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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Telemann -Concerto in D major for Trumpet and Orchestra






Concerto in D major for Trumpet and Orchestra 이어듣기


1 mov. Moderato


2 mov. Largo


3 mov. Vivace

Concerto in D major for Trumpet and Orchestra
Telemann, Georg Phillipp (1681-1767 G)
Andre Bermard :Trumpet
Slovak Chember Orchestra
Bohdan Warchal : Conductor

 

 

 

 

 
 
 
 

 

Telemann, Georg Phillipp (1681-1767 G)

Concerto in D major for Trumpet and Orchestra

바흐와 같은 시대의 독일 작곡가인 텔레만은 작품도 다방면에 걸쳐서 대단히 많아서 600곡의 모음곡, 170편의 협주곡, 600편의 서곡, 44곡의 수난곡 (受難曲), 40편의 오페라 이외도 수 많은 칸타타와 실내악 등이 있으며,

근년에는 LP로 취입된 것도 대단히 많습니다.

 

대부분의 모음곡은 메누에트, 가보트, 부레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협주곡에는 거의 갖가지 종류의 관악기나

현악기를 위하여 또한 솔로뿐만 아니라, 2중, 3중의 협주곡도 있으며, 개중에는 4인용의 현악을 위한 협주곡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현악 4중 주인 것입니다.

18세기 초기와 중기에 활동한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은 당시 독일 최고의 작곡가였습니다. 4000여 곡 이상의 방대한 작품에는 바로크와 전 고전주의 양식의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음악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텔레만은 창작은 물론이고 연주와 이론, 음악교육 모두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텔레만은 방대한 양의

작품을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20여 명에 이르는 당 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편집 출판하였습니다.

텔레만의 오라토리오는 바로크 양식에 기초하고 있지만 전기 고전파 양식의 특징이 나타나는 진보성을 갖고 있습니다.

종교음악이라 해도 오페라 적인 특징이나 자신의 사상, 감정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로크 적인 대위법으로 쓴 기악작품에도 기교적인 장식을 요구하지 않았고, 많은 기악작품에서 선율이 분명하고 악구가 규칙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733년에 작곡된 하프시코드 판타지들은 초기 소나타 형식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텔레만은 그의 교회음악과 세속음악을 모두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음악회의 연주회 프로그램에서도 교회음악과 세속음악을 함께 올림으로 전통적인 연주회의 관습을 무너뜨리고

모든 종류의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한 음악 교육에도 관심이 깊어서 음악의 편집과 출판에도

 관여하였습니다.

텔레만의 이러한 시도는 교회음악이나 세속음악을 음악이라는 예술의 한 분야로 귀속시켰다는 점에서 현대의 예술관과 일치한다고 하겠습니다.

텔레만은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진보적인 작곡가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하의 그늘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그의 음악적인 업적이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텔레만의 연구가 갑자기 성해져 수많은 작품이 연주되어 레코드화하게 되었고, 이것은 바흐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고 있던 세계에 새로운 파문을 일으켜, 여기서 바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한 텔레만의 업적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텔레만은 1681년 3월 14일 독일의 마그데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종교적인 가정이라고 해도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나 대단한 교육도 받지 못했고, 특히 음악은 이렇다 할 공부를 하지 않았으나 독학으로 악보 등을 널리 탐독하여

 실력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1700년 라이프찌히 대학에 입학, 어학과 과학을 배웠다.

1704년 신교회당의 오르간 주자가 되고 라이프찌히 극장을 위해 오페라를 몇 곡 썼으며, 차츰 알려지게 되자 1708년에는 아이제나하의 카펠마이스터로 취임하여 차츰 두각을 나타냈다.

