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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W.A.Mozart : Le nozze di Figaro K.492중 "Voi Che Sapete"


 

 

 

 





 

Scena 2. N.12 Arietta Cherubino 'Voi che sapete'.
Angelika Kirchschlager (born 1965, Salzburg) is an Austrian mezzo-soprano
잘츠부르크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안젤리카 키르흐슐라거

Concerto Koln
dir. Rene Jacobs

 

 

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백작의 집에 얹혀사는
미소년 시종인 케루비노가 짝사랑상대인 백작부인 앞에서 부르는 아리아로
제목은 ‘그대는 아는가, 사랑의 괴로움을...’

W.A.Mozart : Le nozze di Figaro K.492중  "Voi Che Sapete"


사랑이 무엇인지...아는 여인들이여...
내 맘속에...그것이 있는 것을 보세요.
내가 느낀 일을 말하지요.

새롭고...이해하기 힘든...어떤 감정을 느끼지요.
가슴 속이 기쁨인 것도 같고...
괴로움 같기도 한...열망으로 가득 차 있어요.
얼음 같던 마음이...불같이 타오르고...


또 갑자기 얼어붙지요.
내 자신 밖에서...행복을 찾지요.
누가 가지고 있는지...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안 그렇게 하려고 해도...한숨을 쉬게 되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심장이 뛰고...
낮이나...밤이나...평안을 찾을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좋지 않아요.

사랑이 무엇인지...아는 여인들이여...
내 맘속에...그것이 있는 것을 보세요.

 

 

 

 

 


이 아리아는 한창 사랑의 열정에 빠진 사춘기 소년의 설레임을 잘 표현한아리아인데 프랑스 출신 보마르쉐의 희극을

바탕으로 한 이탈리아 대본을가지고 모차르트가 6주 만에 작곡을 한 작품...
보마르세는 3편의 연작을 썼는데제1편은 ‘세빌리아의 이발사’제2편이 ‘피가로의 결혼’그리고 제3편은 ‘죄많은 어머니’...
로시니가 작곡한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젊은 알마비바 백작이 수단꾼인 거리의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로지나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는 내용...

‘피가로의 결혼’은 알마비바 백작이 백작부인이 된 로지나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오히려 백작부인의 시녀이자 피가로와 결혼하기로 한 수잔나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으나 피가로의 지혜로 백작의 마음을 백작부인에게 되돌려 놓는다는

내용이지요.

당시 이 오페라의 이야기들은 봉건 귀족 사회에서 귀족들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린다고 해서 엄중한 제재를 받는 바람에 무대 공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미소년 시종인 케루비노는 연모를 하는 알라비마 백작 부인과 수잔나 앞에서이 노래를 부르지요.

 

(글 출처 : 웹)

 

 

 



Angelika Kirchschlager
(born 1965, Salzburg) is an Austrian mezzo-soprano

Mozart : Le nozze di Figaro K.492중  Voi Che Sapete
‘그대는 아는가, 사랑의 괴로움을
Voi che sapete che cosa e amor,


Donne, vedete, s'io l'ho nel cor,
Donne, vedete, s'io l'ho nel cor.
Quello ch'io provo, vi ridiro,
E per me nuovo capir nol so.

Sento un affetto pien di desir,
Ch'ora e diletto, ch'ora e martir.

Gelo e poi sento l'alma avvampar,
E in un momento torno a gelar.
Ricerco un bene fuori di me,
Non so chi il tiene, non so cos' e.

Sospiro e gemo senza voler,
Palpito e tremo senza saper,
Non trovo pace notte ne di,
Ma pur mi piace languir cosi.

Voi, che sapete che cosa e amor
Donne, vedete, s'io l'ho nel cor,
Donne, vedete, s'io l'ho nel cor,
Donne, vedete, s'io l'ho nel cor.

오늘은 메조 소프라노
세실리아 바르톨리의 목소리도 감상을 합니다.

 

 

 

 



Cecilia Bartoli (mezzo-soprano) Live in Italy
- Jean-Yves Thibaudet (piano).
Teatro Olimpico, Vicenza, June 1998
  

 

 

 

 

 

 

 

음악의 신동,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모짜르트는 잘쯔부르크 대사교의 궁정 음악가 레오폴트 모짜르트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레오폴트는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로, 작곡도 하고 바이올린 주법에 관한 저작도 남겨 놓았을 정도의 인물이었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모짜르트는 일찍부터 신동의 재능을 발휘했다.

 

주위 사람들이 그의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알차챈 것은 3세 경이었는데, 얼마 안 있어 레오폴트는 초보적인 음악 교육을 시작했고, 5세 때의 생일을 전후해서는 최초의 작품을 작곡했다.

