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e King-You've Got a Friend
You've Got a Friend
When you're down and troubled..
그대가 힘들고 마음이 아파서..
And you need some love and care..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그리울 때..
And nothing, nothing is going right..
그리고.. 모든 일이 엉망진창일 때..
Close your eyes and think of me..
눈을 감고 저를 생각하세요..
And soon I will be there..
제가.. 그대 곁으로 달려가..
To brighten up even your darkest night..
그 칠흑 같은 밤을 밝혀드릴게요..
You just call out my name..
제 이름만 부르시면 돼요..
And you know where I am..
어디서든 달려갈게요..
I'll come running to see you again..
그대를 다시 보기 위해..
Winter, spring, summer or fall..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언제든..
All you have to do is call..
제 이름만 부르시면..
And I'll be there..
그대 곁으로 갈게요..
And I'll be there..
그대 곁으로 갈게요..
You've got a friend..
전 그대 친구니까..
If the sky above you..
그대 머리 위의 하늘이..
Grows dark and full of clouds..
어두워져서 구름으로 가득하고..
And that old north wind begins to blow..
매서운 북풍이 불기 시작하면..
Keep your head together..
고개를 치켜들고..
And call my name out loud..
제 이름을 크게 부르세요..
Soon you'll hear me knocking at your door..
조금만 있으면 제가 그대 문 앞에 서있을 테니..
You just call out my name..
제 이름만 부르시면 돼요..
And you know wherever I am..
어디서든 달려갈게요..
I'll come running to see you again..
그대를 다시 보기 위해..
Winter, spring, summer or fall..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언제든..
All you have to do is call..
제 이름만 부르시면..
And I'll be there..
그대 곁으로 갈게요..
Ain't it good to know that you've got a friend..
그대에게 친구가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When people can be so cold..
세상 사람들은 비정해서..
They'll hurt you, yes, and desert you..
그대 맘을 아프게 하고.. 배신하고..
And take your soul if you let them..
그대 영혼까지 앗아가 버리려 할 거예요..
Oh, but don't you let them..
사람들이 그런 짓을 못 하도록..
You just call out my name..
제 이름을 크게 부르세요..
And you know wherever I am..
어디서든 달려갈게요..
I'll come running to see you again..
그대를 다시 보기 위해..
Winter, spring, summer or fall..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언제든..
All you have to do is call..
제 이름만 부르시면..
And I'll be there..
그대 곁으로 갈게요..
You've got a friend..
전 그대 친구니까..
좋은 노래란 무엇일까?
음악은 상대적이고도 주관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노래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작곡가와 가수는 은퇴하고 잊혀도, 노래는 수십 년 수백 년을 장수하기도 한다.
정규방송이 끝나고 흘러나오는 애국가를 끝까지 듣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올림픽 시상식장에서의 애국가는 눈물샘을
자극하며, 시끄럽고 유치해서 평소에는 듣지도 않는 최신 댄스음악도 노래방에서 같이 어울려 부를 때는 사람들을
광분시킨다. 구닥다리 옛날 노래 역시 촌스럽고 식상해 보여도 어느 순간 마술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빼앗는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싱어 송 라이터 캐롤 킹(Carole King)은 마술사의 반열에 오른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Will You Love Me Tomorrow?〉처럼 그녀가 작곡한, 혹은 그녀가 노래한 수많은 음악들이 30~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리고 들리며, 사람들을 마법에 걸리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프러포즈용으로도 쓰인다.
캐롤 킹은 1942년에 퀸즈에서 태어나 자란 뉴욕 토박이다.
퀸즈 대학을 다니며, 훗날 그녀만큼 유명해진 싱어 송라이터 폴 사이먼(Paul Simon), 닐 세다카(Neil Sedaka) 등과
친하게 지냈다.
자연스럽게 음악의 길을 걷던 그녀는1959년 닐 세다카가 부른 〈Oh Carol〉이 히트하면서 '뜨기도 전에 이미 뜬'
유명인사가 되기도 한다.
캐롤 킹은 이미 20대 초반에 남편이자 공동 작곡가인 제리 고핀(Gerry Goffin)과 함께 수많은 가수들의 작업을 하며
자신들의 레이블을 차릴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히트곡도 여럿 냈는데, 그녀 자신을 슈퍼스타로 만든 것은 역시 1971년의 솔로 앨범 《Tapestry》다.
이 앨범은 포크뿐만 아니라 팝, 록, 재즈에서도 중요하게 자리매김한 이정표 같은 앨범이다.