 

대교회의 음악 총감독, 궁정음악장, 오르간 주자를 겸임하고 거기서 사용하는 음악을 작곡했다. 1737년에는 파리를

방문. 그곳에서 프랑스음악을 접하고, 그 악상 · 악식을 도입한 바 있다. 텔레만은 교회용 칸타타 · 세속 칸타타 ·

타펠 무지크(탁상 음악) · 가극 같은 분야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것은 모두 출판되어 유럽과 미국에서 지금도 널리 연주하고 있다. 1767년 6월 25일 함부르크에서 타계했다.

 

Paul Dombrecht (born 1948, Ostend) is a Belgian oboist performing on period instruments as well as the modern oboe. He appears frequently with other prominent musicians and baroque orchestras.

He is the son of Stefaan Dombrecht, who was organist at Oostende. In addition to being an oboist, Paul Dombrecht is active as conductor and artistic director of the baroque orchestra Il Fondamento, the wind ensemble Octophoros and the Paul Dombrecht Consort.

Paul Dombrecht is also a virtuoso on the modern oboe, performing the complete repertoire for the instrument, including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Paul Dombrecht has an extensive discography with recordings made for the music labels Seon, Harmonia Mundi, Astr?e, Opus 111, Accent, Vanguard, Passacaille and Fuga Libera.

He is a professor at the Royal Conservatory of Brussels and regularly teaches masterclasses in Spain, Italy, Turkey, Germany, Greece and Israel.

 

 

 

 

 

 

 

텔레만은 1681 3월 14일 막데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의 목사였다.

 그는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그 곳의 교회음악가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 독학으로 악기와 음악을 공부했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작품은 오페라 『시기문두스』

(Sigismundus, 약 1693년경)였다. 하지만 이 유년 작품은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다. 1694년에는 젤러펠트

(Zellerfeld)로 학교를 옮겨 지리, 라틴어, 음악을 배웠다. 이 때에 그는 교회음악과 시립 음악가들을 위한 작품을

 몇 곡 썼다.

 

1697년에는 힐데스하임으로 옮겨 안드레아 학교를 다녔는데, 여기에서도 그의 작곡활동은 계속 되었다.

그의 작품은 학교 학생들을 위한 음악이었다.

 이 시기에 프랑스 기악과 이태리 오페라를 접했다.

1701년 고향 막데부르크에 돌아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텔레만은 당시의 많은 음악가들처럼 법학 공부를 위해 1701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의 법학 공부는 음악활동 때문에 곧 중단된다. 그는 대학에서 음악반(Collegium musicum)을 지도하면서

 오페라를 지휘하기도 하고 가수로 오페라에 참여하기도 했다. 1704년 그는 노이에 교회(Neue Kirche)의

오르가니스트 겸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거기에서 토마스 교회를 위한 칸타타들을 작곡하기도 했다(이 교회에는 바하가 1723년부터 음악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는 라이프치히 시와 바이쎈펠스 시를 위한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1701년 할레에 들렀을 때에

 헨델을 만났고, 상호 방문하며 작곡 공부를 같이 하기도 했다.

 

헨델과의 교우는 그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1705년 소라우(Sorau)의 백작 에르드만 폰 프림니츠(Erdmann

von Primnitz)의 악장으로 임명되었다.

프랑스 식 음악을 선호하던 이 곳에서 그는 주로 프랑스식 모음곡을 작곡했다. 1708년 텔레만은 아니제낙 시의

악장이 되었고, 뒤이어 요한 빌헬름 공작의 악장이 된다.

그는 여기에서 공작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음악과 교회음악을 작곡했다.

 

또한 트리오 소나타와 라이프치히 시를 위한 오페라도 작곡했다.

 아이제낙 시는 자신의 음악을 성장시켰고,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으며 종교적으로도 성숙한 계기를

 가졌다고 그 스스로 말한바 있다.

 

1712년 텔레만은 프랑크푸르트(마인) 시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동시에 그는 두 교회의 악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시의 주도적 인사들의 모임인 프라우엔슈타인(Frauenstein) 협회의 총무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 있을 때에 수많은 교회음악 작품들과 오케스트라 음악, 실내악을 썼다.

