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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Rachmaninoff - Morceaux de fantasie Op.3-2, Prelude

 

 

 


 


 

 

Morceaux de fantasie Op.3-2, Prelude
라흐마니노프 환상적 소품 Op.3 Prelude
Sergej Rachmaninov 1873-1943
Nikolai Lugansky, piano



라흐마니노프가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직후 발표한 5곡의 환상 소품집 작품 3

Prélude : Lento C sharp Minor

C단조의 어둡고 무거운 이 곡은 장송곡처럼 침울하다. 처음 시작은 느리고 무겁게 시작하면서 포르테시모로 두 음절이

 시작되면서 바로 피아노시시모로 변한다.

샘 여림이 극에서 극으로 변하는 것이다.

리듬도 없이 반복적인 화성이 똑같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초반부를 지나 두 번째 부분은 아지타토로 이루어 저 있다(Agitato) -격하게 흥분해서-

후반부에서는 초반부와 같은 빠르기로 돌아와서 망치로 두드리듯이 건반을 내리친다.
포르티시시모를 무겁게 연주한 후에 포르테가 무려4개가 붙는다 그리고 그 앞에는 특히 세게가 붙어있다.

역설적이게 마지막 끝부분은 피아노시모 보다 더 여리게 끝을 맺고 있다.

이 곡의 선율은 아주 단순하다.

1 동기정도의 꾸밈이 없는 4분음표의 반복으로 주제가 이루어져 있다. 선율이 단순하기는 하지만,6 곡이 주는 느낌은

 그렇지 않다

.
피아노의 울림은 상당히 뛰어나다.

피아노 협주곡2번등 전성기 때의 작품을 능가한다.
한편 이 곡을 작곡할 때 왕궁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묘사하려고 했다는 말이 있는데, 처음에는 종이 조용히 차분히

울리다가 나중에는 현란해지는 그러한 것을 떠올리면 된다.

이 곡의 음반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쉽게 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이후에 나온 전주곡들은 작품번호가 따로 매겨져 있기 때문에 그것들끼리 출반 되고, 작품3의 다른 곡들은 별로 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Nikolai Lugansky at La Roque d'Antheron  
 
 홀로 살아 숨쉬는 피아노의 선율

Nikolai Lugansky

니콜라이 루간스키(Nikolai Lugansky)는 기교적인 면과 음악적 역량, 이 두 가지 모두를 겸비한 실력있는 음악가이다. 빠른 연주와 힘있는 연주법은 당대의 호로비츠(Horowitz)와 비교되기도 했으며, 12세 때부터 이미 러시아를 비롯한

독일,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일본,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을 돌며 그만의 이력을 쌓았다.

 

18세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콘서트헤보우 (Concertgebouw) 오케스트라와 독주회를 가졌고, 영국의 위그모어홀에서도 공연을 갖는다.

이어 바흐,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연달아 우승을 거머쥐며 급속도로 주목을 받는다.

이후 이 모스크바 청년은 타티아나 니콜라예바(Tatyana Nikolayeva)에게서 음악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브렌델

(Brendel), 루푸(Lupu), 페라이어(Perahia), 짐머만(Zimerman), 체르카스키(Cherkassky)처럼

 "마스터 피아니트스"시리즈에 참석하여 Svetlanov, Gergiev, Sondeckis, Pletnev, Brüggen, Eschenbach같은

 대지휘자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된다.
또한 맨체스터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니, 로테르담 필하모닉과 데뷔무대를 갖기도 한다.

라 로끄 당떼롱 피아노 페스티벌(La Roque d’Antheron Piano Festival)에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니콜라이는

 샹제리제 씨어터, 샬 가보 루베르 오디토리엄에서 마련했던 공연과 라디오 프랑스 페스티벌 같은 프랑스내 여러 공연에도 참석하였는데, 라 몽드지는 그를 일컬어 "뛰어난 민첩성과 탄력, 섬세한 터치, 정확한 손놀림으로 엄청난

반향(反響)을 창조해 내는 음악가"라고 찬탄하였다.