사실 캐롤 킹은 폭발적인 가창력을 지녔다거나 황홀한 테크닉의 연주를 보여 주는 뮤지션은 아니다.
도리어 내가 보기에 최악의 〈You've Got A Friend〉는 캐롤 킹 자신이 부른 버전인 것 같다.
캐롤 킹 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킹은 별 특색이 없는 탁한 음색의 가수다.
그러나 그녀는 싱어 송 라이터다.
자신의 곡을 자신이 직접 노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음악의 요소이기 때문에 그녀의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멜로디와 가사가 뇌리에 남아 잊히지 않는다.
이것이 포크 음악의 매력인 것이다.
보컬과 연주, 편곡과 녹음에 앞서 작곡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밥 딜런이나 레너드 코헨의 가창력도 그래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1971년 《Tapestry》가 발매되자 따끈따끈한 신곡인 〈It's Too Late〉, 〈So Far Away〉, 〈I Feel The Earth
Move〉가 줄줄이 히트했으며, 그녀가 작곡하고 다른 가수들이 불러 이미 히트를 쳤던 보석 같은 노래 〈Will You Love Me Tomorrow?〉, 〈You've Got A Friend〉, 〈A Natural Woman〉, 〈Smackwater Jack〉 등도 작곡가
본인의 따뜻하고도 풋풋한 목소리로 일종의 '언플러그드(전자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음악)'화가 되어 나름 그 빛을
더욱 발하게 되었다.
여성이 가수가 아닌 작곡가로서 인기를 얻고 인정받는 일은 지금도 흔한 일이 아닌데, 그 시절에 이토록 맹활약한 것을
보면, 대중문화 역사에서 캐롤 킹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캐롤 킹과 함께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싱어 송 라이터로 꼽히는 조니 미첼(Joni Mitchell)이 《Tapestry》에 코러스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캐롤 킹이 포크적이고 대중적이었다면, 조니 미첼은 좀 더 재즈적이고 작가적인 성향의 작곡가라 잘 연결이 되지 않지만, 〈Will You Love Me Tomorrow?〉에서 들리는 두 사람의 하모니는 신선하고도 멋지다. 물론 약방의 감초인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도 하모니를 거들고 있다.
여주인으로 몇 차례 나왔었는데, 킹의 곡인 〈Where You Lead〉가 이 드라마의 주제가였던 것이 계기였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늘 느끼는 바이지만, 《Tapestry》 앨범의 수록곡은 모두 예쁘고 듣기 좋다.
버릴 곡이 없다.
앨범 제목(Tapestry,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처럼 마치 조각조각 예쁜 무늬가 장식된 태피스트리를 감상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많은 가수들이 이 곡들을 자신들의 앨범에서 다시 부르고 있으며, 1995년에 비지스(Bee Gees),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에이미 그랜트(Amy Grant), 맨해튼 트랜스퍼(Manhattan Transfer) 등 당대의 가수들이 아예 캐롤 킹에게 바치는 《Tapestry Revisited》라는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
〈Will You Love Me Tomorrow?〉는 로버타 플랙이, 〈You've Got A Friend〉는 제임스 테일러가, 〈A Natural Woman〉은 아레사 프랭클린이 부른 버전을 더 좋아하지만, 그것이 캐롤 킹에게 별로 누가 될 것 같지는 않다.
화려하거나 복잡하거나 정교하거나 강렬하지 않고도 40년 동안 꾸준히 진화하면서 사랑받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든 킹
아줌마가 존경스럽고 또 부러울 따름이다.
