am Stretched on Your Grave", "Jump in the River",

1990년에 에이즈퇴치 기금 모급운동에서 불렀던 "You Do Something to Me"와 1992년엔 "Come Talk To Me",

 

"Blood of Eden"가 있으며,1993에 영화 "In the Name of the Father"에서 "You Made Me the Thief of Your

Heart"를 불렀으며, "If You Had a Vineyard" "I Don't Know How to Love Him"와, 최근에 그녀가 쓴 영화음악 "Back Where You Belong", "A New Born Child"가 있다.

 

 

 

 

 

 

 

 

 


 

아일랜드의 반항아, Sinead O'connor


1995년 7월 16일 아일랜드의 전직(!) 대머리 여가수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가 임신을 이유로

 <롤라팔루자(Lollapalooza)> 라인업에서 빠지게 되었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가수중의 하나인 시네이드 오코너는 1990년대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한 아티스트 중의 하나로

 꼽힌다.

여기에는 방송에서 교황의 사진을 찢어 물의를 빚는 등 뉴스 메이커로서의 존재도 큰 구실을 했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기르고 나타나긴 했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머리를 박박 민 '대머리 여가수'로 인상지워졌다.

 

 강한 인상 만큼이나 그녀의 언행은 거칠 것이 없어서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미디어의 관심을 끌었다.
1966년 12월 8일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난 시네이드 오코너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8살때 부모의 이혼을 겪기도 했는데 그녀는 후에 1985년 교통사고로 숨진 어머니가 자신을 종종 때리곤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톨릭 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보호소로 끌려가기도 했던 그녀는 열다섯 살 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Evergreen'을 부르는 모습이 아일랜드 밴드 인 투아 누아(In Tua Nua)의 드러머 폴 번

(Paul Byrne)의 눈에 띄었고 그들의 싱글 'Take My Hand'를 공동 작곡한 후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지역 커피 숍에서 노래를 부르는 한 편 더블린 음대(Dublin College of Music)에서 보컬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85년 <인사인 레코드(Ensign Records)>와 계약을 맺은 그는 런던으로 건너갔고 이듬해 영화 'The Captive'의

사운드트랙에 U2의 기타리스트 에지(The edge)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데뷔 앨범 수록곡이 지나치게 켈틱 사운드를 담아내고 있는 것을 느낀 그녀는 직접 프로듀싱에 나서 앨범을 다시

 녹음했고 이 결과 시편 91편에 근거를 두고 [The Lion and the Cobra]를 1987년 내놓게 된다.

비평가들의 좋은반응을 얻은 이 앨범에서는 'Mandinka'와 'Troy' 등의 싱글이 라디오를 통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음악 활동 이외에 그녀는 항상 트러블 메이커로서 인식되었는데 아일랜드 공화군의 활동을 지지해 주위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던 U2의 음악을 비난해 그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든다.

1990년 후속 앨범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에서는 지금은 이혼했지만 드러머 존 레이놀즈

(John Reynolds)와의 결혼에 따른 행복감을 노래한 듯한 'Nothing Compares 2 U'(프린스 원곡)이 터져나오며

그녀를 빅 스타로 만들어주었지만 그룹 블랙(Black)의 보컬 휴 해리스(Hugh Harris)과의 염문설을 타블로이드

지들이 터뜨리며 다시 비난을 받게 되었다.

 

 또한 미국 공연시 미국 국가가 자신의 공연 전에 연주되면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발언해 미국인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또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그래미 수상자 지명을 스스로 거절해 또 한번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1992년의 3집 "Am I Not Your Girl?"은 러브 발라드 등으로 채워졌지만 전작에 비해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NBC의

 'Saturday Night Live'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다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어버리는 해프닝을 벌였고

(물론 후일 사과하기는 했지만), 그로부터 두 주 후에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밥 딜런 공연에서 무대에

올랐다가 야유를 받고 곧 무대를 떠나야 했다.

 

그 후 시네이드 오코너의 반항녀적 기질은 다소 사그러든 듯이 보이는데 햄릿의 오필리아 역을 맡기도 했고 월드 뮤직

 아티스트로 변신한 피터 가브리엘의 'WOMAD'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도 했다.

돌출 행동으로 인한 스캔들 메이커로서는 잠잠했지만 한 때 신경쇠약에 빠지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다시 팝 음악계로 돌아와 [Univeral Mother]를 발매했고 1997년 EP [The Gospel Oak]를, 그리고

 2000년 중반 6년만의 스튜디오 앨범 [Faith and Courage]를 내놓으며 꾸준히 활동중이다.


박박 민 머리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시네이드 오코너는 1990년대 가장 두드러진 여가수 중의 하나였다.

1990년에발표한 2집 앨범 [I Do Not Want I Haven`t Got]의 수록곡 'Nothing Compares 2 U'가 5주간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그녀는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듬해인 1991년 [브릿 어워즈]와 [그래미]에서는 오코너를 '최우수 외국 여성 아티스트', '최우수 얼터너티브 음악

공연' 부문의 수상자로 선정했다.

 또 [롤링 스톤] 등 여러 음악지에서도 시네이드의 앨범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을 최고의 앨범으로

꼽았다.

시네이드 오코너는 또한 할말은 하는 가수였다. 1990년 5월 미국 방송 [Saturday Night Live]의 출연 섭외를 받은

오코너는 그 쇼의 진행자 중 한 명이 코미디를 가장해 소수 민족과 여성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이유로 출연을 뿌리쳤다.

 그리고 3달 뒤 8월 24일 그녀는 미국 뉴저지주의 가든주립예술회관에서의 공연에 앞서 미국국가 연주를 단호히

거부했다.