 

1713년 프라우엔슈타인 협회의 음악팀을 이끌며 수많은 음악회를 열었다. 이 음악회들은 공개적이거나 반공개적인

것들이었다.

1714년 그는 바하의 요청에 의해 그의 아들인 칼 필립 에마누엘의 대부가 되었다. 1715년에는 그의 인쇄된 첫 작품집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여섯 소나타(Six sonates a Violon seul)가 나왔고 그 후로 40여 작품들이 인쇄되어 나왔다.

 

1716년 18세기 초반의 독일 수난곡 중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오라토리오 『세상 죄를 위해 고통 당한 예수』가

 작곡되었다.

그밖에도 이 시기에 오라토리오 『신자들이여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라』(Auf Christenheit,

begeh ein Freudenfest)와 세레나타 『독일이여 평화 속에 자라고 번영하라』(Teutschland gruent und

blueht im Friede)가 작곡되었다.

 

1717년 텔레만은 아이제낙의 악장이 된다. 1718년 그는 자신의 첫 자서전을 집필했다. 하지만 이 글은 1731년

 마테존의 『계속저음 학습서』(Große Generalbaßschule)에 비로소 발표되었다.

1721년 텔레만은 함부르크의 요한 학교와 5개의 주요 교회의 음악감독이자 교회음악가로 임명된다.

그는 이 교회들을 위해 정규적으로 칸타타를 써야했고, 해마다 한 편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해야 했다.

 

그는 1740년까지 여기에서 많은 음악회를 개최하였고, 악보출판업자로서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보

까지도 출판했다.

그는 교회를 위한 칸타타와 수난곡들을 작곡하였고, 동시에 함부르크의 오페라 극장을 위한 오페라도 작곡했다.

또한 학교에서 필요한 음악들도 작곡하였다.

그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통해 당시 독일과 유럽 사회에서 많은 친구를가지고 있었다.

그의 많은 편지들은 매우 활발한 삶을 살았던 그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전해준다.

1737년 프랑스 친구들의 초청으로 8개월간의 빠리 여행을 했는데, 이 때에 그의 국제적 명성이 시작되었다.

 

1755년부터는 텔레만의 중요한 후기 작품들이 쓰여졌다: 『예수의 죽음』(Der Tod Jesu 1755), 『천둥 찬가』

(Die Donner-Ode 1756), 『하루의 여러 때』(Die Tageszeiten), 『예수의 부활과 승천』

(Die Auferstehung und Himmelfahrt Jesu 1760), 『심판의 때』(Der Tag des Gerichts 1765), 텔레만은

1767년 6월 25일 함부르크에서 사망했다.

 

텔레만은 음악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아직도 다 정리가 못된 상태이다. 그는 40세 이후부터 대단한 -전 유럽적- 명성을 누린 작곡가이기도

했다.

당시의 통념으로는 그가 바하보다 월등하게 훌륭한 음악가였다.

 

당시의 많은 독일인들은 음악가라고 하면 텔레만을 떠올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의 음악은 학자풍의 바하의

음악과는 다르게 전문적 음악가를 위해 작품을 쓸 때에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 비교적 손쉬운

작품들이 많았다.

 

그는 청중들에게 금방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을 원했다. 이러한 원칙은 수많은 그의 음악 장르와 기법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음악은 교회음악이든지 오케스트라 음악이든지 간에 일반적 청중을 의식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면 때문에 혹자들은 그를 고전주의 음악의 선구자로 보려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에 그는 쉽게 잊혀졌다.

 칸타타만 1000곡 이상을 쓴 그는 거의 "작곡공장"이라 칭할 만한 작품 양을 남겼으나, 후에까지 연주되는 작품은

 많지 않은 편이다.

최근에 텔레만 연구가 다시 활기를 얻으면서 일군의 작품들이 새롭게 세상에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바하의 그림자에 가려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료출처: 웹사이트

 

 

Telemann's Trumpet Concerto in D maj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