캐롤 킹(본명: Carole Klein)은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태어나 성장했는데 캐롤이 어렸을때 브룩클린에서는 재즈,스위
밴드, 감상적인 사랑 노래들이 인기를 끌었지만,그런 음악들에서 벗어나 빌 헤일리(Bill Haley),패츠 도미노
(Fats Domino),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등이 선보인 뉴 록 혁명에 영향을 받아서 동급생들보다 록의 뿌리에 대한 탐구에 한층 깊이 파고들었고 주로 흑인들에게만 향유되던 리듬 앤 블루스에 큰 흥미를 지니고 몰두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팝 차트에서는 R&B 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R&B 곡들을 써나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으며,(Neil Sedaka의 1959년도 히트곡 'Oh! Carole'은 캐롤 킹에게 바친 노래라고 합니다)청년 작사가
게리 고핀과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캐롤은 뉴욕 언론들의 주목을 받는 작곡팀 대열에 합류했는데,당시 스무살이었던 그녀는 캐롤 킹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며 촉망받는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캐롤과 게리의 첫 번째 대히트 작품은 1961년 쉬렐스(The Shirelles)가 부른 'Will You Love Me Tomorrow'였으며,
얼마 뒤에는 드리프터스(The Drifters)의 'Up on The Roof'가 Top 10 에,1962년에는 이들 부부의 애기 봐주는
여자였던 리틀 에바(Little Eva,본명:Eva Boyd)가 'Locomotion'으로 1위를 차지했는데 이 곡은 그랜드 펀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에 의해 1974년에도 다시 정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들 부부의 주요 작품으로는 드리프터스의 'Some Kind Of Wonderful'(1961),진 피트니(Gene Pitney)의
'Every Breath I Take'(1961),바비 빈튼(Bobby Vinton)과 토니 올란도(Tony Orlando)의 'Half Ways To Paradise'(1961,1968),쉬폰스(Chiffons)의 'one Fine Day'(1963),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의 'A Natural Woman'(1967)등이 있으며,1970년에는 블러드 스웨트 앤 티어즈(Blood Sweat & Tears)가 'Hi-De-Ho'를 불러 큰 히트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가 흘러가는 동안 캐롤 킹이 발표한 앨범들은 초베스트셀러 앨범 [Tapestry]가 거두었던 성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975년에 낸 TV 사운드트랙 [Really Rosie]를 제외한 ODE 레코드사 발매 전 앨범이 골드 레코드를 따냈고,
[Rhymes & Reasons]는 1972년 11월 1일에 골드 레코드를, [Fantasy]는 1973년 6월 26일에,
[Wrap Around Joy]는 1974년 10월 16일에,[Thoroughbred]는 1976년 3월 25일에 골드 레코드를
수여받았습니다.
70,80년대 최고의 작곡가로 인간과 환경, 정신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곡을 쓰고 영화,TV 음악에 이르기까지 창작력을
끊임없이 발휘하는 한편, 음악적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캐롤 킹은 팝 음악 역사상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그 확고한 지위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같이 천진한 마음으로 믿는다면 평화가 가능해집니다.
우린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빛은 우리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빛을 발하게 해봅시다."
1982년 12월 아이다호 케첨 지방의 헤밍웨이 초등학교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한 대목 중에서....Carole King...
옆의 사진은 Carole King 과 Gerry Goffin 사이에서 낳은 둘째딸 Sherry Goffin Kondor 이며,참고로 그녀는 작곡가 Toni Stern,그룹 City 멤버 찰스 라키,잠시 재혼했던 릭 에버스 까지 포함 한다면 4 번의 결혼을 했었습니다.
Carole King (캐롤 킹)
캐롤 킹(Carole King)은 20여 년에 걸쳐 팝 뮤직계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60년대에 캐롤 킹은 게리 고핀
(Gerry Goffin)과 작곡팀을 이루어 R&B, 소울, 록음악에서 여러 개의 대히트곡들을 만들어냈다.
1970년대에는 작곡가 겸 가수로서 예전에 만들었던 시끄러운 음악들에 비해 보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사운드의,
포크 뮤직에 가까운 팝 음악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캐롤 킹(본명: Carole Klein)은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태어나 성장했는데 캐롤이 어린아이일 때 브룩클린에서는 재즈,
스위 밴드, 감상적인 사랑 노래들이 인기를 끌었다.
십대 시절, 캐롤은 그런 음악들에서 벗어나 빌 헤일리(Bill Haley),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패츠 도미노
(Fats Domino) 등이 선보인 뉴 록 혁명에 영향을 받았다.
고등학생 시절, 캐롤은 동급생들보다 록의 뿌리에 대한 탐구에 한층 깊이 파고들었고 주로 흑인들에게만 향유되던
리듬 앤 블루스에 큰 흥미를 지니고 몰두했다.
캐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팝 차트에서는 R&B 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R&B 곡들을 써나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Neil Sedaka의 1959년도 히트곡 'Oh! Carole'은 캐롤 킹에게 바쳐진 노래이다) 청년 작사가 게리 고핀과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캐롤은 뉴욕 언론들의 주목을 받는 작곡팀 대열에 합류됐다.
당시 스무살이었던 그녀는 캐롤 킹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는데 그녀와 게리는 촉망받는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캐롤과 게리의 첫 번째 대히트 작품은 1961년 쉬렐스(The Shirelles)가 부른 'Will You Love Me Tomorrow'였다. 얼마 뒤에는 드리프터스(The Drifters)의 'Up on The Roof'가 Top 10에 올랐다. 고핀과 킹이 함께 만든 노래들은
다양한 아티스트들에게 불려지며 성공을 거뒀다. 1962년에는 이들 부부의 애기 봐주는 여자였던 리틀 에바
(Little Eva, 본명: Eva Boyd)가 'Locomotion'으로 1위를 차지했는데 이 노래는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
(Grand Funk Railroad)에 의해 1974년에도 다시 정상에 올랐다.
