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ung Wha Chung plays Mendelssohn violin concerto
멘델스존이 마단조 협주곡의 작곡에 착수한 것은 1838년(29세)의 일이지만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844년
(35세) 9월이었다.
속필가인 그로서는 이례적으로 장시일이 걸렸는데 그렇게 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착수하기 전 해에 세실 살로테 소피 장 르노와 결혼해서 행복하고 다망한 신혼생활에 쫒기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라이프찌히 음악원의 창설을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고, 버밍검 음악제와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의 지휘자로서
연주활동에도 몸을 쪼개야 했던 것 등, 차분히 일에 몰두할 수 없었다는 것이 외부적인 주요 이유였다.
그리하여 이 곡은 이듬해 페르디난드 다비드의 바이올린 독주로 라치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초연 당시 멘델스존은 건강의 악화로 부지휘자인 닐스 가데에게 지휘를 맡겼다.
다비드와 멘델스존은 어렸을 적 친구로, 같은 오케스트라의 악장과 지휘자 사이였고 서로 오랫동안 교우를 지속했다.
이 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도 다비드로부터 많은 조언을 충실하게 듣고 신중하게 작곡해 나갔다.
따라서 이 협주곡이 다비드에게 헌정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멘델스존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독일 낭만파 음악이 낳은
협주곡으로서는 기념비적인 의의를 가지는 작품이다.
부드러운 낭만적 정서와 균형 잡힌 형식미는 멘델스존의 모든 작품에 공통된 특징이지만 이 두개의 측면이 이 곡에서
처럼 잘 조화된 작품은 이 곡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고 할 만큼 멘델스존이 우리에게 남긴 최대의 유산이다.
영국의 스텐실 베네트는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을 비교하면서 <아담과 이브>
라고 평했다.
이 평을 전면적으로 긍정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화려함이나 섬세함, 그리고 유려함에 있어서 베토벤의
것보다 훨씬 여성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곡은 고전적 형식에 의해 씌여졌지만, 전체적으로 로맨틱하고 도처에 새로운 시도가 엿보인다.
예컨데 전 3악장이 중단 없이 연속해서 연주되는 것이나, 제1악장의 서두부터 독주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한
것이나,스스로 카덴차를 써서 로맨틱한 정서가 중단되는 것을 막고 있다던가, 제1악장의 독주 카덴차가 재현부 다음에
연주되는 관례를 무시하고 발전부 다음에 온다는 점 등은 당시로서는 다 대담한 수법이었던 것이다.
바이올린 협주곡 중 최고의 금자탑으로 손꼽히는 이 곡은 아름다운 가락과 정열에 넘친 풍부한 색채감이 전곡에 넘쳐,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는 바이올린 협주곡 중의 하나이다.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멘델스존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기품 있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는다고 하는 베토벤, 멘델스존,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네 작품 가운데 다른 작품은 D단조
인데멘델스존의 것은 유일하게 E단조를 취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더해5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하기도 한다. 브루흐의 작품은
G단조이다.)
흔히 멘델스존의 곡을 바이올린 협주곡의 여왕이라 부르고, 베토벤의 곡을 왕이라 부른다.
여왕이라는 표현이 썩 잘 어울리는 것은 이 작품에 가득 차 있는 낭만성과 귀에 잘 들어오는 부드러운 멜로디 때문이
아닐까?
멘델스존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1838년(29세)인데, 마친 것은 6년 후인 1844년
(35세)이었다.
빨리 작곡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이토록 오래 걸린 데는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신혼생활에 빠져 있었다는 것, 라이프치히 음악원 설립을 위해동분서주해야 했던 것, 버밍엄 음악제와 베를린
예술아카데미 지휘자로서연주활동을 한 것 등 차분히 일에 몰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멘델스존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게 된 데에는 독일 바이올린 학파의거장이자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오케스트라
악장을 역임한 페르디난트 다비트(Ferdinand David, 1810-1873)의 영향이 컸다.
그는 멘델스존에게 바이올린 협주곡을 써보도록 권했을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기교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또한 곡이 완성된 이듬해1845년 3월 1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할 때는다비트가 과르네리 바이올린으로 솔로를 연주했으니멘델스존이 그에게 이 작품을 헌정한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지휘는 당시 건강을 헤쳐서 프랑크푸르트에 가 있던 멘델스존 대신에닐스 가데(Niels Gade, 1817-1890)가 맡았다.
덴마크 출신의 가데는 멘델스존의 추종자로 당시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부지휘자였다.
작품구성
제1악장(Allegro molto appassionato)
서주부터 부드럽고도 우아한 곡선같이 바이올린이 연주되면서 화려한 선율에 의한
순수한 아름다움과 발랄한 정서가 가미되어 그윽한 향기를 내뿜습니다.
이 곡이 최고의 명곡으로 인정 받는 이유가 바로 1악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작곡 당시의 멘델스존의 악상 표시에는 정열적인 연주로 요구되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우리들이 익히 감상하고 있는 대로 실제로는 우아한 분위기로 연주되고 있기도
제2악장(Andante allegro non troppo)
경건하고도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름답고 맑은 선율이 서정적으로 연주되는데 중반부에서 약간의 긴장국면이 조성되다가 어느새 다시,
한여름 밤 별빛을 타고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같은 곱디고운 선율로 돌아 와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치 멘델스존의 음악적 혼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는 듯한 부분이며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감동을 주는 악장이기도 합니다.