브리튼(Young Apollo, 켄 나가노 지휘), 쇼팽의 에띠드(2000년 황금 디아파종상 수상),
라흐마니코프의 전주곡(Rachmaninov’s Préludes)과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등을 음반으로
내놓았고 이를 통해 2002년 황금 디아파종상(Diapason D’or)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진가가 최고조로 발현한

장르는 역시 협주곡을 포함한 피아노 음악이었다. 그는 탁월한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였기에 피아노라는 악기가

지닌 가능성을 극대화한 음악들을 작곡하고 나아가 직접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 제2c단조]는 그중에서도 지명도와 인기도 양면에서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협주곡의 극적 흐름은 이른바 베토벤적인 구도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물론 그 호흡과 표현은 지극히

라흐마니노프적이지만.첫 악장은 마치 절망의 심연으로부터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시작되어, 무겁고 두꺼운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며 점차 열기와 강도를 더해가는 투쟁을 연상시킨다.

 

그 투쟁은 끈질기고 장엄하다.

느린 악장에서는 탄식과 고뇌,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다.

그 지독한 서정성! 애절하지만 감미롭고, 화려하지만 진솔하다.

 

마지막 악장은 춤곡이자 행진곡이다.

역동적인 리듬과 정열적인 어조로 마침내 광명과 승리를 쟁취해내고야 만다.

 ‘고난을 극복하고 환희로!’

 

그런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런 흐름에는 라흐마니노프 생애의 단면이 투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 협주곡은 작곡가가 경력 초기에 겪었던 좌절, 그로 인한 실의와 고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협주곡을 통해서 그는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나 환희를 향해 나아갔다.

 

야심작의 실패와 침체기 1890년대 중반 러시아 이바노프카 지방에서 찍은 사진.

 맨 뒷줄 좌측에서 두번째가 라흐마니노프, 맨 앞줄 좌측에 앉아있는 여성이 나탈리아 사티나(향후 그의 부인이 된다.) <제공: Wikipedia>

 

라흐마니노프의 나이 25세 되던 해인 1897328, 그의 [교향곡 제1d단조(Op.13)]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5년 전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이래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로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던 그는 이 열의 충만한 대작이 자신의 경력에 한 획을 긋는 회심의 역작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 초연은 재앙에 가까운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일단 연주가 전혀 만족스럽지 못 했는데, 일설에 따르면 지휘를 맡은 글라주노프가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을 가진 것이 패착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혹평이 쏟아졌고, 그중 ‘5인조의 일원인 세자르 큐이는 “‘애굽의 재앙에 관한 교향곡 같다며 비아냥거렸다.

 젊은 작곡가는 절망의 나락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실의에 빠진 나머지 신경쇠약에까지 걸렸다.

무엇보다 작곡에 자신감을 잃은 그는 그로부터 3년간 거의 아무 곡도 쓰지 못 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부러져버렸다. 여러 시간 스스로 질문하고 또 회의해본 결과, 나는 작곡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뿌리 깊은 무감각이 날 점령해 버렸다. 나는 낮 시간의 절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 파괴되어 버린 내 생애를 한탄하면서 보내고 있다.”

 

다만 그동안 다른 방면의 활동까지 위축된 것은 아니었다.

유력한 철도 기업가이자 예술 후원자인 사파 마몬토프가 그에게 자신의 사설 오페라단의 부지휘자 자리를 제안했고,

그는 거기서 평생 친구로 지낼 베이스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을 만나기도 했다. 1899년에는 런던의 퀸즈홀에서

성공적인 영국 데뷔 공연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창작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혹시 격려를 받을 수 있을까 싶어 평소 존경했던 톨스토이를 찾아갔지만, 대문호는 오히려 그가 샬리아핀과 함께

들려준 가곡(베토벤의 교향곡에서 착안한 운명이라는 곡으로, 그가 교향곡 제1의 실패 이후 가까스로 써낸 몇

 안 되는 소품 중 하나)에 비판을 가했다.

 

 또 사촌이자 동료 피아니스트였던 나탈리아 사티나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 했지만, 러시아 정교회와 그녀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시름을 더했다.

 

달 박사의 치료와 재기

니콜라이 달 박사(1860-1939)

 

결국 그는 수소문 끝에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박사를 찾아갔다.

달 박사의 처방은 일종의 자기암시 요법이었는데, 환자에게 가벼운 최면을 걸어놓고 그 귓가에서 필요한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경우에는 당신은 새로운 협주곡을 씁니다. 그 협주곡은 성공을 거둡니다라고

읊조리는 식이었다. 이 치료를 3개월 정도 지속하자 효과가 나타났다.

 

자신감을 되찾은 라흐마니노프는 새로운 대작에 도전했다.