70년에는 블러드 스웨트 앤 티어즈(Blood Sweat & Tears)가 'Hi-De-Ho'를 불러 큰 히트를 거뒀다.
그 외에도 쉬폰스(Chiffons)의 'one Fine Day'(1963), 드리프터스의 'Some Kind Of Wonderful'(1961),
바비 빈튼(Bobby Vinton)과 토니 올란도(Tony Orlando)의 'Half Ways To Paradise'(1961, 1968), 맥신
브라운(Maxine Brown)의 'Oh No, Not My Baby'(1965), 라이처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의
'Just once In My Life'(1965), 진 피트니(Gene Pitney)의 'Every Breath I Take'(1961), 아레사 프랭클린
(Aretha Franklin)의 'A Natural Woman'(1967)등이 이들 부부가 써낸 주요 작품들이다.
1960년대 초 캐롤은 자신들이 쓴 노래를 직접 부르는 시도를 했다. 몇몇 노래는 차트에도 올랐는데 1962년에
Dimension 레코드사에서 나온 'It Might As Well Rain Until September'가 그 중 가장 히트한 노래이다.
그러나 캐롤은 팝 스타의 지위를 쫓기보다는 가정 살림에 더 신경을 썼다.
고핀-킹 작곡팀은 결혼 생활이 삐걱거리게 되기 전까지는 대단히 생산적인 활동을 보였으나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고
캐롤은 어린 두 딸의 육아에 전념하느라 한동안 반은퇴 상태로 지냈다.
60년대 후반 그녀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고 비록 한동안은 캘리포니아의 음악계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작곡 활동을 재개했다.
60년대 말에는 여러 작곡가들(Toni Stern, 뒤에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 되는 Charles Larkey 등)과 함께 일했지만
대부분의 신곡들은 그녀 혼자서 만든 것들이었다.
1968년에 키롤은 찰스 라키, 대니 코치마(Danny Kortchmar)와 함께 씨티(City)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1963년부터 알고 지내온 루 애들러(Lou Adler)가 경영하는 Ode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Now That Everything's Been Said]라는 앨범을 발표했으나 실패를 거뒀다.
그런 와중에도 캐롤은 코치마의 소개로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를 알게되는데 제임스는 캐롤에게 솔로 가수로
활동해 볼 것을 적극 권유했다.
서부 연안 지역에서 가졌던 몇 차례의 콘서트에서 얻어낸 호응과 그녀에 대한 애들러의 신뢰가 한몫 거들어 캐롤은 솔로 가수로서 활동할 결심을 굳혔다.
70년대 초에 나온 캐롤의 첫 솔로 앨범 [Writer: Carole King]은 그런 대로 좋은 반응을 얻어냈지만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 다음 앨범은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71년 초에 나온 [Tapestry]가 그것으로, 이 앨범
발매 뒤 캐롤은 3월과 4월에 제임스 테일러와 함께 전국 투어를 돌았다.
그 해 중반 경에는 앨범과 투어 모두 좋은 반응을 얻으며 사람들은 캐롤 킹에게 오프닝이 아닌 헤드 라이너로 공연에
설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앨범은 골드를 따냈고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른 'It's Too Late'와 캐롤 킹의 고전이 된 'I Feel The Earth Move'와
'You've Got A Friend' 등의 노래를 배출해냈다.
1971년에는 제임스 테일러가 'You've Got A Friend'를 불러 역시 1위에 올랐고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과
도니 해서웨이(Donny Hathaway)는 캐롤 킹이 써준 노래로 차트 30위권까지 올라갔다.
[Tapestry]는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1971년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른 이 앨범은 1976년 후반까지 차트에
머물렀고 1,350만장이 팔리며 당시 최대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1971년도의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캐롤은 올해의
앨범상, 최우수 여성 팝가수상을 받았고 또 'You've Got A Friend'로 작곡가에게 주어지는 올해의 작품상을 받았으며 싱글 'It's Too Late'로 올해의 레코드상을 받는 등 모두 네 개의 상을 휩쓸었다.
1971년이 저물기 전 캐롤은 Ode 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세 번째 솔로 앨범 [Music]으로 골드 레코드를 수여받았다.
