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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E. Grieg / Ich liebe dich


Nina und Edvard Grieg (1888)

 

 

 

 

 

 

 

Grieg - Ich liebe dich

 

 

sop, Elisabeth Schwarzkopf

piano, Geoffrey Parsons 

Edvard Grieg (1843 - 1907)

 

 

Du mein Gedanke, du mein Sein und Werden
Du Meines Herzens erste Seligkeit

Ich liebe dich sei nichts auf dieser Erden
ich liebe dich, ich liebe dich
ich liebe dich in Zeit und Ewigkeit
ich lie-be dich in Zeit und Ewigkeit


Ich den-ke dein, kann stets nur deiner denken
nur deinem Gluck ist dieses Herz geweiht

wie Gott auch mag des Lebens Schicjsal lenken
ich liebe dich ich lie-be dich
ich liebe dich in Zeit und Ewigkeit
ich liebe dich in Zeit und Ewigkeit



그대는 나의 생각 나의 생명
내 마음 속의 영원한 기쁨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리

사랑하오 사랑하오
그대를 영원히 사랑하오
사랑하오 그대를 영원히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네
그대의 행복은 또 나의 것
또 나의 운명이 변할지라도

사랑하오 사랑하오
그대를 영원히 사랑하오
사랑하오 그대를 영원히

 

 


 

 

 

 

 

 

Ich liebe dich는 독일어로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라는 뜻으로 본래 안데르센의 동시에 그리그가 곡을 붙여

 유명해진 곡입니다.
국내에서의 동명의 곡은 그리그의 곡보다 베에토벤의 작품이 더 알려져 있고 그리그의 작품은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국내에서는 주로 합창곡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그리그가 Ich Liebe dich를 작곡하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후일 자신의 반려자가된 니나 하그루프를 사랑하게된 그리그는 당시 여류 성악가로 인기를 끌던 니나를 위해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는데 이곡이 바로 ich lie be dich 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방법으로 자신의마음을 표현했고 이러한 그의 노력에 감명을 받은 니나 하그루프는 그리그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곡은 불행히도 처음엔 국내의 일반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대중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임에도 페르귄트라는 그의 불세출의 명곡의 그늘에 가려져 오히려 빛을 보지 못한

곡입니다.

뒤늦게 이 곡은 해외에서 공부를 하게된 국내 음악가들이 늘어나며 공연 음악으로 서서히 알려집니다.
서양, 특히 미국과 노르웨이 등지에서는 대표적 인 웨딩송으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솔베이지의 노래와 함께 그리그의

곡중 가장 인기있는 곡이 되었습니다.

 

(웹, 발췌)


 

 

 
Edvard Grieg (1843~1907,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태어난 노르웨이 국민주 의 음악가.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좋아한 모친에게서 음악에 대한 기본 교육을 받고,같은 베르겐 출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올레 불의 인정을 받아,그의 권유로 1858년 라이프찌히 음악원에 입학하여 4년간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다.

 

귀국 후 21세 때,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젊은 작곡가였던 노르드라크와 깊은 우정을 맺고, 그의 영향을 받아
그리그는 완전히 국민주의의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1865년에 로마로 여행했고, 1870년 에 리스트의 초대로재차 로마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때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리스트는 그를 매우 극찬하였다.

귀국 후 여류 성악가 니나 하게루프 를 사랑하게 되어, 안데르센의 시에곡을 붙인 가곡 <나 그대를 사랑해> 를 작곡하여 유명해졌고,그들은 결혼해서 오슬로에서 생활하였다.


또 1867년에 오슬로 음악 협회를 조 직하여 7년간 지휘자로서 활약했고,

 





 

 

1874년 31세 때 노르웨이 정부로부터국가의 종신 연금을 얻어 작곡에 전념했다.
그 후 고향인 베르겐이나 오 슬로에서 주로 생활했으나,1877년부 터는 로프트휘스에 틀어박혀 작품 창 작에만 몰두한다.
1885년부터는 베르겐에서 조금 떨어진 트롤드하우겐에 집을 짓고쇠약해진 몸을 요양하면서 전원 생활을 즐겼다.