제3악장(Allegro molto vivace)
1악장처럼 우아하게 시작하다가 다시 분위기를 바꾸어 관현악의 반주 위에서
바이올린이 강렬하고도 화려하게 약동을 하면서 대미를 장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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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의 풀 네임은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입니다 이렇게 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 멘델스존(1776-1835)이 유대교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기 때문이지요.
멘델스존은 7살이 되던 1816년에 세례를 받는데, 이때 ‘바르톨디’라는 세례 성(姓)까지 더해지게 됩니다. 바르톨디는 그의 외삼촌 야코프가 소유하고 있던 성(城)의 이름입니다. 한데 펠릭스는 외삼촌의 영지 이름을 성씨로삼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펠릭스보다 네 살 위의 누나 파니, 두 해 뒤에 태어난 누이동생 레베카, 막내인 남동생 파울도 마찬가지였다고 하지요. 아버지는 그런 펠릭스에게 ‘멘델스존’이라는 성을 쓰지 말고 ‘바르톨디’로 쓰도록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펠릭스는 죽는 날까지 본래의 성을 병기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후대 사람들은 펠릭스 멘델스존을 온건하고 부드러운 모범생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은근히 고집쟁이였던 모양입니다. 모차르트를 능가했던 천재의 탄생 멘델스존의 집안은 속된 말로 ‘빵빵한 가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1729~1986)은 당대의 존경받던 계몽주의 철학자였습니다.
볼품없는 외모에 곱사등이 장애까지 지닌 인물이었는데, 독일의 극작가 레싱의 시극(詩劇) <현자 나탄>(1779)의 실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극 속의 나탄은 온갖 시련 속에서도 종파와 민족을 초월한 사랑을 설파하는 인물이지요.
말 그대로 현자(Weise)입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명망 높은 철학자였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함부르크의 경제권을 쥐락펴락하던 은행가였습니다.
펠릭스가 태어나고 4년 뒤 베를린으로 이사해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 금융계의 거물이었지요. 물론 할아버지와 아버지 외에도, 멘델스존 집안에는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유명 인사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교육도 최고로 받았겠지요.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이 빛을 발했습니다. 이미 열 살 무렵에 로마의 정치가 카이사르(시저), 시인 오비디우스의 책을 원어로 읽었다고 합니다. 또 기하학, 산수, 역사, 지리 등에서도 성취가 높았다고 합니다. 물론 음악에서의 재능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특히 멘델스존의 음악적 천재성은 괴테(1749-1832)와의 일화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1악장: 알레그로 몰토 아파시오나토 1악장은 알레그로 몰토 아파시오나토(Allegro molto appassionato). ‘매우 열정적이고 빠르게’라는 뜻입니다.
현악기들이 속삭이듯이 화음을 연주하고 곧바로 독주 바이올린이 치고 나옵니다. 멜랑콜리하면서도 화려한 선율입니다. 이렇게 첫머리부터 독주가 등장하는 것은 멘델스존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독주 바이올린이 첫 번째 주제를 제시합니다. 음악을 많이 듣지 않는 분들도 익히 알고 있는, 너무도 유명한 선율입니다.
이어서 독주 바이올린이 한바탕 기교를 뽐내다가 관현악이 첫 번째 주제를 포르티시모(ff)로 강하게 연주하지요. 2악장: 안단테 알레그로 논 트로포 두 번째 주제는 앞 주제가 보여주는 화려함에 비해 소박하고 우아합니다. 오보에와 바이올린에 이어 클라리넷과 플루트까지 합세하면서 피아니시모(pp)의 여린 음량으로 두 번째 주제를 제시합니다.
잠시 후, 독주 바이올린의 화려한 테크닉이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카덴차. 1악장의 전개부와 재현부 사이에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놓이는 것도 멘델스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작법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곡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음악적 설명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느낌으로만 들으셔도 충분합니다.
2악장은 느린 안단테(Andante)로 시작합니다. 1악장이 끝나자마자 쉼표 없이 바순의 연주로 2악장에 들어섭니다. 이어서 독주 바이올린이 매우 감성적인 주제 선율을 아름다운 톤으로 연주하지요.
마치 꿈결과도 같은 선율입니다. 그렇게 잔잔하게 음악이 펼쳐지다가 바이올린 파트와 오보에가 어울리면서 잠시 강렬하게 고조됩니다. 이어서 마무리 장면에 들어서게 되면, 독주 바이올린이 원래의 주제를 거의 끊어질 듯한 느낌으로 연주하다가 아스라한 느낌으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3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 3악장은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로 시작해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Allegro molto vivace)로 전환됩니다.
‘빠르되 지나치지 않게’로 시작해 ‘매우 빠르고 생기 있게’로 분위기를 바꾸라는 뜻입니다. 우아하게 시작해서 격렬하게 달려 나가는 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마디의 서주가 끝나면서부터 음악이 가파르게 고조됩니다.
관현악에 팀파니가 어우러지고 독주 바이올린이 짧은 음형들을 튀어 오르는 느낌으로 연주하는 장면들이 빠르게 펼쳐집니다. 특히 종결부(코다)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보여주는 팽팽한 힘과 기교가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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