70년대가 흘러가는 동안 캐롤 킹이 발표한 앨범들은 초베스트셀러 앨범 [Tapestry]가 거두었던 성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975년에 낸 TV 사운드트랙 [Really Rosie]를 제외한 Ode 레코드사 발매 전 앨범이 골드 레코드를 따냈다.
[Rhymes & Reasons]는 1972년 11월 1일에 골드 레코드를 수여받았고, [Fantasy]는 1973년 6월 26일에,
[Wrap Around Joy]는 1974년 10월 16일에, [Thoroughbred]는 1976년 3월 25일에 골드 레코드를 수여받았다.
항상 사생활 보호에 신경을 쓰는 캐롤은 1971년의 호황기 이래 라이브 출연을 줄여나갔다. 공연을 갖기는 했지만 공연 간격은 지극히 멀었다.
70년대 초 이같이 무대 뒤로 물러난 대신 그녀는 두 번째 남편 라키와 그 사이에서 낳은 딸 등 가족과 함께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 애썼다.
이로 인해 그녀가 새로 내놓는 앨범들의 판매고는 다소 떨어졌겠지만 그녀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생활 신조는
1977년도에 골드를 따낸 [Simple Things] 앨범의 타이틀곡에 나오는 "단순한 것이 내게는 큰 의미가 된다."라는
가사에서도 피력된 바 있다.
[Simple Things]는 발매사가 바뀌어 있었다.
1976년 후반 캐롤은 Ode 레코드사를 떠난다는 레코드사 이적 발표를 한 뒤 그 해 12월 Avatar/Capitol 레이블을
새로 설립한 Capitol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Simple Things] 앨범을 내놓았던 것이다.
70년대에 캐롤은 Capitol에서 [Welcome Home] (1978), [Touch The Sky](1979) 두 장의 앨범을 더 내놓았다.
80년대 들어서는 Capitol에서 [Pearls] 앨범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에는 다른 가수들에 의해 불려져 큰 히트를
기록했던 고핀-킹의 작품들이 캐롤에 의해 다시 불리어 담겨졌다.
1970년대 말 라키와 이혼한 뒤 아이다호 스탠리 근교의 로빈슨으로 옮겨와 살게 된 캐롤은 릭 에버스와 재혼하여 잠깐
함께 살기도 했으나 다시 헤어졌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의 요란하고 스트레스 쌓이는 생활에서 벗어나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의 삶을 누리고 싶어했다.
1982년 12월 아이다호 케첨 지방의 헤밍웨이 초등학교에서 열린 집회에 캐롤이 연사로 나와서 청중들에게 자신은
가수이자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공증인이기도 하다고 말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그녀가 연설에서 밝힌 주 요지는 존 레논(John Lennon)처럼 예술인들은 평화를 상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같이 천진한 마음으로 믿는다면 평화가 가능해집니다.
우린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빛은 우리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빛을 발하게 해봅시다."
1980년대에도 캐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목장에서 보내며 라이브 콘서트는 특별한 때만 극히 제한적으로 참여하며 조용한 생활을 계속했다.
그녀가 가진 공연 중에는 1984년 게리 하트(Gary Hart0 상원의원의 대통령 선거 입후보 기금 마련 행사도 있었다.
그러나 {Tapestry] 이후 이렇다 할 음반 판매 실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음은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 도로시 챈들러 공연 때는 [Tapestry] 앨범 이후 자신이 죽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더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 그녀는 80년대에 새로 쓴 작품들로 공연을 가졌으나 관객들은 [Tapestry] 앨범 수록곡들에만 크게 반응을 보였다.
[Speeding Time] 이후 6년만에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게스트 뮤지션으로 참여했고 신디사이저와 드럼 머신을 사용하여 이전보다 훨씬 모던한 느낌의 [City Streets](89)로 되돌아온 그녀는 93년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기타리스트 슬래쉬(Slash)가 참여한 [Colour Of Your Dreams]를 발표했다.
94년 브로드웨이 연극 [Bloodbrothers]를 6개월 동안이나 성공리에 공연함으로써 배우로서도 화려한 데뷔를
이루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음악활동에 더 충실히 임했다.
최근에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You've Got A Mail](98)의 사운드 트랙에 프로듀서로 참여할 정도로 여전히
음반업계에서 농익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7, 80년대 최고의 작곡가로 인간과 환경, 정신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곡을 쓰고 영화, TV 음악에 이르기까지 창작력을
끊임없이 발휘하는 한편, 음악적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캐롤 킹은 팝 음악 역사상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그 확고한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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