겨우 6세가 될 무렵인 1762년 초부터 10년 남짓 동안은, 소년 모짜르트가
유럽 각지로 여행을 다니며 보낸 시절이었다.

첫 여행지는 뭔헨이었는데, 여기서는 겨우 3주간을 머물렀다.

같은 해 가을부터 이듬해 초에 걸쳐서는 빈을 방문하여, 쇤브룬궁전에서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클라비어

연주를 했다.

 

다시 1763년 6월부터는 부모와 누나 마리아 안나(보통 나네를이라 부름)까지 합친 일가 4명이 대여행을 시작했다.

뭔헨, 아우그스부르크 등지를 거쳐 시베찡겐에서 처음으로 만하임 궁전악단의 연주를 들었다.

또한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4세의 괴테도 모짜르트의 연주를 들었다.

그 후 본, 쾰른 등지를 방문한 모짜르트는, 벨기에를 거쳐 11월에 파리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는 베르사이유 궁전에 초청되어 루이13세 앞에서 연주하고, 공개 연주의 기회까지 얻었으며, 쇼베르트 등

 작곡가를 알게 되었다.

 

이어서 그는 런던으로 건너갔는데, 거기서 크리스티안 바하의 음악에 접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영국에 1년쯤 머문 모짜르트는 이어 네덜란드를 거쳐 다시 파리로 갔다.

스위스나 독일을 거쳐 잘쯔부르크에 돌아온 것은, 떠난 지 3년쯤 되는 1766년 11월이었다.

 

이런 여행을 통하여 신동 모짜르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는데, 그보다 더 큰 수확은 널리 각지의 음악에 접하고 그것들을 흡수한 일이었다.

여행중에도 작곡을 활발히 하여, <클라비어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KV6-15, KV26-31(1762-1766),

 <제1번 E플랫 장도>KV16(1764)으로 시작되는 초기의 교향곡 등이 작곡되었다.

1769년 11월, 13세의 모짜르트는 대사교 지기스문트폰 슈라텐바하에 의하여
콘서트 마스터(무급)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레오폴트는 또 다시 아들의 여행을 계획하여, 12월에 첫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1771년 봄까지 계속된 이 첫 이탈리아 여행에서 모짜르트는 핏치니 등 많은 작곡가를 알게 되고, 볼로냐의 마르티니

 신부 밑에서 대위법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이 무렵에는 <제12번 장조>KV110(1771)을 비롯한 많은 교향곡과 가극 <폰토와 왕 미트리다테>KV87(1770) 등을 작곡하고, 각지에서 신작 오페라의 주문도 받았다.

모짜르트는 다시 1771년 8월에 이탈리아로 가서,
극장 세레나타 <알바의 아스카니오>KV111을 초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다시 잘쯔부르크로 돌아온 12월에 지기스문트가 사망하고, 이듬해 1772년 3월에 히에로니무스 폰 콜로레도가 대사교로 취임했다.

 

그 무렵에 유명한 3곡의 디베르티멘토(KV136-138)를 작곡했다.

그 해 여름, 모짜르트는 심임 대사교에 의하여 유급의 콘서트 마스터로 승격되었으나, 그 직후에 3번째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밀라노에서 가극 <루치오 시라>KV135(1772)를 쓰고, 다시 몇 개의 교향곡과 현악 4중주곡을 쓴 다음,

이듬해 1773년 3월에 잘쯔부르크로 돌아왔다.

이 해 여름에는 빈으로 가서 하이든의 음악을 직접 접했다.

그 곳에서 쓴 <현악 4중주곡 제8-13번>KV168-173과 교향곡에는 하이든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1777년 9월, 모짜르트는 보다 좋은 취직 자리를 물색하기 위하여 긴 여행을 떠났다.

어머니 안나 마리아가 동행하여, 두 사람은 만하임을 거쳐 파리까지 갔으나, 신동으로 인기가 있던 옛날과는 달리,

만족할 만한 일자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더구나 파리에서는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데다가, 만하임에서 알게 된 알로이지아 베버(작곡가 베버의 사촌누나)에 실연을 당하는 등, 모짜르트에게 있어서 이번 여행은 엉망이었다.

그러나 창작면에서의 성과는 매우 커셔, 교향곡 제31번 <파리>KV297(1778), 피아노 소나타 <터키 행진곡>

KV331(1778)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작이 이 여행중에 탄생했다.