 그의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이 된 이 작품은 1900년 가을에서 19014월 사이에 작곡되었다. 먼저 제2악장과

 제3악장이 완성되어 1900122일에 작곡가 자신의 독주로 시연되었고, 1악장은 그 후에 완성되었다.

 

그 음악에 그가 겪었던 상처, 회한, 몸부림의 환영이 드리운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나아가 그는 자신의 화려한 피아니즘과 장대한 관현악 서법, 풍부한 상상력을 한껏 투입하여 새 희망을 향한 갈망과

의지를 힘차게 노래했다.

1901119, 마침내 [피아노 협주곡 제2c단조]가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알렉산더 질로티가 지휘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정식 초연되었다.

 

결과는 대성공!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으로 다시 한 번 글린카 상을 수상함으로써 명예를 회복했고, 자신의 재기에

결정적 도움을 준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아울러 그의 재기는 장차 러시아 낭만주의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거인의 나래가 비로소 활짝 펼쳐진 사건이기도 했다.

 

1악장 : 모데라토, 2/2박자, c단조

이 드라마틱한 악장은 묵직한 피아노 독주로 출발한다.

낮고 어두운 화음과 깊숙한 베이스 음이 교대로 울려 퍼지는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심상은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주요 아이콘인 종소리이다.

점점 크게 들려오는 그 종소리는 마치 재기를 향한 각성과 의지를 촉구하는 신호처럼 들리기도 한다.

 

일련의 종소리가 정점에 도달한 다음 순간에 현악 파트에서 제1주제가 터져 나온다. 공간을 폭넓게 휩쓸어가는 듯한

이 러시아 풍 선율이 음울하게 흐르는 동안 피아노는 그에 대응하는 장식적인 음들을 연주하는데,

이는 러시아 협주곡의 전통 가운데 하나인 장식 변주의 일환이다.

이 장면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효과적인 통합으로 창출되는 긴밀한 앙상블과 강렬한 이미지는 실로 인상 깊다.

 

이 음울하고 강렬한 흐름이 일단락되면 피아노가 제2주제를 등장시킨다.

 Eb장조 선율은 음계를 보다 빠르게 오르내리며, 현악 파트의 선율과 어우러져 작품에 서정적 이미지를 더한다.

이어서 장엄한 금관의 화음 연주와 함께 발전부로 진입하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한층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흐름을 타고 격렬한 드라마를 구축해 보인다.

 

재현부 이후의 흐름은 더욱 흥미로운데, 1주제는 행진곡 풍으로 재등장하고, 2주제는 길게 늘어져 호른의 나직한 소리로 노래된다.

카덴차는 생략되어 있으며, 종결부는 이완된 분위기에서 출발하여 수수께끼처럼 흐르다가 다시 힘을 모아 강력한

울림으로 막을 내린다.

 

2악장 :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4/4박자, c단조 - E장조

이 중간 악장은 여러모로 라흐마니노프의 멘토였던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Bb장조]를 연상시킨다.

 일단 시작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에 의한 짧은 경과구가 나타나 앞선 악장의 조성(c단조)에서 본 악장의 조성(E장조)으로 이행하는 수법이 그렇고, 그다음에 주제를 꺼내놓는 플루트 및 클라리넷 솔로가 나타나는 부분도 그러하다.

아울러 악장 중간에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스케르초 풍 섹션이 삽입된 점도 마찬가지이다.

 

이 악장의 느린 부분은 몽환적인 기운으로 가득하여 마치 최면 상태에 빠진 라흐마니노프의 의식의 흐름을 그린듯하다.

그 흐름 속에서 갖가지 환영들이 스쳐 지나가고, 의식은  그 수면 아래 잠겨 헤매기도, 솟구치려 몸부림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모든 아픔과 고뇌를 뒤로하고 밝은 세계를 향하여 뚜벅뚜벅 나아가는 주인공의

의연한 모습이 떠오르는 듯하다.

 

3악장 : 알레그로 스케르찬도, 2/2박자, E장조 c단조 - C장조

먼저 다소 경박한 춤곡 풍 리듬 위에서 진행되는 오케스트라의 전주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화성은 앞선 악장의

E장조에서 본 악장의 c단조로 움직인다.

 계속해서 피아노가 현란한 연결구를 연주한 다음 격앙된 제1주제를 펼쳐 놓고, 그로 인한 흐름이 일단락되면 제2주제가 오보에와 비올라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이 러시아 풍 선율은 제1악장의 제2주제와 연계되어 있다.