이 사이에 가끔 라이프찌히, 로마, 파리, 런던 등지를 여행하여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의 아내 니나는 그리그의 가곡을 직접 불러 보급하는데그 공헌한 바가 크다.

1907년에 영국으로 연주 여행을 떠날 때,배를 타기도 전에 병이 무거워져 베르겐의 병원에서 9월 4일 세상을 떠났다

 

 

 






 


노르웨이 국민주의 음악의 대가 그리그는 1843년 노르웨이의 항구도시 베르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북해로

새우잡이를 왔다가 노르웨이에 정착한 스코틀랜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노르웨이 여성이었다.

 그리그가 태어났을 당시 노르웨이는 1536년에 덴마크에 병합되어 약 300여 년간의 지배를 받았고 1814년부터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격파한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노르웨이가 독립국이 된 것은 1905년의 일이었다고 하니 그리그가 태어난 1843년은 노르웨이가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였다.

그리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같은 베르겐 출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올레 불의 인정을 받아, 그의 권유로 15세 때(1858년)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유학한다.

이 시절 클라라 슈만이 연주하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도 들었고 바그너의 <탄호이저>도 여러 번 보았다고 전해진다.

귀국 후 21세 때,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젊은 작곡가였던 노르드라크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이듬해 코펜하겐으로 옮긴 그리그는 덴마크 음악계의 대가인 닐스 가데와 교류했다

그리그는 1865년에 로마를 여행했고, 1870년에 리스트의 초대로 재차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

이때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16(1868)을 연주한 리스트는 그리그를 극찬했다고 한다.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리그는 오슬로 음악원 부원장, 필하모니아 협회의 지휘자 등을 겸하면서 작곡에 몰두했다.

 

 1867년에 오슬로 음악협회를 조직하여 7년간 지휘자로 활약했고, 1874년 31세 때부터 고향인 베르겐이나 오슬로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국가의 종신연금을 얻어 작곡에 전념했다.

그리그가 <페르 귄트>를 작곡한 것은 이 시절이었다.

위대한 극작가 입센의 작품에 음악을 입히다

작곡가들의 작품을 작곡 분위기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확신에 의해서 감전된 듯 써나가는 작품이 있고, 반신반의하며 회의 속에서 작곡하는 곡이 있다고 할 때 <페르 귄트>는

명백히 후자에 속할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리그는 평소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 서정적이라 극음악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페르 귄트>를 처음 의뢰받았을 때도 반신반의했었다고 한다. 돈 때문도 아니었고 단지 주제가 음악적이지 않아 아무런

영감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낳은 위대한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의 위촉을 받고 힘을 내 작곡에

임한 결과, 그리그의 최고 명곡일 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걸작 <페르 귄트>가

탄생했다.

그리그는 의뢰를 받은 31세 때 이 곡을 쓰기 시작했고, 다음해 여름에 완성했다. 처음에는 피아노 2중주 형식으로

 출판했다가 뒤에 오케스트라로 편곡했다.

이 극음악은 5곡의 전주곡을 비롯하여 행진곡ㆍ춤곡ㆍ독창곡ㆍ합창곡 등 모두 23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 입센은 그리그에게 자신의 작품 <페르 귄트>에 곡을 붙여줄 것을 의뢰했다.

헨리크 입센이 노르웨이 민속설화를 소재로 해서 쓴 <페르 귄트>의 환상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페르 귄트는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재산을 낭비하고 몰락해버렸기 때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과부가 된 어머니 오제와 함께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페르 귄트는 대단히 게으른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는 자신이 잘될 것이라 큰소리치며 꿈을 꾸는 몽상가이자 방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돈과 모험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면서 기적적인 모험을 겪는 페르 귄트는 남의 부인을 빼앗기도 하고, 험준한 산에서

마왕의 딸과 같이 지내기도 한다.

농부의 딸인 솔베이가 나타나 서로 사랑을 맹세하지만, 페르 귄트는 애인인 솔베이를 두고 늙은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겪는다. 페르 귄트는 다시 먼 바다로 떠난다.

 아프리카에서는 추장의 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등 부와 모험을 좇아 고뇌와 유랑의 모험을 하던 페르 귄트는 끝내

 몰락한다.

그는 노쇠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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