1779년 1월에 귀향한 모짜르트는 곧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었지만,
일찍부터 그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던 궁정음악가라는 처지에 대한 불만은 점점 더 높아져 갈 뿐이었다. 동시에 아버지와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하여 1780년 말 뮌헨에서 가극 <이도메네오>KV366을 상연한 후, 이듬해 봄 빈에서 끝내 히에로니무스와

 충돌하고 말았다.

 

레오폴트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임할 것을 결심하고, 그대로 잘쯔부르크에 돌아가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25세의 모짜르트는 ,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독립된 음악가로서 빈 생활을 시작했다.

예약 연주회와 음악 교사, 그리고 작품을 출판사에 파는 것 등에서 얻는 수입은 미미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듬해 1782년 8월에 알로이지아의 누이동생 콘스탄째와 결혼까지 하여, 생활은 점점 더 쪼들리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하이든 등과의 교우에도 자극을 받아, 창작은 더욱 활발해졌다.

 

예약 연주회를 위해 많은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것 외에, 교향곡 제35번 <하프너>KV385(1782), 교향곡 제36번

<린쯔>KV425(1783)의 두 교향곡, 하이든에게 바쳐진 <현악 4중주곡 제14-19번>(1782-1785),

그리고 가극 <피가로의 결혼>KV492(1786) 등 불후의 걸작이 속속 태어났다.

 

그런데 모짜르트의 예술이 고고의 경지로 들어감에 따라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상은 그의 음악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예약 연주회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게 되고, 이렇다 할 작곡 의뢰도 없었다.

더우기 부부가 다 같이 경제관념이 희박했기 때문에, 집안의 경제 사정은 나빠지기만 하여, 친구에게 종종 돈을

꾸러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모짜르트는 말년에 있었던 좋은 일이라고 하면,
1787년에 2번이나 프라하를 방문하여 <피가로의 결혼>을 상연하여

 대성공을 거둔 일과, 새로 가극 <돈 조반니>KV527의 작곡을 의뢰받아 상영한 것 정도였다.

1789과 1790년의 베를린 여행과 프랑크푸르트 여행도 기대한 만큼의 수확은 없었다.

그런 비참함 생활 속에서도 작곡은 더욱 더 충실해져, 이른바 3대 교향곡인 제39번(K543), 제40번 <주피터>(K551)를 1788년에 작곡했고, 가극 <코시 판 투테>KV588(1790), <현악 5중주곡 D장조>KV593(1790) 등이 작곡되었다.

1791년에 들어와서는 모짜르트는 <피아노 협주곡 B장조>KV595를 필두로 하여,
<현악 5중주곡 E플랫 장조>KV614, 가극 <마적>KV620, 가극 <황제 티투스의 자비>KV621 등을 작곡했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이미 병마가 급속히 그이 몸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1971년 11월 20일, 그는 <레퀴엠>KV626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몸져누워 그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인에 대해서는 살리에리에 의한 독살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성마르크스 묘지에 매장되긴 했으나, 유해가 묻힌 정확한 장소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미작으로 남긴 레퀴엠은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가 완성 했으며, 사후 그의 아내 콘스탄째는 두 아들을 데리고 재혼을 하였다.

 

모짜르트는 물흐르는 듯이 주옥같은 620여곡의 아름다운 곡을 남긴 음악의 천재이지만

그의 음악 정신은  그의 선배들과는 달리 귀족보다는 그당시 빈의 시민들에게 향한 음악을 창작하였고 이 정신이 베토벤에게 승계되어 말년에는 불우한 생을 마감하였다...

 

귀족들에게서 독립되어 자기만의 창작에 몰두했지만   그당시 빈의 시민들은 진정한 천재들의 한발 앞선 음악들을 이해 못 했던 것같다...

Life is Short But Art is Long ...역시 진리임을 느낀다.

 

평생 모짜르트를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살았던 금세기 최고의 이탈리아 출신 피아니스트인 부조니(Feruuucio Busoni 1866-1924) 는 한숨과도 같은 읆조림으로 이렇게 모짜르트를 찬탄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나타난 음악의 천제 중 가장 완벽한 사람이다.

그는 빛과 그림자를 조종한다. 그는 정열적이다.그는 우주적이다.

 

그는 많은 것을 말하지만 결코 지나치다 할 수 없다.

그는 소년처럼 싱싱하고 노인마냥 현명하다.

그의 그토록 인간적인 미소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비치고 정화 시켜 주고 있다.


모짜르트의 완숙기의 작품을 살펴보면 부조니가 아니라도 누구나 감탄하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주옥 같은 아름다운 곡들이 많이 있다.

클라리넷 5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5개의 피아노 협주곡 ,3개의 교향곡...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