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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Bach -Toccata and Fugue in D minor, BWV 565


 

 

 

 

 

BBC Proms 2010 - Bach Day 1 - Toccata and fugue in d minor bwv 565

  

Bach's great Toccata and fugue in d minor bwv 565 orchestrated

by Leopold Stokowski and performed by the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Andrew Litton on 14th august 2010 at the Royal Albert Hall

 

 

 

 

J. S. Bach - Toccata and Fugue in D minor, BWV 565

 (arr. for Violin solo)

 

BACH toccata & fugue violin ( Sergei Krylov )

 

 

 

 

 

 

 

 

 

 

 

 

 

24세의 청년 바흐가 작곡한 이 자유로운 형식의 오르간 곡은 정열적인 토카타와 아름다운 푸가의 양식을

대조시킨 곡으로 젊은 날 바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청년 시절 바흐는 작곡가보다는 오르간니스트로서

 더 유명하였으며, 당시 유행하였던 즉흥 연주의 명연주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39세에서 65세까지 27년간

라이프니치의 토마스교회에서 합창지휘자로 지내면서 많은 오르간 곡을 작곡했다.

 

250곡이 넘는 자신의 오르간 음악 중 이 곡은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으며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바흐는 17세기 초에 시작되는 바로크음악의 최후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나이 9세에 어머니를 잃고, 10세에는 아버지를 잃게 되자 오르소르프에서 교회 오르간니스트로 있던 맏형 요한

 바흐에게 찾아 간다.

 

그곳에서 바흐는 북독일의 북스테후데와 남독일의 파헬벨의 오르간음악의 작법을 습득하였고 이후 코렐리와

비발디로부터 이태리 음악의 명쾌한 협주양식과 풍부한 화성, 그리고 라틴적인 형식을 도입하였으며,

륄리와 쿠프랭에게서 프랑스음악의 섬세한 건반작법과 대담한 프랑스식 서곡을 배웠다.

 

이러한 당시 온갖 음악의 전통과 각 국민의 양식이 바흐의 천재적인 음악성 속에서 융화되어 녹아 섞이면서 긴장도가 높은 그만의 독특한 음악을 창출하게 된다. 훗날 그의 작풍에는 그 후대에 태생하는 고전파의 양식을

암시하는 많은 음악적 특징을 보여주게 된다.

 

이 토카타와 푸가에 대하여 신학자, 의사이며 유명한 오르간니스트인 알베르트 슈바이쳐 박사는 “이 곡에서

밝고 환하게 타오르는 듯 영혼이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음악 형식을 달성시켰다.

단순하고 극적인 기본악상이 파도처럼 겹겹이 쌓아 오르는 토카타의 대담무쌍한 악곡을 조형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푸가에서는 화음이 깨져버릴 듯 삽입된 소리들이 절정의 클라이맥스로 이끌어준다.

 

바흐의 소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라고 서술하였다.

한편 위대한 시인 헤르만 헤세는 이 곡을 듣고 “태고의 침묵이 응시하고… 온통 주위가 캄캄한데… 구름사이로 뚫고

나오는 한줄기 빛, 눈먼 미물은 심연에서 구해주고 공간을 만들어주며 빛으로 밤을 몰아낸다”라고 묘사하였다.

 

철학자 에밀 샤프티에 알랭은 이 곡에 대해 “우리를 결코 떨게 하지 않는다.

 그 뒤에는 아무 것도 감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천태만상의 온갖 다양성과 엄격함과 쓸쓸함… 그곳에서 우리들이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음악뿐이다.

 바로 여기에 바흐의 비밀이 있다.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로운 경이감을 느끼게 한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토카타는 `손을 댄다'라는 이태리어로 바로크시대에 건반악기를 위해 많이 작곡된 악곡 형식이다.

전주곡이나 환상곡과 같이 본래 화려한 기교를 가진 면이 있어 즉흥성이 강하고 화려한 기교와 격정적인 표현으로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성은 바로크의 절정기인 바흐에 와서 더 견고하게 완성된다.

오르간의 성능을 최대한 살린 놀라운 효과를이용하여 바흐가 즐겨 쓰는 분산화음이 이 곡들의 테마를 빛내고 있다.

도입부에서 음의 진행은 아주 느리면서 힘차게 마치 유성처럼 하행 음형이 분산되면서 자유롭고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면서 토카타와 푸가형식이 전곡 속에 엮어져 융합되어 우주적인 화음을 이끌어내게 된다.

 

 이는 차츰 화산 폭발처럼 하늘을 향해 분출하고는 마지막 코다에 이르러 첫 부분의 재현으로 빛나는 화음은 가히

 찬란하기만 하다.