 

'미국적 애국심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1991년 2월 그래미 4개 부문의 후보로 지명됐지만 시네드 오코너는

 [그래미]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은 물론 수상도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는 열 일곱 살 때 레코드 계약을 맺었다.

 

그 때부터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데 이러한 시간이 걸렸다.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다.”라며 결코 우발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또한 음악산업에 대한 불신도 명확히 밝혔다.

 

그뿐 아니라 1992년 10월 3일에는 [NBC] TV의 쇼 프로그램 [Saturday Night Live]에 출연해 “진짜 적과 싸우자”

라는 외침과 함께 준비해간 교황의 사진을 찢어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의식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발언들만 있었더라면 가수로서 시네이드 오코너의 명성은 지금껏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로도 그녀의 음악적 탐험은 계속됐다. 1994년 다시 팝 음악계로 돌아와 [Univeral Mother]를 발매했고 1997년

 EP [The Gospel Oak]를, 그리고 2000년 중반 6년만의 스튜디오 앨범 [Faith And Courage]를 내놓으면서 팝,

 록, 일렉트로닉, 포크, 힙 합, 레게로 점점 사운드 폭을 확장해갔으며 결국엔 자신의 고향 아일랜드의 민속음악으로

귀착했다. 그러나 얼마 전 또 다시 은퇴선언을 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다.

 

 



페미니즘을 부르짖은, 혹은 반항적 이미지를 내건 아티스트


시네이드 오코너는 실은 가수로 분한 반항아였다. 마이크를 쥐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창을 쥔 잔다르크의 모습이

더 어울리는 그녀는 남근과 가부장이 지배하고 있는 총체적인 시스템을 향해 줄기차게 예리한 창끝을 겨냥해 왔다.

 그녀는 여성, 나아가 소수민족들을 타깃으로 행해지는 억압과 탄압의 기제들에 투쟁하며 꿋꿋이 항거하며 자신의

(像)을 조각해온 아티스트이다.

 

그녀의 혈관에는 '페미니즘 전사와 체제 비순응자'의 피가 흐른다.

사회 소수자인 레즈비언이자 오랜 억압의 역사를 간직한 아일랜드 태생인 그녀가 제도권의 논리와 문법에 동화되지

못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녀는 [브릿 어워즈]의 최고여가수상을 받기를 일언지하에 거부했으며 TV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교황의 사진을 찢는 등 이슈거리들을 계속해서 제공했다.

 

 일부에서는 '대가 센 여자'라는 식의 험담을 늘어놓았지만 그녀는 굽히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녀의

 디스코그래피들이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의 말과는 상관없이 그녀가 음악 필드에 '여성의 목소리'를 되찾아 주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순간에도 그녀의 '나쁜 피'는 여성의 해방과 권익쟁취를 위해 박동하고 있다.

틀림없이 그녀는 토리 에이모스와 더불어 '여성 록의 진정한 모범사례'로 후대에 회자될 것이다.


1967년 12월 8일(이 자료는 음반사의 공식 자료로 어떤 자료에는 1966년 12월 12월 생이라고도 되어 있다) 아버지

존과 어머니 마리 사이의 4남매중 셋째로 출생한 시네이드 오코너는 부모의 불화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결국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된다.

 

가정환경 탓에 비행소녀가 되어버린 그녀는 절도를 하다가 붙잡혀 가톨릭계의 비행 청소년 선도 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이를 계기로 음악적으로 성숙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이 학교에 다니고 있던 열 다섯 살 때 우연한 계기로 선생님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게 된 그녀는 신부의 동생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그룹 인 투아 누아(In Tua Nua)의 드러머의 눈에 띄게 되어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엔자> 레코드의 사장 눈에 띄어 런던으로 진출한 그녀는 이 회사에서 회계일을 보던 중 1987년 자신의 데뷔 앨범

 Lion & cobra를 내놓게 된다. 1988년에 빌보드 앨범 차트 36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리게 된 이 작품 이후 그녀는

자신의 최대 히트작이 된 I do not know what I haven't got을 1990년 내놓게 된다.

 

이 앨범에 수록된 Nothing compares 2 u(프린스 원곡)는 4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고 앨범도 6주간

1위에 머무는 기록을 세웠다.

위의 노래로 그녀는 33회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레코드’, ‘최우수 팝 보컬리스트’ 등 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제 3세계 보컬’부문의 수상자로 결정되었지만 이를 상업주의라고 비난하고 수상을 거부해 파문을 일으켰다.

1992년 3집 Am I not your girl을 빌보드 앨범 차트 27위에 올린 그녀는 그 해 교황의 사진을 찢는 물의를 일으켜

교계로 부터 비난을 받는다.

한 때 자살 기도를 하는 등 시련을 겪은 그녀는 1993년엔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주연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The Father)>의 사운드트랙에 엔딩 트랙 You made me the thief of your heart를 삽입했고 영국 BBC 방송이 제작한 영화 의 음악도 녹음을 한다.

 

다시 1994년 4집 앨범 Universal mother로 완벽하게 재기한그녀는 1997년 여섯곡의 신곡이 담긴 EP 앨범

 Gospel oak로 보다 성숙한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SINEAD O'CONNOR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항, 아름다워 보이기가 싫어 머리를 밀어 버렸다는 그녀의 말처럼?

여성인권과 소외받는 민족,인종,전쟁,종교 등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했으며 논란이 되는 행동과 발언을 서슴치 않은것으로 유명하죠(92년 SNL 쇼에서 교황 요한비오로2세사진을 찢는..)

비록 한 여자로써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해도
시네이드 오코너의 노래와 그녀의 삶을 돌아보면 왠지모를 파워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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