 

발전부와 재현부를 대단히 긴박하고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 후에, 마지막 절정부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오케스트라의 격앙된 합주로 제2주제를 커다랗게 부각시킨다.

흡사 승리의 함성 또는 선언처럼 들리는 이 희열 넘치는 클라이맥스를 기점으로 음악은 환한 C장조로 완전히 전환되고, 그 기세를 그대로 몰고 나가 강한 긍정과 확신을 나타내는 C장조 으뜸화음을 장쾌하게 울리면서 마무리된다.

 

글 황장원 | 음악 칼럼니스트음악에서 보다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느끼기 위해서 머리와 가슴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체험과 상상력, 감동을 중시하는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노트 필자, 네이버캐스트 음악의 선율필진이며, 서울 예술의전당, 성남아트센터, 대구 수성아트피아, 무지크바움, 풍월당 등지에서 클래식 음악감상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

① Pianist

피아니스트로서의 라흐마니노프는 거대한 손과 육중한 체구를 통해 울려 퍼지는 강한

 탄건력과 막힌데 없이 흐르는 화려한 기교로, 가는 곳마다 인기 절정의 갈채를 받았으며,

 자작곡 연주에 있어서도 최고의 해석과 연주력을 자랑했습니다.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라흐마니노프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이였으며

그 당시때만 해도 가장 손이 큰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는 도(C)에서 한 옥타브 위의 솔(G)까지, 즉 12도를 여유 있게 짚었으며, 나머지 2-3-4번 손가락으로 E-G-C의 화음을 누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도-미-솔-도-솔. 상상이

 안갑니다..

그런데 큰 손은 그에게 큰 장점이었으나, 반면에 고민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워낙 손이 크다보니 옥타브를 연주할 때 손이 삐어져 나오는 것은 큰 장해였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작품에 옥타브의 패시지가 극히 적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6피트에 가까운 장신이었기 때문에 큰 키와 긴팔을 이용하여 피아노 건반을 완전히 압도하는 연주를

 펼쳤으며, 손 크기보다 더한 열정적인 힘과 높은 기교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현대 피아니스트와 비교한다면 뒤떨어지지만..) 그래서 그의 연주를 실제로 접한 사람들은 그 강렬한 여운을 평생토록 잊지 못했다고 하지요.

또한 그 자신의 연주를 위해서 작품들을 썼기 때문에, 그의 피아노곡들은 모두 그의 조건 만큼이나 어려운 연주기교와

힘의 요구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주 면에서 볼때 흐름이 부드럽다고 합니다.



② Playing


라흐마니노프가 언제 공식 연주를 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런던에서의 연주 이후 미국에서 활발히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그렇게 1900년대 초 많은 연주회를 통해 환영을 받다가 1942년-1943년 시즌이 최후의 연주회가 되었습니다.
그는 1943년 2월 17일 녹스빌에서 최후의 콘서트를 한 직후 쓰러져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암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후 끝내 다시는 연주회를 가지지 못했죠.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종종 협연을 하였는데, 이는 콧대 높은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도 라흐마니노프에게만은 순종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그와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와의 불화는 음악계의 에피소드로 남고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매번 리싸이틀 레퍼토리에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2번(장송 행진곡)을 넣을 정도로 즐겨 연주했으며,

자신이 작곡한 곡들도 즐겨 연주했다고 합니다.

레코딩의 경우 라흐마니노프는 자기의 작품이나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많이 녹음했는데 이러한 것들은 어떤 경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아이러니 하게 쇼팽의 장송 행진곡), 매우 개성적인 해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으나 베토벤 소나타 전곡의 녹음은

계획만으로 끝나 버려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반은 RCA 에서 나온 10장의 음반이 가장 유명하겠죠.
전집으로 나왔는지 낱장으로 나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 예전에 10장 전집중 그의 협주곡 녹음이 들어 있는 2장을 구입했습니다.
RCA에서 나온 전집 말고도, NAXOS에서 그의 음반이 나왔으며 여러 마이너 레이블에서도 음반이 나왔습니다.

그의 연주 중에서도 그의 협주곡 연주는 소장 가치가 있는 소중한 연주입니다.
현재 자작 자연의 권위로써 그의 협주곡은 대단하다고 할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