 

이 토카타와 푸가는 바흐 후기의 내면적으로 깊고 침착한 경향의 오르간 곡들과는 대조적으로 밝고 활기차며,

밤하늘의 불꽃처럼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수놓아진 곡이다.

이 곡은 훗날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더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Bach, Johan Sebastian

(1685.3.21 - 1750.7.28)



서양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하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다.
아이제나흐 태생인 바하는 그때까지 그의 가문의 풍습에 따라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10세에 부모를 잃은 그는 오르가니스트인 그의 형의 집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어라는 악기를 배웠다.


그는 마침내 명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으며 18세기까지의 음악의 모든 경향을 한데 모아 비약적인 성과를 올렸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베토벤, 바그너 등에게 독일 음악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고 하겠다.
그가 활약한 시기는 바이마르 궁정의 약 10년간이며 쾨텐 궁정 악장으로서 실내악과 오케스트라곡, 독주곡
등을 많이 썼다.


다음은 1723년부터 27년간의 라이프치히 시대이다.
창작에 있어서 활발한 시대였다.

 카나타타, 오라토리오, 수난곡 등 성악의 대작과 오르간곡 등을 많이 작곡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의 독실한 신자였는데, 음악으로서 신에게 봉사하는데에 그 생애를 바쳤다.

 그의 풍부한 멜로디와 절묘한 대위법의 취급에 의해 한없는 아름다움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기교의 밑바닥에는
종교적인 신념이 깃들어있다.


그는 대위법의 작법에 기반을 두면서도 여기에 화성적인 수법을 가미시켰다.

 말하자면 화성적인 복음악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토벤은 그를 가리켜 화성의 아버지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대 미사곡, 마태 수난곡, 토카타 d단조 오르간곡, 기악 독주곡, 중주곡, 합주곡, 협주곡 등 여러 방면에 많은 작품을 작곡 하였다.


그리고 12평균율의 조율법에 의한 48곡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BACH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Concerto for Violin in a minor, BWV 1041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Concerto for Violin in E major, BWV 1042
2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
Concerto for 2 Violin in d minor, BWV 1043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randenburg Concerto, BWV 1046-51


4개의 관현악 모음곡
관현악 모음곡 제3번 D장조
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BWV 1068
음악의 헌정 Musikalisches Opfer, BWV 1079
푸가의 기법 Die Kunst der Fugue, BWV 1080


토카타와 푸가 d단조 Taccata and Fugue in d minor, BWV 565
파사칼리아 c단조 Passacaglia in c minor, BWV 582
영국 모음곡 Englische Suite, BWV 806-811
프랑스 모음곡 Franzosische Suite, BWV 812-817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


Das Wohltemperierte Klavier, BWV 846-869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2권
Das Wohltemperierte Klavier, BWV 870-893
골트베르크 변주곡 Goldberg Variations, BWV 988
무반주 파르티타 제2번 d단조


Unaccompanied Sonata No.4 in d minor(Partita No.2),
BWV 1004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제3번 C장조
Unaccompanied Sonata No.5 in C major(Sonata No.3),
BWV 1005


칸타타 제4번 -그리스도는 죽음의 포로가 되어도-
Cantata No.4 -Christ lag in Todes Banden-, BWV 4
미사 b단조 Masses in b minor, BWV 232
마태 수난곡 Matthaus-Passion, BWV 244
요한 수난곡 Johannes Passion, BWV 245



 

 


 

 

 

 


아이제나하 태생인 독일의 작곡가. 바흐 집안은 수대에 걸치는 음악 가족으로, 부친 암브로지우스도 음악가였다.
10세 때 양친을 잃고, 오르두르프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있던 형이며, 오르간의 명수이던 파헬벨의 제자이던
요한 크리스토프에게로 가서 음악을 배웠다.

 

1700년에 뤼네부르크의 학교에서 소년 소프라노 가수로 있을때, 쉬쯔의 제자인 뢰베와 라인켄의 제자 뵘의

 

두 오르가니스트를 알게 되어, 뵘으로부터 북독일과 프랑스의 오르간 음악 양식을 배웠다.

 

 

가극의 중심지인 함부르크에 걸어가서 직접 라인켄의 가르침을 받거나, 쩰레 궁정을 방문하여 프랑스 양식의 관현악을 접하기도 했다.

 

1703~07년에 아른시타트의 성 보니파치우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있었는데, 이 사이에 대작곡가 북스테후데의

가르침을 받기위해 뤼벡을 여행했다.

1707년에 뮐하우젠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으나, 그 자신은 루터적인 프로테스탄트의 정통파여서 다른 파의
교회 목사 때문에 괴로움을 받기도 했다.

 

 

1708년에 바이마르의 궁정 오르가니스트의 자리로 옮기고, 1714년에는 궁정 악장이 되었다.

 

이 궁정에서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새로운 세속적인 음악이 환영받고 있어서, 그는 특히 이탈리아의 협주 양식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 이 무렵에는 오르가니스트로서의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다.


1717년에는 쾨텐의 궁정에서 악장을 지냈다.

 

바이마르에서는 주로 오르간곡이 작곡되었듯이, 쾨텐에서는 클라비어곡, 관현악곡, 실내악곡 등이 작곡되었다.

1720년에는 첫번 아내인 마리아 바르바라를 잃었지만, 이듬해에는 안나 막달레나를 아내로 맞이했다.

 

1723년에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 학교의 합창장으로 취임한 후부터 그의 라이프찌히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합창장은 학교에서 음악과 라틴어를 가르치며, 교회 성가대를 훈련시키고, 거기다 교회의 예배를 위해 필요한
음악인 칸타타, 수난곡 등을 작곡해야 할 직무가 주어져 있었다.

눈병으로 타계하기까지 27년간을 이 직위에 머물면서, 그는 무수한 명곡을 남겼다. 이곳에서 바흐는 300곡의 칸타타를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 100곡 정도는 악보가 분실 되었다.

쾨텐에서 쓰기 시작한 성 《요한 수난곡》은 1723년에, 보다 유명한 《마태 수난곡》은 1729년에 완성되었고,

 라틴어 전례 음악인 《마니피카트》는 1723년에 작곡되었다.


1733년에는 드레스덴의 아우구스트 선거후의 궁정 작곡가가 되려고 미사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전체가 완성된

것은 1738년으로, 이 곡은 그의 신비 사상적인 으뜸가는 걸작이 되었다. 그 뒤 명작을 잇달아 쓰고, 《푸가의 기법》을
마지막으로 65세의 생애를 라이프찌히에서 마쳤다. 바흐는 헨델과 함께 바로크 음악의 최후를 장식하여, 음악사상

 최대의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바흐는 중세 이래로 발전해 가고 있던 폴리포니 음악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푸가는 폴리포니의 최고의 걸작이며, 푸가 이외의 음악도 대개 폴리포니적이어서, 그의 동시대자인 헨델의

이탈리아풍으로 투명하고 간결한 양식에 비하면, 한층 북방적으로 복잡하고, 대위법적이며 깊은 정신에 넘쳐 있다.

 

그러나 바흐의 음악, 특히 협주곡, 오르간 소나타는 그의 정신적인 파헬벨, 북스테후데, 뵘 등에서 본다면, 훨씬 진보적이고 화성적이다. 베토벤이 바흐를 평하여 ‘화성의 아버지’라고 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의미로 바흐는 단순히 전통적인 폴리포니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 행해졌던 새로운 화성도 충분히

채용하여, 그 전대 미문의 표현력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전 작품은 1,080곡에 이르며, 어느 작품이나 최고의 완성도를 보이고있다.

[주요 작품] 200곡 이상의 칸타타, 수난곡 《성 요한》(1723), 《성 마태》(1729), 미사 《B단조》(1749경),
《마니피카트 D장조》(1723), 오르간 코랄 다수, 클라비어곡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1719경),
《프랑스 모음곡》(1722경), 《인벤션》(1720~23),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 (1722) 제2권(1744),


《영국 모음곡》(1722), 《골드베르크 변주곡》(1742), 실내악곡 《음악의 헌정》(1747), 《푸가의 기법》

(1750), 협주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곡(1718~21), 《2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1718경),
관현악곡 《모음곡》 4곡(1718~36) 등.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 (아버지)

(Johann Ambrosius Bach 1645~1695)

유화. Deutsche Staatsbibliothek, Berlin




 

바흐의 아버지

16세기 무렵부터 중앙 독일의 튀링겐 지방에는 바흐 집안 출신의 음악가가 대단히 많았다.
그 대부분은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궁정이나 관공서에 근무하는 음악가였다.
약 300년 동안의 5~6대에 걸쳐 바흐의 이름을 가진 음악가가 60명 가까이나 있었다고 한다.


 대(大)바흐인 요한 제바스티안의 아버지 요한 암브로지우스는 1645년에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요한 크리스토프와 쌍둥이로서, 이 두 사람은 얼굴 생김새나 몸매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꼭 닮았기 때문에

그들의 아내조차도 옷으로 알아보았다고 한다.

제바스티안은 이 아버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r, Sebastian Bach]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 9. 1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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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의 바흐

(작자 불명. Musikbibliothek Peters, Leipz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